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한때 조용히 묻혔던 ‘대통령 재판중지법’이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31일, 대장동 개발업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오자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 반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은 무관하다. 법원이 사실상 확인했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고 맞섰다. 잠깐 멈춰 있던 법의 시계가 다시 정치의 시계를 흔들어 깨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쟁점은 단순하지 않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 형사상 소추되지 않는다”고 규정하지만 그 ‘소추’가 기소 이전만 막는 것인지, 이미 개시된 재판까지 멈춰야 하는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이 틈을 정치가 파고들었다. 지난 6월 서울고등법원은 “대통령 불소추특권의 해석상 재판을 진행할 근거가 불명확하다”며 이재명 대통령 관련 형사재판을 잠정 정지했다. 그 순간부터 법정은 멈추고, 정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려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대통령 재판중지법)은 이 공백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대통령 당선인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임기 종료 시까지 공판절차를 정지한다”는 단 한 문장을 306조에 추가하는 방식이다.
김용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이미 법사위를 통과했고, 본회의 처리만 남았다. 민주당은 “헌법이 이미 재판을 막아놨는데, 그것을 명문화하는 것일 뿐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한 사람을 위한 방탄법이며, 법 위의 정치”라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 대장동 1심 판결이 기름을 부었다. 유동규·김만배 등 민간업자들은 실형을 받았지만, 재판부는 “성남시장이 민간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고 볼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지난 2일 “이제부터 민주당은 재판중지법을 국정안정법, 국정보호법, 헌법84조 수호법으로 호칭할 것”이라며, “이달 말 정기국회 내에 처리될 가능성이 모두 열려있다”고 말했다. 이달 중 대통령 재판중지법 처리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같은 날 "헌법에 따라 당연히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중단된다고 본다면 법을 따로 만드는 것 자체가 상충되는 것“이라며 "권력 간에 우열이 있고,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보다 상위에 있다는 반헌법적 발상 하에 재판을 중지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필자는 결국 이 싸움은 시간과 진실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문제로 수렴된다고 본다. 즉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정치적 시간을 벌어 국정을 안정시키는 것이고, 국민의힘은 진실 확인을 먼저 하면서 기득권을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여론 또한 팽팽하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49.7%, “그럴 필요 없다”는 의견은 46.8%였다. 3% 차이. 그러나 정치권은 이 작은 균열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헌법학계에서도 의견은 갈린다. 소수는 “불소추특권은 재판 전체를 멈추게 할 힘을 갖는다”고 보지만, 다수는 “기소 이전 소추 행위만 막을 뿐 재판 중단 권한까지 부여한 것은 아니다”라고 보고 있다. 즉, “정치가 헌법의 빈칸에 자기 논리를 집어넣고 있다”는 시각이다.
일각에선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일정 기간 사법 리스크를 멈춰 세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현실론도 있다. 그러나 국정의 안정적인 운영을 이유로 정치가 법을 고친다면, 그 법이 작동하는 순간 정치 역시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되는 게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그런데 정청래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사법부가 복병이 될 수 있다면 입법으로 막겠다”고 공언하며, 법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은 “헌법이 이미 재판을 중지시켰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국민의힘 송 원내대표 말처럼 굳이 형사소송법을 다시 손볼 이유가 없는 데도 강행하고 있다.
물론 국민의힘이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민주당의 입장은 이해한다. 그러나 여당이고 다수당인 민주당이 법을 고친다는 점에 대해 우리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간과해선 안 된다.
형사소송법 개정안 얘기가 나온 지난 6월 이후 국민의힘은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방탄법이라 부르며 강하게 반발해 왔고, 개혁신당 천하람 대표도 “한 사람을 위한 법, 위인설법의 끝판왕”이라 비판해 왔다. 정치적 진영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법이 특정인을 위한 방패가 되는 순간, 법치의 신뢰는 무너진다는 게 야당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아이러니하게도 단기적으론 이재명 대통령에게 안정을 주지만, 장기적으론 정권 전체에 정당성의 리스크를 남긴다는 점이다. 민주당도 “법적 안정은 얻되, 정치적 신뢰는 잃게 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통령을 위한 법도, 대통령을 겨냥한 법도 아니다. 헌법의 빈칸을 정파의 이익으로 채우지 않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에 남아 있는 마지막 금도다.
이 대통령과 여당이 원하는 건 대통령 임기가 보장되는 시간이다. 그러나 현 정권을 흔들려는 야당뿐만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건 진실이다. 시간은 권력을 돕지만, 진실은 역사를 돕는다. 두 길은 늘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법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순간, 그 자체로 권력의 심판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법은 멈췄지만, 정치는 달리고 있다. 그런 우리나라에서 진짜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우리 국민은 이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하야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리고 이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대통령 재판중지법도 원치 않는다.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지혜롭게 잘 해결해야 한다. 특히 이 쟁점이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싸움으로 번져서는 더더욱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