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전격사퇴 양건 전 감사원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4: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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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떠난 자리에 ‘소문만 주렁주렁’

[일요시사=사회팀] 양건 전 감사원장이 이임사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역류와 외풍’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양 전 감사원장의 사퇴 배경을 둘러싼 의혹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양건 전 감사원장이 지난달 26일 퇴임했다. 헌법상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된 감사원의 최고 책임자가 임기 4년 중 1년7개월을 남겨두고 하차한 것이다. 이번 사퇴에 야당의원들은 청와대 압력설을 주장하고 있다. 양 전 감사원장이 이임사를 통해 내뱉은 말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는 감사원의 직무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하는 모종의 ‘외압’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떠나며 남긴 말
청와대로 불똥?

양 전 원장은 이임식에서 사퇴배경으로 사실상 ‘외풍’을 언급해 향후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상당할 전망이다. 국가 최고 감사기관의 수장이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드는 외압을 견디지 못해 중도하차했다는 것으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원장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에서 진행된 이임식에서 “이제 원장 직무의 계속적 수행에 더이상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개인적 결단”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헌법이 보장한 임기 동안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그 자체가 헌법상 책무이자 중요한 가치라고 믿어왔다. 이 책무와 가치를 위해 여러 힘든 것들을 감내해야 한다고 다짐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재임 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진사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역류와 외풍’을 언급하면서 되레 의혹을 증폭시켰다.

양 전 원장은 이임사를 통해 그가 임기를 지켜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음을 강하게 보여줬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과 직무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사퇴 과정에서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와의 갈등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인적 결단임을 강조하면서도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겨 정치권에 파문이 일고 있다. 떠나는 감사원장의 입에서 ‘외풍’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임기 1년7개월 남기고 돌연 하차
이례적…배경 두고 갖가지 추측

정리해보면 양 전 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4년의 임기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감사원을 뒤흔드는 압력으로 인해 독립성을 지키는 데 한계를 느꼈고 감사원장으로서의 직무수행에 회의를 느껴 자진사퇴를 결심하게 됐다는 게 이임사의 요지다.

양 전 원장은 이임식을 마치고 감사원을 떠나기 전 정원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주차장 광장에서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이임식 직후 취재진이 몰려가 ‘역류와 외풍’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물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닫았다.



그는 이임식에 앞서 감사원 1급이상 간부들과의 티타임에서 “감사원 독립성은 제도상 문제가 있다. 대통령 소속이어서 직무상 독립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 어떡하라는 말이냐. 구조적 모순이라고 생각한다”며 독립·중립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 같은 언급은 자신의 재임기간 감사업무나 인사 등에 관한 압력을 비롯한 정치적 외풍이 적지 않았음을 강하게 풍긴 것으로 감사원의 직무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 상당히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양 전 원장은 정치적 외풍이나 독립성 훼손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4대강 감사 번복에서 부각된 감사 방향에 대한 문제나 감사위원 임명 등을 둘러싼 청와대와의 이견, 감사원 내부에서의 고립화 등이 사퇴의 배경임을 강하게 시사했기 때문이다.


청 “개인적 선택”
야 “실체 밝혀야”

양 전 원장의 외풍 발언이 전해지자 정치권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는 양 전 원장의 사퇴는 개인적 선택이라며 외풍 논란에 선을 그었다. 4대강 사업 감사 결과 번복에 대한 정치적 부담과 그로 인한 감사원 내부 갈등 때문에 양 전 원장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것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지난달 28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새 정부에서는 양건 원장의 임기를 보장하기 위해 유임을 결정했다”며 “자신의 결단으로 스스로 사퇴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청와대는 외풍 발언을 두고 불쾌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개인적 결단’이라고 말했으면서도 마치 외부의 압력 때문에 물러나는 것처럼 외풍을 운운한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 전 원장의 외풍 언급과 관련해 “양 전 원장 사퇴 이유로 이런저런 추측성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야당은 “감사원에 압력과 외풍이 있었다는 것이 명명백백해졌다”며 박근혜정부의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대통령 직속의 헌법 기관장이 ‘외풍’이라고 말한, 그 외풍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며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의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청와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청와대가 독립성이 보장된 헌법기관의 인사에 압력을 행사했고, 또 4대강을 둘러싼 신·구 정권간의 권력암투와 야합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임사 ‘역류·외풍’표현
정·관계 후폭풍 ‘만만찮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과 만나 “이이제이하고 토사구팽하는 것도 문제지만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헌법을 어기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말했다. 헌법에 보장된 감사원장의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박 의원은 이날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서도 “양건 원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분”이라며 “제가 법사위에서 4대강 감사원 감사를 그렇게 하라고 해도 안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니까 감사를 해서 ‘4대강이 잘못됐고 대운하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 이이제이한 것이고 당신은 토사구팽 된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이제이하고 토사구팽 당한 양건 원장이나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께서 헌법을 어긴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병완 정책위의장도 “양 전 원장의 사퇴는 4대강 감사 결과 발표에 대한 새누리당 친이계 반발의 희생양이자,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인사의 감사위원 임용이라는 외풍에 불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장은 “박 대통령이 나서서 정치적 외풍에 의한 헌법기관의 독립성 훼손 등 비정상적인 국가기관 운영 실태에 대해서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개혁안 마련에 대해서 야당대표와 자리를 같이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도 성명을 통해 “감사원장의 중도 사퇴는 그 자체가 문제다. 사퇴 자체가 위헌이며, 사퇴를 하도록 행사한 압력 역시 위헌”이라며 “박근혜정부는 감사원을 정권의 시녀로 만든 이명박 정권을 넘어, 친이-친박의 당내 야합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반면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감사원이라는 곳이 불가피하게 외압이나 외풍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인사가 감사원장으로 가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공정하게 감사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 기본적인 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퇴하겠다는 것 자체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양 전 원장에게 화살을 돌린 것이다.

