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신음하는 동물원 실태&해법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08 09: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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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도 원숭이도 “끙끙 앓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동물원은 밝고 즐거운 공간이다. 다양한 동물과의 상호작용은 가족과 연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동물들은 끊임없이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한다. 그 이면에는 동물들의 아픔이 서리어 있다.




말 못하는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 과연 어제오늘의 일일까.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테마동물원 쥬쥬에서 조련사가 바다코끼리를 발로 차고 때리는 등 학대하는 행위가 발각돼 세간에 알려지며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달 29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바다코끼리 학대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고, 지난 2일 해당 동물원을 의정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조용히 자행돼온
동물원 동물학대

이번 동물학대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리의 실태를 깨닫고 그 심각성에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에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동물을 기준 이하의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하거나 관람을 위해 위협적 방법으로 훈련시킬 경우 동물원장은 처벌을 받게 하는‘동물원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을위한행동, 핫핑크돌핀스, 동물사랑실천협회,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들과 함께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행법상 동물원과 관련한 명시적 정의 및 기준을 포함하고 있는 법률은 전무한 실정이다.


동물복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동물보호법’의 경우 동물원 내 동물에 관한 사항을 별도로 정의하고 있지 않으며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자연공원법 및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 상 각각 교양시설, 공원시설, 박물관의 한 종류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체코, 덴마트 등 해외 여러 국가는 이미 동물원의 운영 및 사육기준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어 동물원 전반에 대한 관련법 마련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돼 왔다.
장 의원이 발의한 동물원법이 통과되면 환경부는 장관 소속으로 동물원 등 관리위원회를 두고 동물원 등 설립의 허가·변경에 관한 사항 등을 심사·의결하게 해야 한다.

동물원 등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추어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동물원 등 이용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인위적 훈련이 금지되며 동물이 수의학적 처치를 요할 경우 동물원장은 즉시 적절한 방법으로 조치해야 한다.

환경부 장관은 동물원 사육이 부적합한 동물에 대해 매년 고시해 사육을 금지하게 되며 동물원 등의 장은 매년 상·하반기 각각 1회씩 동물원 사육현황을 작성해 환경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했으며 동물원 등 관리위원회 위원 또는 관계 공무원의 동물원 등에 관한 출입 및 검사권한을 가지게 된다.

장 의원은 “동물원의 건강하고 건전한 운영을 위해서는 동물원 관련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좁은 철장 안에서
평생을 사는 동물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을 방문한다. 이제는 동물원, 수족관뿐 아니라 체험전시장, 이동동물원, 체험카페, 생태체험 등의 이름으로 도시 곳곳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전시하는 시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말 나들이 장소로도, 어린 학생들의 견학 장소로도 이용되는 동물원에서 사람들은 평소 볼 수 없는 동물을 가까이서 구경하고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들은 과연 어떨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온 여러 종의 동물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 관람객에게 전시하는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노출돼 있다.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는 일, 먹이를 찾아다니는 일, 날기, 수영하기, 뛰기, 짝짓기, 땅파기 등 야생동물로서 생태적 습성에 따라 본능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모두 제약을 받는다.

심지어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습성과는 상관없는 우스꽝스러운 재주를 부리도록 훈련하는 과정에서 학대와 폭력이 발생한다. 많은 동물들이 이런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위장장애 등 만성 질병에 시달리거나 무기력증, 상동증(정신분열 증상의 일종) 등의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동물원이 동물들이 목마름과 배고픔,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적어도 정상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시설에서 사육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법적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동물자유연대를 비롯한 동물보호단체에는 전시시설에서 학대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만지려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피할 공간도, 기력도 없는 토끼와 고슴도치, 꼬집고 잡아당기는 조련사의 손에 이끌려 재주를 부려야 하는 오랑우탄, 뙤약볕에서 물 한 그릇 없이 하루 종일 철창 안을 빙글빙글 도는 곰은 모두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분명 동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이나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원에 개선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동물원 동물이 자연서식지에서와 같은 삶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되거나 부적절한 관리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을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동물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키고 있을까.

동물권 개선에
어떤 움직임 있나

도시화의 확산으로 인한 자연체험 경험의 감소, 가족중심 여가문화의 확산 및 각종 교육과정에서의 체험학습 강화추세는 동물원에 대한 수요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옛날부터 국내에 서식하지 않는 동물을 도입하여 사육했던 기록이 역사 문헌에 존재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11년(1411년)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코끼리 1마리를 10년 이상 사육한 기록이 남아있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동물원은 1909년 ‘창경원’이 시초다. 이 창경원은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조선의 권위적 상징을 지운 아픈 역사도 깃들어 있다.

본래 동물원은 종 보존, 교육, 여가 및 과학적 연구 등의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동물원에 대한 체계적인 법률 및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동물원 관련 국내·외 법률현황과 동물원에 대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동물원은 2011년 말 기준으로 수족관 5개소를 포함하여 17개소로 파악되고 있다. 동물원은 운영주체에 따라 다른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운영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과 자연공원법 시행령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업·개인이 설립한 동물원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관광진흥법을 따른다.

계속되는 학대 논란에 ‘동물복지법’급물살
체계적 제도 보완 ‘동물원 개선안’도 추진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 35조에 따라 동물원은 생물자원 보전시설로 등록될 수 있으나 시설기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5조 제1항 제 1호 및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에 기준이 제시되어 있으나 시설 종류 및 인력 등에 관한 사항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우선 영국의 경우를 보면 1984년부터 시행된 동물원 면허법으로 동물원의 허가 및 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야생동물 전시를 목적으로 연중 7일 이상 대중에게 개방하는 영구적 시설을 동물원으로 정의하고 있다. 환경식품농촌부(DEFRA)가 주무부처로서 동물원 검사자의 명단을 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실제 집행은 지방정부의 환경부서가 수행하고 있다.


