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박근혜 떠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09 1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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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공신’이 떠났다…도대체 왜?

[일요시사=사회팀]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주도했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탈당 의사를 밝혔다. 그는 연구를 위해 탈당을 했다고 밝혔지만,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18대 대선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앞다퉈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쏟아냈다.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었던 김종인은 현 정권의 개국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혁한 공을 세웠던 그가 지금 대선 1주년을 앞두고 탈당을 결심했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탈당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 파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파장 촉각
다양한 해석 나와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가정교사로 잘 알려진 김 전 위원장 탈당을 두고 말이 많다. 그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발언을 극도로 자제했다. 야권에서는 그의 행보가 ‘경제민주화의 실종’을 의미한다며 입을 모았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 6일 “지난해 선거가 끝났으니 할 일은 다 했다. 지난해부터 언제 나갈까 생각한 것”이라며 새누리당 탈당 의사를 밝혔다. 19일 탈당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다.

탈당 자체도 큰 의미를 갖겠지만, 당선 1주년을 앞둔 시점이어서 시사점이 더욱 커 보인다.


공식적인 탈당 사유는 ‘연구활동’ 이다. 그는 내년 3월 초 독일로 출국해 연구에 매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서는 당원 신분이 거추장스럽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는 할 얘기가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대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 전 위원장은 탈당 의사를 밝힌 뒤 경제민주화의 향방이나 현 정국에 대한 의미 있는 발언을 내놓진 않았다. 이와 달리 김 전 위원장의 측근들을 현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김전 위원장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서울경제>와 전화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감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도 CBS라디오를 통해 “그런 부분(청와대에 실망)이 있다고 봐야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그의 탈당 의사가 전해지면서 야권에서는 ‘경제민주화 실종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민주당 허일영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 전 위원장이 탈당을 결심한 것은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없다는 것을 최종 확인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풀이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민주화’ 공약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김종인 전 위원장을 토사구팽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파기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소수 재벌’들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비난했다. 이어 “국민통합도 사라졌고, ‘창조경제’는 ‘특권경제’가 되었다”면서 “경제민주화의 파기로 인해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중소기업들의 고통도 가중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박 대통령이 당선된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공약들이다”라며 “이렇게 본다면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밝혔다. 또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의 밑그림을 그렸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곧 탈당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양보하고 타협하면서도 경제민주화를 어떤 수준에서든지 실현하고자 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의 노력, 이제는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그가 새누리당을 떠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신당에 참여하는 게 아니냐’는 설도 제기됐다. 김 전 위원장이 과거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멘토였던 이유에서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하늘이 깨져도 안철수 신당에 안 간다”며 신당행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한편 김 전 위원장이 독일에 장기체류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포스코 차기 회장 취임가능성도 희박해졌다. 그동안 그는 포스코의 차기 회장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돼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 전 위원장의 탈당 소식에 새누리당은 난색을 표했다. “김종인 전 의원이 새 정부에 대해 격려는 못할망정 의욕을 꺾는 일만큼은 자제해야 한다”고 밝힌 것.

새누리당 탈당 두고 설왕설래…“실망”관측
안철수 신당 합류설 부인 “독일서 연구활동”

김근식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 전 의원이 정치적 신념이나 소신,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 의사라고 생각하지만 김 전 의원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경제정책 공약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분으로서 보다 신중한 처신을 강조하고 싶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 부대변인 또 “김 전 의원은 새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공약 후퇴를 언급하며 비판적 입장을 보였고 급기야 언론을 통해 조만간 탈당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며 “새 정부는 출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라 안팎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 같은 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할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속빈 강정되나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그동안(김 전 위원장이) 입당한 것도 몰랐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어쨌든 그 분이 많은 기여를 했고, 그때 주장했던 경제민주화 입법이 요즘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반영됐기 때문에 그 분의 충분한 역할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의 탈당 소식에 이준석 전 위원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이 같은 개국 공신들의 ‘탈박’ 행렬이 여기서 그칠 것이냐는 점이다. 앞으로 하나둘씩 탈박 행렬에 가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 당선 1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이지만 여권 내 비박 세력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의 당적과 별개로 이제 새누리당 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당원이고 아니고가 의미도 없는데”라는 그의 발언이 보여주는 바도 그것이다. 헌법 119조2항 경제민주화 주창자라고 알려진,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그가 새누리당에서 역할을 찾지 못하는 현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의 후퇴는 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총선 전 김 전 위원장이 이상돈·이준석 등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던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에 합류했을 때 야권 지지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박근혜에게 갔다는 사실 자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이러한 반응에 “박근혜 대통령만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소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캠프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밝히다가 수난을 당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새 정부 출범의 견인차 역할을 했는데, 결국 중용되지는 못했다. 즉 그가 사심으로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그는 진정성 있게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가 “박근혜 대통령만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라고 말한 이유도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아마도 민주당 정권이 주도하는 경제민주화는 수구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제대로 실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민주당은 급진적이지 않은 정당이기에 기업권력과 타협하는 것도 우려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을 돌이켜보면 재벌을 엄하게 통제했던 이들은 군부독재자인 박정희나 전두환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주저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혁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이 기대했던 박 대통령의 ‘의지’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전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단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경제민주화 담론을 꺼내들었을 것이라고 봤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단순히 선거에 활용했다는 것을 느꼈기에 이러한 결정을 내린지 모르겠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내세운 공약들의 질적 수준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만큼 김 전 위원장은 진정성 있게 경제민주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협력을 구해야 하며 누구의 반대를 감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고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민이 없는 정치적 과제는 실행 불가능하다. 정책 구체화에 실패한 것이다.

