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재벌가 ‘가족형 비리’ 막전막후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2.04 11: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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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검찰행…따로 법원행…같이 철창행

[일요시사=경제1팀] 국내에서 ‘감옥’ 한 번 가지 않고 기업을 경영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은 하나 같이 온갖 비리를 저질러 왔고, 이에 상응하는 전과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들이 휠체어를 타고 법원 앞에 나타나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최근엔 모자가 나란히 전과경력을 달거나 삼부자가 함께 기소되는 등 ‘가족형 범죄’가 늘고 있어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기업, 재벌 총수들의 비리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특히 부부·부자·형제 등이 함께 의기투합해 저지르는 ‘가족형 범죄’가 적지 않다. 이들은 시 예산과 맞먹는 규모의 탈세를 저지르는가 하면 회사 재산을 개인 돈처럼 함부로 빼돌리는 등의 혐의로 저마다 검찰과 법원에 출석도장을 찍고 있다.

나란히 서초동 출두
그 아버지에 그 자식

피죤 이윤재 회장과 이 회장의 장녀 이주연 부회장은 최근 나란히 검찰조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김한수 부장검사)는 회삿돈으로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이들을 불러 조사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이 회장 부녀는 하청업체 거래대금을 부풀려 지급했다가 차액을 돌려받는 등의 방법으로 수십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만든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 부녀가 돈을 빼돌리는 과정에 직접 개입했는지 등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피죤 소유주 일가와 경영진이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린 정황을 잡고, 지난 6월 서울 역삼동에 있는 피죤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고 임원진을 소환 조사했다.


국세청은 지난 1월부터 특별세무조사를 벌여 이 부회장이 2010년 세금감면 등 청탁목적으로 북인천세무서 직원들에게 200만원을 돌린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이은욱 전 사장을 청부 폭행한 혐의가 인정돼 지난해 10월 1심과 2심에서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수십억 비자금 피죤 부녀…세금탈루 동아 부자
LIG 삼부자 사기 혐의…태광 모자 거액 횡령극

부자가 함께 검찰에 고발된 사례도 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 차남은 최근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서울지방국세청은 6억6000만원의 세금을 체납한 최 전 회장을 체납처분 면탈 혐의로, 차남에게는 체납처분 면탈 방조 혐의를 적용해 수원지검 평택지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최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본인 소유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빅혼골프클럽의 회원권 환급금 25만달러(한화 약 2억7000만원)를 국세청 눈을 피해 차남에게 양도했고 차남은 부친의 체납사실을 알고도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차남이 보유한 25만달러에 대해 압류조치도 했다. 최 전 회장은 또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법인 공산학원의 공금 10억원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사기성 기업 어음을 발행한 구자원 LIG그룹 회장과 그의 두 아들 등 삼부자는 지난달 15일 이례적으로 동시 기소됐다. 검찰은 재산을 지키려고 금융시장에 폭탄을 투척한 셈이라고 기소 이유를 밝혔다.

LIG 건설은 지난 2009년부터 1894억원 상당의 기업어음과 257억원 상당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집중적으로 발행했고 투자자 1천여 명은 2150억 원 어치의 어음을 구입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재무상황에 이상이 없다던 회사가 갑자기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LIG건설의 기업어음은 휴지조각이 됐다. 손실은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들에게 전가됐다.

‘사기성 CP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은 구 회장 일가가 LIG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계열사의 경영권을 상실할 것을 우려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LIG건설은 금융기관에서 투자를 받으며 그룹 계열사의 주식을 담보로 맡긴 상태였다. 그러나 LIG건설을 파산시킨 직후 계열사 주식을 되찾았다. 앞서 일반 투자자에게 기업어음 등을 팔아 조달한 2000억여원을 재원으로 활용했다.

삼부자 사기극서
휠체어 모자까지

검찰은 또 구 회장 일가가 2009년부터 15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질러 LIG건설이 발행한 기업어음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조작한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구 회장 삼부자 모두를 기소하면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함께 구속된 모자도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어머니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는 지난 2월 1400억여원을 빼돌리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건강 악화를 이유로 이 전 회장과 이 전 상무는 각각 보석과 구속집행정지 허가를 받아 같은 병원에서 치료 중인 상태다.

지난달 27일 열린 2심에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이 전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이 전 상무는 의료용 침대에 누워 등장했다. 이날 검찰은 이 전 회장에게 징역 7년과 벌금 70억원을 구형했고 모친인 이 전 상무에게는 징역 5년과 벌금 70억원을 구형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월 검찰에 소환될 당시 태광그룹 모자의 ‘휠체어 출석’을 비판한 바 있다. 검찰은 당시 ‘재벌 오너와 휠체어’라는 자료를 배포하며 그 행태를 꼬집었다. 자료에는 “한국 재벌 총수들은 곤란할 때면 휠체어로 탈출한다”고 비판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가 담겨 있었다.

