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조폭과의 전쟁' 관전포인트 넷

나라에 도움 안되는 건달들 씨 말린다

[일요시사=사회팀] 밤거리를 활보하던 조폭이 음지로 스며들었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은 점차 지능화되고 기업화됐다. 큰 조직들은 부동산 시장으로 뛰어들어 건설 이권에 개입했고, 작은 조직들은 사채를 운영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업가들을 쥐어짰다. 더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뛰어들어 적잖은 성공을 맛봤다. 지난 21일 '조폭의 저승사자'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24년 만에 다시 '조폭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놓쳐선 안 될 '新 조폭과의 전쟁' 관전포인트를 소개한다.

 

 

검찰이 지난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 이후 24년 만에 다시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21일 대검찰청 강력부(부장 윤갑근 검사장)는 '전국 조폭전담 부장검사·검사·수사관 전체회의'를 열고 조폭이 장악하고 있는 지하경제와 관련해 '총단속'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진태 검찰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조직폭력 범죄는 국민생활에 가장 직접적이고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범죄로 이를 척결하는 데 한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며 "조폭이 거대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을 기필코 막아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최근 조폭은 합법적인 사업가처럼 활동하면서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거대한 지하경제를 형성하고 있다"며 "총력을 기울여 단속함으로써 활동 기반을 와해하고 범죄수익을 환수해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지난 범죄와의 전쟁으로 많은 폭력조직이 와해됐지만 당시 수감된 상당수의 폭력배가 출소하면서 조직을 재건했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1세대 '갈취형'과 2세대 '혼합형'을 벗어난 3세대 조폭은 합법을 가장한 '기업형'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3세대 조폭은 무려 120조원에 달하는 지하경제시장에 진출, 온라인 도박과 사금융 상권 등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유흥업과 건설업은 지난 2세대 때부터 조폭의 주된 자금줄로 자리 잡아 규모가 확대됐다는 해석이다.


조폭과 연관된 사업장 383개를 검찰이 분석한 결과 유흥업소는 173개(45.2%)로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일반음식점은 62개(16.2%)로 뒤를 이었으며, 건설·제조·부동산 업체는 55개(14.4%)로 파악됐다. 또 공산품 및 농수산물 유통업체는 34개(8.9%), 놀이시설 및 서비스업소는 33개(8.6%)로 집계됐다.

아울러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하경제시장은 불법사행산업(도박 등)이 전체의 78%인 95조6000억원 규모로 조사됐다. 사금융은 16조5000억원(14%), 성매매는 6조6000억원(5%), 가짜석유는 3조2000억원(3%) 등으로 나타났다.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검찰은 기존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 '투트랙'으로 전면전을 벌일 계획이다. 먼저 120조원 규모의 불법 지하경제에 대한 범죄수익 환수를 핵심 목표로 하고, 사업가로 위장한 조폭들의 대대적인 탈세나 횡령·배임 등에 대한 집중 수사를 병행해 '실리와 명분' 모두를 챙긴다는 방침이다.

전체회의에는 대검 강력부장·조직범죄과장·피해자인권과장을 비롯해 서울중앙·인천·수원·부산·대구·광주 6대 지검 강력부장, 18대 지검 조폭 전담 검사 및 정보 전담 수사관 50명이 배석했다. 검찰이 이처럼 전국의 조폭 전담 검사는 물론 수사관까지 모두 소집해 회의를 연 건 66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조폭을 상대로 급작스럽게 선전포고를 한 것일까. 그리고 조폭과의 전쟁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먼저 이번 발표의 배경부터 간략히 살펴보자.

[포인트 1]
지하경제와의 전쟁

박근혜정부의 핵심공약 중 하나는 '지하경제 양성화'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리 척결이 올 상반기 중점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수 확보와도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4일 법무부는 '2014년도 법무부 업무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 대한 비리 수사에 검찰 수사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VIP(대통령)가 강조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에 따른 것이란 해석이다.

업무 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 부채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위 대표적인 기관부터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부채규모가 큰 기관부터 손을 보면서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뿌리뽑는다" 검 1990년 이후 24년 만에 선포
출소한 두목들 활개…지하경제 양성화 배경

이번 조폭과의 전쟁은 넓은 의미로 보면 사실상 ‘지하경제와의 전쟁’이다. 박근혜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표방하고 있는데 재정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승부수로 지하경제에 매스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음지에서 돈을 불린 조폭은 박근혜정부의 주된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현 정부의 명운과도 직결된 '조폭과의 전쟁'은 지난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에 비견할 만한 강도 높은 수사가 예상되는 것이다.


[포인트 2]
첫 타깃은 누구?