외부인사들의
잇단 퇴장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위해선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했고 경기회복이 우선이라는 경제관료와 재벌그룹들과의 ‘전쟁’을 치를 각오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는 접어 놓고 ‘NLL대화록’ 등 이념몰이를 통해 야당과 결사항전했고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려 달라”는 경제관료와 재벌그룹들의 변명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새누리당 역시 UCLA 경제학 박사인 이혜훈 최고위원 정도를 제외하면 대통령의 의중에 그대로 끌려 들어갔다.

대통령 경제 가정교사
경제민주화 공약 주도


이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경험은 있지만 한 번도 정책적 과제를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모습인지 모른다. 이를 감지한 핵심브레인 김 전 위원장은 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대정신을 읽는 능력은 있었지만 현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보수주의자로서 사회 양극화 문제를 정책으로 해결하는 큰 정치인이 될 기회를 스스로 놓친 셈이다.

박 대통령이 이념논쟁이 아닌 정책논쟁에 힘을 썼다면 야권은 국정원 선거개인 논란과는 상관없이 해당 법안에 대해 적극 협조했을 것이고 지지율은 김영삼 정부 초기에 버금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40∼50%를 상회하는 지지율에 미소지을 뿐이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청와대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만족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직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단임제가 흘러가면 그 대가는 나머지 임기 동안에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김 전 위원장 탈당은 분명 큰 시사점이 있다. 역사에 오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시끄러운 정국을 풀고 정책 실현에 힘써야 할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때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정부수립 후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이다. 그는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당시에는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 입안에 참여하면서 의료보험제도를 최초로 도입했고, 노태우 정부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해 아파트 분양가 상한가를 도입했다. 그 이전에는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3년 당시 안영도 동화은행장에게 2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과거 민정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특정계파에 서지 않으면서도 ‘김영삼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파격을 보여 이후 김영삼 정부 때 표적사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또 개인 비리가 아닌 정권의 정치 자금을 받은 것인데, 당시 ‘특정인’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본인이 뒤집어 썼다는 의견도 있다.

불쏘시개 되어
논의 들어갈까

김 전 위원장은 1987년 헌법상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관철시킨 사람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란이 있다.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 87년 제9차 헌법개정 때에 헌법 119조2항, 경제민주화 항목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거 박찬종 전 의원은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는 이미 야당의 초안에 담겨 있었다. 여당인 민정당의 반대를 꺾고 관철시켰다. 여당 의원인 김종인이 한 일을 우리는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87년 헌법 제119조 제2항은 이전 헌법에도 존재해 왔던 조항이며, 다만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만 더 추가된 조항이다. 대한민국 헌법상의 경제민주화 조항의 변천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48년 제헌헌법 제84조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내에서 보장된다.

1963년 헌법 제111조 제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1980년 헌법 제120조 제2조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제3항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조정한다.

1987년 헌법 제119조 제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김종인은?]

▲서울 출생
▲서울 중앙고 졸업
▲한국외대 독일어학과 학사
▲독일 뮌스터 대 경제학과 석·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제4차 경제개발계획 실무위원
▲서독 쾰른대학교 객원교수
▲제5차 경제개발계획 실무위원
▲제11대, 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국민은행 이사장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제14대 국회의원(민주자유당)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건국대 석좌교수
▲제17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제18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가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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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