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 죽어나간' 형제복지원 원장 재산 추적

생지옥서 벌어 1000억 숨겨뒀다

[일요시사=사회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활발한 입법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서울과 부산에서 시민을 상대로 서명을 받으며,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발생한 형제복지원의 비극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그러나 비극을 잉태한 형제복지원의 박인근은 여전한 침묵 속에 있다. 전두환정부와 결탁해 피의 대가로 돈을 불린 박인근 일가의 재산을 들여다봤다.

부산역에서 울산 방향으로 40여분을 차로 달리면 신시가지 개발이 한창인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굽이진 산길을 거슬러 올라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차가운 쇠창살과 덤불 위로 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회와 완벽히 격리된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형제복지원 사건
끝나지 않은 고통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실로암의집은 여전히 건재하다. 건물 외벽에는 믿음·소망·사랑이란 문구가 또렷하다. 1991년 12월16일 설립된 실로암의집에는 47명의 중증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실로암의집을 운영하고 있는 법인은 형제복지지원재단(이하 형제재단)이다. 형제재단은 무연고 장애인과 여성·아동 등을 불법 감금해 강제노역을 시키고 구타와 고문, 성폭행, 암매장 등으로 수용인 531명의 목숨을 앗아간 '형제복지원 사건'의 당사자 박인근 원장(이하 박인근)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법원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던 박인근은 출소 후 법인 이름을 재육원, 욥의마을, 형제재단 등으로 수차례 바꾸면서 복지사업과 수익사업을 병행했다.


1929년에 태어난 박인근은 2011년 4월7일까지 형제재단에서 이사로 활동하면서 사우나, 해수온천, 스포츠센터 등을 운영했다. 이후 형제재단은 박인근의 3남 박천광 이사(이하 박천광)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한 관계자는 박천광이 형제재단을 물려받은 이유에 대해 "장남과 차남은 전처의 자식이라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형제재단은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실로암의집을 운영하면서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5년 평균 한 해 10억원의 예산이 법인 운영비, 장애인 생계급여 등을 명목으로 형제재단에 지원된다.

출소 후 법인명 바꾸면서 복지·수익사업
재산 불려 2010년 전후 자녀들에게 상속

실로암의집과는 별개로 박인근은 영리를 위한 사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굴렸다. 비교적 최근까지 형제재단은 사상해수온천과 빅월드레포츠센터라는 수익업체를 갖고 있었다.

지난 6일 발급한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형제재단은 2004년 1월 사상해수온천이 자리한 토지와 5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하지만 사상해수온천의 지번상 토지는 2012년 12월 부산시에 압류됐고, 2013년 4월과 8월에는 각각 건물이 압류됐다. 지난해 10월2일 해당 토지와 건물은 한꺼번에 임의 경매돼 채권의 소유가 한 은행에 넘어갔다. 박천광은 이렇듯 재산을 처분하고 있었다.
 

사상해수온천은 정상 운영 중이었다. 기자는 사상해수온천의 실질 소유자인 박천광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이사님은 자리에 안 계시다"는 말만 들었다. 해당 토지와 건물은 2009년 6월 100억여원의 은행 대출을 위한 담보로 사용된 전력이 있다.

빅월드레포츠센터 역시 정상 운영되고 있었다. 찜질방과 불가마, 사우나, 헬스 시설을 갖춘 빅월드레프츠센터는 2002년 1월 형제재단이 토지 및 건물을 전부 매입했다가 2011년 12월 A사로 소유권 일체가 이전됐다. A사는 노인을 상대로 한 서비스센터를 운영했던 법인으로 사회복지시설을 겸하고 있는 형제재단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 관계자는 "몇 년 전 박인근이 수사를 받을 때 일부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들이 앞장서 구명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그들은 '박인근은 부산에서 좋은 일을 한 사람'이라며 '시대가 어쩔 수 없어 그랬던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횡령·사기 혐의
박인근 부자 기소

2012년 9월 부산시는 법인의 재산 매각 대금을 개인용도로 유용한 혐의 등으로 박인근을 형사고발했다. 당시 박인근은 법인 재산을 매각한 대금 중 36억여원을 공사비 지출과 차입금 상환에 사용한다며 시로부터 허가를 받은 뒤 14억53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형제재단은 사회복지법인이기 때문에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상 재산의 매매·증여·교환·임대·담보제공 등 처분과 관련한 사안은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돼있다.

하지만 박인근은 사상해수온천의 수익금 12억원가량을 유용하거나 장기차입을 명목으로 시의 허가를 받아 빌린 16억4000만원을 용도를 알 수 없는 곳에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시는 이 같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건을 인계받은 검찰은 이로부터 1년이 지나서야 사건 관련자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박인근 부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해 10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이 공모하여 횡령한 돈이 18억4000만원이라고 밝혔다.

