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은 프로> 미국현지 동행취재<스토리>

“가슴 벅차 얼떨결에 백 치켜 들었죠”

지난 8월17일(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경기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톱랭커’ 전문킬러 양용은 선수. 그때의 감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세 번째 대회인 BMW 챔피언십 대회장에서 그를 만났다. 본 경기 하루 전 프로암대회를 벌이고 있는 경기장에서 그를 만나 동행취재를 했다.

스윙 보면 페이드 구사하고 페이드에 유독 강하다는 것 실감
그립색상… 퍼플, 블루, 레드, 옐로우, 그레이, 화이트 각양각색


아름다운 건축의 도시, 시어즈 타워가 위치한 시카고 다운타운을 뒤로하면서 55번 하이웨이를 따라 남서쪽으로 향하다보면 30여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레몬트(LEMONT) 시가 나온다. 이곳에는 전통적으로 유명한 72홀짜리 골프장이 하나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카그힐(COGHILL)골프장이다.

경기장에 모습 나타내자
팬 기습 사인공세 열풍

이곳은 오랜 기간 동안 각종 PGA경기를 치러온 유서 깊은 골프장으로 WGA, ADVILL CIALIS 등의 골프대회를 거쳐 현재 BMW CHAMPIONSHIP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BMW대회는 PGA대회를 마감하는 플레이오프 대회 4개 중 3번째 대회로서 상위 70위에 랭크된 선수 70명만 추려서 초청하는 대회다. 직전대회까지 한국의 최경주선수가 거의 한해도 빠짐없이 출전했지만 올해는 눈에 보이질 않는다. 대신 양용은 선수가 그 자리를 채웠다. 양 선수 이외에도 나상욱, 찰리 위, 그리고 앤서니 김 선수 등도 당당하게 출전을 했다.

PGA대회는 목요일부터 치러지는 본 경기에 앞서 수요일에는 어김없이 프로암(PRO-AM)대회를 연다. 대회 스폰서들을 초청해서 3명의 스폰서들과 선수 한명을 묶어 4명이 한조를 이뤄 치르는 경기를 말한다. 말하자면 기부금을 낸 스폰서들을 위한 팬서비스 차원이고 선수들에게는 대회 하루 전에 골프코스를 읽어나가는 연습경기에 속한다.

양용은 선수에게 배정된 3명의 아마추어 스폰서 중 한 명은 시카고의 트럭 운송회사 최고경영자인데 마침 수행비서를 한국 여성을 동행하고 나왔다. 오전 8시20분쯤, 양 선수가 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대회 주최 측인 BMW사가 제공하고 있는 지프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차에서 내린다. 이미 입구 주변에는 삼삼오오 일찍부터 자리를 잡은 양 선수의 미국 팬들이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Y.E.YANG(와이-이-앵”을 외치면서 사인 공세를 벌인다. 미국인들은 그를 ‘와이, 이, 앵’이라고 부른다. 양용은을 발음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대박의 광고효과 부른 감격적 순간 일어난 단순한 행동
타이거우즈에게 쓰라린 패배 안겨주며 사냥꾼으로 우뚝


최경주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최경주는 “켱-추-초이”라고 부르면 쉽기나 하다. 그러나 양용은은 발음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그래서 최경주도 그냥 ‘케이-제이-초이’ 그렇게 부른다. 그래서 양용은도 약자 이니셜만 따서 ‘와이-이-앵’이라고 부른다. ‘양’도 아니고 ‘앵’이다. 웃기기는 하지만 어쨌건 그런 게 미국발음이고 정석으로 발음하겠다니 우리가 들을 때 좀 우습게 들리더라도 하는 수 없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름을 알고 있고 여기저기에서 양 선수의 이름이 오고가니 기분은 좋다. 친절하고 기분 좋게 팬들에게 사인을 마치고 난 뒤 이어 필자와 양 선수가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 투어 뛸 때 함께 지냈던 우창완(찰리 우)선수는 가끔 만납니까”라고 필자가 묻자 양 선수는 “미국투어 뛰느라고 한동안 연락을 못했습니다. 잘 있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우창완 선수는 필자가 켄터키에 있을 때 루이빌대학 골프 장학생을 했던 선수로서 US오픈 시드를 배정받기위해 오하이오 예선대회에 함께 동행 했던 후배였고 한국에서 양용은 선수와 함께 지냈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렇게 질문을 한 것이었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일정상 하루 늦게 도착 했지만 뭐 그런대로 좋습니다”

한국말로 주고받는 대화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주변 팬들을 뒤로하고 양 선수는 레인지로 향했다. 출전 선수들이 레인지에서 연습을 할 때면 주최 측에서는 곧바로 이름이 쓰여진 보드판을 그 선수 뒤에다 꽂아 놓는다. 팬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다. 흰 바지에 빨간 상의를 입은 양 선수의 의상이 흐리고 구름이 낀 시카고 가을 아침에 유독 눈에 잘 띈다.

