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조폭과의 전쟁' 관전포인트 넷

나라에 도움 안되는 건달들 씨 말린다

[일요시사=사회팀] 밤거리를 활보하던 조폭이 음지로 스며들었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은 점차 지능화되고 기업화됐다. 큰 조직들은 부동산 시장으로 뛰어들어 건설 이권에 개입했고, 작은 조직들은 사채를 운영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업가들을 쥐어짰다. 더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뛰어들어 적잖은 성공을 맛봤다. 지난 21일 '조폭의 저승사자'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24년 만에 다시 '조폭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놓쳐선 안 될 '新 조폭과의 전쟁' 관전포인트를 소개한다.

 

 

검찰이 지난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 이후 24년 만에 다시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21일 대검찰청 강력부(부장 윤갑근 검사장)는 '전국 조폭전담 부장검사·검사·수사관 전체회의'를 열고 조폭이 장악하고 있는 지하경제와 관련해 '총단속'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진태 검찰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조직폭력 범죄는 국민생활에 가장 직접적이고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범죄로 이를 척결하는 데 한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며 "조폭이 거대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을 기필코 막아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최근 조폭은 합법적인 사업가처럼 활동하면서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거대한 지하경제를 형성하고 있다"며 "총력을 기울여 단속함으로써 활동 기반을 와해하고 범죄수익을 환수해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지난 범죄와의 전쟁으로 많은 폭력조직이 와해됐지만 당시 수감된 상당수의 폭력배가 출소하면서 조직을 재건했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1세대 '갈취형'과 2세대 '혼합형'을 벗어난 3세대 조폭은 합법을 가장한 '기업형'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3세대 조폭은 무려 120조원에 달하는 지하경제시장에 진출, 온라인 도박과 사금융 상권 등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유흥업과 건설업은 지난 2세대 때부터 조폭의 주된 자금줄로 자리 잡아 규모가 확대됐다는 해석이다.


조폭과 연관된 사업장 383개를 검찰이 분석한 결과 유흥업소는 173개(45.2%)로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일반음식점은 62개(16.2%)로 뒤를 이었으며, 건설·제조·부동산 업체는 55개(14.4%)로 파악됐다. 또 공산품 및 농수산물 유통업체는 34개(8.9%), 놀이시설 및 서비스업소는 33개(8.6%)로 집계됐다.

아울러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하경제시장은 불법사행산업(도박 등)이 전체의 78%인 95조6000억원 규모로 조사됐다. 사금융은 16조5000억원(14%), 성매매는 6조6000억원(5%), 가짜석유는 3조2000억원(3%) 등으로 나타났다.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검찰은 기존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 '투트랙'으로 전면전을 벌일 계획이다. 먼저 120조원 규모의 불법 지하경제에 대한 범죄수익 환수를 핵심 목표로 하고, 사업가로 위장한 조폭들의 대대적인 탈세나 횡령·배임 등에 대한 집중 수사를 병행해 '실리와 명분' 모두를 챙긴다는 방침이다.

전체회의에는 대검 강력부장·조직범죄과장·피해자인권과장을 비롯해 서울중앙·인천·수원·부산·대구·광주 6대 지검 강력부장, 18대 지검 조폭 전담 검사 및 정보 전담 수사관 50명이 배석했다. 검찰이 이처럼 전국의 조폭 전담 검사는 물론 수사관까지 모두 소집해 회의를 연 건 66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조폭을 상대로 급작스럽게 선전포고를 한 것일까. 그리고 조폭과의 전쟁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먼저 이번 발표의 배경부터 간략히 살펴보자.

[포인트 1]
지하경제와의 전쟁

박근혜정부의 핵심공약 중 하나는 '지하경제 양성화'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리 척결이 올 상반기 중점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수 확보와도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4일 법무부는 '2014년도 법무부 업무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 대한 비리 수사에 검찰 수사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VIP(대통령)가 강조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에 따른 것이란 해석이다.

업무 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 부채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위 대표적인 기관부터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부채규모가 큰 기관부터 손을 보면서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뿌리뽑는다" 검 1990년 이후 24년 만에 선포
출소한 두목들 활개…지하경제 양성화 배경

이번 조폭과의 전쟁은 넓은 의미로 보면 사실상 ‘지하경제와의 전쟁’이다. 박근혜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표방하고 있는데 재정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승부수로 지하경제에 매스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음지에서 돈을 불린 조폭은 박근혜정부의 주된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현 정부의 명운과도 직결된 '조폭과의 전쟁'은 지난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에 비견할 만한 강도 높은 수사가 예상되는 것이다.


[포인트 2]
첫 타깃은 누구?

