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제주 '카지노 전쟁' 전말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12.21 1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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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냄새 맡고…전국구 형님들 총집결

[일요시사=경제1팀] 제주도가 시끌시끌하다. 카지노 경영권을 두고 세력 간 충돌하는 등 하루하루가 긴장감의 연속이다. 지난 한 달 새 경찰에 연행된 사람만 100명이 넘는다. '명품 관광 특구' 제주를 어지럽히고 있는 카지노 전쟁.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난 3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영업권 분쟁 끝에 폭력사태를 빚은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 호텔신라 카지노의 불법 영업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경찰은 이 카지노 영업장 내에서 영업장부와 컴퓨터 보관 문서 등을 압수한데 이어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 중이다.

대규모 폭력사태
경찰력 대거 동원

해당 카지노 영업 분쟁은 레저와 방송수신기기를 생산하는 제이비어뮤즈먼트(옛 현대디지탈텍)이 자회사 AK벨루가를 설립해 호텔신라 제주 카지노인 벨루가를 운영할 수 있는 허가증을 지난달 13일 제주도로부터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에 앞서 AK벨루가는 지난 9월 예금보험공사에서 퇴출된 부산저축은행의 호텔신라 벨루가 카지노 부실채권을 이자를 포함해 모두 변제하고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카지노 영업권과 주식, 보증금, 부동산 등을 양수했다. 영업권 양수 후 AK벨루가는 지난달 5일 호텔신라와 사업장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AK벨루가가 영업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와 직원들은 카지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전 사업자가 점유권을 주장하면서 이들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전 사업자에 따르면 또 다른 전 사업자와 카지노 인수 계약을 둘러싸고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적 결론이 내려지기 전에는 정당한 점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전 사업자 A씨는 2010년 당시 카지노를 운영하던 B씨에게 146억원을 지급하고 주식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한 후 계약금 36억원만 지급하고 카지노 영업을 시작했다. 잔금 110억원을 지급하지 않아 서로 약속 불이행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도내 카지노 업장들 경영권 분쟁 잇달아
용역·조폭 동원 폭력다툼에 검경 초긴장

결국 전·현 사업자가 동원한 경비용역 직원과 경찰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지난달 16일에는 양측 경비용역 간 폭력사태가 발생해 16명이 폭력행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고 지난달 29일에는 경찰력과 충돌도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29일 오후 4시30분께 카지노 후문 출입구로 용역직원 24명이 진입했고 카지노 안에 있던 직원 55명이 밖으로 나오며 시비가 붙었다. 이들은 서로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두르는 등 10여 분 간 패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곧바로 강력계 형사와 서울기동대 소속 대원 등 약 100여 명을 현장에 투입해 진압에 나섰다. 무력을 행사한 용역 등 70여 명은 폭력 등의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양쪽이 주먹을 휘두르고 몸싸움을 벌여 즉각 개입해 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관련자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AK벨루가는 지난 6일부로 카지노 객장에 들어가 영업 준비를 하고 있으며 벨루가 카지노는 '마제스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내년 1월17일 개장을 목표로 인테리어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에는 제주시내 모 호텔 카지노에서 공동운영자 등 15명이 자신들도 카지노에 일정 부분 투자 지분이 있다며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1명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다.

"나도 지분 있다"
전현직 경영진 충돌

이 호텔 카지노는 공동경영을 예고한 홍모씨 등 2명이 기존 카지노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지분 50%를 보유한 기존 대표이사 정모씨와 마찰을 빚으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홍씨 측은 현 대표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주식보유자 3명과 접촉해 50%의 주식을 매입했으나 경영진이 주식 매입과정에서 하자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실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홍씨 등 15명은 오후 5시10분경 영업 중인 호텔 카지노 안으로 들어가 업무준비 중이던 정씨 측 직원들을 밖으로 몰아낸 후 문을 걸어 잠그고 1시간여 가량 영업을 방해했다.