검찰이 기획 수사를 공식화한 만큼 '어떤 분야'의 '누가' '무슨 혐의로' 쇠고랑을 찰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검찰은 신중한 모습. 수사를 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1∼2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에 대한 대규모 수사나 체계적인 정보 수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최근까지 특별 관리해 온 조폭 리스트를 토대로 첩보 수집을 강화하여, 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조폭 지형도'를 그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경찰이 공식 집계한 전국 모든 조직 수는 217개였다. 시도별로는 경기도가 조직 29개·조직원 91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서울(22개·484명) ▲전북(16개·410명) ▲경남(18명·400명) ▲경북(12개·391명) ▲부산(23개·381명) ▲광주(8개·322명) ▲대구(11개·310명) ▲인천(13개·297명) ▲강원(17개·264명) ▲충남(16개·252명) ▲충북(6개·252명) ▲전남(8개·233명) ▲울산(6개·197명) ▲대전(9개·144명) ▲제주(3개·137명) 순이었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경찰이 간부급 조폭을 위주로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조직원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일 조폭의 조직원 수로는 충북 파라다이스파가 7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구 향촌동파(75명), 부산 칠성파(71명), 인천 부평신촌파·광주 국제PJ파(65명), 충북 화성파(64명)가 눈길을 끌었다.

다만 '전국 3대 패밀리'로 악명을 떨쳤던 조양은의 양은이파와 김태촌의 범서방파는 현재 관리대상 조직원이 각각 26명과 11명에 불과해 이번 수사의 타깃이 될지는 미지수다. 또 광주의 OB파는 49명이 관리대상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만 이들 중 다수는 현역을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화력이 집중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3세대 조폭은 간부급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소규모로 조직원을 분산 배치하고, 필요시에 긴급 동원하는 체제로 조직을 정비했다. 그간 수사시관이 조폭 단속에 애를 먹은 건 이처럼 조폭이 점조직화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들은 타조직원의 경조사에 참여하며, 따로 회합을 갖는 등 폭력조직으로서의 유대는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파라다이스파·향촌동파·칠성파 눈길
지방선거 앞두고 정재계 유착범죄 도마

회칼이 난무하던 세력다툼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이들은 이권이 있는 곳이면 타 조직과의 연합도 서슴지 않는다. 축적된 자금을 바탕으로 인근 군소조직들을 흡수하거나 통합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회장님'으로 신분을 감춘 거물급 조폭은 쇠파이프 대신 전화 몇 통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조폭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여러 명이 떼로 다니거나 폭력으로 세를 과시하면 죽는 걸 알기 때문에 요즘 조폭은 성가신 일이 있으면 '외주'를 준다"고 했다.

가령 '총회꾼'으로 불리는 A회장은 채권추심, 도산·파산 정리, 주주총회 등을 방해해달라는 부탁을 모 기업인으로부터 받는다. 그럼 A회장은 자신의 직속부하가 아닌 믿을 만한 조직원 B에게 '실력행사'를 지시한다. 지시를 받은 B는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세력이 크지 않은 조직을 섭외해 '폭력'을 사주한다. 폭력을 실제로 행사한 조폭 C는 A회장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더구나 C는 검거 후에도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윗선인 B를 불지 못한다. 만에 하나 B의 존재를 수사기관이 인지한다 하더라도 B는 A회장의 직속부하가 아니기 때문에 A회장은 자연스레 법망을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번 조폭과의 전쟁은 A회장과 같은 '몸통'을 검거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자금줄을 쥐고 있는 A회장을 잡지 못하면 검찰이 공언한 범죄수익 환수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 초기 단계부터 거물급 조폭을 곧장 노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 안팎으로는 가짜석유(유사 휘발유) 제조, 교통사고 위장 보험범죄, 지방 대학가 총학생회 교비횡령 등에 대한 수사가 먼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가짜석유 제조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에 대한 사정작업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전과 울산을 기반으로 한 조폭이 이미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소문도 들린다.

[포인트 3]
거물급부터 손본다

앞서 밝혔듯 조폭과의 전쟁은 범죄수익 환수가 핵심 목표다. 따라서 조직 간의 폭력행위보다는 횡령이나 탈세와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지난 범죄와의 전쟁 이후 이름난 간부급 조폭은 각 산업군에 대거 유입된 뒤 돈으로 조직을 유지했다.

규모가 큰 조직들은 건설 이권에 개입했다. 작은 조직들은 사채를 운영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업가들을 쥐어짰다. 일부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어 재미를 봤다. 더러는 전공을 살려 사설 경호업체를 개설했다. 불법적인 인터넷 도박장 운영은 물론이고 동남아 부동산 투자와 같은 합법적인 영역도 조폭의 손아귀에 놓였다.