그의 스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 선수가 드로우성 구질 보다는 페이드를 구사하고 페이드에 유독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기야 그 페이드로 타이거 우즈를 잡았으니 뭐 특기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뒤에서 그의 연습광경을 지켜보던 팬들 중 게리 해밀튼이라는 중년의 신사는 가방에서 여러 장의 양 선수 사진을 꺼내든다. 지난주 타이거 우즈와의 경기를 보고 갑자기 양 선수의 팬이 됐다는 사람이다. 양 선수의 스윙에 대해서도 나름 일가견을 내놓는다. 스윙연습을 하고 있는 그의 주변에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레인지서 연습하자
관계자 5~6명 밀집

한국매니저는 물론이고 테일러메이드 관계자, 대회 주최 측 관계자, PGA 대회 관계자 등 5~6명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타 선수들이 코치 한 명만을 데리고 있는 광경과는 대조적이다. 테일러메이드 관계자가 연신 재활용봉투를 들고 양 선수와 뭔가를 상의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침을 먹고 싶어 한국식당이나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해 온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양 선수가 그 안에서 꺼낸 물건은 다름 아닌 그립. 아이언세트 그립을 전부 새것으로 교체할 생각인 듯하다. 특이한 것은 그립의 색상이 아이언 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 퍼플, 블루, 레드, 옐로우, 그레이, 화이트 등 그립의 칼라도 다양하다. 3번은 퍼플, 4번은 레드, 뭐 이런 식으로 그립을 교체할 예정인가 보다.

레인지 연습이 20여 분정도 경과하자 주최 측에서 연락이 온다. 오늘 함께 라운드를 할 3명의 스폰서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레인지를 나와 곧장 10번 홀로 향하는 도중에도 30여 명의 팬들이 사인을 해달라며 줄을 서 있다. 양 선수는 싫은 기색 없이 차례차례 해주고 있다. 그 중에는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교포 아주머니도 끼어 있었다.

아이언마다 모두
그립 색상 다양

“양 선수를 보려고 어제 왔는데 못 봐서 오늘 다시 온 거예요. 이 싸인 우리 식당에 걸어 놓을 거니까 잘 싸우세요.” 식당주인의 구수한 응원 소리에 양 선수도 웃으면서 목례로 답한다. 그의 팬들을 향한 태도는 온순하고 친절하다. 그렇다고 가식적인 것은 아닌 거 같다. 오랜 세월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지녀온 팬들에 대한 최대의 표정과 태도가 무엇인지를 터득한 것 같기도 하다.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나니 경기시작 3분 전이다. 이미 스폰서들은 백나인 티박스에 올라가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종종걸음으로 티업 제시간인 9시 정각. 서로 기념사진 촬영과 인사를 교환한다. 백티에서 치는 양 선수가 먼저 티업을 해야 한다. 순간 바로 옆의 9번홀 그린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조금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그곳에 바로 타이거 우즈가 있는 것이다.

양 선수보다 2시간 이른 오전 7시에 프로암 경기를 배정받아 이미 전반 9홀을 돌고  들어온 타이거 우즈가 퍼팅을 끝낸 순간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그림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로 지난주에 두 사람은 대회장에서 치열한 싸움을 했고 타이거는 골프인생에서 최대의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 킬러가 바로 10미터도 채 안 되는 옆 홀 티박스에 서 있다.

타이거도 다음 홀이 10번 홀인데 양 선수의 출발 홀이 바로 10번홀이다. 그리고 양 선수조가 먼저 티박스에 올라가 있어서 타이거 우즈의 조는 양 선수조 뒤에서 기다렸다가 플레이를 해야 한다. 물론 뒤 따라간다는 사실에 아무 의미를 둘 것도 없지만 타이거가 느끼는 기분은 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필자는 해본다. 그리고 타이거 우즈는 9번홀 그린에서 10번홀로 걸어오지 않은 채 애써 양 선수 조가 올라있는 홀 쪽을 외면하고 있는 모습이다.

