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신음하는 동물원 실태&해법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08 09:42:36
  • 댓글 0개

호랑이도 원숭이도 “끙끙 앓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동물원은 밝고 즐거운 공간이다. 다양한 동물과의 상호작용은 가족과 연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동물들은 끊임없이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한다. 그 이면에는 동물들의 아픔이 서리어 있다.




말 못하는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 과연 어제오늘의 일일까.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테마동물원 쥬쥬에서 조련사가 바다코끼리를 발로 차고 때리는 등 학대하는 행위가 발각돼 세간에 알려지며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달 29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바다코끼리 학대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고, 지난 2일 해당 동물원을 의정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조용히 자행돼온
동물원 동물학대

이번 동물학대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리의 실태를 깨닫고 그 심각성에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에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동물을 기준 이하의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하거나 관람을 위해 위협적 방법으로 훈련시킬 경우 동물원장은 처벌을 받게 하는‘동물원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을위한행동, 핫핑크돌핀스, 동물사랑실천협회,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들과 함께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행법상 동물원과 관련한 명시적 정의 및 기준을 포함하고 있는 법률은 전무한 실정이다.


동물복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동물보호법’의 경우 동물원 내 동물에 관한 사항을 별도로 정의하고 있지 않으며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자연공원법 및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 상 각각 교양시설, 공원시설, 박물관의 한 종류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체코, 덴마트 등 해외 여러 국가는 이미 동물원의 운영 및 사육기준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어 동물원 전반에 대한 관련법 마련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돼 왔다.
장 의원이 발의한 동물원법이 통과되면 환경부는 장관 소속으로 동물원 등 관리위원회를 두고 동물원 등 설립의 허가·변경에 관한 사항 등을 심사·의결하게 해야 한다.

동물원 등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추어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동물원 등 이용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인위적 훈련이 금지되며 동물이 수의학적 처치를 요할 경우 동물원장은 즉시 적절한 방법으로 조치해야 한다.

환경부 장관은 동물원 사육이 부적합한 동물에 대해 매년 고시해 사육을 금지하게 되며 동물원 등의 장은 매년 상·하반기 각각 1회씩 동물원 사육현황을 작성해 환경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했으며 동물원 등 관리위원회 위원 또는 관계 공무원의 동물원 등에 관한 출입 및 검사권한을 가지게 된다.

장 의원은 “동물원의 건강하고 건전한 운영을 위해서는 동물원 관련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좁은 철장 안에서
평생을 사는 동물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을 방문한다. 이제는 동물원, 수족관뿐 아니라 체험전시장, 이동동물원, 체험카페, 생태체험 등의 이름으로 도시 곳곳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전시하는 시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말 나들이 장소로도, 어린 학생들의 견학 장소로도 이용되는 동물원에서 사람들은 평소 볼 수 없는 동물을 가까이서 구경하고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들은 과연 어떨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온 여러 종의 동물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 관람객에게 전시하는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노출돼 있다.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는 일, 먹이를 찾아다니는 일, 날기, 수영하기, 뛰기, 짝짓기, 땅파기 등 야생동물로서 생태적 습성에 따라 본능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모두 제약을 받는다.

심지어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습성과는 상관없는 우스꽝스러운 재주를 부리도록 훈련하는 과정에서 학대와 폭력이 발생한다. 많은 동물들이 이런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위장장애 등 만성 질병에 시달리거나 무기력증, 상동증(정신분열 증상의 일종) 등의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동물원이 동물들이 목마름과 배고픔,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적어도 정상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시설에서 사육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법적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동물자유연대를 비롯한 동물보호단체에는 전시시설에서 학대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만지려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피할 공간도, 기력도 없는 토끼와 고슴도치, 꼬집고 잡아당기는 조련사의 손에 이끌려 재주를 부려야 하는 오랑우탄, 뙤약볕에서 물 한 그릇 없이 하루 종일 철창 안을 빙글빙글 도는 곰은 모두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분명 동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이나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원에 개선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동물원 동물이 자연서식지에서와 같은 삶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되거나 부적절한 관리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을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동물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키고 있을까.

동물권 개선에
어떤 움직임 있나

도시화의 확산으로 인한 자연체험 경험의 감소, 가족중심 여가문화의 확산 및 각종 교육과정에서의 체험학습 강화추세는 동물원에 대한 수요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옛날부터 국내에 서식하지 않는 동물을 도입하여 사육했던 기록이 역사 문헌에 존재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11년(1411년)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코끼리 1마리를 10년 이상 사육한 기록이 남아있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동물원은 1909년 ‘창경원’이 시초다. 이 창경원은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조선의 권위적 상징을 지운 아픈 역사도 깃들어 있다.

본래 동물원은 종 보존, 교육, 여가 및 과학적 연구 등의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동물원에 대한 체계적인 법률 및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동물원 관련 국내·외 법률현황과 동물원에 대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동물원은 2011년 말 기준으로 수족관 5개소를 포함하여 17개소로 파악되고 있다. 동물원은 운영주체에 따라 다른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운영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과 자연공원법 시행령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업·개인이 설립한 동물원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관광진흥법을 따른다.

계속되는 학대 논란에 ‘동물복지법’급물살
체계적 제도 보완 ‘동물원 개선안’도 추진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 35조에 따라 동물원은 생물자원 보전시설로 등록될 수 있으나 시설기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5조 제1항 제 1호 및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에 기준이 제시되어 있으나 시설 종류 및 인력 등에 관한 사항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우선 영국의 경우를 보면 1984년부터 시행된 동물원 면허법으로 동물원의 허가 및 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야생동물 전시를 목적으로 연중 7일 이상 대중에게 개방하는 영구적 시설을 동물원으로 정의하고 있다. 환경식품농촌부(DEFRA)가 주무부처로서 동물원 검사자의 명단을 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실제 집행은 지방정부의 환경부서가 수행하고 있다.


