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욕먹다 끝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2.10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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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서 버티고 버티다…결국 밀려났다

[일요시사=사회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결국 경질됐다. 잇따른 실언으로 국민의 공분을 산 결과다. 지난 6일 정홍원 총리는 해임 건의를 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뒤, 박근혜 대통령은 전격 해임했다. 툭 하면 구설에 올랐던 윤 전 장관. 그의 잇따른 말실수와 부적절한 행동을 되짚어봤다.




윤진숙 전 장관은 입만 열면 말썽이었다. 해임의 결정적인 원인은 이번 GS칼텍스 여수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된 부적절한 언행 때문이었다. 기름유출 사고를 두고 윤 전 장관은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라는 실언을 해 여야의 뭇매를 맞았다. 경질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결국 장관 자리를 떠나게 됐다.


실언 릴레이
예고된 해임


윤 전 장관은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서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이어진 새누리당과의 당정 협의에서 “1차 피해자는 정유사인 GS칼텍스이고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고 밝혀 여야 국민적 공분을 샀다. 정치권의 거센 질타도 끊이지 않았다. 엄중한 분위기와 맞지 않게 늘 웃는 모습을 보인 게 화근이었다. 윤 장관의 불성실해 보이는 태도는 업무수행 능력에 대한 불신을 일으켰다. 당연히 비판여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31일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송유관 파공 기름유출 사고는 사건 축소에만 급급했던 GS칼텍스와 초동대처에 미숙함을 드러낸 해경, 도선사의 과실 등이 종합적으로 얽힌 인재형 재난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4일 여수해경과 GS그룹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전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사고의 원유유출량은 GS칼텍스가 애초 발표한 추정치인 800L(4드럼)보다 무려 205배나 많은 16만4000L(820드럼)인 것으로 해경 조사 결과 잠정 밝혀졌다.


이번 사고로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윤 전 장관이 이끈 해수부는 유출된 기름양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파악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GS칼텍스도 피해를 봤다’ ‘방재 훈련 사정은 잘 모르겠다’ 등의 실언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많은 기름이 유출되면서 여수의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뒤늦게 나타난 윤 전 장관조차 “보고 받기로는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 전 장관은 기름유출 사고현장에서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막는 행위는 언론을 통해 삽시간에 퍼지면서 장관의 자질 논란이 들끓었다.




코 막은 사진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윤 전 장관은 JTBC <뉴스9>에 출연해 “독감 때문에 자꾸 기침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옮길까봐 막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내가 배려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왜 자꾸 구설에 오르는 것 같냐’는 질문에는 “내가 얘기를 해야 언론사가 잘 되나 보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에 윤진숙이라는 이름이 뜨면 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인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방송 출연이 오히려 논란의 불씨를 키우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후 YTN은 독감 예방법을 소개하며 윤 장관의 사진을 사용하며, ‘독감 예방법 공공장소에서 입 가리고 기침하기’라는 글과 함께 방송을 내보냈다. 뉴스 앵커는 윤 장관의 사진을 가리키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윤 장관 사진인데요. 논란을 떠나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이렇게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라며 깨알 같은 설명을 했다.

원본사진과 함께 YTN 방송 캡처 사진이 각종 커뮤니티에 오르면서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넘쳐났다. 윤 장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더 커졌다. 급기야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사과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윤진숙 때리기’엔 여야가 따로 없었다. 대부분의 정치 현안에 대해 정치권 입장이 엇갈리게 마련이지만 이번엔 한입으로 윤 장관을 비판했다.


여수 기름유출 사고 대처 과정서 부적절 언행


“봐줄 만큼 봐줬다” 또 구설 오르자 결국 해임


여당인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의원은 6일 최고위원회에서 “윤 장관이 아무리 평소에도 잘 웃는다지만 사고현장 등 웃을 수 없는 상황에도 웃는 장관에 대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과연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인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4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와 5일 새누리당 제4정책조정위원회와의 당정협의에서 윤 장관의 ‘웃음 섞인 실언’을 지적한 것이다.

