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52)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섭다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남의 손에 넘어간 돈 되찾기 어려워
속내 감추는 자는 위장술에 능하다

“그게 처음에는 5000만원에서 시작되었다네. 이자를 잘 주기에 믿고 다시 빌려주고 또 주고 그러다보니 4억이 된 거지. 그 왜 있잖나. 처음에 적은 돈을 빌려 높은 이자와 원금을 착실히 갚아나가면서 상대방의 신뢰를 얻은 다음, 더 많은 돈을 빌려서는 두꺼비가 파리 잡아먹듯 날렵하게 삼켜버리고 잽싸게 잠수 타버리는 그런 류의 인간들…. 다행히 그 선배가 돈을 빌려준 박 사장이란 사람은 사기꾼이 아닌 순수한 경우여서 천만 다행이었지.”

본드 혹은 안개

“그래서 어떻게 해결이 되었나?”
“허어, 이 친구야. 돈이라는 것은 자석이나 본드보다 더 강력한 접착 성질이 있고, 안개와 같이 사라져버리는 성질이 있다는 걸 모르나? 비록 내 돈일지라도 남의 손에 한번 건너가면 행방을 알 수 없고, 그 사람 몸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되돌아오지 않으려고 하는 게 돈 아니던가.”
“그건 그렇기도 하네만. 그래,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는가?”

“가진 것도 없는 자들에게서 거액을 받아내기가 어디 쉽겠나? 결국 내가 오 선배와 함께 장안동 박 사장 공업사를 찾아갔다네. 그 공업사는 사무실을 포함해서 100평 남짓 되는 그다지 작은 규모는 아니었어. 나는 선배로부터 박 사장과 전무라는 인물을 소개받았지. 박 사장은 깡마른 체구에 건실해 보였네. 고의적으로 사기를 칠 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였지. 오히려 박 사장보다 보증인 이 전무라는 자가 더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더군. 순진한 박 사장을 꼬드겨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스타일 같아 보였다네. 왜 잔머리 굴리며 전면에는 나서지 않고 등 뒤에서 조종하는 얍삽한 사람 말일세.”

“내 알만하네.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섭다는 말처럼 뒤에서 조종하는 자가 가장 상대하기 어렵지.”
친구는 언젠가 자신도 당한 적이 있다는 듯 공감하며 말했다.
“그리고 박 사장과 차를 마시다 대화를 하는 중에 알았지만, 우리와 같은 고향 출신으로 우리보다 몇 살 아래라고 하는 거야.”
“허, 그것 참 넓고도 좁은 것이 서울바닥이라고 하더니 고향후배를 그렇게 만났구먼.”
친구는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투로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날 나는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오 선배에게 말했지. 내가 보기에 박 사장은 사기 칠 위인이 아닌 것 같지만, 혹시 선배가 모르고 있는 다른 곳으로 돈을 빼돌려놓은 게 아니냐고. 그랬더니 선배 왈, 길음동 어딘가에 빌라를 짓는다고 땅을 샀다는 말을 들었다는 거야. 오 선배 추측으로는 정확히는 몰라도 자기 돈 일부가 거기에 들어간 것 같다고 하더라고. 대략 3, 4층 규모 빌라형 다가구 주택이라는데 말이지. 그때서야 뭔가 꼬인 실타래가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네. 그래서 선배에게 업무 지시하듯 말했지.”
“뭐라고 조언했나?”

“선배님의 돈 회수 여부는 그 신축 빌라에 있는 것 같다고 했지. 내 생각에는 이 전무라는 자가 이해타산이 밝을 것이니 그자에게 접근해서 보증 책임을 면해 줄 수도 있다는 언질을 주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 정보를 캐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얘기를 해줬다네. 그러자 선배는 낙동강 오리알 된 4억원을 혹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돌더구먼.”
“허어!”
얘기를 계속 듣던 친구가 아무래도 좀 편한 데서 더 들어야겠다며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나 역시 어수선하고 왁자지껄한 낙지식당보다는 조용한 카페에서 얘기를 마저 하고 싶어졌다.

“이런 얘기는 인생 공부도 되니 분위기 좋은 데서 더 들어야겠네. 입가심으로 맥주 한 잔 더 하세. 어떤가?”
친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야 상관없네만 지루하진 않은가?”
“천만에! 얘기 더 듣지 못하면 화장실 가서 볼 일 보다가 중간에 나오는 기분일걸? 하하.”
우리는 식당에서 나와 근처 호프집으로 갔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비교적 조용해서 한결 마음이 여유로웠다. 친구와 나는 생맥주를 한 잔씩 앞에 놓고 편하게 앉아 얘기를 마저 풀어갔다.
“그래, 그 오 선배란 사람이 정보를 가져왔는가?”

친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 그 부분까지 얘기를 했는가? 그래, 나와 선배가 공업사를 다녀온 며칠 후 오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지. 길음동 빌라공사 하는 현장 주변에 커피숍이 있는데 거기서 보증인들과 만나기로 했다는 거였네. 그래서 나와 오 선배가 약속 장소로 갔다네. 내 생각엔 이 전무라는 자가 나와 있을 거라고 예측했는데, 그이 대신 공동보증을 선 건축업자 추 사장이 나와 있더라고. 그 사람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서 알고는 있지만 대화를 해보기는 처음이었지. 그래도 외관상 예절이 바른 사람 같아서 일말의 안도는 했다네.”
“자네는 예절이 바르면 무조건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편이 아닌가?”

불길한 예감

친구는 내가 사람평가 하는 성향에 대해 잠깐 언급을 했다.
“뭐,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예절 바른 사람은 근본적으로 인성이 바르거나, 아니면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네.”
“둘 중에 후자는 사기꾼을 말하는가?”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위장술에 능한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본다네.”
내 말에 친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일리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시원한 맥주로 잠시 갈증을 달랜 후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날 오 선배와 나는 박 사장이 빌라를 짓고 있는 현장을 파악하기 위해 공사장을 찾았다. 근처에 차를 주차시키고 추 사장과 함께 이곳저곳 둘러보며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 빌라는 골조공사가 끝난 상태로, 지하 1층에 지상 3층으로 된 다가구주택이었다. 실내 인테리어 공사를 앞에 두고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엔 제법 그럴 듯했지만, 인부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고 주변이 어수선한 모습이 얼핏 폐가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함께 간 공사업자인 추 사장에게 이유를 물었다.


“공사 진행에 문제가 있습니까? 왜 인부들이 아무도 없습니까?”
“예, 밀어붙여서 공사를 마무리 하면 두세 달이면 끝나지만, 사실은 공사가 중단되어 있습니다.”
“아니 왜요?”
“공사대금이 부족해서 그렇지요.”
“그렇군요. 참, 공사 시행자는 박 사장이 맞습니까?”
짐짓 모른 체 하고 확인 차 그에게 물었다.
“예, 그러나 공사대금이 많이 밀려서 걱정입니다.”“추 사장님! 여기 토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요? 내가 미처 등기부등본을 보지 못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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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