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구조견 입양으로 다시 찾은 행복

뜬장 개가 가족이 되기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와 동물구조단체 사단법인 위액트가 구조견 입양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10월 <일요시사> 지면에 구조견 홍보 캠페인을 처음 선보인 이후 현재 60회에 이르렀다. 구조견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 그들의 ‘식구’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조명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자기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시인 정현종의 작품 ‘방문객’의 한 구절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 굉장히 거대한 사건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1년2개월
협업 프로젝트

동물은 어떨까? 열악한 환경에 방치돼있던 동물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구원받고 동시에 인간의 기쁨이 된다. 동물은 인간에게, 인간은 동물에게 서로의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동물을 들인다는 건 사람을 들이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삶에 있어 실로 대단한 일이다. 특히 인간에게 상처 입은 동물을 끌어안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위액트는 <일요시사>에 게재하는 구조견 입양 캠페인 문구에 ‘상처를 갖고 있는 구조견을 가족으로 맞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의 힘을 믿습니다. 아이들에게 기적을 만들어주세요. 폭력 속에도 멍들지 않은 애정,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삶이 되어주세요’라고 적었다.

지난해 10월28일 <일요시사> 1503호에 실린 ‘스칼렛’을 시작으로 1564호 ‘바라’까지 60마리의 구조견이 지면에 실렸다. 위액트 측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80%가 국내외로 입양됐다. <일요시사>는 연말을 맞아 위액트 입양팀과 함께 구조견 입양 캠페인을 복기했다.


그리고 제2의 견생을 살고 있는 표고(구조 당시 이름은 빈츠)와 그 가족을 만났다.

지난해 3월 위액트는 한 건의 제보를 받았다. 강원도 동해에서 누군가가 유기견을 포획해 개 농장으로 유통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구조에 참여한 함형선 위액트 대표는 “구조를 자주 하다 보면 개와 주변 환경만 봐도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개들의 크기가 다양했고 목줄의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데려온 것으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개들의 상태가 외관상으로는 멀끔해 보였지만 심장사상충처럼 특정 개월 수 이상일 때만 감염되는 질병에 걸려 있었다. 빈츠는 그곳에서 구조했던 다섯 마리 중 한 마리였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빈츠의 모색이 과자 ‘빈츠’와 비슷해 활동가들이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동해시서 극적 구조
지난 9월 입양 파티서 만나

빈츠는 좁고 배설물로 가득한 뜬장, 상한 음식, 더러운 물 등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견생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당시 동행한 <일요시사> 영상팀이 포착한 영상에서도 빈츠는 구조자가 손을 내밀자 한껏 몸을 웅크리고 뒷걸음질 쳤다. 구조 당시 몸무게는 6㎏으로 털은 짧았고 바싹 마른 상태였다.

그로부터 9개월 뒤 빈츠를 다시 만났다. 집으로 들이닥친 취재진을 보고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곧 주인 정유희씨의 곁에서 안정을 찾았다. 빈츠는 새로운 이름인 ‘표고’로 불리고 있었다. 정씨와 그의 아들이 오랜 시간 고민해 지은 이름이었다.

그 사이 표고는 몸무게가 12㎏까지 불었고 털도 ‘퐁실퐁실’하게 자란 상태였다. 정씨가 떠준 옷을 입고 있는 표고의 표정에서 구조 당시의 공포와 불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9일 표고의 새로운 집이 된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정씨와 표고를 만났다. 정씨가 인터뷰하는 내내 표고는 자신의 방석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정씨는 “표고가 집에 온 이후로도 한동안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산책하거나 산에 가면서 아들과 나무나 풀, 식물 이름을 따서 지으면 어떨까 얘기했는데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잘 안 떠오르다가, 어느 날 아들이 ‘표고 어때?’라고 물었다.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그 이름으로 했다”고 말했다.

‘표고’라고 하면 대부분 표고버섯을 떠올리는데, 정씨는 그 뜻 외에도 ‘바다의 면이나 어떤 지점을 정해 수직으로 잰 일정한 지대의 높이’ 등의 의미도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름을 정한 이후 빨리 익숙해지도록 자주 불러줬다. 3~4일이 지나니 표고라는 이름에 반응하더라. 영특하다”고 웃었다.

3년 전 정씨가 15년 동안 키운 고양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이후 고양이를 입양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봤다. 구조자가 입양 신청서를 쓰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까다롭게 구는 등 힘든 일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씨는 개를 입양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입양 절차

그러다 친구가 임시보호(임보)하던 개를 며칠 맡아준 뒤 관심이 생겼다.

정씨는 “고양이를 기를 때는 특성상 집에서 거의 활동했는데 개는 아이와 공놀이도 하고 몸으로 노는 게 된다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포인핸드(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어플에서 개를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1년가량 정말 많은 유기견을 살펴봤지만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도 마음에 닿는 개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게 바로 표고(당시 빈츠)였다. SNS 알고리즘으로 위액트 사이트에 게재된 표고의 공고 이미지가 뜬 것이다.

