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사퇴’ 채동욱 '청와대-국정원-보수언론' 토끼몰이식 마녀사냥에 당했다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17 08: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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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았나?

[일요시사=사회팀] 채동욱 검찰총장이 결국 중도사퇴 했다. 최근 그를 둘러싼 ‘혼외아들’ 논란이 문제였다. 채 총장은 “검찰총장으로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올바르게 검찰을 이끌어 왔다”고 말하고 대검찰청을 떠났다. 그러나 ‘혼외자 논란’은 표면에 불과하다. 이 사건의 핵은 따로 있다.




지난 6일 <조선일보>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채 총장은 “보도내용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후 9일 <조선일보>는 후속기사에서 ‘혼외아들 의혹’을 재언급했다. 이에 채 총장은 “정정보도를 청구하겠다”며 “유전자 검사라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본인 명의 정정보도 청구서를 조선일보에 정식 접수했다.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씨는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혼외아들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취임 163일 만에…
12번째 중도사퇴

지난 13일 법무부는 법조 출입기자들에게 채 총장에 대한 감찰에 착수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장관이 현직 검찰총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한 것은 사상 초유다. 조상철 법무부 대변인은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법무부 규정에 따른 감찰 착수 사실을 브리핑했다. 이날 대검청사 총장실에서는 전 간부진들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러한 검찰 착수 소식을 들은 채 총장은 대검 간부 긴급회의 참석 후 1시간도 안돼 자진 사퇴 결단을 내렸다. 구본선 대변인은 채 총장의 사의 표명 사실을 전달했다. 그리고 채 총장은 퇴임사 없이 대검찰청 청사를 떠났다.

법무부는 채 총장에 대한 진상규명을 감찰관에게 맡겼다고 발표했지만 안장근 법무부 감찰관은 해외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것으로 확인됐다. 안 감찰관은 지난 7일 출국해 채 총장의 혼외자녀 논란 진상조사 지시 결정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법무부는 “법무부 감찰관에게 조속히 진상을 규명해 보고하도록 조치했다”고 발표했다. 또 “진상규명을 위한 유전자 검사 등 구체적인 조사 방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감찰관실에서 나름의 조사방법으로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논란에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검찰의 불행한 역사라며 유감을 표했다.

민주당은 배재정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채 총장의 사의 표명으로 검찰이 다시 과거 회귀, ‘정치검찰’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현 상황을 엄중히 지켜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의 표명은 갑작스럽고 전례가 없는 법무부의 감찰 발표에 이어 나온 것으로 검찰총장이 더 이상 적절한 업무 수행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사건의 주역인 원세훈 김용판 두 피고인에 대해 선거법 위반 기소를 하면서 여권 내부에서 검찰총장 교체론이 솔솔 나온 것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배 대변인은 이어 “실제로 새누리당은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박근혜 정부 검찰의 기소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면서 여권의 기류를 확인시켜 준 바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유일호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채 총장이 사퇴의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최근 불거진 불미스러운 논쟁으로 인해 원활히 그 직을 수행하지 못하고 결국 사퇴의 뜻을 밝힌 데 대해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마음”이라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사의 표명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들이 퍼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진실이 하루빨리 밝혀져야 할 것”이라며 “채 총장과 관련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법원은 공정한 판단으로 조속히 의혹을 규명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 대변인은 검찰에 “채 총장의 사퇴에 동요하지 말고 흔들림 없이 국민만을 바라보며 직무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참여연대는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감찰 지시를 내린 지 1시간 만에 채 총장이 사의를 밝혔다”며 “공개적으로 감찰을 지시할 사안이 아니었는데도 전격 감찰 지시를 내린 것은 국정원 관련 검찰 수사가 청와대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채 총장에 대한 의혹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찰 지시가 일종의 압박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특히 국정원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물러나면 앞으로 국민이 원하는 실체적 진실 규명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정치검찰로 회귀?
우려 목소리 높아

채 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은 인선·검증 과정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지난 4월 국회 인사 청문회 당시 야당 의원들조차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 “청문회가 아니라 칭찬회 같다”고 채 총장을 치켜세울 정도였다. 그는 그만큼 청렴했다. 지난 4월 차기 검찰총장 내정자였던 채 총장의 청문회는 정책검증에 집중됐다. 그만큼 병역 등 개인비리 의혹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 당시 채 총장은 검찰개혁과 함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관련해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취임사에서도 “부정과 비리를 단죄하는데 어떤 성역도,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의지를 연달아 강조했다.


‘언행일치’, 채 총장은 취임 직후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관련된 대선 개입 의혹을 담당하는 특별 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나섰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는 그에게 있어서 첫 시험대였다. 이명박 정권 시절 ‘정권의 시녀’라는 별칭까지 달았던 ‘검찰’의 개혁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던 것. 수사기간 동안 채 총장은 공개적으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해 외압을 막고 수사팀에게 힘을 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검찰은 수사팀의 의지대로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법상 정치개입 금지와 공직선거법 위반죄를 적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검찰이 생각했던 사전구속영장은 청구할 수 없었다. 황교안 법무장관이 공직선거법 적용에 반대해 불구속 기소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채 검찰총장은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며 “그 검찰이 이명박 정부 사람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해 현 정부와 국정원 대선 개입의 무관성을 은연 중에 못 박기도 했다.

‘혼외자 의혹’법무부 감찰 소식에 사표
검찰 안팎선 외부세력의 ‘흔들기’의심

하지만 이런 청와대의 선 긋기에도 채 총장은 흔들림 없이 다음 수사를 진행했다. 그는 ‘전두환 추징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검찰에 “당초 시효 완성시점이었던 10월을 목표로 반드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채 총장의 뜻대로 검찰은 뚝심있게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몰아쳤다.

