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 소방수 투입 “비자금 불길 잡는다”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7.09 17:36:21
  • 댓글 0개

‘CJ 구원투수’ 손경식

[일요시사=사회1팀]CJ그룹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면서 그룹 전체에 거센 폭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위기에 처한 CJ그룹을 구하기 위해 ‘구원투수’ 손경식 회장이 전면에 나섰다. 그가 이끄는 CJ는 과연 어떻게 될까.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검찰이 박근혜정부 들어 처음으로 대기업 오너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울중앙지법은 CJ그룹 비자금을 운용해 수백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조세포탈) 등으로 이 회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이에 이 회장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검찰이 지난 5월21일 CJ그룹의 비자금 의혹으로 본사 및 임직원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지 41일만이다. 

CJ그룹 지각변동

앞으로의 전망은

김우수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설명했다. 이 회장은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또 한 번 죄송하다”고 짧게 답하며 “다시 한 번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 측은 앞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그동안 검찰 수사에 협조했고,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다면서 불구속 수사를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범행이 오랜 기간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이 회장이 임직원들과 말을 맞출 우려가 있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 회장은 700억원가량의 세금 포탈과 1000억원 안팎의 회삿돈 횡령 혐의, 그리고 회사에 300억원 가량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이 임직원 명의를 빌려 서미갤러리를 통해 1000억원대 미술품 거래를 하면서 비자금을 세탁한 의혹과 차명재산으로 CJ 계열사 주식을 사고팔면서 주가를 조작한 의혹 등은 아직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검찰은 CJ그룹 임직원들이 2005년 이후 고가의 미술품 200∼300여 점을 자신들 명의로 사들인 사실을 확인하고 미술품의 구입 경위와 자금의 출처, 작품의 실소유주 등을 조사해 왔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는 이 회장이 그룹 임직원들의 이름을 빌려 미술품을 구입했고, 거래 과정에 동원한 자금은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검찰은 명의자 및 소유자 확인과 자금 흐름을 파악 중이다. 이 회장에게 명의를 빌려준 그룹 임직원은 수십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현 회장 구속…권한대행 협의체 구성
외삼촌 손 회장 ‘지휘봉’잡고 진두지휘

검찰은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원에 CJ그룹 관련 차명계좌들의 거래 내역에 대한 분석을 의뢰해 놓은 만큼 결과를 받아보고 수사를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구속된 이 회장을 조만간 불러 보강 조사를 강도 높게 진행한 뒤 이달 중순께 추가 확인된 혐의를 적용해 기소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CJ그룹 계열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특히 CJ E&M, CJ헬로비전 등 미디어 계열사들이 경영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CJ그룹의 주가향방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CJ 미디어 계열사 고위 관계자는 “창사이래 최대 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기존에 하던 업무가 크게 차질을 빚지는 않겠지만 투자, M&A 등 굵직한 의사결정은 당분간 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CJ특혜법으로 오인되고 있는 방송채널사업자(PP) 매출 상한을 49%까지 늘려주는 내용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도 추진 동력을 잃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방송통신위원회 시절부터 추진돼 왔지만 일부 언론과 국회의원들의 반발 때문에 전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큰 장애물이 나타난 셈이다.

주가 향방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CJ헬로비전의 경우 상장 직후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시점을 전후로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CJ E&M이나 CJ CGV, CJ오쇼핑 등도 최근 몇 개월간 등락을 거듭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승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엇보다 콘텐츠 경쟁력이 상당한 만큼,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체제에서는 꾸준한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이번 이 회장의 구속이 그룹 전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주가의 향방도 향후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CJ 관계자는 “앞으로 지주회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결정이 되지 않았다”며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자리잡은 만큼, 각 계열사 업무는 각 CEO들이 책임지고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에 투자가 예정됐거나 진행되는 것들이 이번 사안 때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향후 큰 이슈들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긴급 상황 돌파구
경영 공백 메꾼다

CJ그룹은 이 회장 구속 하루 뒤인 지난 2일 그룹 공동회장인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주축으로 한 CJ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손 회장, 이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이채욱 CJ대한통운 부회장, 이관훈 CJ그룹 대표이사, 김철하 CJ제일제당 사장 등 5명 위원으로 구성된 경영위원회는 앞으로 CJ그룹의 위기를 타계해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으로 보인다.

