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웅의 영사기] <남영동1985>와 9000원짜리 민주주의

  • 박대웅 bdu@ilyosisa.co.kr
  • 등록 2012.11.13 0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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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1985

[박대웅의 영사기] <남영동1985>와 9000원짜리 민주주의

[일요시사] 컴퓨터 모니터의 깜빡이는 커서가 마치 "어렵지?"라는 말은 건네는 것 같다. '정지영 감독의 두 번째 문제작' '불편한 진실' '돌직구' 등 언론에 표현된 영화 <남영동1985>를 상징하는 단어들은 시쳇말로 '너~무' 많다. 하지만 막상 평론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영화를 전달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다. 영화 자체만 놓고 보자니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간과하는 것 같고, 메시지를 전달하자니 영화의 무게감에 짓눌려 벌릴 것만 같다. 그러다 문득 어느 자리에서 "요즘 영화값 얼마니?"라는 친구의 질문이 생각났다. "9000원"이라고 답하자 비싸다며 투덜댔던 친구다.

9000원. 점심 한끼로 쓰기에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잘 챙겨 먹기에는 부족한 돈. 커피전문점에서 두 사람 분의 커피를 먹기에는 조금 모자라고 돌아서 생각하면 다소 아까운 돈. 아마 그런 돈이 9000원이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만약 9000원의 돈이 생긴다면 어디에 쓸지 용처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혹시 이런 고민이라면 영화관을 찾아 <남영동1985>를 보길 권한다. 영화 속에 '9000원짜리 민주주의'가 있다.

영화는 9000원처럼 다소 애매한 시절인 1985년을 배경으로 한다. 서슬퍼런 유신시대의 폭압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야만이 숨쉬던 시대. 그리고 그 중심에 선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 이 곳에 한 남자가 영문도 모른채 끌려온다. 흔들리는 조사실 형광등보다 더 불안한 시선의 한 남자 김종태(박원상 분). 그는 납치 강금 불법구금 폭행 등 온갖 위법 행위를 온몸으로 받아낸 끝에 현실을 인식한 듯 한 마디 내뱉는다. "여기가 남영동인가요?"

이어지는 106분. 영화는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 되어가는지와 인간이 얼마나 악랄할 수 있는지를 묘사한다. 또 가해자이며 동시해 피해자이고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모순의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를 관객 앞에 펼쳐 보인다. 그 방법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폭력과 물공사·전기공사로 불리던 물고문 전기고문은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기에 인간도살장의 하이라이트 '칠성판'(고문 도구)은 관객의 뇌리에 깊숙히 박혀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게 할 지 모른다.


영화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고문기술자는 '예수도 자백하게 할 수 있다'던 이근안이 모티브다. 정작 영화는 이들의 실명을 그대로 받아 쓰지 않았다. 정지영 감독의 말처럼 '김근태' '이근안'의 실명을 사용할 경우 영화가 이들의 이야기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김근태 개인의 고초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영화는 공기처럼 당연하듯 소비하고 누리는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실상은 거저 주워진 것이 아니며 압제에 항거한 누군가의 피 위에, 또 누군가의 목숨 위에 그리고 그들의 헌신을 공감한 우리 모두의 희생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7명의 남자 배우가 러닝타임 내내 만들어내는 고문과 폭력의 불협화음은 거북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먹먹함과 함께 따뜻하기까지 하다. 고문하고 인간성의 파괴를 그린 영화가 따뜻할 수 있다니 어찌보면 어패가 있다. 맞다. 만약 영화가 고문의 잔인함과 추악함만을 그렸다면 먹먹할 순 있어도 따뜻할 순 없다. 그러나 영화는 아픈 역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갈 방법을 제시한다. 그 백미가 바로 영화 마지막 부분에 김종태와 이두한(이경영 분)의 만남이며 이를 통해 전해 지는 '용서'의 의미다. 하지만 22일 간의 야만을 겪어보지 않은 우리가 쉽사리 용서를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렇게 관객에게 큰 숙제만을 남기고 막을 내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 어촌마을의 어부에서부터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까지의 인터뷰는 흡사 '국민(demo)'에 의한 '지배(kratos)'는 결코 영화가 주는 9000원짜리 민주주의의 감동에서 끝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한줄정리

9000원 그 이상의 민주주의

#별점

★★★★★

개봉일


11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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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