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조폭과의 전쟁' 관전포인트 넷

나라에 도움 안되는 건달들 씨 말린다

[일요시사=사회팀] 밤거리를 활보하던 조폭이 음지로 스며들었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은 점차 지능화되고 기업화됐다. 큰 조직들은 부동산 시장으로 뛰어들어 건설 이권에 개입했고, 작은 조직들은 사채를 운영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업가들을 쥐어짰다. 더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뛰어들어 적잖은 성공을 맛봤다. 지난 21일 '조폭의 저승사자'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24년 만에 다시 '조폭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놓쳐선 안 될 '新 조폭과의 전쟁' 관전포인트를 소개한다.

 

 

검찰이 지난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 이후 24년 만에 다시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21일 대검찰청 강력부(부장 윤갑근 검사장)는 '전국 조폭전담 부장검사·검사·수사관 전체회의'를 열고 조폭이 장악하고 있는 지하경제와 관련해 '총단속'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진태 검찰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조직폭력 범죄는 국민생활에 가장 직접적이고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범죄로 이를 척결하는 데 한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며 "조폭이 거대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을 기필코 막아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최근 조폭은 합법적인 사업가처럼 활동하면서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거대한 지하경제를 형성하고 있다"며 "총력을 기울여 단속함으로써 활동 기반을 와해하고 범죄수익을 환수해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지난 범죄와의 전쟁으로 많은 폭력조직이 와해됐지만 당시 수감된 상당수의 폭력배가 출소하면서 조직을 재건했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1세대 '갈취형'과 2세대 '혼합형'을 벗어난 3세대 조폭은 합법을 가장한 '기업형'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3세대 조폭은 무려 120조원에 달하는 지하경제시장에 진출, 온라인 도박과 사금융 상권 등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유흥업과 건설업은 지난 2세대 때부터 조폭의 주된 자금줄로 자리 잡아 규모가 확대됐다는 해석이다.


조폭과 연관된 사업장 383개를 검찰이 분석한 결과 유흥업소는 173개(45.2%)로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일반음식점은 62개(16.2%)로 뒤를 이었으며, 건설·제조·부동산 업체는 55개(14.4%)로 파악됐다. 또 공산품 및 농수산물 유통업체는 34개(8.9%), 놀이시설 및 서비스업소는 33개(8.6%)로 집계됐다.

아울러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하경제시장은 불법사행산업(도박 등)이 전체의 78%인 95조6000억원 규모로 조사됐다. 사금융은 16조5000억원(14%), 성매매는 6조6000억원(5%), 가짜석유는 3조2000억원(3%) 등으로 나타났다.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검찰은 기존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 '투트랙'으로 전면전을 벌일 계획이다. 먼저 120조원 규모의 불법 지하경제에 대한 범죄수익 환수를 핵심 목표로 하고, 사업가로 위장한 조폭들의 대대적인 탈세나 횡령·배임 등에 대한 집중 수사를 병행해 '실리와 명분' 모두를 챙긴다는 방침이다.

전체회의에는 대검 강력부장·조직범죄과장·피해자인권과장을 비롯해 서울중앙·인천·수원·부산·대구·광주 6대 지검 강력부장, 18대 지검 조폭 전담 검사 및 정보 전담 수사관 50명이 배석했다. 검찰이 이처럼 전국의 조폭 전담 검사는 물론 수사관까지 모두 소집해 회의를 연 건 66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조폭을 상대로 급작스럽게 선전포고를 한 것일까. 그리고 조폭과의 전쟁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먼저 이번 발표의 배경부터 간략히 살펴보자.

[포인트 1]
지하경제와의 전쟁

박근혜정부의 핵심공약 중 하나는 '지하경제 양성화'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리 척결이 올 상반기 중점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수 확보와도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4일 법무부는 '2014년도 법무부 업무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 대한 비리 수사에 검찰 수사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VIP(대통령)가 강조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에 따른 것이란 해석이다.

업무 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 부채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위 대표적인 기관부터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부채규모가 큰 기관부터 손을 보면서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뿌리뽑는다" 검 1990년 이후 24년 만에 선포
출소한 두목들 활개…지하경제 양성화 배경

이번 조폭과의 전쟁은 넓은 의미로 보면 사실상 ‘지하경제와의 전쟁’이다. 박근혜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표방하고 있는데 재정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승부수로 지하경제에 매스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음지에서 돈을 불린 조폭은 박근혜정부의 주된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현 정부의 명운과도 직결된 '조폭과의 전쟁'은 지난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에 비견할 만한 강도 높은 수사가 예상되는 것이다.


[포인트 2]
첫 타깃은 누구?

