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참모’ 5공실세 허화평 근황 공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7.15 13: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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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1500억 자산 굴리는 ‘5공 설계사’

[일요시사=사회1팀]12·12 사태와 5·17 쿠데타로 들어선 ‘제5공화국’은 전두환 전 대통령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참모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전 전 대통령이 신임하던 허화평씨는 그 시대의 진정한 실력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요시사>가 추적해봤다.



“5공화국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최근 허화평씨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5공 청문회 이후 24년 만에 방송에 출연한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직도 내가 존경하는 리더”라고 말하며 5공화국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77세의 나이치고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방송에 출연한 허씨, 그는 현재 정치, 사회, 교육, 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미래한국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5공 브레인…
허화평은 어디에

연구와 더불어 미래한국재단은 <월간 지방자치>라는 26년된 행정자치 전문지를 발행한다. 허씨는 이 잡지의 발행인이다. 편집인은 따로 두었기 때문에 기사에 특별히 관여하는 일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허씨의 재단은 장학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매년 20여 명의 학생들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선발 대상자는 미리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우수한 학생들(가정형편 고려)을 추천받아 1년치 장학금을 지급한다. 지난해 <복지연합신문> 기사에 따르면 미래한국재단은 1465억원의 자산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일 허씨가 있는 미래한국재단을 직접 찾았다. 내외관은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다. 주변 곳곳에서는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경호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효자동이 청와대와 인접해 있는 까닭이다.

건물 1층에는 미래한국재단 직원 10여 명 정도가 상주하고 있다. 2층은 <월간 지방자치> 편집부 직원 등 2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3층에는 넓은 강의실이 있어 다양하게 활용된다고 한다. 꼭대기 층인 4층에는 허씨의 사무실이 있다. 재단 측에 허씨와의 만남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청와대 못지않게 으리으리하게 꾸며놨다고 한다. 대신 미래한국재단 관계자를 통해 허씨와 재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익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이사장 활동
홈피 악플로 폐쇄…자금 조성은 “노코멘트”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현역 군인으로 광주 현장에 있었다는 재단 관계자는 “미래한국재단은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주무관청에서 해마다 지도감독을 받는다”며 “때문에 다른 수익모델 사업을 실시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생각보다 운영이 쉽지 않다는 것. 그는 이어 “재단이 <월간 지방자치>를 꾸준히 발행하고 있지만 부수가 점점 줄어 이제는 월 5000부 정도밖에 찍지 못한다”고 말하며 “잡지 발행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또 그는 “과거에 미래한국재단은 판교에 1만5000평의 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판교지역 택지개발로 인해 옮기게 됐다”며 “현재 재단은 기금을 확충해야하는 상황이지만 여러모로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재단 홈페이지에 운영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과거 홈페이지가 있었지만 종북세력들의 무자비한 악플 때문에 폐쇄했다”고 설명했다. 재단 자금조성에 대한 질문에는 굳게 입을 닫았다.

이 관계자는 허씨의 가족사를 묻자 “잘 모른다”며 “슬하에 1남2녀가 있다는 것만 알고있다”고 말했다. 그는 “허화평 이사장님은 정보장교 출신이기 때문에 자기검열이 철저하다”며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허씨의 거주지는 서울시 종로구 신교동 소재 주택인 것으로 밝혀졌다. 허씨의 취미에 대해서는 ‘골프’라고 답했다. 누구와 함께 즐기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TV조선에서도 밝혔듯이, 5공 인사들과 종종 연락하며 지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효자동에 있는 설렁탕집을 자주 들른다고. 평소에는 재단 4층 사무실에서 독서하며 학술연구에 매진한다고 전해진다.

“5공화국 평가
  아직 이른 편”

허씨는 TV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5공 설계자’라는 수식어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저 5공에 자기 몫을 다해 참여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만약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아닌, 본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정치, 사회 개혁을 조금 더 과감하게 했을 것이냐는 질문에 허씨는 맞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과거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전히 정치에 관심이 많다.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정치는 창조의 원천, 정치를 떠나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5공화국이 우리 역사에 기여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를 마무리한 정권이다.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했다”며 “최소 60년이 지나야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 5공화국은 평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긍정적인 평가만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하며 5공화국 폄훼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5공에 의해 희생된 개개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5공을 대표해서는 사과할 마음이 없다. 국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사과하는 일은 맞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대통령 주치의로 10·26, 12·12 등 역사적 사건의 목격자였던 자유언론인협회 양영태 회장은 지난 1월 MBN ‘그때 그 사람’ 코너를 통해 그 시절 허씨에 대해 입을 열었다. 양 회장은 허씨에 대해 “허화평은 제5공화국 출범을 총괄 기획한 감독”이라며 “12·12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다음부터는 시대가 요구한 전체적인 로드맵을 짠 분”이라고 평가했다.


