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전격사퇴 양건 전 감사원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4: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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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떠난 자리에 ‘소문만 주렁주렁’

[일요시사=사회팀] 양건 전 감사원장이 이임사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역류와 외풍’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양 전 감사원장의 사퇴 배경을 둘러싼 의혹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양건 전 감사원장이 지난달 26일 퇴임했다. 헌법상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된 감사원의 최고 책임자가 임기 4년 중 1년7개월을 남겨두고 하차한 것이다. 이번 사퇴에 야당의원들은 청와대 압력설을 주장하고 있다. 양 전 감사원장이 이임사를 통해 내뱉은 말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는 감사원의 직무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하는 모종의 ‘외압’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떠나며 남긴 말
청와대로 불똥?

양 전 원장은 이임식에서 사퇴배경으로 사실상 ‘외풍’을 언급해 향후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상당할 전망이다. 국가 최고 감사기관의 수장이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드는 외압을 견디지 못해 중도하차했다는 것으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원장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에서 진행된 이임식에서 “이제 원장 직무의 계속적 수행에 더이상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개인적 결단”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헌법이 보장한 임기 동안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그 자체가 헌법상 책무이자 중요한 가치라고 믿어왔다. 이 책무와 가치를 위해 여러 힘든 것들을 감내해야 한다고 다짐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재임 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진사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역류와 외풍’을 언급하면서 되레 의혹을 증폭시켰다.

양 전 원장은 이임사를 통해 그가 임기를 지켜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음을 강하게 보여줬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과 직무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사퇴 과정에서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와의 갈등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인적 결단임을 강조하면서도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겨 정치권에 파문이 일고 있다. 떠나는 감사원장의 입에서 ‘외풍’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임기 1년7개월 남기고 돌연 하차
이례적…배경 두고 갖가지 추측

정리해보면 양 전 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4년의 임기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감사원을 뒤흔드는 압력으로 인해 독립성을 지키는 데 한계를 느꼈고 감사원장으로서의 직무수행에 회의를 느껴 자진사퇴를 결심하게 됐다는 게 이임사의 요지다.

양 전 원장은 이임식을 마치고 감사원을 떠나기 전 정원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주차장 광장에서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이임식 직후 취재진이 몰려가 ‘역류와 외풍’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물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닫았다.



그는 이임식에 앞서 감사원 1급이상 간부들과의 티타임에서 “감사원 독립성은 제도상 문제가 있다. 대통령 소속이어서 직무상 독립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 어떡하라는 말이냐. 구조적 모순이라고 생각한다”며 독립·중립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 같은 언급은 자신의 재임기간 감사업무나 인사 등에 관한 압력을 비롯한 정치적 외풍이 적지 않았음을 강하게 풍긴 것으로 감사원의 직무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 상당히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양 전 원장은 정치적 외풍이나 독립성 훼손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4대강 감사 번복에서 부각된 감사 방향에 대한 문제나 감사위원 임명 등을 둘러싼 청와대와의 이견, 감사원 내부에서의 고립화 등이 사퇴의 배경임을 강하게 시사했기 때문이다.


청 “개인적 선택”
야 “실체 밝혀야”

양 전 원장의 외풍 발언이 전해지자 정치권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는 양 전 원장의 사퇴는 개인적 선택이라며 외풍 논란에 선을 그었다. 4대강 사업 감사 결과 번복에 대한 정치적 부담과 그로 인한 감사원 내부 갈등 때문에 양 전 원장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것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지난달 28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새 정부에서는 양건 원장의 임기를 보장하기 위해 유임을 결정했다”며 “자신의 결단으로 스스로 사퇴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청와대는 외풍 발언을 두고 불쾌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개인적 결단’이라고 말했으면서도 마치 외부의 압력 때문에 물러나는 것처럼 외풍을 운운한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 전 원장의 외풍 언급과 관련해 “양 전 원장 사퇴 이유로 이런저런 추측성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야당은 “감사원에 압력과 외풍이 있었다는 것이 명명백백해졌다”며 박근혜정부의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대통령 직속의 헌법 기관장이 ‘외풍’이라고 말한, 그 외풍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며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의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청와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청와대가 독립성이 보장된 헌법기관의 인사에 압력을 행사했고, 또 4대강을 둘러싼 신·구 정권간의 권력암투와 야합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임사 ‘역류·외풍’표현
정·관계 후폭풍 ‘만만찮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과 만나 “이이제이하고 토사구팽하는 것도 문제지만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헌법을 어기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말했다. 헌법에 보장된 감사원장의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박 의원은 이날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서도 “양건 원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분”이라며 “제가 법사위에서 4대강 감사원 감사를 그렇게 하라고 해도 안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니까 감사를 해서 ‘4대강이 잘못됐고 대운하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 이이제이한 것이고 당신은 토사구팽 된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이제이하고 토사구팽 당한 양건 원장이나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께서 헌법을 어긴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병완 정책위의장도 “양 전 원장의 사퇴는 4대강 감사 결과 발표에 대한 새누리당 친이계 반발의 희생양이자,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인사의 감사위원 임용이라는 외풍에 불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장은 “박 대통령이 나서서 정치적 외풍에 의한 헌법기관의 독립성 훼손 등 비정상적인 국가기관 운영 실태에 대해서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개혁안 마련에 대해서 야당대표와 자리를 같이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도 성명을 통해 “감사원장의 중도 사퇴는 그 자체가 문제다. 사퇴 자체가 위헌이며, 사퇴를 하도록 행사한 압력 역시 위헌”이라며 “박근혜정부는 감사원을 정권의 시녀로 만든 이명박 정권을 넘어, 친이-친박의 당내 야합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반면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감사원이라는 곳이 불가피하게 외압이나 외풍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인사가 감사원장으로 가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공정하게 감사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 기본적인 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퇴하겠다는 것 자체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양 전 원장에게 화살을 돌린 것이다.

