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와 동물구조단체 사단법인 위액트가 구조견 입양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10월 <일요시사> 지면에 구조견 홍보 캠페인을 처음 선보인 이후 현재 60회에 이르렀다. 구조견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 그들의 ‘식구’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조명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자기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시인 정현종의 작품 ‘방문객’의 한 구절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 굉장히 거대한 사건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1년2개월
협업 프로젝트
동물은 어떨까? 열악한 환경에 방치돼있던 동물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구원받고 동시에 인간의 기쁨이 된다. 동물은 인간에게, 인간은 동물에게 서로의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동물을 들인다는 건 사람을 들이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삶에 있어 실로 대단한 일이다. 특히 인간에게 상처 입은 동물을 끌어안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위액트는 <일요시사>에 게재하는 구조견 입양 캠페인 문구에 ‘상처를 갖고 있는 구조견을 가족으로 맞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의 힘을 믿습니다. 아이들에게 기적을 만들어주세요. 폭력 속에도 멍들지 않은 애정,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삶이 되어주세요’라고 적었다.
지난해 10월28일 <일요시사> 1503호에 실린 ‘스칼렛’을 시작으로 1564호 ‘바라’까지 60마리의 구조견이 지면에 실렸다. 위액트 측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80%가 국내외로 입양됐다. <일요시사>는 연말을 맞아 위액트 입양팀과 함께 구조견 입양 캠페인을 복기했다.
그리고 제2의 견생을 살고 있는 표고(구조 당시 이름은 빈츠)와 그 가족을 만났다.
지난해 3월 위액트는 한 건의 제보를 받았다. 강원도 동해에서 누군가가 유기견을 포획해 개 농장으로 유통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구조에 참여한 함형선 위액트 대표는 “구조를 자주 하다 보면 개와 주변 환경만 봐도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개들의 크기가 다양했고 목줄의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데려온 것으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개들의 상태가 외관상으로는 멀끔해 보였지만 심장사상충처럼 특정 개월 수 이상일 때만 감염되는 질병에 걸려 있었다. 빈츠는 그곳에서 구조했던 다섯 마리 중 한 마리였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빈츠의 모색이 과자 ‘빈츠’와 비슷해 활동가들이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동해시서 극적 구조
지난 9월 입양 파티서 만나
빈츠는 좁고 배설물로 가득한 뜬장, 상한 음식, 더러운 물 등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견생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당시 동행한 <일요시사> 영상팀이 포착한 영상에서도 빈츠는 구조자가 손을 내밀자 한껏 몸을 웅크리고 뒷걸음질 쳤다. 구조 당시 몸무게는 6㎏으로 털은 짧았고 바싹 마른 상태였다.
그로부터 9개월 뒤 빈츠를 다시 만났다. 집으로 들이닥친 취재진을 보고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곧 주인 정유희씨의 곁에서 안정을 찾았다. 빈츠는 새로운 이름인 ‘표고’로 불리고 있었다. 정씨와 그의 아들이 오랜 시간 고민해 지은 이름이었다.
그 사이 표고는 몸무게가 12㎏까지 불었고 털도 ‘퐁실퐁실’하게 자란 상태였다. 정씨가 떠준 옷을 입고 있는 표고의 표정에서 구조 당시의 공포와 불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9일 표고의 새로운 집이 된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정씨와 표고를 만났다. 정씨가 인터뷰하는 내내 표고는 자신의 방석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정씨는 “표고가 집에 온 이후로도 한동안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산책하거나 산에 가면서 아들과 나무나 풀, 식물 이름을 따서 지으면 어떨까 얘기했는데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잘 안 떠오르다가, 어느 날 아들이 ‘표고 어때?’라고 물었다.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그 이름으로 했다”고 말했다.
‘표고’라고 하면 대부분 표고버섯을 떠올리는데, 정씨는 그 뜻 외에도 ‘바다의 면이나 어떤 지점을 정해 수직으로 잰 일정한 지대의 높이’ 등의 의미도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름을 정한 이후 빨리 익숙해지도록 자주 불러줬다. 3~4일이 지나니 표고라는 이름에 반응하더라. 영특하다”고 웃었다.
3년 전 정씨가 15년 동안 키운 고양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이후 고양이를 입양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봤다. 구조자가 입양 신청서를 쓰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까다롭게 구는 등 힘든 일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씨는 개를 입양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입양 절차
그러다 친구가 임시보호(임보)하던 개를 며칠 맡아준 뒤 관심이 생겼다.
정씨는 “고양이를 기를 때는 특성상 집에서 거의 활동했는데 개는 아이와 공놀이도 하고 몸으로 노는 게 된다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포인핸드(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어플에서 개를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1년가량 정말 많은 유기견을 살펴봤지만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도 마음에 닿는 개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게 바로 표고(당시 빈츠)였다. SNS 알고리즘으로 위액트 사이트에 게재된 표고의 공고 이미지가 뜬 것이다.