정씨는 “8~9개월 동안 사진을 한 번 본 뒤에 다시 찾아서 본 경우가 없었는데 표고는 계속 생각났다. 나중에는 내가 보지 못한 사진이나 영상이 있을까 싶어서 열심히 찾아서 봤다. 실물을 보러 갈 때쯤엔 웹에 올라온 영상이나 사진은 전부 본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정씨와 그의 아들, 표고의 만남은 위액트에서 주최한 ‘입양파티’를 통해 이뤄졌다. 지난 9월에 진행된 입양 파티에서 정씨와 그의 아들은 표고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위액트 관계자는 당시 두 모자의 모습을 보고 “일반적으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은 강아지에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그분들은 오로지 표고였다. 그래서 우리끼리도 ‘빈츠는 저 집에 가면 되겠다. 저 집에 가면 평생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들이 입양 파티 장소에 들어가자마자 ‘어? 빈츠다!’ 하고 먼저 알아봤다. 표고는 그때도 소심하고 (사람이) 무서워서 익숙한 사람 다리 사이에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그때부터 표고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걸음걸이가 어떤지, 눈빛이 어떤지, 어디를 많이 보는지 유심히 봤다. 표고는 내내 수줍어했던 기억이 난다”고 웃었다.


가족·이웃
살가워져

정씨는 입양 파티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집에 와서도 여러 번 봤다. 이후 표고의 입양 신청서를 작성했다. 위액트의 입양 신청서는 ▲주거 환경 ▲가족 구성원 ▲반려 경험 ▲입양 동물 케어 등 질문만 수십 개에 이를 정도로 ‘악명(?)’ 높다.

입양 신청서가 통과된 이후에도 화상 인터뷰, 트라이얼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트라이얼은 입양을 원하는 강아지를 2주간 집에서 임시 보호하면서 위액트가 주는 미션을 수행하는 절차다. 웬만한 마음이 아니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입양 신청서 문항 하나하나를 아들과 논의해 적었다”는 정씨는 “보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인데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입양 신청서를 작성한 이후에 용기 같은 게 막 생겼다고 할까,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표고가 우리 가족이 될 수 있게, 위액트에서 표고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수 있게, 되게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긴 절차를 거쳐 표고는 정씨의 가족이 됐다. 입양 확정 이후 6개월 뒤에 소유권 이전이 이뤄지는 위액트 정책상 아직 정식 견주는 아니지만 정씨는 그때부터 ‘내 강아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표고는 정씨에게는 ‘둘째’, 정씨의 아들에게는 ‘여동생’으로 이들의 품에 안겼다.

정씨는 “표고가 온 이후로 내가 아들에 대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알게 됐다. 아들이 표고를 보면서 때때로 질투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들에게도 똑같이 스킨십을 해주고 표현해준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생겼던 아들과의 거리감을 인식하고 좁혀나가고 있다”며 “또 이웃하고의 대화도 많이 늘었다. 표고는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다른 개들한테 관심을 보이곤 하는데 그때마다 개 주인들과 날씨 얘기라도 하게 된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재택근무 중인 정씨는 표고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오전 8~9시에 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와 밥을 먹고 잠시 놀아준다. 이후 나는 일하고 표고는 잠을 잔다. 분리불안이 조금 있어서 낑낑대긴 하는데 그것도 나아지는 중이다. 오후 6시경에 아들과 같이 저녁 산책을 간다”고 설명했다.

마르고 볼품없던 모습 사라져
“누구나 할 수 있는 결정·행동”

일주일에 1번 정도는 산에 올라가는데 그때는 6시간가량 산책을 한다고 했다.

정씨는 “개에게 반복된 루틴을 만들어주는 게 좋다고 해서 아침, 저녁 산책길은 완전히 똑같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표고의 상태는 처음보다 엄청나게 좋아졌다.

그는 “처음에 표고는 다리를 약간 저는 식으로 걸었다. 신체적으로 다치거나 불편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눈치를 보느라 몸을 웅크리면서 생긴 버릇이다. 집에 온 뒤 산책을 하면서 그 부분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뿌듯해했다. 실외 배변을 하면서 배변 실수도 사라졌고 분리불안도 좋아지고 있다.

정씨는 “동물이 인간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는 시기엔 우는 걸로 의사 표현을 하지 않나. 그때 그게 뭘 뜻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개는 다르다. 뭘 더 먹고 싶고, 산책을 더 했으면 좋겠고 같이 좋고 싫음이 명확하다. 훈련만 되면 똥오줌도 가리고 루틴을 만들어주면 손 가는 부분도 줄어든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아주 조심스럽게 “저와 제 아들이 좋은 일을 했다거나 거창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하게 된 계기를 묻자 나온 답이었다. 그는 “표고를 만나기 전 포인핸드를 보면서 관심이 가는 개에 표시를 해뒀다. 그 사이트에 최근 들어가 봤는데 그 아이들이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입양된 개는 2~3마리에 불과했다. 생각보다 개 입양이 잘되지 않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개 입양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개를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위액트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하게 됐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개의 상처
회복으로

정씨는 “누구든지 자기 생활 루틴이 있지 않나.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 시간에 몇 퍼센트를 강아지에게 떼어줄 수 있는지, 여가나 문화생활 하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개에게 쓸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이 확실하게 들면 개와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양을 원하는 이들에게 당부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