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조폭과의 전쟁' 관전포인트 넷

나라에 도움 안되는 건달들 씨 말린다

[일요시사=사회팀] 밤거리를 활보하던 조폭이 음지로 스며들었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은 점차 지능화되고 기업화됐다. 큰 조직들은 부동산 시장으로 뛰어들어 건설 이권에 개입했고, 작은 조직들은 사채를 운영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업가들을 쥐어짰다. 더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뛰어들어 적잖은 성공을 맛봤다. 지난 21일 '조폭의 저승사자'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24년 만에 다시 '조폭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놓쳐선 안 될 '新 조폭과의 전쟁' 관전포인트를 소개한다.

 

 

검찰이 지난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 이후 24년 만에 다시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21일 대검찰청 강력부(부장 윤갑근 검사장)는 '전국 조폭전담 부장검사·검사·수사관 전체회의'를 열고 조폭이 장악하고 있는 지하경제와 관련해 '총단속'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진태 검찰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조직폭력 범죄는 국민생활에 가장 직접적이고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범죄로 이를 척결하는 데 한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며 "조폭이 거대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을 기필코 막아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최근 조폭은 합법적인 사업가처럼 활동하면서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거대한 지하경제를 형성하고 있다"며 "총력을 기울여 단속함으로써 활동 기반을 와해하고 범죄수익을 환수해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지난 범죄와의 전쟁으로 많은 폭력조직이 와해됐지만 당시 수감된 상당수의 폭력배가 출소하면서 조직을 재건했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1세대 '갈취형'과 2세대 '혼합형'을 벗어난 3세대 조폭은 합법을 가장한 '기업형'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3세대 조폭은 무려 120조원에 달하는 지하경제시장에 진출, 온라인 도박과 사금융 상권 등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유흥업과 건설업은 지난 2세대 때부터 조폭의 주된 자금줄로 자리 잡아 규모가 확대됐다는 해석이다.


조폭과 연관된 사업장 383개를 검찰이 분석한 결과 유흥업소는 173개(45.2%)로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일반음식점은 62개(16.2%)로 뒤를 이었으며, 건설·제조·부동산 업체는 55개(14.4%)로 파악됐다. 또 공산품 및 농수산물 유통업체는 34개(8.9%), 놀이시설 및 서비스업소는 33개(8.6%)로 집계됐다.

아울러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하경제시장은 불법사행산업(도박 등)이 전체의 78%인 95조6000억원 규모로 조사됐다. 사금융은 16조5000억원(14%), 성매매는 6조6000억원(5%), 가짜석유는 3조2000억원(3%) 등으로 나타났다.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검찰은 기존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 '투트랙'으로 전면전을 벌일 계획이다. 먼저 120조원 규모의 불법 지하경제에 대한 범죄수익 환수를 핵심 목표로 하고, 사업가로 위장한 조폭들의 대대적인 탈세나 횡령·배임 등에 대한 집중 수사를 병행해 '실리와 명분' 모두를 챙긴다는 방침이다.

전체회의에는 대검 강력부장·조직범죄과장·피해자인권과장을 비롯해 서울중앙·인천·수원·부산·대구·광주 6대 지검 강력부장, 18대 지검 조폭 전담 검사 및 정보 전담 수사관 50명이 배석했다. 검찰이 이처럼 전국의 조폭 전담 검사는 물론 수사관까지 모두 소집해 회의를 연 건 66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조폭을 상대로 급작스럽게 선전포고를 한 것일까. 그리고 조폭과의 전쟁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먼저 이번 발표의 배경부터 간략히 살펴보자.

[포인트 1]
지하경제와의 전쟁

박근혜정부의 핵심공약 중 하나는 '지하경제 양성화'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리 척결이 올 상반기 중점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수 확보와도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4일 법무부는 '2014년도 법무부 업무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 대한 비리 수사에 검찰 수사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VIP(대통령)가 강조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에 따른 것이란 해석이다.

업무 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 부채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위 대표적인 기관부터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부채규모가 큰 기관부터 손을 보면서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뿌리뽑는다" 검 1990년 이후 24년 만에 선포
출소한 두목들 활개…지하경제 양성화 배경

이번 조폭과의 전쟁은 넓은 의미로 보면 사실상 ‘지하경제와의 전쟁’이다. 박근혜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표방하고 있는데 재정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승부수로 지하경제에 매스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음지에서 돈을 불린 조폭은 박근혜정부의 주된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현 정부의 명운과도 직결된 '조폭과의 전쟁'은 지난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에 비견할 만한 강도 높은 수사가 예상되는 것이다.


[포인트 2]
첫 타깃은 누구?

