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비자’ 해외 사례 보니⋯

경제냐 안보냐 딜레마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중국 단체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며 활기를 되찾은 곳도 있지만 곳곳에서 나오는 불안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중국인 범죄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가 기우일까? 앞서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시행했던 나라들을 살펴봤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 논의는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위축된 관광산업을 회복시키기 위해 본격화됐다. 정부는 중국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3인 이상 단체·15일 체류·여행사 명단 제출’이라는 조건부 무비자 입국을 지난 9월 말부터 허용하기로 했다.

명암

이는 코로나19 이전 한국 관광의 핵심 시장이었던 중국 관광객 수를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2019년 600만명에 달하던 중국인 방한객 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감해 2024년 기준 250만명 수준에 그쳤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관광객 유입을 확대하고, 명동·동대문·제주 등 주요 상권의 회복을 도모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관광진흥법상 무비자 제도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예외 규정으로, 한국은 그동안 일본·대만·홍콩 등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시행해 왔다.

앞서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시행한 일부 나라들은 관광 수익 확대 효과를 거뒀다. 대표적으로 말레이시아는 2023년 12월 중국인과 인도인을 대상으로 30일간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면서 관광객이 급증했다. 시행 후, 말레이시아 관광부는 “중국 관광객 수가 40% 가까이 늘어났다”고 발표하며 환영 분위기를 보였다.


관광객 수가 급증하고 숙박·유통업이 되살아나며 경기 부양 효과를 톡톡히 봤다.

싱가포르도 지난해 2월부터 중국과 상호 무비자 협정을 체결해 30일 체류를 허용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8배 이상 급증하며 싱가포르 관광 시장 매출액에서 중국인이 가장 높은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다.

중국인 범죄에 대한 우려와는 달리 싱가포르 내무부는 “무비자 시행 이후 중국인 방문객의 체포율은 오히려 줄었다”고 밝히며, 제도가 치안 악화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들 국가는 관광업 회복과 소비 확대, 양국 교류 증진 등의 긍정적 효과를 단기간에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부작용으로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중단한 나라도 있다. 에콰도르는 2023년 8월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지만, 불법체류자가 급증하면서 1년 만에 정책을 철회했다.

중국인 관광객 범죄 속출
반감·혐오 분위기 확산

에콰도르 외무부 발표에 따르면 당시 입국한 중국인 약 6만6000명 중 절반 이상이 출국하지 않았으며, 관광이 아닌 불법 이주 경로로 악용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지난해 7월, 에콰도르는 중국과의 무비자 협정을 폐기했다.

태국 역시 2023년 중국인 대상 무비자 제도를 확대했지만, 범죄조직 활동과 사기 사건이 잇따르며 정책 수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태국 상원에서는 “무비자 제도로 인해 일부 중국 범죄조직이 국내에 유입되는 경향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무비자 입국은 관광 수익 확대라는 단기적 성과를 안겨줄 수 있지만, 관리체계가 미비하면 불법 체류나 범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한국도 과거 무비자 제도를 시행하며 유사한 문제를 겪은 바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도의 ‘무사증 입국’ 제도가 있다. 2002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외국인이 비자 없이 제주도에 입국해 최대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시행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불법체류 문제가 심각해졌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제주도 무사증 입국자의 불법체류율은 2015년 이후 꾸준히 상승했고, 특히 중국인 체류자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에 제주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지난해부터 단체 관광객의 여행사 명단 검증을 강화하고, 체류 기간 초과자에 대한 단속을 확대하는 등 관리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무비자 입국으로 제주도 관광객은 늘었지만, 불법체류·불법 취업·범죄 등 부작용을 감당해야 했다.

국내 무비자 제도 시행 이후 중국인 관광객 증가와 함께 불안과 반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울 명동·홍대 등 주요 상권에서는 ‘중국인 무비자 반대’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인 무비자 중단하라’는 현수막과 ‘유괴·납치·장기 적출’ 등의 자극적 문구를 내걸고 시위하기도 했다.

명동 일대 중국인 혐오 시위 건수는 2023년 4건에서 올해 56건으로 14배 증가했다. 일부 상점은 아예 “중국인 손님 받지 않는다”는 문구를 내걸기도 했다. 중국 혐오 분위기 속에서 대만 관광객들은 ‘나는 중국인이 아닙니다(I’m from Taiwan)’ 배지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매출 증가
태국·에콰도르 불법체류 늘어

최근 들어 높아진 중국인 입국에 대한 불안세는 중국인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 달 새, 중국인 관광객이 연루된 범죄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흑차(黑車)’로 불리는 중국식 불법 택시가 등장했다. 이들은 SNS 브로커를 통해 중국인 승객을 모집하고, 공항에서 서울까지 정상 요금의 3~4배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무단이탈 사례도 늘고 있다. 크루즈선을 타고 인천항에 입국한 중국인 6명 중 현재까지 5명이 검거됐고 1명은 여전히 도주 중이다. 이들은 관광 중 단체에서 이탈해 전국을 전전하다 평창·순천·음성·경주 등지에서 붙잡혔다.

제주에서는 중국인들이 절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달 15일, 무비자 입국한 중국인 3명이 14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쳐 공항으로 도주하다 체포됐다. 마약 범죄도 심각하다.

제주에서는 무사증으로 입국한 중국인이 차(茶) 봉지에 필로폰 1.2kg(시가 8억4000만원)을 숨겨 들여오다가 적발됐다. 이는 4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적발된 중국계 범죄조직도 불안 기세에 한몫했다.

실제로 경찰청이 발표한 외국인 범죄 통계에 따르면 중국 국적자의 범죄 건수는 매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짝퉁 상품 유통, 보이스피싱, 보안 관련 해킹 범죄 등 형태가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경계 대상으로 지적된다.


불안 여론은 단순히 혐오나 감정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는 ‘중국발’ 범죄 이슈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지난해 인천공항에서는 중국인 여행객이 대량의 필로폰을 들여오다가 적발됐고, 서울에서는 중국인들이 운영하던 짝퉁 명품 유통 조직이 검거됐다. 또 제주도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위장한 마약 운반책이 잇따라 체포되기도 했다.

물론 부정적인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높아지는 불안도와 같이 관광 효과는 점점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명동과 동대문 일대는 무비자 입국 시행 이후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면서 상권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한류 콘텐츠, K-뷰티, 편의점 체험형 매장이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한 편의점은 냉장 떡볶이 매출이 430%, 관광상품이 370% 증가했다. 드러그스토어에서는 등 K-뷰티 브랜드를 대량 구매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몰렸다.

수도권만?

하지만 효과는 지역별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지방은 사정이 다르다. 부산, 전주, 강원 등 지방 관광도시에서는 “단체관광이다 보니 수도권 중심으로 몰리고 있다”며 무비자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방 중소도시는 단체관광이 아닌 자유여행 중심의 중국인 유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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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