'서울시 간첩사건' 목 걸린 사람들

증거조작 후폭풍…단두대 누가 오를까

[일요시사=사회팀] 공안몰이 덕을 톡톡히 봤던 박근혜정부가 중대 기로에 섰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까닭이다.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벌써부터 남재준 국정원장, 황교안 법무 부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우에 따라 김진태 검찰총장의 거취마저 불투명해질 수 있는 매머드급 사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여파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대선 개입, 민간인 불법 사찰,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등으로 정국을 마비시켰던 국정원은 이번 증거조작 사건의 중심에서 또 다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국정원 정조준
원세훈도 도마

지난 12일 <동아일보>는 간첩 사건과 관련한 증거 위조를 주도한 인물이 국정원 대공수사국 A팀장(3급)으로 특정됐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검찰청 강력부장)은 국정원 조선족 협력자 김모(61)씨가 위조해 온 문서 2건을 가짜 '영사확인서'로 만드는 과정에서 A팀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영사확인서를 만든 건 이인철 주선양 총영사관 영사(4급)지만 그 윗선에선 A팀장이 증거 조작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중순 대공수사팀 김모 과장(4급)이 조선족 김씨를 만나 "유우성씨 변호인 측의 출입경 기록을 반박할 자료를 구해달라"고 한 것도 A팀장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와 이 영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위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 김 과장에 대해서도 소환 조사를 저울하고 있다.

그간 검찰은 문서 위조를 자백한 김씨의 진술을 근거로 이 영사와 김 과장의 연결고리인 '제3의 인물'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A팀장이 증거 조작에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검찰은 유씨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유씨에게 씌워진 간첩 혐의가 무죄로 선고되자 A팀장이 나서 위조를 지시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또 이 영사로부터 사전에 위조 사실을 보고받고도 이를 묵인한 것은 아닌지 등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수사 진행 상황을 보면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증거 확보 작업을 컨트롤한 A팀장에게 검찰의 화력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A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보다 더 윗선의 존재가 드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복수 관계자는 "국정원 조직 특성상 실무진이나 현장요원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증거 조작을 도모하긴 힘들다"고 증언하고 있다.

A팀장의 윗선인 대공수사국장(1급, 정부 부처 차관보나 실장급), 대공수사라인의 총지휘자인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이 조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또 국정원의 최종 결정권자인 남재준 국정원장도 파고 들어오는 칼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국정원 내부의 치열한 실적 경쟁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의 증거 조작 의혹이 면책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위법 행위에 대한 사법 처벌과는 별도로 문책성 인사가 단행될 것이란 전망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진퇴양난 남재준
전방위 사퇴 압박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의 원흉으로 남 원장을 융단폭격하고 있다. 남 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그간 야권이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번 증거 조작 사건을 기점으로 일부 여권 인사가 남 원장과 선을 그으면서 '남재준 해임론'은 탄력을 받고 있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양날의 검'으로 보고 있다. 북한과 관련한 공안사건이 적시에 터질 경우 득을 보는 건 아무래도 여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섣불리 이번 사건을 덮으려 할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 등을 돌리는 의원은 속출하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 중진 연석회의에서는 이 같은 여권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한 장본인은 (스스로) 그만둬야 한다"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김용태·조해진·심재철 등 이른바 친이계 의원들은 이 의원의 사퇴 요구에 동조했다.

친박계 일각에서도 '남재준 책임론'이 고개를 들었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국정원 수뇌부의 쇄신 등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은 "책임질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 안팎으로 '남재준 해임론'의 명분이 쌓이고 있는 중이다.

검찰·국정원에 화력 집중 "윗선 쳐낸다"
서천호 등 대공라인 대대적 메스질 불가피

때를 맞춰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남 원장에 대한 공세 수위를 한껏 높였다. 지난 13일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조치가 없을 경우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촉구 결의안'을 제출토록 하는 등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남 원장을 해임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암덩어리로 전락한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은 이번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이례적인 유감 표명을 했다. 지난 10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증거자료의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실체적 진실을 정확하게 밝혀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수사 전권을 위임받은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이로부터 6시간 만에 검찰은 국정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앞서 지난해 4월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로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던 검찰은 불과 10개월 만에 다시 최고 정보기관의 심장을 겨누게 됐다.

남 원장은 국정원장에 취임한 지 1년 만에 2번이나 조직의 안방을 내주는 굴욕을 당하면서 전방위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남 원장은 요지부동이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9일 남 원장은 예상 밖의 타이밍에 보도자료를 뿌려 빈축을 샀다. 관련 내용을 보면 '우리도 당했다'는 식의 해명인데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수사 결과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국정원을 향한 십자포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남 원장은 뒷짐을 진 채 방관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험대 선 김진태
도마 오른 황교안

정치권 한 관계자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이번 증거 조작 사건은 결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전자가 원세훈 국정원장 때 벌어진 일이라면 후자는 남 원장 취임 후 생긴 일이라 책임 소재가 다르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남 원장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동반돼야 한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은 지난 이명박정부 때부터 준비됐으며, 때문에 남 원장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기 애매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유력 매체는 전직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 "'간첩사건'은 원 전 원장 재임 때 시작된 일이고, 올해 대공수사국 중점 과제는 'RO 사건'이었기 때문에 상부의 관심이 떨어져 단장급 이상은 보고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보통 3급 팀장이 4∼5개의 사건을 함께 관장하는데 국장급(1급)까지 보고가 올라가는 건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향후 조사 과정에서 A 팀장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윗선을 밝히는 작업은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키는 검찰이 쥐고 있다. 성실한 수사와 끈질긴 추궁은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그러나 유씨에 대한 공소유지를 하고 있는 검찰 입장에서 이번 수사는 신중을 가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의 증거 조작 의혹을 규명한다면 유씨에 대한 2심 재판은 힘이 빠지게 된다. 검찰 스스로 기소의 부당함을 인정하는 격이라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유씨에 대한 결심 예정일은 28일, 그 전까지 검찰은 증거 조작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윗선을 캐내기 위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검찰 안팎에 끊이지 않고 있다.