당정회의에서 여수 기름 유출사고의 1차 피해자가 GS칼텍스라고 말한 윤 장관은 의원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특히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이 “GS칼텍스가 가해자지 왜 피해자냐”고 질책하자 윤 장관이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이 최선의 초동 조치를 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윤 장관은 중간 중간에 웃어 질책을 받은 것이다.


입 열 때마다…
정치권 일파만파


민주당은 한 발 더 나아가 윤 전 장관의 즉각적인 경질을 촉구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윤 장관은 장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처신과 언행을 보이고 있다”며 “박 대통령이 최근 공직자가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에게 상처를 주면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는데 윤 장관의 언행이 이에 딱 들어맞는 만큼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정애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이 윤 장관을 임명하기 전에 ‘모래밭 속 진주’라고 극찬했지만 지금은 ‘해양4차원장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며 “문제의 국무위원들을 즉각 경질하고, 내각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여야 정치권에서 윤 전 장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6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정 총리는 윤 전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권 행사 의향에 대해선 즉답을 피하며 거부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론이 갈수록 악화됐다. 결국 정 총리는 고심 끝에 윤 전 장관 해임안을 건의했고, 불과 2시간 만에 해임조치가 마무리됐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로부터 해임 건의를 받고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해임 조치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전화로 해임을 건의받고 그 자리에서 해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청와대의 즉각적인 행동으로 풀이된다.

윤 전 장관은 이날 오후 4시30분에 해양수산부 대회의실에서 공공기관장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었으나 회의 시작 약 20분 전에 청사를 떠났다. 대신 손재학 해양수산부 차관이 회의에 참석했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전격 경질된 것과 관련, 여야는 수긍하면서도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뉘앙스가 달랐던 것이다. 새누리당은 윤 전 장관의 해임 여파가 개각론으로 튈까 조심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한발 더 나아가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 경제관료들도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함진규 새누리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장관으로서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언행을 보인 윤 장관의 해임은 적절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윤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윤 장관의 경질은 만시지탄”이라며 “박 대통령은 민심을 받아들이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청문회 때부터 부적격 논란이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고 인사실패를 인정하는데 1년이 걸렸다”면서 “밀실인사, 땜질식 인사로 현 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 이 일을 계기로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포함해 전면적 인사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주라더니…
다시 흙 속으로


총리가 해임건의권을 행사한 사례는 2003년 10월 고건 전 총리가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었던 최낙정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해임건의를 한 것이 유일했다. 당시 최 전 장관은 취임 14일 만에 낙마했다. 따라서 정 총리의 해임건의는 역대 두 번째로 기록됐다. 공교롭게도 두 차례의 해임건의 대상이 모두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건의 사유 또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같다.

윤 전 장관은 진 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어 현 정부 들어 물러난 두 번째 각료다. 박 대통령은 부처 산하 연구기관에 있던 무명의 연구자인 윤 전 장관을 발탁하면서 ‘흙 속의 진주’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윤 전 장관은 청문회 때부터 기초적인 질문에도 대답을 못해 자질 논란을 키웠다. 그가 역점을 두고 있던 북극항로 개척 사업은 해운업계로부터 ‘사업성이 떨어지는 탁상행정’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윤 전 장관의 기이한 언행 퍼레이드는 지난해 4월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시작됐다. 청문회가 시작되자 그는 해맑은 얼굴로 “죄송합니다. 제가 떨려야 하는데 발표를 워낙 많이 해서….”라며 당찬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청문회가 시작되자 윤 전 장관의 황당한 행동이 이어졌다. 의원들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해양 수도가 되기 위한 비전’을 묻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윤 전 장관은 “해양…”이라고 말한 뒤 웃음을 터뜨렸다.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수산은 전혀 모르십니까”라고 묻자 윤 전 장관은 “아니, 전혀 모르는 건 아니고요”라고 말한 뒤 또 웃었다. 단순히 웃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윤 전 장관은 진지한 자리에서 장난을 밥먹듯이 했다.