청와대 근처 주택 거주
골프 치는 등 건강한 편

양 회장은 5공 당시 허씨가 실세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일부 세간의 평가를 잘못된 평가라고 지적하며 “허화평 수석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지만, 실제로는 나는 새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면서 “그는 군인이자 사상가였으며, 또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5공 당시 대학출신으로 군사문화에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던 양 회장이었지만 허씨를 접하면서 허씨가 상당히 민주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5공이 출범하면서 두발자유화나 통금시간해제, 과외금지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도 전부 허화평 수석의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리던 시절

그는 특히 “허화평 당시 수석은 권력을 좌지우지하면서 무소불위로 남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라며 “예를 들어 허 수석은 ‘장영자 사건(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 때 이규광씨(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의 삼촌)를 구속시켰다. 그 뒤에 말들이 무성히 많았지만, 모든 것을 사회정의 구현에 맞게 처리한다는 원칙적 가치를 부여했던 분이었다. 허화평 수석은 개혁적 군인이자 사상가, 정치가로 돌이켜보면 가장 아까운 인재였다”고 강조했다.

허씨는 1937년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 포항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17기)를 졸업하고 61년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육군대학교도 수료했다. 15사단 수색중대 소대장과 1군단 작전처 교육장교를 거쳐 63년 1공수특전단 게릴라전 교관을 지냈다. 당시 중위였던 그는 소령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나게 된다. 이후 보병 제9사단 대대장, 제9사단 단본부 작전참모, 국군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이후 전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하나회’의 회원으로서 육군 대령으로 재직 중, 전두환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 되었고, 10·26 사태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 살해범 수사를 지원했다. 이후 신군부를 중심으로 한 12·12 사태에 가담했으며, 80년 5·17 비상계엄에도 참여했다. 그 뒤 육군준장으로 예편했다. 12·12 사태와 5·17 비상계엄 당시 허삼수, 허문도, 장세동 등과 함께 전 전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다.

육군준장으로 예편 후 전 전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대통령 비서실 보좌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해 5공화국의 전체적인 ‘로드맵’을 짰다. 청와대 본관에서 근무하며 권력의 2인자로 각광을 받았다. 허씨는 원리원칙과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로 정의사회구현 슬로건, 통금해제, 두발자유, 과외금지, 연좌제금지 등을 주도했었다.

82년 대통령비서실 정무1수석비서관 시절에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 친인척이 관련되었던 이철희, 장영자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원칙적인 처리를 주장했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의 미움을 받게 되어 사임했다. 그후 미국으로 떠나 민주주의와 한미관계 등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다가 1988년 귀국 후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에 취임했고, 현대사회연구소와 기타 단체들의 통합으로 미래한국재단이 출범하자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에 피선됐다.

허화평의 존재감
아직 살아있네…

6공화국 시절에는 92년 제14대 국회의원(경북 포항,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95년 김영삼 정부시절 5·18 특별법이 제정되자 ‘친북좌파의 음모’라며 반발하다 96년 내란모의참여죄, 반란모의참여죄로 구속됐다. 그러나 그는 옥중 출마하여 4월 제15대 국회의원(경북 포항북, 무소속)으로 재선됐다. 이후 97년 국회의원 재직 중 12·12 군사 반란과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 관련 재판에서 징역 8년 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우익 정치인 활동과 보수적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며, 전 전대통령, 장세동, 이학봉 등의 5공 인사 및 정관계 인사들과 수시로 만나는 등 꾸준한 활동을 해 왔다.

2000년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였으나 2위(득표율 31%)로 낙선하고, 2007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3위(득표율 16.1%)로 낙선했다.


“전두환은 아직도 존경하는 리더”

2005년 전 전 대통령의 팬클럽인 전사모의 유행에 대해 “카리스마의 반향”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05년 8월, 허화평, 정호용, 황영시, 박희도, 장기오, 고명승, 장세동, 이학봉, 정도영, 최웅, 신윤희, 이기룡 등 11명의 신군부 인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드라마 <제5공화국>은 ‘전두환 죽이기’ 시나리오의 일부라며 정치 보복의 도구가 되는 드라마라고 항의한 적도 있다.

허씨의 최근 저서로는 <가장 근원적인 것에 대하여>가 있다. 이 책은 현 시대의 제도와 정부, 자유주의 체제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현실과 이상, 공동체, 사회적 진리 등의 해답을 찾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허씨의 마키아벨리즘을 발견할 수 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태우 vs 전 며느리 소송전


“차명콘도 소유권 가져가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며느리였던 신정화(44)씨가 “콘도 소유권 가져가라”며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신씨가 강원도 평창군 용평에 위치한 콘도 소유권에 대해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돼 있는 지분을 실소유주인 노 전 대통령으로 이전하기 위해 서울서부지법에 부동산 등기 이전 소송을 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2005년 구입한 이 콘도의 시가는 30억원에 달하며 신씨와 재헌씨 공동 명의로 등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와 지난 5월 이혼했다. 신씨는 이혼 과정에서 이 콘도에 대한 재산 분할을 요구했지만 재헌씨는 “콘도 실소유주는 아버지라 재산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맞서왔다. 이에 신씨는 소장에서 “콘도의 실소유주는 노 전 대통령인데 여론의 비난을 의식해 차명으로 등기를 했던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콘도 실소유주라면 마땅히 등기 이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소송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만약 자신이 이 콘도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신씨가 콘도의 재산분할권을 정식으로 얻게 돼 이혼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재산이 늘어난다. 반면에 노 전 대통령이 신씨의 청구를 인정하면 콘도 소유권은 노 전 대통령에게 이전되지만 미납 추징금 231억원에 대한 환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결국 추징당할 가능성이 높다.

