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67)

곪은 것 치료치 않으면 살 되지 않는다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제품·대금 회수 방안 찾는 게 급선무
행불자 찾는데 전력소진은 어리석은 짓

“곪은 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당장에 해결 할 방책이 없다고 하여 도망 다닌다고 해서 해결점을 찾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문제만 더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내가 HD전자회사에서 법무팀장으로 근무 할 당시, 화창한 어느 해 봄날 오후 무렵이었다. 사무실에서 파일정리를 하고 있던 중 사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사장실로 들어가니 임원 몇 분과 함께 뭔가 심각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께서 나를 발견하곤 자리를 권하시면서 잔뜩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임 팀장! 요 근래에 부도난 강동구 소재 대리점 나철근 사장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현황 파악이 먼저

“예. 아직 영업부로부터 정식으로 사건을 이관 받지는 않았지만, 제가 듣기로는 우리 회사 외에 동종업계 등에 수십억원 상당의 부도를 내고 잠적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는 영업이사 옆 맨 끝자리에 앉으며, 참석한 임원들의 긴장된 표정을 곁눈질로 읽으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영업이사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임 팀장, 우리 회사가 당한 부도금액이 얼마인지 알고 있어요?”
“한 2억5000만원 정도라고 듣고 있습니다.”

“부도금액이 적은 금액이 아니지요. 회사의 어려운 사정으로 보아서는 금쪽같은 금액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놈은 부도직전에 물건을 왕창 빼가지고 청계천에 헐값으로 덤핑을 쳐서 돈을 챙겨 잠수한 아주 나쁜 놈이네.”
사장이 영업이사 대신 내 말을 잘라 강조하면서 고개를 돌려 영업이사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 말 속에는 영업부에서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물건을 내줘 당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게 분명했다. 영업이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긴장한 채 고개만 끄덕이며 그저 송구한 패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던 사장이 영업이사를 향해 말했다.

“그건 그렇고 하루빨리 잠수한 나 사장을 붙잡아 납품한 회사 제품이나 대금을 회수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게 급선무니까, 오늘부터라도 그 놈을 찾는데 전력을 투입 하세요.”
“알겠습니다. 즉시 사건을 이관시키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사장의 말을 받아 영업이사가 벌레 씹은 표정으로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업이사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잠시 후 영업담당 팀장이 사건 파일을 가지고 왔다. 나는 사건 이관서류에 확인사인을 한 후 파일속의 자료를 일일이 살펴보았다.


채무자의 이름은 나철근 사장이었고, 그는 강동구에서 전자대리점을 운영하다가 우리 회사에 약 2억5000만원 상당의 부도를 냈다. 같은 업종의 전자업계 부도금액을 합하면 25억원 상당의 부도를 내고 잠적한 것이다. 물론 자택을 담보로 잡아 근저당권설정을 해놓았지만, 선순위 채권자들이 있어 경매진행 시 후순위채권자인 회사로서는 배당받을 금액이 거의 없어 회수가 불가능했다.
팀원들과 잠적한 나 사장을 찾기 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전문성이 부족한 팀원들은 방안 제시 대신 내 얼굴만 쳐다보며 막막한 표정들을 지었다. 소위 정보나 수사권을 가진 형사들도 잡기 힘들다는 기소 중지 된 자를, 우리같이 아무런 수사권한도 없는 일반인들이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느냐는 투였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찾아내라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그냥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다. 나는 평소 수많은 채무자의 거주지를 탐문해본 경험을 살려 추적한다면,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허나 팀 인원이 부족한 우리들로서는 쌓인 다른 일도 많은데 성공여부를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팀원 모두를 투입하여 행불자를 찾는데 전력을 소진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필요시 다른 직원들과 공조하기로 하고, 일단 나 혼자 직접 채무자를 추적해보기로 마음먹고 탐문에 나섰다.

대화를 유도하다

먼저 행불자를 찾기 위해서는 일단 가족부터 만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가족의 소재지를 찾기 위해 관할 동사무소를 방문하여 주민등록등·초본과 구청에 들러 호적등·초본을 발급을 받았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규제가 없어, 아무나 주민등록등본이나 호적등·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었기에 그나마 추적하는데 다행이었다.
나 사장의 주민등록상에는 채무자와 그의 처와 3살짜리 자식이 같은 주소지인 강동구 소재 주택에 함께 등재되어 있었다. 그 주택은 선순위 채권자인 금융기관에서 경매를 신청한 상태였다. 나는 나 사장의 가족부터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소 거주지로 찾아갔다.

그의 집은 평범한 일반 주택이었다. 수십억 부도낸 대리점을 운영한 사장치고는 그다지 좋은 집이 아니었다. 철 대문 우측 상단에 설치되어있는 인터폰은 고장이 났는지, 임시로 만든 초인종이 인터폰위에 달려있었다. 내가 몇 차례인가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나 사장 처로 보이는 이십대 후반의 젊은 부인이 잠든 애기를 안고 집안에서 대문으로 걸어 나오며 물었다. 나는 문틈으로 그 부인이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HD전자회사 직원 임 팀장입니다만, 여기가 나 철근 사장님 댁이 맞습니까?”

내가 묻자 부인이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칫하며 대답했다. 
“예, 그런데요? 허나 지금 사장님은 집에 없어요.”
귀찮게 굴지 말고 돌아가라는 듯 약간의 짜증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고 작심하고 온 내가 그냥 물러날 리가 없었다.

“아, 예. 사모님이신가요?”
나는 일부러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물었다.
“어디서 오셨다고요?”
부인은 대답대신 궁금한 듯 되물었다. 자연히 대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대화를 하게 된 입장이었다. 내가 다시 신분을 밝히며 명함을 꺼내 대문 틈사이로 밀어 넣어주자 부인이 받았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