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간첩사건' 목 걸린 사람들

증거조작 후폭풍…단두대 누가 오를까

[일요시사=사회팀] 공안몰이 덕을 톡톡히 봤던 박근혜정부가 중대 기로에 섰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까닭이다.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벌써부터 남재준 국정원장, 황교안 법무 부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우에 따라 김진태 검찰총장의 거취마저 불투명해질 수 있는 매머드급 사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여파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대선 개입, 민간인 불법 사찰,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등으로 정국을 마비시켰던 국정원은 이번 증거조작 사건의 중심에서 또 다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국정원 정조준
원세훈도 도마

지난 12일 <동아일보>는 간첩 사건과 관련한 증거 위조를 주도한 인물이 국정원 대공수사국 A팀장(3급)으로 특정됐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검찰청 강력부장)은 국정원 조선족 협력자 김모(61)씨가 위조해 온 문서 2건을 가짜 '영사확인서'로 만드는 과정에서 A팀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영사확인서를 만든 건 이인철 주선양 총영사관 영사(4급)지만 그 윗선에선 A팀장이 증거 조작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중순 대공수사팀 김모 과장(4급)이 조선족 김씨를 만나 "유우성씨 변호인 측의 출입경 기록을 반박할 자료를 구해달라"고 한 것도 A팀장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와 이 영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위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 김 과장에 대해서도 소환 조사를 저울하고 있다.

그간 검찰은 문서 위조를 자백한 김씨의 진술을 근거로 이 영사와 김 과장의 연결고리인 '제3의 인물'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A팀장이 증거 조작에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검찰은 유씨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유씨에게 씌워진 간첩 혐의가 무죄로 선고되자 A팀장이 나서 위조를 지시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또 이 영사로부터 사전에 위조 사실을 보고받고도 이를 묵인한 것은 아닌지 등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수사 진행 상황을 보면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증거 확보 작업을 컨트롤한 A팀장에게 검찰의 화력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A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보다 더 윗선의 존재가 드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복수 관계자는 "국정원 조직 특성상 실무진이나 현장요원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증거 조작을 도모하긴 힘들다"고 증언하고 있다.

A팀장의 윗선인 대공수사국장(1급, 정부 부처 차관보나 실장급), 대공수사라인의 총지휘자인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이 조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또 국정원의 최종 결정권자인 남재준 국정원장도 파고 들어오는 칼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국정원 내부의 치열한 실적 경쟁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의 증거 조작 의혹이 면책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위법 행위에 대한 사법 처벌과는 별도로 문책성 인사가 단행될 것이란 전망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진퇴양난 남재준
전방위 사퇴 압박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의 원흉으로 남 원장을 융단폭격하고 있다. 남 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그간 야권이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번 증거 조작 사건을 기점으로 일부 여권 인사가 남 원장과 선을 그으면서 '남재준 해임론'은 탄력을 받고 있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양날의 검'으로 보고 있다. 북한과 관련한 공안사건이 적시에 터질 경우 득을 보는 건 아무래도 여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섣불리 이번 사건을 덮으려 할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 등을 돌리는 의원은 속출하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 중진 연석회의에서는 이 같은 여권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한 장본인은 (스스로) 그만둬야 한다"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김용태·조해진·심재철 등 이른바 친이계 의원들은 이 의원의 사퇴 요구에 동조했다.

친박계 일각에서도 '남재준 책임론'이 고개를 들었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국정원 수뇌부의 쇄신 등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은 "책임질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 안팎으로 '남재준 해임론'의 명분이 쌓이고 있는 중이다.

검찰·국정원에 화력 집중 "윗선 쳐낸다"
서천호 등 대공라인 대대적 메스질 불가피

때를 맞춰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남 원장에 대한 공세 수위를 한껏 높였다. 지난 13일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조치가 없을 경우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촉구 결의안'을 제출토록 하는 등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남 원장을 해임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암덩어리로 전락한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은 이번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이례적인 유감 표명을 했다. 지난 10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증거자료의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실체적 진실을 정확하게 밝혀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수사 전권을 위임받은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이로부터 6시간 만에 검찰은 국정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앞서 지난해 4월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로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던 검찰은 불과 10개월 만에 다시 최고 정보기관의 심장을 겨누게 됐다.

남 원장은 국정원장에 취임한 지 1년 만에 2번이나 조직의 안방을 내주는 굴욕을 당하면서 전방위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남 원장은 요지부동이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9일 남 원장은 예상 밖의 타이밍에 보도자료를 뿌려 빈축을 샀다. 관련 내용을 보면 '우리도 당했다'는 식의 해명인데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수사 결과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국정원을 향한 십자포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남 원장은 뒷짐을 진 채 방관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험대 선 김진태
도마 오른 황교안

정치권 한 관계자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이번 증거 조작 사건은 결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전자가 원세훈 국정원장 때 벌어진 일이라면 후자는 남 원장 취임 후 생긴 일이라 책임 소재가 다르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남 원장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동반돼야 한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은 지난 이명박정부 때부터 준비됐으며, 때문에 남 원장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기 애매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유력 매체는 전직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 "'간첩사건'은 원 전 원장 재임 때 시작된 일이고, 올해 대공수사국 중점 과제는 'RO 사건'이었기 때문에 상부의 관심이 떨어져 단장급 이상은 보고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보통 3급 팀장이 4∼5개의 사건을 함께 관장하는데 국장급(1급)까지 보고가 올라가는 건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향후 조사 과정에서 A 팀장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윗선을 밝히는 작업은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키는 검찰이 쥐고 있다. 성실한 수사와 끈질긴 추궁은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그러나 유씨에 대한 공소유지를 하고 있는 검찰 입장에서 이번 수사는 신중을 가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의 증거 조작 의혹을 규명한다면 유씨에 대한 2심 재판은 힘이 빠지게 된다. 검찰 스스로 기소의 부당함을 인정하는 격이라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유씨에 대한 결심 예정일은 28일, 그 전까지 검찰은 증거 조작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윗선을 캐내기 위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검찰 안팎에 끊이지 않고 있다.