검찰이 기획 수사를 공식화한 만큼 '어떤 분야'의 '누가' '무슨 혐의로' 쇠고랑을 찰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검찰은 신중한 모습. 수사를 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1∼2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에 대한 대규모 수사나 체계적인 정보 수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최근까지 특별 관리해 온 조폭 리스트를 토대로 첩보 수집을 강화하여, 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조폭 지형도'를 그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경찰이 공식 집계한 전국 모든 조직 수는 217개였다. 시도별로는 경기도가 조직 29개·조직원 91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서울(22개·484명) ▲전북(16개·410명) ▲경남(18명·400명) ▲경북(12개·391명) ▲부산(23개·381명) ▲광주(8개·322명) ▲대구(11개·310명) ▲인천(13개·297명) ▲강원(17개·264명) ▲충남(16개·252명) ▲충북(6개·252명) ▲전남(8개·233명) ▲울산(6개·197명) ▲대전(9개·144명) ▲제주(3개·137명) 순이었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경찰이 간부급 조폭을 위주로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조직원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일 조폭의 조직원 수로는 충북 파라다이스파가 7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구 향촌동파(75명), 부산 칠성파(71명), 인천 부평신촌파·광주 국제PJ파(65명), 충북 화성파(64명)가 눈길을 끌었다.

다만 '전국 3대 패밀리'로 악명을 떨쳤던 조양은의 양은이파와 김태촌의 범서방파는 현재 관리대상 조직원이 각각 26명과 11명에 불과해 이번 수사의 타깃이 될지는 미지수다. 또 광주의 OB파는 49명이 관리대상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만 이들 중 다수는 현역을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화력이 집중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3세대 조폭은 간부급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소규모로 조직원을 분산 배치하고, 필요시에 긴급 동원하는 체제로 조직을 정비했다. 그간 수사시관이 조폭 단속에 애를 먹은 건 이처럼 조폭이 점조직화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들은 타조직원의 경조사에 참여하며, 따로 회합을 갖는 등 폭력조직으로서의 유대는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파라다이스파·향촌동파·칠성파 눈길
지방선거 앞두고 정재계 유착범죄 도마

회칼이 난무하던 세력다툼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이들은 이권이 있는 곳이면 타 조직과의 연합도 서슴지 않는다. 축적된 자금을 바탕으로 인근 군소조직들을 흡수하거나 통합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회장님'으로 신분을 감춘 거물급 조폭은 쇠파이프 대신 전화 몇 통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조폭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여러 명이 떼로 다니거나 폭력으로 세를 과시하면 죽는 걸 알기 때문에 요즘 조폭은 성가신 일이 있으면 '외주'를 준다"고 했다.

가령 '총회꾼'으로 불리는 A회장은 채권추심, 도산·파산 정리, 주주총회 등을 방해해달라는 부탁을 모 기업인으로부터 받는다. 그럼 A회장은 자신의 직속부하가 아닌 믿을 만한 조직원 B에게 '실력행사'를 지시한다. 지시를 받은 B는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세력이 크지 않은 조직을 섭외해 '폭력'을 사주한다. 폭력을 실제로 행사한 조폭 C는 A회장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더구나 C는 검거 후에도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윗선인 B를 불지 못한다. 만에 하나 B의 존재를 수사기관이 인지한다 하더라도 B는 A회장의 직속부하가 아니기 때문에 A회장은 자연스레 법망을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번 조폭과의 전쟁은 A회장과 같은 '몸통'을 검거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자금줄을 쥐고 있는 A회장을 잡지 못하면 검찰이 공언한 범죄수익 환수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 초기 단계부터 거물급 조폭을 곧장 노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 안팎으로는 가짜석유(유사 휘발유) 제조, 교통사고 위장 보험범죄, 지방 대학가 총학생회 교비횡령 등에 대한 수사가 먼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가짜석유 제조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에 대한 사정작업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전과 울산을 기반으로 한 조폭이 이미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소문도 들린다.

[포인트 3]
거물급부터 손본다

앞서 밝혔듯 조폭과의 전쟁은 범죄수익 환수가 핵심 목표다. 따라서 조직 간의 폭력행위보다는 횡령이나 탈세와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지난 범죄와의 전쟁 이후 이름난 간부급 조폭은 각 산업군에 대거 유입된 뒤 돈으로 조직을 유지했다.

규모가 큰 조직들은 건설 이권에 개입했다. 작은 조직들은 사채를 운영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업가들을 쥐어짰다. 일부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어 재미를 봤다. 더러는 전공을 살려 사설 경호업체를 개설했다. 불법적인 인터넷 도박장 운영은 물론이고 동남아 부동산 투자와 같은 합법적인 영역도 조폭의 손아귀에 놓였다.