대통령이 극찬한 ‘흙 속의 진주’
청문회 때부터 자질 논란 일어 
국민여론 악화…정치권 융단폭격


당시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도 마찬가지로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경 의원이 “국무위원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자 윤 전 장관은 “조정, 어 그런 역할”이라고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이어 경 의원이 “국무회의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고 있느냐”고 묻자 윤 장관은 “장관님들을 우선…”이라며 또 얼버무렸다.

답답한 마음에 경 의원은 “뭐 하나 자신감 있게 답하는 게 없다. 어떤 자리에 간다고 통보 받으면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가는 게 도리다. 윤 후보자가 국무회의에서 오늘 같은 태도로 답변하면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일을 신뢰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게 동료의원들의 똑같은 심경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전 장관의 실언은 장관 임명 이후 수차례 반복됐다. 그의 고질병이었다. 여권 일각에서조차 “윤 장관을 감싸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윤 전 장관은 “우리 어업에 대한 GDP(국내총생산) 성장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는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의 질문을 받았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GDP 성장이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지난해 5월 취임 첫 행보로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해서는 “장관님 프로필을 꿰고 있다”는 한 상인의 말에 “제가 인기가 높습니다. 워낙 유명해져서”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언이 이어지자 여론은 악화됐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돋보이는 입술에 붉은 립스틱, 정돈되지 않은 단발머리, 코 끝에 걸쳐진 안경 등은 그의 이미지를 더욱 깎았다. 하지만 이후 윤 전 장관의 모습이 달라졌다. 곳곳에 변신을 시도한 흔적이 확인된 것이다.

눈에 띄게 붉은 입술로 호탕하게 웃었던 임기 초와 달리, 은은한 화장에 절제된 디자인의 정장을 입었다. ‘이제 좀 장관같네’ 당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윤 전 장관에게 ‘이미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붉은색 립스틱 대신 은은한 컬러의 메이크업을 했고, 와인색 뿔테 안경으로 포인트를 주기도 했다. 헤어스타일에도 불륨을 줘 세련미를 더 했다. 그리고 답답했던 셔츠가 아닌 목선이 드러난 블라우스에 파스텔톤의 실크 스카프를 매치해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기도 했다.

치아가 보이게 웃는 웃음도 자제했다. 윤 전 장관의 변신은 계속 이어졌다. 이후 로열블루 컬러의 정장과 진주목걸이를 매치해 여성 장관으로서의 위엄을 한껏 살렸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위트 있는 빨간 장화를 착용했다.

한 패션 전문가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스카프와 액서서리를 이용한 세련된 연출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문성에 대한 카리스마 연출과 목주름 등 신체적인 단점 보완은 다소 아쉽다”고 덧붙였다.

윤 전 장관의 변신에는 ‘비밀 과외’가 있었다고 한다. JTBC는 윤 전 장관이 청와대의 권유로 10여일간 아나운서 전문학원에서 걸음걸이부터 화법, 화장법 등을 배웠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단기 과외로 놀라운 발전을 보여줬지만, 그간의 언행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위기의 해수부
다시 살아날까


윤 전 장관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여고와 신라대(옛 부산여대)를 졸업한 뒤 경희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안관리, 해양환경 등이 주요 전공 분야이며 경희대, 한성대, 충북대 등에서 강의를 하는 등 주로 학계에서 활동했다.

국무총리실 물관리 대책위원, 국토해양부 정책자문위원, 여수 엑스포 비상임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해양수산 분야 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연안관리법, 해양환경관리법, 해양수산발전기본법 등 해양수산 분야 법안 마련에도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1997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들어간 뒤 해양정책연구부장, 해양정책연구본부장을 거쳐 해양연구본부장을 지냈다. 그는 5년 만에 부활한 해양수산부 초대 장관에 임명됐지만 임기 내내 논란을 일으키다 결국 ‘가벼운 입’ 때문에 10개월 만에 경질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윤진숙 전 장관은?]

▲부산 출생
▲신라대(옛 부산여대) 지리교육학사
▲경희대 지리학 석·박사
▲한국수로학회 부회장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장
▲국토해양부 중앙연안심의위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아카데미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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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