조직의 명운을 짊어진 김진태 검찰총장은 국정원을 감싸는 듯한 인상을 주며 우려를 사고 있다. 뒷북수사와 때늦은 압수수색으로 의혹의 당사자인 국정원에 시간을 벌어 준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실제로 복수 관계자는 "(국정원과) 수사 가이드라인을 사전에 조율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던지고 있다. 때문에 김 총장 역시 수사 결과에 따라 거센 역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대두된다. 김 총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국정원뿐만 아니라 검찰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국정원이 전한 증거물을 검증 없이 재판부에 제출한 것도 문제지만 검찰 측에서 사전에 증거 조작 여부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탄로 날 경우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김 총장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현철 부장검사)에 대한 문책이 검토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책 수위는 진상 조사 결과에 따르겠지만 국정원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검찰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1심 때부터 공조체제를 구축한 검찰이 국정원의 조작 움직임을 몰랐다는 사실은 의심의 대상이다. 또 무리한 수사로 국정원의 반발을 살 경우 자칫 '채동욱 사태' 때처럼 국정원이 반격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전에 알았나 몰랐나
황교안·남재준 해임론

현직 특수부 시절 김 총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등의 입을 열어 여야 정치거물인 홍인길 전 총무수석과 권노갑 민주당 고문 등을 구속한 전력이 있다. 그만큼 권력 눈치 안 보고 수사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박 대통령의 복심이나 다름없는 남 원장과 맞서게 돼 그 셈법에 관심이 쏠린다. 무엇보다 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심판이 청구되는 등 정권에서 요구하는 국정원의 역할이 막대한 가운데 남 원장을 정면으로 조준하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해석도 있다. 청와대 출신 한 관계자는 "결국 청와대의 입을 쳐다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소신 있는 수사에 한계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거취 문제다. 앞서 공식 외교라인을 통해 증거를 입수했다고 말했던 황 장관은 며칠 뒤 국정원으로부터 문서를 입수했다고 말을 바꾸며 논란을 확산시켰다. 그간 원세훈·김용판 수사 축소 의혹 등으로 홍역을 앓았던 황 장관은 국회 본회의에 해임안이 상정될 정도로 미운털이 박힌 상황이다. 과거 '안기부 X파일' 수사 당시 국정원을 사상 첫 압수수색했던 황 장관은 얄궂게도 국정원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하지만 국정원을 넘어뜨려도 황 장관이 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검찰 라인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김 총장보다는 황 장관 쪽에 무게가 쏠리는 분위기다. 법조계 풀이 두터운 박근혜정부 특성상 황 장관의 공백을 매우는 쪽이 더 쉽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향후 출구전략을 놓고 청와대가 어떤 결정을 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원세훈카드 만지작
외교라인도 손보나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원 전 원장에 대한 '책임 전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는 것이다. 유씨가 체포된 지난해 1월은 원 전 원장의 재직 시절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한창 이슈화되던 때다.

<일요시사> 보도 등에 따르면 유씨의 여동생 유가려씨가 국정원 심문을 받던 시점은 이보다도 훨씬 전이다. 즉 국정원이 서울시 공무원 유씨를 표적으로 한 건 애초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기획수사였고, 이 사건의 책임자가 원 전 원장인 만큼 지난 정권에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이번 사건은 정치권과 권력기관, 행정기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참사다. 더불어 신뢰를 잃은 대중 외교라인과 중국 정부가 취한 강경한 태도는 또 하나의 변수로 우리 외교당국에 부담이 되고 있다.

각 주재국 영사관 등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은 일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선 벌써부터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다. 그간 영사 신분으로 파견된 국정원 직원은 외교부 통제 밖에서 활동해왔지만 이번 사태로 해외공작 파트의 위상과 독립성은 뿌리째 흔들리는 중 이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는 취임 1년간 국정원과 검찰의 힘을 톡톡히 봤지만 이번 증거조작 파문으로 국정 운영의 일대 분수령을 맞았다. 전두환·이석기 쌍끌이 수사로 지지율을 끌어올린 현 정부는 공안몰이에 성공했지만 지난 정부에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또 다시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위기를 맞은 청와대의 결단은 무엇일지. 시한폭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너 몰린 남재준 선택은?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전방위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그의 진퇴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남 원장은 육군참모총장 재임 시절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확산되자 사상 초유의 전역지원서 제출로 결백을 주장한 바 있다.

지난 2004년 있었던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남 원장은 육군 장성 진급비리 괴문서 사건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나가자 전역지원서 제출로 맞섰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남 원장의 사표를 반려했다.

 남 원장의 청렴성과 도덕성은 자타공인 의심하는 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원칙주의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 소문이 적지 않다.

특히 노 대통령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 군 수뇌부들을 초청한 골프대회에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또 남 원장은 육군 간부회의 석상에서 참여정부의 국방부 문민화와 군 검찰 독립 등의 사안을 성토하며 이른바 '정중부의 난'을 언급했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육군 장성 진급비리 의혹이 군 검찰 수사 결과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지자 남 원장은 책임을 지고 군을 떠났다. 그는 퇴역을 앞두고 "이번 사태는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괴심을 갖는다"고 변을 밝혔다.

이후 10년 만에 또 다시 진퇴의 갈림길에 놓인 남 원장. 그가 이번에도 깜짝 사퇴로 시국을 돌파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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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