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69)

어설픈 병법은 자신을 망칠 수 있다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채무자 처 동향파악이 추적의 성패 좌우
허탕 칠까 하는 부담감이 초조감으로

내가 통례적인 말을 던지면서 대문 쪽으로 나가자 아기를 업은 부인도 뒤따라 나왔다. 대문 밖을 막나오면서 나는 뭔가 생각난다는 듯이 돌아서서 부인에게 물었다.
“아참, 사모님? S전자 회사에서는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채무자의 부도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회사가 S전자 회사이기에 그들의 움직임에 대해 궁금했다.

경계심을 풀다

“왜 S회사뿐이겠어요.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지겨워죽겠어요. 언제나 끝날지….”
그녀가 혼잣말처럼 되뇌며 긴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런 부인을 향해 위로하듯 말했다.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인데 한번은 굿판을 벌이듯 겪고 넘어가야지요. 그럼 사모님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채무자의 사진을 몇 번이고 꺼내보면서 인상착의를 내 기억 속에 재차 각인시키고자 노력하며 생각했다.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채무자에 대한 행방은 알 수가 없었지만 일반적인 정보와 사진을 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정보의 보고인 채무자 부인의 경계심을 풀고 대화의 창을 연 것이다.
다음 날 나는 출근하여 나 사장의 대리점을 담당한 영업팀장인 진 과장과 면담을 했다.
“진 과장님, 나철근 사장에 대하여 잘 알고 있죠?”
“알긴 잘 알고 있었죠.”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짐작 가는 곳이 없습니까?”
“저희 영업팀에서도 찾으려고 수소문해보았지만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수소문을 어떤 식으로 해봤습니까?” 


“대리점과 관련 있는 거래처나 직원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두들 모른다고 입을 다물어버리니 달리 방법이 있어야지요. 관련 거래처 사람들도 찾고 있다고 하면서 도리어 저희에게 찾으면 꼭 연락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어요.”
영업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나 사장하고 가까운 친인척이나 친구들 중에서 우리 영업부직원과 터놓고 지내는 사람은 없어요?”
“글쎄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채무자인 나 사장의 동서 중에 문 사장이라는 사람이 있긴 한데, 그 자가 나 사장이 잠적하자 대리점 명의를 자기 앞으로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자 역시 나 사장의 행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딱 잡아떼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영업에서 나름대로 수소문해서 우리 팀에서 추적할 수 있는 근거라도 잡을 수 있도록 협조해 주세요.”

“한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영업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부서로 돌아갔다. 나는 채무자인 나 사장이 운영한 대리점을 동서인 문 사장이 맡아 한다는 점이 무언가 석연찮았다. 그래서 자료를 꺼내 채무자 부인의 호적등본을 살펴보니 영업담당자가 알려준 문 사장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문 사장은 채무자 부인의 하나밖에 없는 형부였다. 나는 바로 직원을 시켜 문 사장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아 오라고 하여 주소를 확인했다. 그 자는 나 사장과 같은 강동구 관내에 거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문 사장이 이번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확신으로 굳어져 갔다. 생각이 여기에 머물자 일단 문 사장 집을 대상으로 삼고 잠복을 해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음 날 오후. 나는 채무자 나 사장이 주로 동서인 문 사장 집에 거주하면서 간혹 야간 늦게 새벽을 이용하여 자신의 집에 잠시 들를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보았다.
그래서 주간에는 동서 집을 목표로 삼아 잠복을 하고, 간혹 야간이나 새벽을 이용하여 채무자의 자택에 잠복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채무자 처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추적의 승패가 좌우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계획한대로 실행에 옮겼다. 그렇다고 추적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이 다른 업무를 내팽개칠 수도 없는 터라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여 틈틈이 잠복하기로 마음먹었다.

자괴감에 빠지다

처음엔 나 혼자 탐문 하려고 하다가 아무래도 어려 울 것 같아 직원들과 번갈아 가며 잠복하기로 하였다. 직원들과 번갈아 가며 잠복에 들어간 지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가량을 낮에는 문 사장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새벽이나 야간에는 나 사장 집 앞에서 잠복 했으나 잠적한 나 사장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헛짚고 있는 게 아닐까?’ 마음속으로 허탕 치게 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초조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부서장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잡아서 해결하라 하고, 행불자는 지하에 꽁꽁 숨어버렸는지 아니면 밀항선을 타고 타국으로 도망을 간 건지, 날이 갈수록 초조감이 더해 갔다.

나는 3개월만 잠복하고 흔적을 발견치 못하면 잠복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힘든 잠복을 계속했다. 그나마 운이 좋은 것은 동서인 문 사장이 살고 있는 빌라는 단 2동 뿐으로서, 대로변에서 한 블록 안으로 들어가 있는 6m 도로 막다른 골목의 언덕 밑에 위치하고 있었다.
골목길 입구에 잠복하면 빌라에서 나오는 사람 모두를 파악할 수가 있는 점이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잠복할 때마다 동서 집으로 뛰어 들어가 집안을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사법권도 없는 입장에서 불법으로 밀고 들어가 채무자를 내놓으라고 닦달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어설픈 병법을 잘못 쓰다보면 자신을 망칠 수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타초경사’라고 풀을 건드려서 뱀이 놀라게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자칫하다간 뱀에게 물릴 수도 있었다.
만약 문 사장 집에 밀고 들어가 허탕을 칠 경우에는 잠복한다는 사실이 드러나, 나 사장이 이곳에 영영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복한 지 2개월째 되던 6월 하순 어느 날.
그날도 제법 태양이 뜨거운 입김을 불어대던 오후 3시경이었다. 문 사장 거주지인 빌라 입구 주차장 트럭 뒤에서 몸을 감추고, 잠복을 위해 마련한 접이식 간이의자에 앉아 간혹 잡지나 책을 읽으며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잘못 짚은 것은 아닐까?’하는 자괴감에 빠져 고민이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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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