SK그룹 형제는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구형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 심리로 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 결심공판에서 계열사 자금 63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최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최 회장이 2008년 선물에 투자하기 위해 SK 계열사 자금 497억원을 빼돌렸고, 2005년부터 5년간 그룹 임원들에게 지급하는 상여금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139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에 대해서도 최 회장과 공모해 자금을 횡령하는 등 총 1943억원의 횡령·배임 혐의가 있다며 징역 5년 구형했다.

‘오너 형제·부부’   
횡령으로 의기투합

검찰에 따르면 최 회장 형제는 1998년과 2003년 각자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통해 선물옵션 투자에 나섰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최 회장 형제가 주요 SK그룹 계열사 18곳이 창업투자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2천800억원 중 450억원을 김씨에게 투자하는 방법으로 모두 497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은 또 2005∼2010년 계열사 임원들에게 매년 성과급을 과다 지급한 후 이를 SK홀딩스로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139억5천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개인경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최 회장이 검찰 구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08년 5월에도 1조5000억원의 SK글로벌 분식회계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후 78일 만에 사면된 바 있다. 검찰은 “최 회장은 동종의 전과가 있고 법원에서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지 않다”며 “반드시 실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과 동생 유순태 EM미디어 대표는 지난달 12일 특임검사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유진그룹 측은 서울고검 김모 검사에게 6억 원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다.


특임검사팀은 유 회장 형제를 상대로 김 검사와의 관계, 금품 전달 경위와 규모, 대가성 여부 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다단계 사기꾼 조희팔 측근 강모씨로부터 2억4000만원, 유순태 대표로부터 6억원을 받은 혐의로 김 검사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다.

지난달 16일엔 프라임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 핵심 피의자인 백종안 전 프라임서키트 대표가 검거됐다. 프라임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은 2008년,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의 동생 백종진씨 등이 그룹 계열사로부터 수 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검거된 백씨는 백종진씨의 둘째형으로 당시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100억 원의 약속어음을 발행해 자신이 운영하던 중소기업에 손해를 입힌 혐의로 체포영장이 청구됐으나, 3개월 뒤 수사를 피해 국외로 도피했다. 지난 10월 28일엔 ‘알파벳’ 오타로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그를 놓쳐 논란이 됐다.

SK·유진·프라임그룹 형제 나란히 수사·재판
총수일가 경영참여 늘면서 의기투합 범죄 늘어

프라임그룹의 검찰 조사발 악재는 형제 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엔 200억원대 불법대출 지시 혐의를 받고 있는 백종헌 프라임그룹회장과 백 회장의 부인 임명효 동아건설 회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백 회장 부부는 지난 2005년 1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담보가 부실하거나 아예 없는데도 200억원대 부실대출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백 회장은 상호저축은행법이 금지한 타 저축은행과의 수십억원대 교차대출에 나선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백 회장은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지원을 노리고 재무상태가 극도로 열악한 부동산업자 박모씨에 대한 35억원 규모 차명대출을 김선교 전 프라임저축은행장(구속기소)과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차명차주조차 금융권 부채가 98억 원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또 백 회장의 부인 임 회장은 2007∼2008년 프라임저축은행 회장으로 재직하며 본인의 미술품 구매대금 19억원 상당을 대출로 충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재벌 총수들의 ‘가족형 비리’에 대해 “우리나라 재벌의 독특한 구조”에 원인이 있다고 꼬집었다. 계열사 간 순환 출자나 피라미드형 지배 구조를 통하여 총수 일가가 극히 적은 지분으로 광범한 기업집단을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가족형 기업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단순히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과다한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 뿐 아니라 그동안 전략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많은 특혜를 입고 성장하였는데도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했고 부의 축적과 그 승계 과정에서 적지 않은 탈법과 편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재벌총수들의 범죄행각은 집행유예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로 일단락되는 것도 문제”라며 “사법처리 이후 아무 일 없는 듯 공식 활동을 이어가는 것도 그 덕분아니겠냐”고 비판했다.

실제로 그룹 내부에서는 총수의 ‘아픈 과거’를 ‘한때의 과오’정도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재벌가의 각종 비리가 불가피한 ‘시대의 희생양’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총수 일가 비리는
시대의 희생양?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한민국은 다시 출발점에 섰다. 유력 대선주자들은 앞 다퉈 ‘재벌개혁’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재벌 규제 가운데 눈여겨 볼 점은 단연 기업범죄 처벌 강화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모두 사면권 및 집행유예를 제한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 총수 일가가 경제 범죄로 처벌 받을 경우 장기간 경영 공백 현상은 물론 기업 이미지 타격 등을 불러올 수 있을지, 재계에 실제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휠체어 탄 재벌 총수들의 ‘쇼’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요?”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과연 그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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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