또 검찰은 지난해 12월 국고보조금 1억7700만원을 편취한 혐의(사기)로 박인근 부자를 추가 기소했다. 같은 혐의로 생활지도원 김모씨와 형제재단도 피고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건은 지난 1월13일 법원에 접수됐다.

박인근은 지난 2007년 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무자격자인 김씨를 물리치료사인 것처럼 속여 부산 기장군으로부터 1억2700만원 상당의 보조금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박인근은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김씨를 결원이 생긴 물리치료사로 둔갑시켰다. 본래 김씨는 생활지도원으로 고용돼야 했지만 생활지도원은 정원이 초과돼 보조금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을 박인근은 악용했다. 또 박인근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후에도 아들 박천광과 공모해 같은 수법으로 보조금 5000만원을 추가로 편취한 혐의를 받았다.

이처럼 박인근 부자는 횡령과 사기사건 등에 연루된 상황이다. 그렇지만 햇수로 2년이 지났음에도 형제재단에 대한 행정·사법당국의 조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부산시 장애인복지과 담당자는 "형제재단의 경우 채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산을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외부 감사를 도입하고, 법인이사 7명 중 4명을 공익이사로 선임하는 등 재단이 스스로 자정할 수 있도록 힘을 싣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은 법인의 노력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법인의 모든 운영에 지자체가 간섭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곳곳에 부동산
자녀가 받았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부산시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한 관계자는 "만약 형제재단을 해산하면 요양시설을 행정기관으로 귀속시키거나 다른 사회복지법인을 통해 운영권을 이양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까다로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형제재단이 장기차입 허가를 받을 때 부산시에서 편의를 봐준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거액을 대출받는 과정에서도 부산 지역 유력 정치권 인사가 거론될 정도로 박인근 일가와 연관한 정·관계 유착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인근은 "돈으로 여러 인사를 구워삶았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의 막대한 부가 방패막이가 된 셈이다. 일각에선 박인근 일가의 재산을 1000억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박인근의 재산은 2010년을 전후로 그의 자녀들에게 폭넓게 상속된 것으로 보인다.

부랑인들 모아 감금하고 강제 노역
사망 500명 등 3000여명 피해 집계
폭행고문에 성폭행…진상규명 착수

먼저 큰딸이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린 사회복지법인 신양원은 박인근이 형제재단 소유의 토지 및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 일부가 흘러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박인근은 지난 2008년 신양원 산하의 대안학교 신영중·고교의 대표이사로 부임한 후 2010년 학교 운영권을 첫째 딸에게 넘겼다. 사실상 증여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첫째 딸 사위가 목사인데 거제도에 있는 교회가 박인근의 재산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골프연습장도 박인근의 재산으로 유명하다. 박인근은 이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차명으로 송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해당 골프연습장은 박인근의 셋째 딸과 사위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인근이 둘째 사위를 위해 병원을 지어줬다는 의혹도 있다. 부산에서 울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병원은 의사 신분인 사위가 운영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 박인근은 부산·울산·경주 등 동남권 곳곳에 부동산을 소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부동산 중 일부는 매각을 거쳐 형제재단의 채무를 갚는 데 사용됐다.


박인근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박천광 역시 대표이사에서 퇴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형제재단은 박인근 부자의 후광이 워낙 강한 터라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재단 운영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는 거둘 수 없다.

실로암의집
해결책 없나

실로암의집은 기자의 방문취재를 거부했다. 실로암의집 관계자는 "우리는 말할 것이 없다"며 "장애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설득 끝에 실로암의집과 관련한 한 가지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들을 수 있었다.

복수 제보자는 "실로암의집을 방문했을 때 교회 간판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요양시설에 특정 종교시설을 함께 운영하는 건 불법이다. 해당 교회는 박인근 일가의 돈세탁 창구로 의심됐다.

하지만 실로암의집은 "지난 부산시 감사 때 지적 받은 뒤 지금은 교회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로암의집은 형제재단과 다르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실로암의집이 있는 지번상 토지와 건물은 모두 가압류가 들어온 상황이다. 부산시 장애인단체의 한 관계자는 "실로암의집 시설에서 근무하는 선생님 대부분은 여자인데 실로암의집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장애인은 모두 남자"라며 "여기서 오는 고충도 헤아렸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기자는 실로암의집에서 내려오며 주위를 둘러봤다. 차도로 한참을 내려가서야 간신히 인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설에서 빠져나온다 한들 어디로도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 무렵까지 그곳에서 살았다는 한 장애인은 "도망치면 반드시 잡혀와요"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다만 지금은 과거와 같은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요양인들을 대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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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