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상' 성형 외상시대 천태만상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8.19 11: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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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터 대고 돈은 나중에

[일요시사=사회팀] 성형공화국,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국제미용성형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13.5건의 성형수술이 이루어진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세계 1위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탓일까. 이제는 대출까지 받아 성형의 문을 두드린다.



경제발전과 여성 사회진출의 급격한 증가는 성형수술이 보편화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 사회진출이 늘며 이들의 능력과 더불어 외모 또한 경쟁력으로 자리 잡게 됐다. 성형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는 수많은 성형외과를 탄생시켰다. 이제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여성들도 외상으로 성형을 하는 ‘성형대출’의 시대가 왔다.

외모도 경쟁력

의료법 제27조 3항에 따르면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최근 불법 브로커와 손잡고 환자를 유치해왔던 강남 일대 성형외과 27곳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영리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에 알선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의료법을 어기고 영리 목적으로 환자를 알선 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불한 수수료가 지난 1년 반 동안 무려 7억7000만원에 달했다. 이른바 ‘성형대출’ ‘후불제성형’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진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들은 성형을 위해 돈을 모으거나 아예 포기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예뻐져야 한다. 뿌리깊은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성형공화국’에서 얼굴은 곧 힘이다.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우선 자신이 원하는 부위 성형수술을 받고 그 비용은 나중에 갚는 방식의 후불제 성형, 즉 성형대출은 합리적인 것 같지만 알고보면 고금리다. 비싼 이자는 불만족스러운 외모만큼이나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형대출은 알게 모르게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아마 ‘텐프로’ ‘쩜오’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최상급의 외모를 자랑하는 유흥업소 여성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러나 자연미인은 드물고 대부분이 성형미인이다. 수준급의 외모가 자신의 값어치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뻐야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화류계에 신종 직업이 등장했다. 바로 ‘성형브로커’다. 이들은 성형외과병원과 손잡고 수수료를 챙겨먹는다. 15%에서 40%까지 주는 게 관행처럼 이어져 온 것이다.
유흥업소 여성들은 성형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병원 측은 여성들에게 “아는 언니들 소개시 40%를 준다”는 식으로 떡밥을 던진다.

사업부 두고 대대적 마케팅
단골 접대부 브로커로 활동

강남의 유흥주점에 종사하는 A(29)씨는 “5∼7년 전 병원이 유흥업소 여성에게 텔레마케팅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황당한 건 아예 성형브로커로 ‘전업’한 유흥업소 여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가 좀 찼거나 일을 그만두려는 여성이 많이 택했다. 이들은 1000만원어치 수술을 받을 사람을 소개하면 최소 200만∼400만원까지 수수료를 받는다. A씨는 “언제부터인가 마담들이 언니(종업원)들에게 수술을 시키려고 안달나기 시작했다”며 ”여기만 고치면 좋을텐데 조금 손보면 네가 가게의 1인자가 되는 건 충분하다”는 식으로 성형의 달콤함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아예 대놓고 ‘넌 성형 좀 해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아’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많은 유흥업소 여성들이 성형을 앞날을 위한 ‘투자’라 여기며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가 성형대출을 통해 수술을 결심했다는 설명이다.

화류계에서 이렇게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던 그들만의 성형마케팅이 이제는 기업화되며 ‘무이자 성형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성형외과에 번지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고금리 일수상품이다. 이들은 병원과 기업적으로 업무협약을 맺고 성형수술비 1000만원당 최고 400만원의 수수료를 챙긴다. 처음엔 무이자라는 명목으로 2달여 동안은 이자를 받지 않지만, 정해진 기간 안에 갚지 못하면 이후 월 20%정도의 폭탄 이자가 붙는다.

A씨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게 뭐냐면 성형하고 금방 예뻐져서 빨리 갚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말도 안 된다”며 “60일안에 수술하고 부기 빼고 다시 1000만원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특히 경기 불황으로 손님이 뚝 떨어지자 종업원들의 수입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결국 수술비를 제때 갚지 못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12개월 분납으로 수술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혹 했던 B씨(27)는 C씨(32)를 소개 받았다. 처음엔 800만원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원금과 이자를 합치니 1000여만원이 넘었다. 뒤늦게 후회하며 스스로를 원망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돈 없는 학생에 후불제 권유
대출 알선에 다단계식 영업도


특히 20대 대학생들은 성형대출 후 신용불량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큰 목돈을 마련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성형대출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반 양성적인 상태다. 성형외과 관계자들과 브로커들은 블로그 및 카페 등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며 성업중이다. 화류계에서 일반인에게 넘어간 것이 가장큰 문제인 상황이다.