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을 위한 면허취득 절차는 공고, 제출, 심의, 허가(또는 불허), 조건부여의 총 5단계로 진행되며, 발급된 면허는 신규발급의 경우 4년, 갱신의 경우 6년간 유효하다. 면허 발급 후에도 동물원에 대하여 정기검사, 특별검사, 비공식 검사 등이 이루어진다. 검사는 지방정부가 지명하는 3인(수의사 1인, 기타 2인)에 의해 이루어지며 ‘현대동물원운영기준(SSSMZP)의 준수 여부가 주된 검사대상이 된다.

동물원 운영기준을 보면 DEFRA는 2000년 3월 동물원 면허법 제9조에 따라 동물원과 동물에 대한 관리기준을 정했다. 여기에서는 동물원 동물복지 5대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물과 음식, 적당한 환경, 동물 건강관리, 가장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보호 제공 등이 있다. 동물원 환경에서 동물들이 정상적인 행동과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편의시설과 치료 및 공포·고통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동물원 이용객이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할 사항 및 보존과 대중교육 등에 대한 사항 등을 담고 있다.




동물원 검사자는 동 기준을 토대로 검사를 수행하고 검사결과에 따라 동물원 면허 발급 여부를 결정하여 지방정부의 관련부서에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과학자, 수의사, 동물보존기구 관계자 등 동물복지 및 보존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물원 포럼이 동물원 동물 관리 편람을 만들어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EU는 1999년 동물원이 야생동물 보존, 동물복지, 대중 교육 및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도록 규정한 지침을 제정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동 지침은 동물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각 회원국으로 하여금 지침의 목적을 따를 수 있는 기술적 기준들을 작성하고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동 지침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2002년 4월까지 국내법으로 지침 내용을 구체화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영국은 동물원 관련 별도의 법령에 지침의 내용을 반영한 반면, 독일의 경우 자연환경보전에 관한 법률에 지침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각국의 상황별로 다른 방식과 수준으로 지침의 내용이 반영됐다.

동 지침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회원국들이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고 종다양성을 보전하도록 동물원의 허가 및 검사에 관한 사항을 채택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연간 7일 이상 대중 전시를 위해 야생 종의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영구적 시설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 최초
동물복지법 발의

지침은 동물원의 역할을 종에 대한 보존, 보존 기술의 훈련, 종 보존 정보의 교환, 적절한 포획·번식·재생산 및 야생으로의 재입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개별 종의 생물학적 보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들을 제공하고 높은 수준의 동물 사육 기준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토착종에 대한 생물학적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종의 탈출과 외래종 유입을 예방하며, 보유한 종에 대한 기록을 최신상태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회원국들은 지침에 따라 기존 및 신규 동물원이 지침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충족할 수 있도록 허가 및 검사를 위한 수단들을 채택해야 하며, 만약 지침에 따른 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 해당 동물원을 폐쇄시키거나 별도로 허가 조건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회원국 가운데 27개국이 동 지침에 대한 국내법적 수용 작업을 마무리했다. 동물원 관리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국가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데 비해 핀란드, 스페인 등은 지역 및 지방정부가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보건부(오스트리아), 환경부(체코), 법무부(덴마크), 농업부(네덜란드), 환경식품농촌부(영국) 등 각국마다 상이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침의 수용 수준에 있어서 독일은 지침과 관련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국내법에 포함시킨 데 비해 영국은 지침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사항들을 국내법으로 반영하는 등 지침의 국내법적 수용 수준에 있어 각국마다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1877년 28시간법(동물 수송 시 28시간에 한번씩 물과 사료를 공급해야하는 규정) 이후 다수의 동물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있으나 동물원 관련 별도의 법률은 없다. 그러나 민간단체인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가 수행하는 동물원 인증제가 실시되고 있다.

AZA는 동물원의 서식환경, 사회적 그룹유지, 동물관리와 치료에 대한 협회 기준 준수 여부, 수의·교육 프로그램, 안정정책 및 과정 등 광범위한 항목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인증을 실시하고 있으며 2007년 기준으로 미국 내 216개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한 인증을 실시한 바 있다. 부여된 인증서는 5년간 유효하도록 정하고 있다.

국내 17개소 운영…대부분 관리 부실
스트레스 시달리다 정신질환 증세도

우리나라에는 다수의 동물원이 존재하고 있지만 동물원의 설립, 운영 및 관리에 대한 법률 및 체계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칭)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관련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이 과정에서 다음의 사항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첫째, 동물원의 정의, 범위 및 역할이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여러 법률에 분산되어 있는 동물원의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 EU 및 영국의 사례와 같은 동물원 인증제 실시를 검토할 수 있다. 인증제는 동물원 관리 주체로 하여금 동물원 관리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이용객에게 해당 동물원의 관리운영 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셋째, 동물원 관리의 주무부처의 지정은 동물원의 주요 기능, 관련 인력의 관리 등을 토대로 검토되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와의 역할 분담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 한명숙·진선미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 및 녹색당, 생명권네트워크 변호인단,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등은 지난 1일 국회에서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명칭을 바꾸고 동물학대 금지조항 및 처벌 강화, 실험동물 지위 부여, 동물복지축산 원칙 제시 등을 핵심으로 하는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물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지 이미 오래”라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복지개선과 함께 인간과 함께하는 동물의 복지가 개선되어야 한다”며 이와 같이 밝혔다.

이들은 “동물조차 존중받는 세상이라면 당연히 인간도 행복한 세상일 것”이라며 “동물복지법이 실효성 있는 규범이 된다면, 단언컨대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또한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의된 동물복지법은 동아시아 최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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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