검찰이 기획 수사를 공식화한 만큼 '어떤 분야'의 '누가' '무슨 혐의로' 쇠고랑을 찰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검찰은 신중한 모습. 수사를 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1∼2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에 대한 대규모 수사나 체계적인 정보 수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최근까지 특별 관리해 온 조폭 리스트를 토대로 첩보 수집을 강화하여, 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조폭 지형도'를 그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경찰이 공식 집계한 전국 모든 조직 수는 217개였다. 시도별로는 경기도가 조직 29개·조직원 91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서울(22개·484명) ▲전북(16개·410명) ▲경남(18명·400명) ▲경북(12개·391명) ▲부산(23개·381명) ▲광주(8개·322명) ▲대구(11개·310명) ▲인천(13개·297명) ▲강원(17개·264명) ▲충남(16개·252명) ▲충북(6개·252명) ▲전남(8개·233명) ▲울산(6개·197명) ▲대전(9개·144명) ▲제주(3개·137명) 순이었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경찰이 간부급 조폭을 위주로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조직원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일 조폭의 조직원 수로는 충북 파라다이스파가 7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구 향촌동파(75명), 부산 칠성파(71명), 인천 부평신촌파·광주 국제PJ파(65명), 충북 화성파(64명)가 눈길을 끌었다.

다만 '전국 3대 패밀리'로 악명을 떨쳤던 조양은의 양은이파와 김태촌의 범서방파는 현재 관리대상 조직원이 각각 26명과 11명에 불과해 이번 수사의 타깃이 될지는 미지수다. 또 광주의 OB파는 49명이 관리대상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만 이들 중 다수는 현역을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화력이 집중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3세대 조폭은 간부급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소규모로 조직원을 분산 배치하고, 필요시에 긴급 동원하는 체제로 조직을 정비했다. 그간 수사시관이 조폭 단속에 애를 먹은 건 이처럼 조폭이 점조직화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들은 타조직원의 경조사에 참여하며, 따로 회합을 갖는 등 폭력조직으로서의 유대는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파라다이스파·향촌동파·칠성파 눈길
지방선거 앞두고 정재계 유착범죄 도마

회칼이 난무하던 세력다툼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이들은 이권이 있는 곳이면 타 조직과의 연합도 서슴지 않는다. 축적된 자금을 바탕으로 인근 군소조직들을 흡수하거나 통합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회장님'으로 신분을 감춘 거물급 조폭은 쇠파이프 대신 전화 몇 통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조폭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여러 명이 떼로 다니거나 폭력으로 세를 과시하면 죽는 걸 알기 때문에 요즘 조폭은 성가신 일이 있으면 '외주'를 준다"고 했다.

가령 '총회꾼'으로 불리는 A회장은 채권추심, 도산·파산 정리, 주주총회 등을 방해해달라는 부탁을 모 기업인으로부터 받는다. 그럼 A회장은 자신의 직속부하가 아닌 믿을 만한 조직원 B에게 '실력행사'를 지시한다. 지시를 받은 B는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세력이 크지 않은 조직을 섭외해 '폭력'을 사주한다. 폭력을 실제로 행사한 조폭 C는 A회장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더구나 C는 검거 후에도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윗선인 B를 불지 못한다. 만에 하나 B의 존재를 수사기관이 인지한다 하더라도 B는 A회장의 직속부하가 아니기 때문에 A회장은 자연스레 법망을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번 조폭과의 전쟁은 A회장과 같은 '몸통'을 검거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자금줄을 쥐고 있는 A회장을 잡지 못하면 검찰이 공언한 범죄수익 환수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 초기 단계부터 거물급 조폭을 곧장 노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 안팎으로는 가짜석유(유사 휘발유) 제조, 교통사고 위장 보험범죄, 지방 대학가 총학생회 교비횡령 등에 대한 수사가 먼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가짜석유 제조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에 대한 사정작업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전과 울산을 기반으로 한 조폭이 이미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소문도 들린다.

[포인트 3]
거물급부터 손본다

앞서 밝혔듯 조폭과의 전쟁은 범죄수익 환수가 핵심 목표다. 따라서 조직 간의 폭력행위보다는 횡령이나 탈세와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지난 범죄와의 전쟁 이후 이름난 간부급 조폭은 각 산업군에 대거 유입된 뒤 돈으로 조직을 유지했다.

규모가 큰 조직들은 건설 이권에 개입했다. 작은 조직들은 사채를 운영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업가들을 쥐어짰다. 일부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어 재미를 봤다. 더러는 전공을 살려 사설 경호업체를 개설했다. 불법적인 인터넷 도박장 운영은 물론이고 동남아 부동산 투자와 같은 합법적인 영역도 조폭의 손아귀에 놓였다.