한 성형대출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 여대생이나 직장인들도 성형수술을 위한 목돈이 없어 이런 대출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 추세”라며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원졸업이 최종학력이라면 더 낮은 금리로 최대 30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예뻐지려는 게 나를 위한 투자”라며 “성형대출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분납(할부)’ 형태를 이용해 수술받는 것도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수술부터

이처럼 일수형태의 성형대출 외에도 성형을 명목으로 대출을 해주는 곳이 있다. 바로 제2금융권이다. 모 성형대출 업체에 문의한 결과 “우리와 제휴를 맺은 D성형외과, R성형외과 등에서 수술받는 게 어떠냐”고 권하기도 했다. 성형대출로 받은 돈을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막기 위해 성형대출 업자는 성형외과수술에 동반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번 성형대출 관련 조사를 담당한 정채기 서울 강남경찰서 지능팀장은 “이번에 적발된 브로커 중에는 불법 대부업자도 있었다”며 “성형대출을 통해 수술받은 사람 중에는 20대 초반 여성이 적잖았다”고 말했다. 그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져가면서까지 성형수술을 받는 것은 삼가야 한다”며 “과도한 부채는 또다른 범죄의 유혹에 휘말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정근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홍보이사는 “대부업체와 결탁해 무분별한 성형수술을 조장한 이번 사건에 우리 회원이 관여돼 심히 유감스럽다”며 “위법사실이 있다면 성형외과의사회에서도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해외에선 지금…
과도한 성형광고 금지

프랑스는 2005년부터 모든 성형광고를 규제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2012년에 미용성형외과의사협회에서 성형광고를 전면 규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 이유는 “성형광고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재의 상태를 부정적으로 느낄 수 있고, 마치 인생의 문제를 성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일명 ‘포토샵 금지법’이 있다. 영국에서는 2011년에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화장품 광고를 금지한 적이 있다. 이유는 포토샵을 이용한 과도한 보정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2012년 광고 사진을 포토샵으로 보정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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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후폭풍> 윤석열이 삼킨 이슈들