감사원 향해
개혁 소용돌이


현재 정치권에서는 양 전 원장의 사퇴 이유로 4대강 정치감사 논란에 따른 친이계의 압박, 청와대와의 인사갈등설, 감사원 내부갈등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양 전 원장의 애매한 이임사로 인해 그의 사퇴 배경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일단 장훈 중앙대 교수의 감사위원 임명 제청을 요구하는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것은 사실로 여겨진다.

장 교수는 박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정치쇄신특별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인수위에서는 정무분과 위원으로 일한 바 있다. 이같은 경력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됐다고 판단한 양 전 원장이 청와대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 오후 감사원 기자실을 방문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양 전 원장은(장 교수가) 인수위 출신이고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이니까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해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며 “양 전 원장이 인사 쪽에서 상당히 독립성을 갖고 싶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해 청와대와의 인사 갈등설을 사실상 인정했다.

감사원 내부에서는 양 전 원장의 후임 인선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선이 길어질 경우 업무 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즉각 후임 인선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9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예정돼 있는 데다, 정기국회마저 파행 조짐을 보이고 있어 한두달 내 임명은 어려운 상황이다. 감사원장 임명에는 국회 표결과 동의가 필요하다.

정치권서 ‘청와대 압력설’급부상
4대강 문제?…인사·내부 갈등설도


당장 감사원 주변에서는 양 전 원장이 그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감사들이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감사원은 대형공사 및 인허가 비리, 부실저축은행, 공공보건 의료체계 감사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부분의 감사를 올해 안에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감사원은 “일단 정해진 감사 계획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양 전 원장의 후임 인선이 길어질 경우 감사 일정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감사원 바깥에서는 감사원을 향해 개혁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조짐이다. 민주당은 이미 감사원 개혁을 골자로 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로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에는 감사원의 ▲비공개 정보수집 제한 ▲직권남용 시 처벌 ▲세출세입 등의 국회 보고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감사원의 독립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감사원법을 제출한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감사원장이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관행을 폐지하고 국회 보고를 법제화하는 등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 직속의 헌법기관인 감사원을 국회 기관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친이계를 중심으로 코드감사·보복감사를 막기 위해 감사원 개혁에 동의하고 있어 어쨌든 이번 정기국회에서 감사원 개혁을 둘러싼 공방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음 감사원장은?
후임 하마평 무성

양 전 원장 사퇴 후 후임 감사원장에는 고위 법조인 출신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마친 뒤 부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편의점 아저씨’로 일하다 최근 법무법인 율촌 행을 택한 김능환(62·사법연수원 7기) 전 대법관과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박 대통령을 보필했던 안대희(58·7기) 전 대법관, 국내 최대 법률회사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겸 공익법률센터장을 맡고 있는 목영준(58·10기) 전 헌법재판관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공직 부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일명 김영란법)’제정을 추진했던 김영란(57·11기) 전 대법관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민주당이 감사원장 사퇴를 두고 청와대 외압설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인데다 감사원장의 국회 청문회 등을 거쳐야 하는 만큼 청와대는 후임 결정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분간 감사원은 성용락 수석 감사위원 대행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양건 전 감사원장은?

▲함경북도 청진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법학 학·석·박사
▲텍사스대 비교법학 석사
▲한양대 법학과 교수
▲미국 워싱턴대 법과대학원 객원연구원
▲대검찰청 검찰제도개혁위원회 위원
▲한양대 법과대학 학장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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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