검찰이 기획 수사를 공식화한 만큼 '어떤 분야'의 '누가' '무슨 혐의로' 쇠고랑을 찰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검찰은 신중한 모습. 수사를 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1∼2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에 대한 대규모 수사나 체계적인 정보 수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최근까지 특별 관리해 온 조폭 리스트를 토대로 첩보 수집을 강화하여, 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조폭 지형도'를 그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경찰이 공식 집계한 전국 모든 조직 수는 217개였다. 시도별로는 경기도가 조직 29개·조직원 91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서울(22개·484명) ▲전북(16개·410명) ▲경남(18명·400명) ▲경북(12개·391명) ▲부산(23개·381명) ▲광주(8개·322명) ▲대구(11개·310명) ▲인천(13개·297명) ▲강원(17개·264명) ▲충남(16개·252명) ▲충북(6개·252명) ▲전남(8개·233명) ▲울산(6개·197명) ▲대전(9개·144명) ▲제주(3개·137명) 순이었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경찰이 간부급 조폭을 위주로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조직원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일 조폭의 조직원 수로는 충북 파라다이스파가 7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구 향촌동파(75명), 부산 칠성파(71명), 인천 부평신촌파·광주 국제PJ파(65명), 충북 화성파(64명)가 눈길을 끌었다.

다만 '전국 3대 패밀리'로 악명을 떨쳤던 조양은의 양은이파와 김태촌의 범서방파는 현재 관리대상 조직원이 각각 26명과 11명에 불과해 이번 수사의 타깃이 될지는 미지수다. 또 광주의 OB파는 49명이 관리대상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만 이들 중 다수는 현역을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화력이 집중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3세대 조폭은 간부급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소규모로 조직원을 분산 배치하고, 필요시에 긴급 동원하는 체제로 조직을 정비했다. 그간 수사시관이 조폭 단속에 애를 먹은 건 이처럼 조폭이 점조직화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들은 타조직원의 경조사에 참여하며, 따로 회합을 갖는 등 폭력조직으로서의 유대는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파라다이스파·향촌동파·칠성파 눈길
지방선거 앞두고 정재계 유착범죄 도마

회칼이 난무하던 세력다툼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이들은 이권이 있는 곳이면 타 조직과의 연합도 서슴지 않는다. 축적된 자금을 바탕으로 인근 군소조직들을 흡수하거나 통합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회장님'으로 신분을 감춘 거물급 조폭은 쇠파이프 대신 전화 몇 통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조폭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여러 명이 떼로 다니거나 폭력으로 세를 과시하면 죽는 걸 알기 때문에 요즘 조폭은 성가신 일이 있으면 '외주'를 준다"고 했다.

가령 '총회꾼'으로 불리는 A회장은 채권추심, 도산·파산 정리, 주주총회 등을 방해해달라는 부탁을 모 기업인으로부터 받는다. 그럼 A회장은 자신의 직속부하가 아닌 믿을 만한 조직원 B에게 '실력행사'를 지시한다. 지시를 받은 B는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세력이 크지 않은 조직을 섭외해 '폭력'을 사주한다. 폭력을 실제로 행사한 조폭 C는 A회장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더구나 C는 검거 후에도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윗선인 B를 불지 못한다. 만에 하나 B의 존재를 수사기관이 인지한다 하더라도 B는 A회장의 직속부하가 아니기 때문에 A회장은 자연스레 법망을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번 조폭과의 전쟁은 A회장과 같은 '몸통'을 검거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자금줄을 쥐고 있는 A회장을 잡지 못하면 검찰이 공언한 범죄수익 환수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 초기 단계부터 거물급 조폭을 곧장 노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 안팎으로는 가짜석유(유사 휘발유) 제조, 교통사고 위장 보험범죄, 지방 대학가 총학생회 교비횡령 등에 대한 수사가 먼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가짜석유 제조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에 대한 사정작업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전과 울산을 기반으로 한 조폭이 이미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소문도 들린다.

[포인트 3]
거물급부터 손본다

앞서 밝혔듯 조폭과의 전쟁은 범죄수익 환수가 핵심 목표다. 따라서 조직 간의 폭력행위보다는 횡령이나 탈세와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지난 범죄와의 전쟁 이후 이름난 간부급 조폭은 각 산업군에 대거 유입된 뒤 돈으로 조직을 유지했다.

규모가 큰 조직들은 건설 이권에 개입했다. 작은 조직들은 사채를 운영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업가들을 쥐어짰다. 일부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어 재미를 봤다. 더러는 전공을 살려 사설 경호업체를 개설했다. 불법적인 인터넷 도박장 운영은 물론이고 동남아 부동산 투자와 같은 합법적인 영역도 조폭의 손아귀에 놓였다.

