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73)

앞뒤 가리지 말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라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채무자 측근 간 보이지 않는 밀약 오고가다
담판 짓지 못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억대의 부도를 내고 잠적한 채무자를 몇 달간 잠복 끝에 간신히 붙잡아놓고, 제대로 대화조차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망가는 걸 두고 볼 수만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개의 보호본능과 같다고나 할까. 개와 마주칠 때는 가만히 있든지 아니면, 두려운 표시를 내지 말고 두 눈에 독기를 품은 채 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절대 시선을 개로부터 돌리지 말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피하면 별탈이 없지만 두려움 속에서 고개를 돌리든가 도망을 가면 개가 물려고 달려드는 건 당연하다. 그런 것처럼 나 역시 채무자가 도망을 가자 이것저것 앞뒤 가리지 않고 오직 붙잡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행동으로 따라가게 된 형국이었다.

적반하장 격

“자아,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우리 터놓고 얘기를 나눠봅시다.” 
나는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문제해결을 위해 논의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있던 나 사장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생각뿐인지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입을 떼었다.
“오늘은 이야기하기가 힘드니 약속을 하여 다시 만나서 얘기 하면 안 될까요?”
“다시 약속한다고 만날 수 있겠어요? 내가 나 사장님을 만나기 위해 비를 맞고 무더위에 살을 태우며, 밤낮으로 고생고생하며 몇 달 만에 어떻게 만났는데, 이렇게 아무런 해결방안도 나누지 못한 채 그냥 헤어집니까? 그러지 말고 우리 회사 부도금액에 대해 해결 방안을 서로 연구해 봅시다.”

나는 옆에 앉은 부인과 그 언니를 번갈아 쳐다보며 단호한 의지로 말했다.
그러자 그의 부인이 끼어들어 가로막으며 아직 분이 덜 풀렸는지 앙칼지게 말했다.
“오죽했으면 도망을 다니겠어요? 돈이 있어야 줄 것이 아닙니까? 대책이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이에요?”
“사모님!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해결하셔야죠? 돈 2억5000만원이 애들 장난입니까? 회사는 땅 팔아서 장사하는 겁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모님의 가족은 몇 분이신지? 우리 회사에 딸린 식구는 수천 명이나 됩니다. 모든 거래처에서 회삿돈을 떼먹고 도망간다면 회사식구 수천 명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입니까? 그러니 그런 말씀마시고 어떤 대책이라도 세워 주셔야죠!”


부인의 말을 받아 반박하듯 반론을 제기한 내 말에 부인은 할 말을 잊은 듯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부인과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채무자가 다시 나서며 말했다.
“현재로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열과 성의가 없는 거겠죠.”

나 사장과 부인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피해자인 채권자 입장을 고려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기 앞에 계시는 언니 분께 보증이라도 서 달라고 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내 말에 나 사장의 처형은 ‘아차 괜히 따라왔다’ 싶었는지 얼굴이 상기되며 입장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사장 부인도 뜻밖의 요구라고 생각했는지 말없이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과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먼저 침묵을 깨며 말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장님과 사모님의 입장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평생 동안 힘들게 모은 돈을 떼인 채권자들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돈을 떼인 채권자들의 입장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의 생활이 원만하겠습니까? 채권자들의 채무독촉을 피해 고의적으로 재산을 은닉해두고 몰래 사용하는 채무자들도 있다는 사실도 아셔야 합니다.”
“저희는 재산을 감춰둔 것이 없습니다.”
채무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 물론 나 사장님이야 그런 악덕 채무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장님 역시 조금 전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상환할 방법이 없다면 부동산 담보를 제공할 물건을 구하여 제공한다거나, 아니면 연대보증이라도 세워 채권자 처지를 살펴주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나는 연대보증을 세워줄 것을 제안하며 채무자 나 사장의 처형이 보증인이 되어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나 사장의 동서인 문 사장이 대리점을 인수했다는 사실과 나 사장이 문 사장 집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는 점은 아무래도 나 사장과 문 사장 간에는 보이지 않는 어떠한 밀약이 분명 오가고 있다고 보여 졌기 때문이다. 그렇기도 하지만 당장에는 달리 채무자로부터 얻어낼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문 사장의 부인을 보증인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오늘 여기서 담판을 짓지 못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나는 더 이상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비상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사장님! 저는 사장님께서 진정으로 회사 채무금에 대한 성의를 보이고, 보증인이라도 입보해주시길 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니 채권자인 회사 입장에서는 더 이상 지연할 수가 없어 부득이 112에 신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세 사람 표정이 달라졌다.
“아니 신고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항의하듯 말했다. 나는 부인의 반응을 내심 반가워했다. 히든카드를 사용하는데 무관심 무반응 한다면 히든카드는 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거야 서로 합의점을 찾자고 했을 때 얘기이고요. 사장님 측에서 전혀 응하지 않으니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신고하겠다는 내 말에 채무자와 그의 부인은 좌불안석이었다. 부인은 옆에 앉아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언니를 쳐다보며 구원을 청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언니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보증을 서 주더라도 회사의 부도 금액 전부에 대해서는 보증을 서줄 수가 없습니다.”
나와 채무자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재빨리 그 언니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이 받았다.

안정을 찾다

“아니 저 역시 채무금 전부에 대해 보증을 서라는 것이 아닙니다. 2억원이나 넘는 금액을 어떻게 보증을 서겠습니까? 일단 일부금에 대해서 보증을 서주셔도 괜찮습니다.”
그 말을 받아 이번에는 채무자의 부인이 나서며 조금 전보다 마음이 편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저씨, 언니가 보증을 선다면 얼마나 하면 되나요?”하고 자신의 언니에게 미안한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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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