감사원 향해
개혁 소용돌이


현재 정치권에서는 양 전 원장의 사퇴 이유로 4대강 정치감사 논란에 따른 친이계의 압박, 청와대와의 인사갈등설, 감사원 내부갈등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양 전 원장의 애매한 이임사로 인해 그의 사퇴 배경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일단 장훈 중앙대 교수의 감사위원 임명 제청을 요구하는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것은 사실로 여겨진다.

장 교수는 박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정치쇄신특별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인수위에서는 정무분과 위원으로 일한 바 있다. 이같은 경력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됐다고 판단한 양 전 원장이 청와대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 오후 감사원 기자실을 방문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양 전 원장은(장 교수가) 인수위 출신이고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이니까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해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며 “양 전 원장이 인사 쪽에서 상당히 독립성을 갖고 싶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해 청와대와의 인사 갈등설을 사실상 인정했다.

감사원 내부에서는 양 전 원장의 후임 인선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선이 길어질 경우 업무 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즉각 후임 인선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9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예정돼 있는 데다, 정기국회마저 파행 조짐을 보이고 있어 한두달 내 임명은 어려운 상황이다. 감사원장 임명에는 국회 표결과 동의가 필요하다.

정치권서 ‘청와대 압력설’급부상
4대강 문제?…인사·내부 갈등설도


당장 감사원 주변에서는 양 전 원장이 그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감사들이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감사원은 대형공사 및 인허가 비리, 부실저축은행, 공공보건 의료체계 감사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부분의 감사를 올해 안에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감사원은 “일단 정해진 감사 계획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양 전 원장의 후임 인선이 길어질 경우 감사 일정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감사원 바깥에서는 감사원을 향해 개혁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조짐이다. 민주당은 이미 감사원 개혁을 골자로 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로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에는 감사원의 ▲비공개 정보수집 제한 ▲직권남용 시 처벌 ▲세출세입 등의 국회 보고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감사원의 독립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감사원법을 제출한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감사원장이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관행을 폐지하고 국회 보고를 법제화하는 등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 직속의 헌법기관인 감사원을 국회 기관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친이계를 중심으로 코드감사·보복감사를 막기 위해 감사원 개혁에 동의하고 있어 어쨌든 이번 정기국회에서 감사원 개혁을 둘러싼 공방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음 감사원장은?
후임 하마평 무성

양 전 원장 사퇴 후 후임 감사원장에는 고위 법조인 출신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마친 뒤 부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편의점 아저씨’로 일하다 최근 법무법인 율촌 행을 택한 김능환(62·사법연수원 7기) 전 대법관과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박 대통령을 보필했던 안대희(58·7기) 전 대법관, 국내 최대 법률회사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겸 공익법률센터장을 맡고 있는 목영준(58·10기) 전 헌법재판관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공직 부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일명 김영란법)’제정을 추진했던 김영란(57·11기) 전 대법관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민주당이 감사원장 사퇴를 두고 청와대 외압설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인데다 감사원장의 국회 청문회 등을 거쳐야 하는 만큼 청와대는 후임 결정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분간 감사원은 성용락 수석 감사위원 대행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양건 전 감사원장은?

▲함경북도 청진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법학 학·석·박사
▲텍사스대 비교법학 석사
▲한양대 법학과 교수
▲미국 워싱턴대 법과대학원 객원연구원
▲대검찰청 검찰제도개혁위원회 위원
▲한양대 법과대학 학장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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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