조직의 명운을 짊어진 김진태 검찰총장은 국정원을 감싸는 듯한 인상을 주며 우려를 사고 있다. 뒷북수사와 때늦은 압수수색으로 의혹의 당사자인 국정원에 시간을 벌어 준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실제로 복수 관계자는 "(국정원과) 수사 가이드라인을 사전에 조율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던지고 있다. 때문에 김 총장 역시 수사 결과에 따라 거센 역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대두된다. 김 총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국정원뿐만 아니라 검찰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국정원이 전한 증거물을 검증 없이 재판부에 제출한 것도 문제지만 검찰 측에서 사전에 증거 조작 여부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탄로 날 경우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김 총장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현철 부장검사)에 대한 문책이 검토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책 수위는 진상 조사 결과에 따르겠지만 국정원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검찰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1심 때부터 공조체제를 구축한 검찰이 국정원의 조작 움직임을 몰랐다는 사실은 의심의 대상이다. 또 무리한 수사로 국정원의 반발을 살 경우 자칫 '채동욱 사태' 때처럼 국정원이 반격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전에 알았나 몰랐나
황교안·남재준 해임론

현직 특수부 시절 김 총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등의 입을 열어 여야 정치거물인 홍인길 전 총무수석과 권노갑 민주당 고문 등을 구속한 전력이 있다. 그만큼 권력 눈치 안 보고 수사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박 대통령의 복심이나 다름없는 남 원장과 맞서게 돼 그 셈법에 관심이 쏠린다. 무엇보다 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심판이 청구되는 등 정권에서 요구하는 국정원의 역할이 막대한 가운데 남 원장을 정면으로 조준하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해석도 있다. 청와대 출신 한 관계자는 "결국 청와대의 입을 쳐다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소신 있는 수사에 한계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거취 문제다. 앞서 공식 외교라인을 통해 증거를 입수했다고 말했던 황 장관은 며칠 뒤 국정원으로부터 문서를 입수했다고 말을 바꾸며 논란을 확산시켰다. 그간 원세훈·김용판 수사 축소 의혹 등으로 홍역을 앓았던 황 장관은 국회 본회의에 해임안이 상정될 정도로 미운털이 박힌 상황이다. 과거 '안기부 X파일' 수사 당시 국정원을 사상 첫 압수수색했던 황 장관은 얄궂게도 국정원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하지만 국정원을 넘어뜨려도 황 장관이 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검찰 라인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김 총장보다는 황 장관 쪽에 무게가 쏠리는 분위기다. 법조계 풀이 두터운 박근혜정부 특성상 황 장관의 공백을 매우는 쪽이 더 쉽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향후 출구전략을 놓고 청와대가 어떤 결정을 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원세훈카드 만지작
외교라인도 손보나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원 전 원장에 대한 '책임 전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는 것이다. 유씨가 체포된 지난해 1월은 원 전 원장의 재직 시절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한창 이슈화되던 때다.

<일요시사> 보도 등에 따르면 유씨의 여동생 유가려씨가 국정원 심문을 받던 시점은 이보다도 훨씬 전이다. 즉 국정원이 서울시 공무원 유씨를 표적으로 한 건 애초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기획수사였고, 이 사건의 책임자가 원 전 원장인 만큼 지난 정권에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이번 사건은 정치권과 권력기관, 행정기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참사다. 더불어 신뢰를 잃은 대중 외교라인과 중국 정부가 취한 강경한 태도는 또 하나의 변수로 우리 외교당국에 부담이 되고 있다.

각 주재국 영사관 등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은 일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선 벌써부터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다. 그간 영사 신분으로 파견된 국정원 직원은 외교부 통제 밖에서 활동해왔지만 이번 사태로 해외공작 파트의 위상과 독립성은 뿌리째 흔들리는 중 이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는 취임 1년간 국정원과 검찰의 힘을 톡톡히 봤지만 이번 증거조작 파문으로 국정 운영의 일대 분수령을 맞았다. 전두환·이석기 쌍끌이 수사로 지지율을 끌어올린 현 정부는 공안몰이에 성공했지만 지난 정부에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또 다시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위기를 맞은 청와대의 결단은 무엇일지. 시한폭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너 몰린 남재준 선택은?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전방위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그의 진퇴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남 원장은 육군참모총장 재임 시절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확산되자 사상 초유의 전역지원서 제출로 결백을 주장한 바 있다.

지난 2004년 있었던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남 원장은 육군 장성 진급비리 괴문서 사건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나가자 전역지원서 제출로 맞섰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남 원장의 사표를 반려했다.

 남 원장의 청렴성과 도덕성은 자타공인 의심하는 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원칙주의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 소문이 적지 않다.

특히 노 대통령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 군 수뇌부들을 초청한 골프대회에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또 남 원장은 육군 간부회의 석상에서 참여정부의 국방부 문민화와 군 검찰 독립 등의 사안을 성토하며 이른바 '정중부의 난'을 언급했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육군 장성 진급비리 의혹이 군 검찰 수사 결과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지자 남 원장은 책임을 지고 군을 떠났다. 그는 퇴역을 앞두고 "이번 사태는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괴심을 갖는다"고 변을 밝혔다.

이후 10년 만에 또 다시 진퇴의 갈림길에 놓인 남 원장. 그가 이번에도 깜짝 사퇴로 시국을 돌파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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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