[탄핵 후폭풍] 윤석열이 삼킨 이슈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과 몇 개월 만에 온 천지가 쑥대밭이 됐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로 변했다. ‘내가 옳다, 너는 틀렸다’ 갈등을 빚는 사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공든 탑도 무너져 내렸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지 감도 안 오는 상황이다. 비로소 탄핵 정국이 끝났다. 지난해 12월14일 국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탄핵6 소추한 때로부터 111일 만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로는 122일이 걸렸다. 역대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중 가장 오랜 숙의 기간을 거쳤다. 결론까지 120여일 문제는 후폭풍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탄핵 정국은 4개월 만에 나라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정치권은 정쟁에만 몰두했고 정부는 기능이 마비돼 공회전을 거듭했다. 그사이 국민 여론은 완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사태를 수습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컨트롤 타워는 붕괴했다. 무정부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외교다. 특히 미국발 공격에 한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당선된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미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상 외교는커녕 실무진 간의 대화도 삐걱거렸다. 대통령 권한대행,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미국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우방국, 동맹 관계는 허울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도 관세를 부과했다. 당선 직후부터 스스로 ‘관세맨’이라고 칭하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도 예외로 두지 않은 것이다. 지난 2일 미국 정부는 한국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과정서 “미국 제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산업을 파괴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비금전적 장벽을 만들었다”며 “미국 납세자들은 50년 이상 갈취를 당해 왔으나 더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하면서 통상 전쟁에 불을 댕겼다. 이번 발표는 미국발 통상 전쟁을 전 세계로 확산한다는 일종의 선언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별로 중국 34%, EU(유럽연합)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등의 관세율을 적용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본, EU 등보다 높은 상호관세율이 적용되면서 불리한 여건서 경쟁을 벌이게 됐다. 나름의 ‘믿는 구석’이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미국과 새로운 통상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관세뿐만 아니다. 지난달 15일 미국 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포함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인 지난 1월 초, 조 바이든 행정부가 결정한 조치로 파악됐다. 미국 에너지부는 국가안보나 핵 비확산, 지역적 불안정성, 경제 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의 이유로 민감국가를 지정한다. 민감국가로 분류되면 원자력·인공지능(AI) 등 미국 첨단기술 분야와의 교류, 협력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트럼프 취임 이후 대응 못 해 민감국가 지정 이어 관세 폭탄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한 언론서 관련 보도가 나올 때까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감국가 지정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지정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보안 문제에 따른 것일 뿐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권은 민감국가 지정 배경을 두고 서로를 탓하며 정쟁을 벌였다. 정부의 안일한 인식과 달리 민감국가 지정은 한국 과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홍기원 의원실은 지난해 8월 작성된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보국의 ‘예측과학 학술 연계 프로그램(PSAAP) 제4기 모집 공고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공고문에 따르면 “PSAAP 자금은 미국 시민이거나 비민감국가 출신 비미국 시민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고 돼있다. 민감국가 출신은 자금 지원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민감국가에 등재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과학기술 협력에 새로운 제한은 부재하다는 게 에너지부의 설명”이라고 밝혔다. 물론, 당시 조 장관이 언급한 ‘한미 간 과학기술 협력’에 해당 프로그램이 포함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민감국가 리스트는 오는 15일 공식 발효된다. 정부는 발효 전 한국을 리스트서 빼기 위해 막판 협의를 벌이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방위비 분담금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중순께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으로 알려진 9쪽 분량의 문건을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국방부는 ‘인력과 자원의 제약을 고려해 여타 지역서의 위험을 감수할 것이고,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 동맹국이 러시아와 북한, 이란 등의 위협 억제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국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한국과 미국은 내년부터 5년간 낼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올린 1조5192억원으로 이미 정했다.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을 연동시키되 연간 인상률이 최대 5%를 넘기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때부터 한국이 지금보다 더 많은 방위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재협상 가능성이 남아있는 셈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언급하면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김 위원장에게 연락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미 1기 정부서 김 위원장과 직접 소통한 경험이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재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동맹도 내친 미국 대통령 이 과정서 ‘한국 패싱’ 가능성 또한 나오고 있다. 100일 넘게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리더십 부재 상태가 계속된 부분이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북한과 미국의 대화에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그동안 북한 관련 대화는 주로 정상 외교를 통해 이뤄졌다. 내치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민생은 뒷전이 됐다. 여야는 탄핵소추안 표결로 갈등을 빚었고 이후에는 탄핵 심판을 두고 서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사이 각종 문제가 불거졌지만 기능이 마비된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참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29일 승객과 승무원 181명이 탑승한 제주항공 2216편이 무안공항서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폭발했다. 