정씨는 “8~9개월 동안 사진을 한 번 본 뒤에 다시 찾아서 본 경우가 없었는데 표고는 계속 생각났다. 나중에는 내가 보지 못한 사진이나 영상이 있을까 싶어서 열심히 찾아서 봤다. 실물을 보러 갈 때쯤엔 웹에 올라온 영상이나 사진은 전부 본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정씨와 그의 아들, 표고의 만남은 위액트에서 주최한 ‘입양파티’를 통해 이뤄졌다. 지난 9월에 진행된 입양 파티에서 정씨와 그의 아들은 표고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위액트 관계자는 당시 두 모자의 모습을 보고 “일반적으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은 강아지에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그분들은 오로지 표고였다. 그래서 우리끼리도 ‘빈츠는 저 집에 가면 되겠다. 저 집에 가면 평생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들이 입양 파티 장소에 들어가자마자 ‘어? 빈츠다!’ 하고 먼저 알아봤다. 표고는 그때도 소심하고 (사람이) 무서워서 익숙한 사람 다리 사이에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그때부터 표고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걸음걸이가 어떤지, 눈빛이 어떤지, 어디를 많이 보는지 유심히 봤다. 표고는 내내 수줍어했던 기억이 난다”고 웃었다.
가족·이웃
살가워져
정씨는 입양 파티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집에 와서도 여러 번 봤다. 이후 표고의 입양 신청서를 작성했다. 위액트의 입양 신청서는 ▲주거 환경 ▲가족 구성원 ▲반려 경험 ▲입양 동물 케어 등 질문만 수십 개에 이를 정도로 ‘악명(?)’ 높다.
입양 신청서가 통과된 이후에도 화상 인터뷰, 트라이얼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트라이얼은 입양을 원하는 강아지를 2주간 집에서 임시 보호하면서 위액트가 주는 미션을 수행하는 절차다. 웬만한 마음이 아니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입양 신청서 문항 하나하나를 아들과 논의해 적었다”는 정씨는 “보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인데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입양 신청서를 작성한 이후에 용기 같은 게 막 생겼다고 할까,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표고가 우리 가족이 될 수 있게, 위액트에서 표고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수 있게, 되게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긴 절차를 거쳐 표고는 정씨의 가족이 됐다. 입양 확정 이후 6개월 뒤에 소유권 이전이 이뤄지는 위액트 정책상 아직 정식 견주는 아니지만 정씨는 그때부터 ‘내 강아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표고는 정씨에게는 ‘둘째’, 정씨의 아들에게는 ‘여동생’으로 이들의 품에 안겼다.
정씨는 “표고가 온 이후로 내가 아들에 대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알게 됐다. 아들이 표고를 보면서 때때로 질투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들에게도 똑같이 스킨십을 해주고 표현해준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생겼던 아들과의 거리감을 인식하고 좁혀나가고 있다”며 “또 이웃하고의 대화도 많이 늘었다. 표고는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다른 개들한테 관심을 보이곤 하는데 그때마다 개 주인들과 날씨 얘기라도 하게 된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재택근무 중인 정씨는 표고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오전 8~9시에 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와 밥을 먹고 잠시 놀아준다. 이후 나는 일하고 표고는 잠을 잔다. 분리불안이 조금 있어서 낑낑대긴 하는데 그것도 나아지는 중이다. 오후 6시경에 아들과 같이 저녁 산책을 간다”고 설명했다.
마르고 볼품없던 모습 사라져
“누구나 할 수 있는 결정·행동”
일주일에 1번 정도는 산에 올라가는데 그때는 6시간가량 산책을 한다고 했다.
정씨는 “개에게 반복된 루틴을 만들어주는 게 좋다고 해서 아침, 저녁 산책길은 완전히 똑같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표고의 상태는 처음보다 엄청나게 좋아졌다.
그는 “처음에 표고는 다리를 약간 저는 식으로 걸었다. 신체적으로 다치거나 불편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눈치를 보느라 몸을 웅크리면서 생긴 버릇이다. 집에 온 뒤 산책을 하면서 그 부분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뿌듯해했다. 실외 배변을 하면서 배변 실수도 사라졌고 분리불안도 좋아지고 있다.
정씨는 “동물이 인간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는 시기엔 우는 걸로 의사 표현을 하지 않나. 그때 그게 뭘 뜻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개는 다르다. 뭘 더 먹고 싶고, 산책을 더 했으면 좋겠고 같이 좋고 싫음이 명확하다. 훈련만 되면 똥오줌도 가리고 루틴을 만들어주면 손 가는 부분도 줄어든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아주 조심스럽게 “저와 제 아들이 좋은 일을 했다거나 거창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하게 된 계기를 묻자 나온 답이었다. 그는 “표고를 만나기 전 포인핸드를 보면서 관심이 가는 개에 표시를 해뒀다. 그 사이트에 최근 들어가 봤는데 그 아이들이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입양된 개는 2~3마리에 불과했다. 생각보다 개 입양이 잘되지 않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개 입양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개를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위액트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하게 됐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개의 상처
회복으로
정씨는 “누구든지 자기 생활 루틴이 있지 않나.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 시간에 몇 퍼센트를 강아지에게 떼어줄 수 있는지, 여가나 문화생활 하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개에게 쓸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이 확실하게 들면 개와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양을 원하는 이들에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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