기자가 접한 한 조폭은 주가 조작과 같은 금융범죄, 슈퍼카 임대사업과 같은 신종 범죄에 눈떠 돈을 긁었다. 또 이들 대부분은 사업 파트너를 갖고 있는데 소문난 '전주'가 투자금을 대면 조폭이 돈을 굴려 이득을 배분하는 식이다. 때문에 향후 수사 과정에서 몇몇 '자산가'의 정체가 조폭으로 탄로 날지 관심의 대상이다.

서울에서 투자기관을 운영 중인 D는 호남 출신 조폭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시장에서 D는 자금력이 좋아 알 만한 사람들은 거의 아는 인물로 소개된다. 특히 D는 모 기업 총수의 비자금과도 연관된 인물로 업계 관계자는 귀띔했다. 소위 말하는 거물급 조폭인 셈.

부산을 중심으로 물류 유통을 장악한 E에 대한 소문도 있다. 칠성파 출신으로 유흥업소를 관리했던 E는 후배들에게 유흥업소를 물려주고, 물류 사업에 뛰어든 뒤 막대한 부를 챙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이젠 유흥업소 관리나 운영은 조직 차원에서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조직 차원에서 돈 되는 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제주를 중심으로 발호하는 조폭들에 대한 경계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조폭들이 제주로 눈을 돌리면서 마약 유통은 물론이고 불법 성형과 같은 의료 분야에 손을 뻗친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제주지방경찰청이 검거한 조폭은 전년 대비 37%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흑사회 등과 공조 관계에 있는 조폭은 골프장 건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사금융, 섹스관광 등을 수입원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또 중국 현지와 연계한 신종 금융사기 역시 중량감 있는 조폭이 선호하는 모델로 전해진다. 국내 수사기관의 적발이 쉽지 않을 뿐더러 사업 과정에서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기 용이한 까닭이다.

지리적 여건상 제주를 오고 가기 쉬운 칠성파 출신 중견급 보스들은 이미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제주까지 넓혔다고 한다. 부산 지역 최대 조직인 칠성파는 '온천장 칠성', '기장 칠성', '서면 칠성' 등으로 이미 분파됐으며 전국 단위로 진출, 각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검찰의 마지막 칼날은 칠성파로 향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3대 패밀리'가 와해된 현 시점에서 전국구로 부를 수 있는 조직은 칠성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양은이파와 범서방파에 쏠린 시선 덕분에 지난 20여년간 수사기관의 집중 단속을 피했던 칠성파가 이번에야말로 뿌리 뽑힐지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포인트4]
정치인이 위험하다

검찰 입장에서 칠성파를 잡는다면 그 이름값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면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의 주문은 단순히 조폭만 때려잡는 것에 있지 않다. 정·재계와 연루된 조직범죄 수사는 이번 조폭과의 전쟁의 꽃이다.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에서는 권력에 기생하여 한몫 챙기려는 조폭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천은 조폭과 정치인의 유착이 의심된 곳 중 하나다.

최근 인천지방경찰청은 조폭이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첩보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조폭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고 판단, 대대적인 내사에 착수했다.

실제로 지난 19대 총선에 후보로 출마한 F씨는 조폭을 동원한 불법 선거운동을 벌이다가 구속 기소됐다. F씨는 자신과 친한 조폭에게 선거 운동을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신용카드를 건넸고, 조폭은 F씨가 건넨 돈과 자신의 인맥을 결합하여 불법 선거운동을 벌였다.

조폭과 아삼륙인 정치인은 주로 서울보다 인천이나 호남 등 지역 경제 기반이 약한 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또 후원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부 정치인들은 상대가 조폭인 줄 알면서도 정치 후원금을 받고 당선 후 사례를 약속하는 일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야권 성향의 정치인이라 정권 입장에서도 사건이 외부로 드러났을 때 부담이 적다.

비리혐의로 입건되는 단체장 대부분은 구청장이나 군수, 시장 등 행정가다. 무엇보다 인구가 적은 지방은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압력을 행사하기 좋은 구조를 갖고 있다.

지역의 토호 조폭은 이런 행정가의 약한 고리를 건드린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대부분 상권이 밀집한 곳이 조폭의 활동지가 된다.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상인과 조폭이 동일인인 일도 부지기수다. 아예 4~6개의 조폭이 지역 상권을 나눠먹는 있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 입장에선 조폭에게 반기를 들 수 없는 것.

하지만 정부와 수사기관이 조폭의 선거 개입을 엄단하기로 한 만큼 지역에 뿌리내린 정치인과 조폭의 공생을 끊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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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