기자가 접한 한 조폭은 주가 조작과 같은 금융범죄, 슈퍼카 임대사업과 같은 신종 범죄에 눈떠 돈을 긁었다. 또 이들 대부분은 사업 파트너를 갖고 있는데 소문난 '전주'가 투자금을 대면 조폭이 돈을 굴려 이득을 배분하는 식이다. 때문에 향후 수사 과정에서 몇몇 '자산가'의 정체가 조폭으로 탄로 날지 관심의 대상이다.

서울에서 투자기관을 운영 중인 D는 호남 출신 조폭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시장에서 D는 자금력이 좋아 알 만한 사람들은 거의 아는 인물로 소개된다. 특히 D는 모 기업 총수의 비자금과도 연관된 인물로 업계 관계자는 귀띔했다. 소위 말하는 거물급 조폭인 셈.

부산을 중심으로 물류 유통을 장악한 E에 대한 소문도 있다. 칠성파 출신으로 유흥업소를 관리했던 E는 후배들에게 유흥업소를 물려주고, 물류 사업에 뛰어든 뒤 막대한 부를 챙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이젠 유흥업소 관리나 운영은 조직 차원에서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조직 차원에서 돈 되는 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제주를 중심으로 발호하는 조폭들에 대한 경계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조폭들이 제주로 눈을 돌리면서 마약 유통은 물론이고 불법 성형과 같은 의료 분야에 손을 뻗친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제주지방경찰청이 검거한 조폭은 전년 대비 37%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흑사회 등과 공조 관계에 있는 조폭은 골프장 건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사금융, 섹스관광 등을 수입원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또 중국 현지와 연계한 신종 금융사기 역시 중량감 있는 조폭이 선호하는 모델로 전해진다. 국내 수사기관의 적발이 쉽지 않을 뿐더러 사업 과정에서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기 용이한 까닭이다.

지리적 여건상 제주를 오고 가기 쉬운 칠성파 출신 중견급 보스들은 이미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제주까지 넓혔다고 한다. 부산 지역 최대 조직인 칠성파는 '온천장 칠성', '기장 칠성', '서면 칠성' 등으로 이미 분파됐으며 전국 단위로 진출, 각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검찰의 마지막 칼날은 칠성파로 향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3대 패밀리'가 와해된 현 시점에서 전국구로 부를 수 있는 조직은 칠성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양은이파와 범서방파에 쏠린 시선 덕분에 지난 20여년간 수사기관의 집중 단속을 피했던 칠성파가 이번에야말로 뿌리 뽑힐지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포인트4]
정치인이 위험하다

검찰 입장에서 칠성파를 잡는다면 그 이름값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면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의 주문은 단순히 조폭만 때려잡는 것에 있지 않다. 정·재계와 연루된 조직범죄 수사는 이번 조폭과의 전쟁의 꽃이다.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에서는 권력에 기생하여 한몫 챙기려는 조폭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천은 조폭과 정치인의 유착이 의심된 곳 중 하나다.

최근 인천지방경찰청은 조폭이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첩보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조폭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고 판단, 대대적인 내사에 착수했다.

실제로 지난 19대 총선에 후보로 출마한 F씨는 조폭을 동원한 불법 선거운동을 벌이다가 구속 기소됐다. F씨는 자신과 친한 조폭에게 선거 운동을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신용카드를 건넸고, 조폭은 F씨가 건넨 돈과 자신의 인맥을 결합하여 불법 선거운동을 벌였다.

조폭과 아삼륙인 정치인은 주로 서울보다 인천이나 호남 등 지역 경제 기반이 약한 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또 후원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부 정치인들은 상대가 조폭인 줄 알면서도 정치 후원금을 받고 당선 후 사례를 약속하는 일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야권 성향의 정치인이라 정권 입장에서도 사건이 외부로 드러났을 때 부담이 적다.

비리혐의로 입건되는 단체장 대부분은 구청장이나 군수, 시장 등 행정가다. 무엇보다 인구가 적은 지방은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압력을 행사하기 좋은 구조를 갖고 있다.

지역의 토호 조폭은 이런 행정가의 약한 고리를 건드린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대부분 상권이 밀집한 곳이 조폭의 활동지가 된다.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상인과 조폭이 동일인인 일도 부지기수다. 아예 4~6개의 조폭이 지역 상권을 나눠먹는 있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 입장에선 조폭에게 반기를 들 수 없는 것.

하지만 정부와 수사기관이 조폭의 선거 개입을 엄단하기로 한 만큼 지역에 뿌리내린 정치인과 조폭의 공생을 끊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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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