이 카지노는 지난 10월28일에도 홍씨와 정씨가 서로 용역을 동원,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나섰다. 제주지검은 지난 10일 전·현 사업자 간 갈등을 빚는 제주시내 다른 호텔 카지노에 대해 압수수색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이 카지노는 현 경영진이 비리를 저질렀다며 전 경영진 쪽에서 검찰에 진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이어진 압수수색에서 경영상 문제가 불거진 혐의를 찾기 위한 관련 자료 등을 압수했다. 이 호텔 카지노는 전·현 사업자 간 갈등으로 수년간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겪고 있는 곳이다. 현 경영진이 소액주주연대 대표와 손을 잡고 호텔 경영권을 확보한 뒤 대표이사에 취임했지만 이번에는 현 대표이사와 소액주주연대 대표가 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규모 상당수 영세
사업 진출 쉽다

지난해 10월에는 조직폭력배 등 40여 명이 폭력 등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는 등 폭력사태도 발생한 바 있다. 당시 경찰은 서귀포 조폭인 속칭 '땅벌파' 조직원 오씨 등 21명과 용역 17명의 신원을 파악해 36명을 검거했고 호텔 로비에서 재산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현 경영진의 퇴거요청에 불응하고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구 경영진 이모씨 등 6명을 현장에서 검거했다.

11월 한 달 동안 경찰에 검거된 인원만 110명에 이르는 상황이다. 왜 유독 제주지역 카지노에서만 이런 촌극이 연출되는 걸까.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2 카지노 통계'(2012년 4월 기준)에 따르면 국내 운영 중인 내·외국인 카지노는 모두 17곳. 이 중 제주지역에서 운영 중인 카지노는 8곳이다. 내국인이 출입 가능한 강원랜드카지노를 제외하면 제주지역에만 업소 절반이 모여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제주지역에서 운영 중인 외국인 전용 카지노 8곳의 입장객와 매출액을 모두 합쳐도 서울 1곳보다 떨어진다. 제주지역 카지노 8곳의 총 입장객 및 매출액은 18만989명, 1014억9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서울에 있는 S카지노 입장객 84만7260명에 비해 66만6271명이나 적은 수치다. 비율로 보면 21%에 해당한다.

매출액의 경우 서울 P카지노는 2449억7500만원으로 제주지역 8곳을 합친 1014억9300만원에 비교해 1434억8200만원을 더 벌어 들였다.

여기저기서 물리적 충돌 발생
"한 달 새 110명 줄줄이 연행"

카지노 업계 관계자는 "제주지역 카지노가 영세해 새로운 사업자의 진출이 쉽고 무비자 중국인 관광객이 늘며 관광객이 증가 추세에 있기 때문에 경영권 분쟁이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통계만 봐도 업황이 좋지 않은데 제주지역에 운영 중인 카지노가 전국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난립한데다 두 곳을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영세해 수익이 불안정해지고 그에 따라 주인이 자주 바뀌게 된다는 설명이다. 카지노가 입점해 있는 호텔들은 임대만 하기 때문에 영업권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분쟁이 벌어져도 모른 체하고 있다.

이번에 분쟁이 일어난 세 곳의 카지노도 모두 독립 법인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고, 적자가 지속되고 있어 새로운 사업자가 비교적 싼 값에 영업권을 사서 진출할 수 있다. 신규 사업자들은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만 지급하고도 영업을 시작할 수 있지만 결국 경영난으로 나머지 금액을 완납하지 못하게 되어 분쟁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2008년부터 중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비자 정책과 제주도의 적극적인 외국인 부동산 투자 유치 정책도 이에 한 몫 한다. 지난 한 해 제주를 찾은 중국인 총 관광객은 약 50만명. 이 중 20%가 넘는 11만3000여 명이 제주지역 카지노를 방문했다. 2009년 5만6000여 명이 제주지역 카지노를 방문했던 것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증가추이가 아닐 수 없다.

제주지역 카지노를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증가했다. 2009년 제주지역 카지노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2만1500여 명. 이중 46%가 중국인이었지만 2011년에는 70%로 급증했다. 특히 올해에는 지난 10월29일부터 인천국제공항에서 환승을 통해 제주공항으로 오는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면서 카지노를 찾는 중국 관광객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지노 입점 호텔
"뭐가" 나몰라라

제주도와 관광업계 등에서는 제주도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카지노 영업권 분쟁이 제주관광의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관광업계 관계자는 "제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좋은 이미지만 심어줘야 하는 상황에서 폭력사태만 보여주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제주도에서는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대책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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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