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을 위한 면허취득 절차는 공고, 제출, 심의, 허가(또는 불허), 조건부여의 총 5단계로 진행되며, 발급된 면허는 신규발급의 경우 4년, 갱신의 경우 6년간 유효하다. 면허 발급 후에도 동물원에 대하여 정기검사, 특별검사, 비공식 검사 등이 이루어진다. 검사는 지방정부가 지명하는 3인(수의사 1인, 기타 2인)에 의해 이루어지며 ‘현대동물원운영기준(SSSMZP)의 준수 여부가 주된 검사대상이 된다.

동물원 운영기준을 보면 DEFRA는 2000년 3월 동물원 면허법 제9조에 따라 동물원과 동물에 대한 관리기준을 정했다. 여기에서는 동물원 동물복지 5대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물과 음식, 적당한 환경, 동물 건강관리, 가장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보호 제공 등이 있다. 동물원 환경에서 동물들이 정상적인 행동과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편의시설과 치료 및 공포·고통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동물원 이용객이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할 사항 및 보존과 대중교육 등에 대한 사항 등을 담고 있다.




동물원 검사자는 동 기준을 토대로 검사를 수행하고 검사결과에 따라 동물원 면허 발급 여부를 결정하여 지방정부의 관련부서에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과학자, 수의사, 동물보존기구 관계자 등 동물복지 및 보존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물원 포럼이 동물원 동물 관리 편람을 만들어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EU는 1999년 동물원이 야생동물 보존, 동물복지, 대중 교육 및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도록 규정한 지침을 제정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동 지침은 동물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각 회원국으로 하여금 지침의 목적을 따를 수 있는 기술적 기준들을 작성하고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동 지침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2002년 4월까지 국내법으로 지침 내용을 구체화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영국은 동물원 관련 별도의 법령에 지침의 내용을 반영한 반면, 독일의 경우 자연환경보전에 관한 법률에 지침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각국의 상황별로 다른 방식과 수준으로 지침의 내용이 반영됐다.

동 지침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회원국들이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고 종다양성을 보전하도록 동물원의 허가 및 검사에 관한 사항을 채택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연간 7일 이상 대중 전시를 위해 야생 종의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영구적 시설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 최초
동물복지법 발의

지침은 동물원의 역할을 종에 대한 보존, 보존 기술의 훈련, 종 보존 정보의 교환, 적절한 포획·번식·재생산 및 야생으로의 재입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개별 종의 생물학적 보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들을 제공하고 높은 수준의 동물 사육 기준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토착종에 대한 생물학적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종의 탈출과 외래종 유입을 예방하며, 보유한 종에 대한 기록을 최신상태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회원국들은 지침에 따라 기존 및 신규 동물원이 지침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충족할 수 있도록 허가 및 검사를 위한 수단들을 채택해야 하며, 만약 지침에 따른 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 해당 동물원을 폐쇄시키거나 별도로 허가 조건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회원국 가운데 27개국이 동 지침에 대한 국내법적 수용 작업을 마무리했다. 동물원 관리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국가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데 비해 핀란드, 스페인 등은 지역 및 지방정부가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보건부(오스트리아), 환경부(체코), 법무부(덴마크), 농업부(네덜란드), 환경식품농촌부(영국) 등 각국마다 상이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침의 수용 수준에 있어서 독일은 지침과 관련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국내법에 포함시킨 데 비해 영국은 지침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사항들을 국내법으로 반영하는 등 지침의 국내법적 수용 수준에 있어 각국마다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1877년 28시간법(동물 수송 시 28시간에 한번씩 물과 사료를 공급해야하는 규정) 이후 다수의 동물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있으나 동물원 관련 별도의 법률은 없다. 그러나 민간단체인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가 수행하는 동물원 인증제가 실시되고 있다.

AZA는 동물원의 서식환경, 사회적 그룹유지, 동물관리와 치료에 대한 협회 기준 준수 여부, 수의·교육 프로그램, 안정정책 및 과정 등 광범위한 항목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인증을 실시하고 있으며 2007년 기준으로 미국 내 216개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한 인증을 실시한 바 있다. 부여된 인증서는 5년간 유효하도록 정하고 있다.

국내 17개소 운영…대부분 관리 부실
스트레스 시달리다 정신질환 증세도

우리나라에는 다수의 동물원이 존재하고 있지만 동물원의 설립, 운영 및 관리에 대한 법률 및 체계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칭)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관련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이 과정에서 다음의 사항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첫째, 동물원의 정의, 범위 및 역할이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여러 법률에 분산되어 있는 동물원의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 EU 및 영국의 사례와 같은 동물원 인증제 실시를 검토할 수 있다. 인증제는 동물원 관리 주체로 하여금 동물원 관리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이용객에게 해당 동물원의 관리운영 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셋째, 동물원 관리의 주무부처의 지정은 동물원의 주요 기능, 관련 인력의 관리 등을 토대로 검토되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와의 역할 분담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 한명숙·진선미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 및 녹색당, 생명권네트워크 변호인단,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등은 지난 1일 국회에서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명칭을 바꾸고 동물학대 금지조항 및 처벌 강화, 실험동물 지위 부여, 동물복지축산 원칙 제시 등을 핵심으로 하는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물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지 이미 오래”라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복지개선과 함께 인간과 함께하는 동물의 복지가 개선되어야 한다”며 이와 같이 밝혔다.

이들은 “동물조차 존중받는 세상이라면 당연히 인간도 행복한 세상일 것”이라며 “동물복지법이 실효성 있는 규범이 된다면, 단언컨대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또한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의된 동물복지법은 동아시아 최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