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빠진' 부산 고부살인사건 전모

피 씻고 도망…완전범죄로 끝나나

[일요시사=사회팀] 부산진구 가야동에 있는 한 주택가. 두 달 전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건물 주변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자산가로 알려진 80대 할머니와 60대 며느리가 차례로 살해된 이 사건은 용의자 특정에 난항을 겪으며 장기화되고 있다. 과연 누가 고부를 살해한 것일까. 인근 주민들은 "범인이 잡혀야 피해자도, 경찰도, 쉴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입을 모았다.

수사팀으로 연결된 내선 전화는 신호만 갈 뿐 쉽사리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진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사건 초기에 비해) 요즘은 (수사본부가) 통 말이 없다"며 안팎의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전했다. 수사관들은 사소한 단서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답답하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답답한 경찰

지난 1월8일 가야동 한 건물 4층 가정집에서 김모(87·여)씨와 정모(66·여)씨는 둔기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사망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건 김씨의 큰손자(35). 그는 경찰 조사에서 "날마다 집에 전화를 하는데 7일 저녁부터 전화가 되지 않아 다음날 집에 와보니 문이 잠겨 있었고, 들어와 보니 두 분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장성한 손자가 오래전 이들과 분가한 뒤 따로 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건 현장은 비교적 다툼의 흔적이 적었다. 김씨의 시신은 평소 생활하던 작은방에서 발견됐다. 며느리 정씨도 거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특히 정씨는 피살 직전 누군가와 다툰 듯 둔기로 수차례 구타당한 외상을 보였다. 자물쇠가 파손되는 등 강제력에 의한 외부침입 흔적은 없었다.

경찰은 지난해 말부터 김씨가 치매증상을 보인 것에 주목했다. 며느리 정씨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 주변 사람들에게 집 디지털도어록 비밀번호를 알려줬던 것으로 조사됐다. 즉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누군가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침입해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했다는 추리가 가능했다.


지난달 23일 '부산 고부 살인사건' 용의자 검거를 위해 구성된 수사본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및 현장감식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본부에 따르면 김씨는 정씨보다 먼저 둔기에 맞아 살해됐다. 사인은 과다출혈. 그리고 약 2∼3시간 뒤 며느리 정씨는 같은 둔기에 맞아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제3의 인물'이 정씨 집에 침입한 뒤 작은방에 있던 김씨를 살해한 후 정씨를 기다렸다가 연이어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외부 침입에 의한 범행 정황은 분명해졌다.

시어머니·며느리 집서 차례로 살해…단순 강도?
용의자 없이 수사 두 달째 "장기 미제사건 되나"

경찰은 정씨가 사망하기 전날인 7일 오후 4시께 "며느리 정씨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봤다"는 이웃 진술을 토대로 인근 CCTV 분석에 나섰다. 또 수사본부는 경찰력 700여명을 투입해 사건 현장 일대에서 강도 높은 탐문수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당일 오후 '40∼50대 중반 여성'과 '키 170㎝가량의 남성'이 정씨 집 주변에서 서성대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중간발표 후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는 포착되지 않았다.

주택가가 밀집한 사건 현장 근방에는 CCTV가 없었다. 경찰은 현장과 150m 떨어진 곳에서 정씨가 집으로 걸어가는 장면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인근 마트에 있던 것으로 보이는 거동수상자가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잡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정씨가 범인에게 저항하는 도중 벽에 던져 깨진 것으로 추정되는 와인병에 묻은 피와 거실 바닥에 떨어진 피를 채집했다. 당초 이 피는 경찰이 찾고 있던 '제3의 인물'이 누구인지 밝힐 결정적 증거로 기대를 모았으나 분석 결과 신원 파악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경찰은 현장 주변으로부터 반경 300m에 있는 100여개의 CCTV와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 30대를 수거해 추가 분석을 벌였지만 의미 있는 증거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답답한 건 김씨와 정씨가 살해당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에 있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 경찰은 돈을 노린 범행을 의심했다. 실제로 정씨는 '수십억원대 자산가'로 통했다. 초동 수사에서 경찰은 정씨 소유의 순금 거북이 분실된 것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사라진 순금 거북은 새마을금고에 보관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씨 재산 대부분은 부동산이거나 예금 형태로 은행에 예치돼 있었다. 금품을 노린 범행이라기에는 동기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등 고가품도 현장에 그대로 있었다.


김씨와 정씨는 동네 토박이로 35년을 가야동에서 살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정씨는 2004년부터 시어머니를 모셨다. 이들이 살던 건물 1층에는 상가가 있었고, 2∼3층은 비어있었다. 고부가 살던 4층은 접근이 어려웠다. 생전 조심성이 많은 성격 탓에 외부인의 왕래는 거의 없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주 피해자로 정씨를 지목하고 있다. 정씨는 둔기에 맞은 횟수가 시어머니 김씨보다 많았다. 원한 관계에 의한 면식범의 범행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고인의 친척과 지인들은 "정씨가 원만한 성격이었다"고 증언했다. 또 정씨 주변의 남자관계도 깔끔했던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정씨의 통화내용을 샅샅이 조회했으나 별다른 단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지역 언론에 따르면 수사본부는 사건이 발생한 1월7일 오후 4∼7시께 현장 주변에서 급히 택시를 타거나 피 묻은 옷을 입고 이동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 아울러 경찰은 동네 주민을 상대로 협조를 요청한 뒤 반상회까지 열어 증거 확보에 안간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전담 수사 인원은 100여명에서 40여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급기야는 숨진 정씨의 방 옷걸이에서 발견된 '모자'가 수배됐다. 지난달 24일 수사본부는 이번 사건의 유력한 증거로 추정되는 모자를 공개했다. '박00'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는 모자는 평소 정씨가 즐겨 쓰던 모자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간 경찰은 모자와 범인의 관련성을 놓고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해왔다. 앞서 유족들은 "박00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이 모자의 구입처를 필사적으로 수소문하고 있다.

정씨 집 욕실에서 발견된 혈흔은 범인이 범행 직후 피를 씻은 것을 암시했다. 이밖에도 현장에서는 일부 혈흔과 지문이 추가 발견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본부는 최근 채집한 증거 분석결과에 희망을 걸고 있다.

치밀한 범행

최초 범행 수법의 잔인함과 치밀함 등으로 미뤄 용의자는 초범이 아닌 강력 범죄 전과자인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이렇다 할 용의자가 추려지지 않자 경찰은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자료를 검토 중이다. 정씨가 갖고 있던 여성용 중지갑이 사라진 배경도 관심이다. 지갑 안에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있을 수도 있는 까닭이다. 경찰은 지갑의 소재를 쫓는 한편 정씨 주변을 상대로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부산=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