기자가 접한 한 조폭은 주가 조작과 같은 금융범죄, 슈퍼카 임대사업과 같은 신종 범죄에 눈떠 돈을 긁었다. 또 이들 대부분은 사업 파트너를 갖고 있는데 소문난 '전주'가 투자금을 대면 조폭이 돈을 굴려 이득을 배분하는 식이다. 때문에 향후 수사 과정에서 몇몇 '자산가'의 정체가 조폭으로 탄로 날지 관심의 대상이다.

서울에서 투자기관을 운영 중인 D는 호남 출신 조폭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시장에서 D는 자금력이 좋아 알 만한 사람들은 거의 아는 인물로 소개된다. 특히 D는 모 기업 총수의 비자금과도 연관된 인물로 업계 관계자는 귀띔했다. 소위 말하는 거물급 조폭인 셈.

부산을 중심으로 물류 유통을 장악한 E에 대한 소문도 있다. 칠성파 출신으로 유흥업소를 관리했던 E는 후배들에게 유흥업소를 물려주고, 물류 사업에 뛰어든 뒤 막대한 부를 챙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이젠 유흥업소 관리나 운영은 조직 차원에서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조직 차원에서 돈 되는 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제주를 중심으로 발호하는 조폭들에 대한 경계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조폭들이 제주로 눈을 돌리면서 마약 유통은 물론이고 불법 성형과 같은 의료 분야에 손을 뻗친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제주지방경찰청이 검거한 조폭은 전년 대비 37%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흑사회 등과 공조 관계에 있는 조폭은 골프장 건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사금융, 섹스관광 등을 수입원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또 중국 현지와 연계한 신종 금융사기 역시 중량감 있는 조폭이 선호하는 모델로 전해진다. 국내 수사기관의 적발이 쉽지 않을 뿐더러 사업 과정에서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기 용이한 까닭이다.

지리적 여건상 제주를 오고 가기 쉬운 칠성파 출신 중견급 보스들은 이미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제주까지 넓혔다고 한다. 부산 지역 최대 조직인 칠성파는 '온천장 칠성', '기장 칠성', '서면 칠성' 등으로 이미 분파됐으며 전국 단위로 진출, 각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검찰의 마지막 칼날은 칠성파로 향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3대 패밀리'가 와해된 현 시점에서 전국구로 부를 수 있는 조직은 칠성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양은이파와 범서방파에 쏠린 시선 덕분에 지난 20여년간 수사기관의 집중 단속을 피했던 칠성파가 이번에야말로 뿌리 뽑힐지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포인트4]
정치인이 위험하다

검찰 입장에서 칠성파를 잡는다면 그 이름값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면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의 주문은 단순히 조폭만 때려잡는 것에 있지 않다. 정·재계와 연루된 조직범죄 수사는 이번 조폭과의 전쟁의 꽃이다.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에서는 권력에 기생하여 한몫 챙기려는 조폭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천은 조폭과 정치인의 유착이 의심된 곳 중 하나다.

최근 인천지방경찰청은 조폭이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첩보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조폭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고 판단, 대대적인 내사에 착수했다.

실제로 지난 19대 총선에 후보로 출마한 F씨는 조폭을 동원한 불법 선거운동을 벌이다가 구속 기소됐다. F씨는 자신과 친한 조폭에게 선거 운동을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신용카드를 건넸고, 조폭은 F씨가 건넨 돈과 자신의 인맥을 결합하여 불법 선거운동을 벌였다.

조폭과 아삼륙인 정치인은 주로 서울보다 인천이나 호남 등 지역 경제 기반이 약한 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또 후원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부 정치인들은 상대가 조폭인 줄 알면서도 정치 후원금을 받고 당선 후 사례를 약속하는 일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야권 성향의 정치인이라 정권 입장에서도 사건이 외부로 드러났을 때 부담이 적다.

비리혐의로 입건되는 단체장 대부분은 구청장이나 군수, 시장 등 행정가다. 무엇보다 인구가 적은 지방은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압력을 행사하기 좋은 구조를 갖고 있다.

지역의 토호 조폭은 이런 행정가의 약한 고리를 건드린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대부분 상권이 밀집한 곳이 조폭의 활동지가 된다.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상인과 조폭이 동일인인 일도 부지기수다. 아예 4~6개의 조폭이 지역 상권을 나눠먹는 있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 입장에선 조폭에게 반기를 들 수 없는 것.

하지만 정부와 수사기관이 조폭의 선거 개입을 엄단하기로 한 만큼 지역에 뿌리내린 정치인과 조폭의 공생을 끊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