CJ그룹 관계자는 “그룹경영위원회가 이 회장 역할을 100% 대체할 수는 없지만, 큰 역할은 그룹경영위에서 하게 된다”며 “이 회장이 옥중 경영에 나설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CJ그룹은 손 회장이나 이 부회장이 이 회장의 자리를 맡는 방안, 명망 있는 전문 경영인을 스카우트하는 방안 등을 고려했지만 결국은 회의체를 선택했다. 경영위원회는 이 회장의 권한을 대행하는 협의체다. 이 회장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에는 경영위원회 5인이 협의하여 결정을 내리게 돼 있다. 오너십을 가진 손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입김이 클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경영인 3인도 의사결정권을 똑같이 행사하게 된다. 회장이 직접 나서야하는 해외출장의 경우 5인의 경영위원이 교대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위기탈출 넘버원

첩첩산중 해결사


경영위원회는 공식적으로 한달에 두 번, 첫째 주와 셋째 주 수요일에 소집된다. 그러나 경영상 중차대한 사안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소집이 가능하다. 다음 소집 예정일은 오는 17일이다. 이날 논의될 안건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지만 해외사업 등 현안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경영위원회를 두고 이 회장이 이미 구속을 직감하고 사전에 마련해놓았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CJ그룹 과계자도 “경영위원회 구성에는 오너 측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이 회장의 입김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 회장은 CJ 주식을 42% 갖고 있는 최대주주이자 오너로서 평소 그룹을 세밀하게 챙기는 경영인으로 알려져있다.

손 회장은 이 회장의 어머니인 손복남 CJ그룹 고문의 동생이다. 그는 경기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엘리트로, 손 고문이 삼성가로 시집가면서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77년부터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하며 삼성그룹에서 전문경영인으로 활약을 하다 93년 CJ가 삼성으로부터 분리되면서 CJ 대표이사 부회장직을 맡으면서 ‘CJ 사람’이 됐다. 이후 95년 CJ그룹 회장 직에 올라 2002년 이 회장이 공동회장을 맡을 때까지 이 회장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창사 이래 최대위기 “데미지 최소화”
해외사업 등 당장 풀어야할 과제 산적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젊은 시절 손 회장으로부터 회계를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손 회장은 이 회장의 경영스승이라는 이야기도 듣고 있다.


CJ그룹 내에서는 손 회장이 내부를 추스르면서 그룹 경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재계에서도 손 회장이 집안의 어른이자 능력 있는 경영인이라는 점에서 위기의 CJ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실제로 손 회장은 과거 대표이사 재직 중 초유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회사를 2배가 넘는 규모로 성장시킨 전력이 있다. CEO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손 회장 재임 기간 중 CJ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매출은 142.6% 늘었고 영업이익은 71.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CJ가 1993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돼 홀로서기를 하던 와중에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뛰어난 성적이다. CJ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1998년 매출이 전년보다 되려 21.1%나 늘었고, 영업이익은 전년과 비슷한 2천200억 가량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CJ그룹 관계자는 “손 회장은 합리적인 성격으로 대표이사 시절 당시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잘 극복해 임직원들의 신망이 두텁다”며 “또 누구보다도 회사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역할에 대해 기대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예측할 수 없는
비상경영체제

경영위원회는 당장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업계는 무엇보다도 ‘신뢰성 회복’이 시급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CJ그룹은 현재 오너의 횡령·배임 등 그간 혐의가 다 드러나면서 기업이미지가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다. 구겨진 이미지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경영위원회의 수장 손 회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여기에 당장 오너의 부재로 인해 차질을 빚게 될 각종 해외사업에 대한 피해의 최소화와 추후 이를 어떻게 정상화 시킬지에 대한 고민도 경영위원회가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실제 이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5월부터 CJ대한통운의 경우 미국과 유럽 지역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글로벌 물류업체 인수가 의사결정 지연으로 사실상 협상이 중단됐으며, CJ제일제당도 라이신 글로벌 1위 생산력 확보를 위해 진행하던 중국 업체와의 인수 협상이 중단된 상태다. 각 계열사나 동남아시아 등에 진출하려던 계획도 정지돼 있다.

지난 2일 이관훈 CJ 대표이사는 사내방송과 이메일을 통해 ‘흔들리지 말자’는 메시지를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이 대표는 “이재현 회장은 임직원들이 힘을 합쳐 우리 그룹을 발전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손경식 회장은?>


▲1939년 서울 출생

▲1957년 경기고 졸업

▲1961년 서울대 법학과 학사

▲1968년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영학석사(MBA)

▲1977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1987년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

▲1991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부회장

▲1994년 CJ(제일제당) 대표이사

▲1995년 CJ그룹(제일제당) 회장

▲2005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2005년 세제발전심의위원장

▲2006년 환경보전협회 회장

▲2011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