두 선수가 서로 마주치면 양 선수는 여유있게 악수라도 할 요량이지만 타이거는 절대 마주치지 않을 심산이다. 두 사람 간의 묘한 감정. 그리고 골프장의 구조상 9번 그린과 10번 티박스의 근접한 거리. 공교롭게도 양쪽 홀을 사이에 두고 10M 앞에서 마주친 두 사람. 그 모습을 한 컷의 사진으로 담은 뒤 느끼는 묘한 기운은 필자만이 느끼는 무엇일까. 어쨌든 두 사람은 결국 조우하지 못했다.

그리고 양 선수 조의 4명이 티샷을 하고 그들은 페어웨이를 향해 오늘의 경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양 선수를 따라 걸으면서 필자는 계속해서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고 타이거 선수 조는 홀이 비고 나서 잠시 후에야 티박스에 올라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1번홀에서 잠시 여유가 있을 즈음 필자가 양 선수에게 물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타이거를 꺾고 우승이 확정 됐을 때 왜 테일러메이드 백은 갑자기 치켜들었습니까?”

치열한 싸움 전개한
킬러와 패배자의 만남


필자의 이 질문은 그날 대회를 TV로 지켜본 시청자는 물론 전 세계 모든 골프 팬들이 궁금해 할 만 한 것이었다. 우승을 확정짓고 골프백을 치켜든 선수는 아마 처음일 것이므로. 필자의 질문은 왜냐면 당시 TV중계 해설자가 양 선수의 백을 치켜든 모습을 가르키며 “미네소타에서는 아이스하키가 주민들에게 최고의 인기스포츠인데 아마 우승컵인 스탠리컵이 골프백보다 커서 우승트로피를 치켜들 때 꼭 두 손으로 머리위로 역도하듯이 들어 올려야 하니까 아마 미네소타 팬서비스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 같다”라는 자신만의(?) 그럴듯한 해설을 내놓았었기 때문이다. 

 양 선수가 미국 아이스하키 팀이 우승 후 스탠리컵을 역도 용상처럼 그렇게 들어 올린다는 것을 절대 알리가 없다고 필자는 자신하는데…. 역시 양 선수의 답은 그 해설자의 제멋대로 해석과 달랐다. “그거요? 그냥 가슴이 벅차서 얼떨결에 뭐라도 해야 될 거 같고, 눈에 백이 보이길래, 소리라도 질러야 겠기에 그냥 치켜 올렸죠 뭐..하하하”

필자의 직감이 맞았다. 팬서비스도 아니고 고도의 테일러메이드 광고 전략도 아닌 단순히 감격적인 순간에 일어난 단순한 행동이었다. 물론 테일러메이드는 양 선수의 그 동작 하나로 대박의 광고효과를 봤지만 말이다.

호랑이를 잡는
사냥꾼 ‘양용은’

그렇게 양 선수는 3명의 스폰서와 함께 다음 홀로 이동했다. 그를 따르는 50여 명의 팬들도 함께. 물론 그 뒤에 오는 타이거 우즈의 팬들하고 비교하면 아직 못 미치지만. 미국 내에서 신처럼 타이거를 추종하는 광팬들. 연습라운드인데도 300여 명은 타이거를 따라다니고 있다. 이만한 광팬을 몰고 다니는 골프선수는 타이거 우즈가 유일할 것이다.

그리고 사흘 뒤의 일이지만 역시 타이거 우즈는 이 대회에서 아예 2위조차 저 멀리감치에서 감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분노의 광기어린(?)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양 선수는 생전 처음 밟아보는 카그힐의 골프장에서 70명 선수 중 최하위그룹에 속하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두 사람만의 성적으로 본다면 이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는 어느 정도 복수혈전을 하긴 했다. 그러면 뭐하나.

이미 과거지사에서 양 선수는 타이거를 이겼고 호랑이 잡는 사냥꾼으로 인식이 된 것을. 재작년 이맘 때 필자는 최경주를 이곳에서 만났다. 그리고 2년 뒤 필자는 또 다른 한국선수인 양용은 선수를 만났다. 이곳을 거쳐 간 한국계 남자 선수들만 찰리 위, 나상욱, 앤서니 김 등 5명이다. 왠지 모를 벅찬 감동과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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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