미납추징금 환수팀은 지난 7월 전 전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자택을 압류하고 일가 17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뿐만 아니라 전 전 대통령의 친인척 주거지 등 13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추가로 진행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 소유의 사업체들도 수색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같은 압박이 계속되자 결국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재국씨를 통해 미납추징금 1672억원을 웃도는 1703억원의 추징금을 자진납부했다.

하지만 지난 6일 <조선일보>의 보도로 채 총장의 ‘혼외 아들설’이 각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그의 행보도 위기를 맞았다.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자진납부에 기뻐할 새도 없이 채 총장은 ‘혼외 아들설’을 해명하고 ‘유전자 검사’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해 의혹을 바로잡으려 노력했지만 유례없는 법무부의 감찰엔 채 총장도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채 총장은 법무부가 감찰에 착수한다는 공식 발표를 한지 1시간 만에 ‘사퇴’를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취임한 지 꼭 163일 만이었다.

청문회를 칭찬회로 만들었던 그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부터 시작해 전두환 미납 추징금까지, 파란만장한 5개월을 끝으로 검찰총장직에 마침표를 찍었다.

조선일보 상대로
소송은 계속 진행

정국은 채 총장의 사의 표명으로 다시 냉각되는 모양새다. 민주당 내에서는 채 총장의 사퇴 이유가 된 황 장관의 감찰 지시를 ‘검찰 흔들기’로 보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채 총장이 전격 사퇴했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합작해서 검찰총장을 사퇴시켰다는 세간의 의혹이 확실하게 퍼지고 있다”며 “국가정보원 수사와 검찰 수사 흔들기 종결판”이라고 규정했다. 김 대표는 “민주당은 권력기관 장악으로 국민공포시대를 만들고 국정원 개혁을 흔들려는 새누리당 정권의 음모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채 총장의 사퇴에 대해 여러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며 사적인 일에 개입하는 것은 정치권으로서 적절치 않은 처사”라며 “정치권의 자의적 해석과 주장이 오히려 일을 키우고 국민들에게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고 밝혔다.




학계·언론계의 전문가들은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대대적으로 이같은 의혹 제기가 나온 데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공인의 사생활 문제에 대한 평가는 들쭉날쭉한 경향이 있다”며 “어떤 때는 공인의 사생활까지도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공인이기에 사생활 역시 공적 성격이 있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각 언론도 입장이 다르다. ‘사생활 관리’를 공직자의 의무로 보는 곳도 있는가 하면,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보는 곳도 있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이같은 보도 행태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의혹들을 내보낸 다음 나머지는 여론에 맡겨 마녀사냥을 당해서 내려오면 좋고 아니면 흠집 내기 정도로 만족하는 식의 몹시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꼬집었다.

누구 위한 의혹?
진실은 무엇인가

이번 채 총장의 사퇴는 표면적으로는 ‘혼외아들’ 의혹이 원인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가 촉발점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초, 국정원 특별수사팀은 국정원의 댓글 행위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댓글 작업을 지시한 원 전 원장에 대해서는 구속 의견을 대검에 전달했다.


채 총장은 수사팀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황 장관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황 장관은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거법 적용은 물론, 구속도 무리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장관과 총장의 의견 대립은 그대로 검찰 내부 갈등으로 이어졌다. 채 총장이 수사를 무리하게 지휘했다는 의견과 검사로서 용기있는 수사였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누가 채동욱 밀어냈나 “진짜 배후는?”
사전 각본대로…철저한 시나리오 냄새

우여곡절 끝에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되 불구속 기소하기로 절충을 봤지만,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수사 결과 발표 하루 전날 검찰 내부 보고서를 입수해 검찰 수사를 평가절하하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채 총장은 감찰을 지시하며 강경 대응했다. 누군가가 수사 결과를 폄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보고서를 유출했다고 본 것이다. 법무부와 청와대 등 해당 문건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제한돼 있었던 만큼 검찰 안팎에서는 특정인의 이름이 유출자로 지목되며 갈등이 고조됐다.

이번 보도의 내용을 두고 누가 제보했는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권은 경찰이나 국정원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경찰과 국정원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고 있지만, 두 기관 중 한 곳이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앞서 정가엔 검찰의 타깃인 경찰과 국정원이 채 총장을 곱게 보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정치권 한 인사는 “사실 여부를 떠나 보도된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누군가의 제보나 정보 없이 나온 기사라 볼 수 없다”며 “거물급 인사의 사생활을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현재 야권은 대통령 사과와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며 장외 투쟁에 나섰고, 여권은 채 총장의 수사 지휘가 야당 반발의 빌미를 제공했다며 노골적으로 채 총장을 압박했다.

결국 검찰총장 사퇴의 직접적인 원인은 혼외아들 의혹 보도였지만, 그 배후에는 국정원 수사 결과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끊이질 않고 있다.

채 총장은 세종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24회)한 뒤 군법무관을 거쳐 1988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검 수사기획관, 법무부 법무실장, 대검 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별수사통’인 그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12·12와 5·18 사건,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삼성에버랜드 사건, 현대차 비자금 사건 등 굵직굵직한 대형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군 법무관 시절 고등학교 동창인 양경옥씨와 결혼해 슬하에 2녀를 뒀었다. 하지만 2009년 패혈증으로 뇌성마비 장애를 앓던 22세 큰딸을 잃었다. 채 총장은 평소 자녀사랑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채동욱 총장은?>

▲서울 출생
▲세종고 졸업
▲서울대 법학 학사·석사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부장검사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부패방지위원회 법무관리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제18대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제42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제39대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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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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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