‘전두환 후계자’

허화평이었다면?

자유언론인협회 양영태 회장은 지난 1월 MBN ‘그때 그사람’에 출연해 5공 당시 많은 사람들이 후계자를 허화평 수석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허화평 수석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징이 항상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보살핌을 받아 커왔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어 그는 “전 전 대통령은 보안사령관도 노 전 대통령에게 맡기고 갔고, 그 당시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도 물려 줬다. 대통령 자리까지 물려준 격이었다”며 “결국 백담사까지 가게 된 아이러니를 보면서 요즘 드는 생각이 ‘그 때 전 대통령이 허화평 비서실장을 대통령으로 지명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텐데’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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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헌정사상 두 번째

헌재,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헌정사상 두 번째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심판 사건을 인용하면서 대한민국은 또다시 정치적 격변기를 맞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전 11시22분께 서울 종로구 대심판정서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는 탄핵소추안 가결 111일 만이자, 탄핵 심판 변론 종결 38일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이번 탄핵 심판은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것이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명시했다. 이날 차분한 목소리로 주문을 낭독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은 국회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 판단했어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게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청구인이 취임한지 2년 후 이뤄진 총선서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며 “결과가 피청구인 의도에 부합하지 않아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들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했으면 안 됐다”고 판단했다. 문 권한대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계엄을 선포해 국가긴급권을 남용하는 역사를 재현해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정치·경제 전반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초월해 사회 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상실하고 일반인 신분이 됐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도 퇴거해야 한다. 다만, 사저 경호 문제 등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즉시 관저를 비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헌재 파면 결정 이틀 뒤에 청와대 관저를 나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긴 바 있다. 이번 파면 결정으로 윤 전 대통령은 경호와 경비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도 대부분 박탈당했다. 대통령 등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통상 최대 15년(10년+5년 연장)까지 경호를 받을 수 있으나, 임기만료 전 퇴임한 경우에는 최대 10년(5년+5년 연장)으로 줄어든다. 전직 대통령 예우 모두 박탈 정치권 ‘장미 대선’ 현실화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쳤다면 받았을 대통령 연금 수령 자격도 상실됐다.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전직 대통령은 대통령 보수연액(월급여의 8.85배)의 95%를 12개월로 나눠 받는다. 올해 윤 전 대통령 연봉은 약 2억6258만원(세전)이고, 이 기준에 따른 매월 연금액은 약 1533만원(연 기준 1억8397만원)이다. 이 밖에 기념사업 지원과 개인 사무실 및 보좌진 지원도 중단됐으며, 사후 국립묘지 안장 대상서도 제외된다. 공직 취임의 기회도 제한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4조 2항은 ‘탄핵 결정에 의해 파면된 사람은 결정 선고가 있은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아니하면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 결정이 선고된 날로부터 5년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에게 남은 건 형사재판 절차 뿐이다. 형사재판은 탄핵 심판 결과와 별개로 그대로 진행되는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대통령은 오는 14일 첫 정식 공판을 받는다.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상실함에 따라 대한민국은 ‘장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헌법 제68조는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4일을 기준으로 하면 60일째 되는 날은 오는 6월3일이므로 이날까지 대선을 치러야 한다. 이에 따라 ‘오말육초’(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10일 탄핵 결정으로 파면됐고, 정확히 60일째인 5월9일에 조기 대선이 실시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선례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질 조기 대선도 60일째 되는 날인 6월3일에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대선 시점이 6월3일보다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60일째 되는 날에서 가장 가까운 수요일인 5월28일이 조기 대선일로 유력하다는 예상도 나왔다. 어느 날짜에 선거가 치러지든, 정치권에서는 당분간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탄핵 정국이 조기 대선 정국으로 급변했고, 이제 차기 권력을 향한 대권 경쟁이 본격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여야 잠룡들은 탄핵 정국 속에서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물밑 경쟁을 벌여왔다. 여권에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정권 재장출의 목표를 두고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덜어내며 독주 체제를 굳힌 바 있다. 이 외에도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도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힌다. 조기 대선으로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없이 당선 즉시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이날 “국가 안보와 외교에 공백이 없도록 굳건한 안보 태세를 유지하겠다”며 “주권자인 국민 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다음 정부가 차질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차기 대통령 선거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jungwon933@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