기자가 접한 한 조폭은 주가 조작과 같은 금융범죄, 슈퍼카 임대사업과 같은 신종 범죄에 눈떠 돈을 긁었다. 또 이들 대부분은 사업 파트너를 갖고 있는데 소문난 '전주'가 투자금을 대면 조폭이 돈을 굴려 이득을 배분하는 식이다. 때문에 향후 수사 과정에서 몇몇 '자산가'의 정체가 조폭으로 탄로 날지 관심의 대상이다.

서울에서 투자기관을 운영 중인 D는 호남 출신 조폭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시장에서 D는 자금력이 좋아 알 만한 사람들은 거의 아는 인물로 소개된다. 특히 D는 모 기업 총수의 비자금과도 연관된 인물로 업계 관계자는 귀띔했다. 소위 말하는 거물급 조폭인 셈.

부산을 중심으로 물류 유통을 장악한 E에 대한 소문도 있다. 칠성파 출신으로 유흥업소를 관리했던 E는 후배들에게 유흥업소를 물려주고, 물류 사업에 뛰어든 뒤 막대한 부를 챙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이젠 유흥업소 관리나 운영은 조직 차원에서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조직 차원에서 돈 되는 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제주를 중심으로 발호하는 조폭들에 대한 경계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조폭들이 제주로 눈을 돌리면서 마약 유통은 물론이고 불법 성형과 같은 의료 분야에 손을 뻗친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제주지방경찰청이 검거한 조폭은 전년 대비 37%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흑사회 등과 공조 관계에 있는 조폭은 골프장 건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사금융, 섹스관광 등을 수입원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또 중국 현지와 연계한 신종 금융사기 역시 중량감 있는 조폭이 선호하는 모델로 전해진다. 국내 수사기관의 적발이 쉽지 않을 뿐더러 사업 과정에서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기 용이한 까닭이다.

지리적 여건상 제주를 오고 가기 쉬운 칠성파 출신 중견급 보스들은 이미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제주까지 넓혔다고 한다. 부산 지역 최대 조직인 칠성파는 '온천장 칠성', '기장 칠성', '서면 칠성' 등으로 이미 분파됐으며 전국 단위로 진출, 각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검찰의 마지막 칼날은 칠성파로 향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3대 패밀리'가 와해된 현 시점에서 전국구로 부를 수 있는 조직은 칠성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양은이파와 범서방파에 쏠린 시선 덕분에 지난 20여년간 수사기관의 집중 단속을 피했던 칠성파가 이번에야말로 뿌리 뽑힐지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포인트4]
정치인이 위험하다

검찰 입장에서 칠성파를 잡는다면 그 이름값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면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의 주문은 단순히 조폭만 때려잡는 것에 있지 않다. 정·재계와 연루된 조직범죄 수사는 이번 조폭과의 전쟁의 꽃이다.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에서는 권력에 기생하여 한몫 챙기려는 조폭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천은 조폭과 정치인의 유착이 의심된 곳 중 하나다.

최근 인천지방경찰청은 조폭이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첩보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조폭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고 판단, 대대적인 내사에 착수했다.

실제로 지난 19대 총선에 후보로 출마한 F씨는 조폭을 동원한 불법 선거운동을 벌이다가 구속 기소됐다. F씨는 자신과 친한 조폭에게 선거 운동을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신용카드를 건넸고, 조폭은 F씨가 건넨 돈과 자신의 인맥을 결합하여 불법 선거운동을 벌였다.

조폭과 아삼륙인 정치인은 주로 서울보다 인천이나 호남 등 지역 경제 기반이 약한 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또 후원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부 정치인들은 상대가 조폭인 줄 알면서도 정치 후원금을 받고 당선 후 사례를 약속하는 일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야권 성향의 정치인이라 정권 입장에서도 사건이 외부로 드러났을 때 부담이 적다.

비리혐의로 입건되는 단체장 대부분은 구청장이나 군수, 시장 등 행정가다. 무엇보다 인구가 적은 지방은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압력을 행사하기 좋은 구조를 갖고 있다.

지역의 토호 조폭은 이런 행정가의 약한 고리를 건드린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대부분 상권이 밀집한 곳이 조폭의 활동지가 된다.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상인과 조폭이 동일인인 일도 부지기수다. 아예 4~6개의 조폭이 지역 상권을 나눠먹는 있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 입장에선 조폭에게 반기를 들 수 없는 것.

하지만 정부와 수사기관이 조폭의 선거 개입을 엄단하기로 한 만큼 지역에 뿌리내린 정치인과 조폭의 공생을 끊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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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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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