승무원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한 참사로 오는 7일로 100일째에 접어들었다. 사고 원인 규명, 피해자 보상 등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계엄, 탄핵 등의 여파로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진 모양새다. 일단 당국의 조사와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안타까운 점은 블랙박스에 사고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내용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현장서 수거된 항공기 블랙박스와 엔진, 주요 부품 등 사고 원인을 가늠할 수 있는 증거를 종합적으로 분석, 시험하는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의성서 시작돼 5개 시군으로 번진 대형 산불 피해도 만만찮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5개 시군의 피해 조사액은 8000억원에 이른다. 최종 피해액은 1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산불로 주택 3987채가 탔다. 3915채가 전소됐고 30채는 절반 정도, 42채는 부분적으로 불에 탔다. 여기에 농작물 3785㏊, 시설하우스 423동, 축사 217동, 농기계 6230대가 화재 피해를 입었다. 인명피해도 26명이나 났다.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는 경북 산불로 사망자를 낸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야산에 있는 조부모 묘소를 정리하던 중 일대에 불이 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F보다 더 어렵다 정부, 기업, 연예인 등 각계각층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지만, 다 타버린 숲 등을 산불 이전 상태로 복구하는 데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자영업자는 최악의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연말연초 대목을 놓친 데 이어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위축된 소비심리에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일 여신금융협회의 ‘2025년 2월 카드승인실적’에 따르면 지난 2월 숙박, 음식점업 카드 승인 실적은 11조21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4320억원 줄었다. 국내 자영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식업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심리의 악화는 취미 생활 위축으로도 드러났다. 지난 2월 예술, 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 카드 승인 실적은 96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 가까이 감소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으니까 여가와 외식 소비가 줄어들면서 관련 업종이 전반적으로 부진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빌린 돈은 갚을 수 없고 수입은 없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지난달 31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과 행정안전위 소속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양부남 의원에게 제출한 ‘개인사업자 대출 세부 업권별 연체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저축은행 연체율(1개월 이상)은 11.7%로 나타났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 3개월 사이 0.7%p 올랐다. 2015년 2분기 이후 9년6개월 만에 최고 기록이다. 빚을 여러 곳에서 낸 다중채무자가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다중채무자는 가계대출 기관 수와 개인사업자 대출 상품 수의 합이 3개 이상인 경우를 뜻한다. 지난해 4분기 말 자영업 대출자 가운데 다중채무자는 56.5%에 이른다. 대출액 기준으로 보면 70.4%에 달한다. 1인당 평균 4억3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공개한 ‘금융안정 상황(2025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취약 자영업자는 42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소득이 적고 신용도가 작은 자영업자가 43만명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이들이 전체 자영업자 차주서 차지하는 비중은 13.7%에 이른다. 소비심리 위축되고 자영업자는 망하고 2021년 말 28만1000명에서 2022년 말 33만8000명, 2023년 말 39만6000명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다 보니 아예 장사를 접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내놓은 ‘2025년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 10곳 중 4곳은 매출 부진 등의 사유로 창업 후 3년 이내에 문을 닫았다. 폐업 시점의 빚은 1억원을 웃돌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3년 미만 단기 폐업자의 비율은 39.9%를 차지했다. 폐업 사유는 수익성 악화 및 매출 부진이 86.7%로 나타났다. 그 원인으로는 내수 부진에 따른 고객 감소가 과반(52.2%)을 차지했다. 인건비 상승(49.4%), 물가 상승으로 인한 원재료비 부담(46%), 임대료 등 고정비용 상승(44.6%) 등이 뒤를 이었다. 폐업 과정서 드는 비용도 평균 2188만원에 달했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2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난 자리서 정치권의 대책을 요구했다. 송 회장은 “자영업자 수가 지난 1월 기준 두 달 만에 20만명이 줄고 수도권 상가도 공실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과 민생을 위한 추경이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은 나름 해소 수순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부결된 이후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경제적인 관점서만 봤다고 전제하면서 “탄핵이 경제엔 더 낫다”고 말한 바 있다. 비상계엄, 탄핵 정국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건이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정국을 뒤흔들었던 ‘명태균 게이트’가 다시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한 언론은 지난 3일 명태균씨와 홍준표 대구시장 간의 의혹을 보도했다. 윤 전 대통령 내외와 홍 시장 부부가 회동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를 명씨가 주도했다는 취지로 보도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3일 해당 내용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홍 시장 측근이 명태균을 통해 김건희 여사가 선호하는 동물 관련 기획을 전달했고 이를 계기로 부부 동반 회동이 성사됐다는 것”이라며 “명태균은 단순한 연결고리가 아니었다. 기획안을 준비해 김건희의 승인을 받고 회동을 성사시킨 핵심 인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공직자가 민간인과 손잡고 대통령 부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사적 회동을 주선한 것”이라며 “홍 시장의 권력 네트워크에 명태균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 시장은 지난 3월14일 명태균 사건에 연루된 것이 밝혀지면 정계 은퇴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묻혔던 사건 수면 위로? 시간상으로는 120일 남짓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한국에 남긴 상흔은 상당했다. 외부로는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내부에선 ‘IMF 때보다 힘들다’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본연의 자리서 일했어야 할 국민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탄핵 정국이 지나간 자리에 결국 국민의 상처만 남은 셈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