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수사권 조정이라는 민감한 논의가 정치권은 물론이고 형사사법 제도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여당(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조정의 주요 내용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 폐지하는 것이다. 또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해 재판에 회부하는 공소청을 신설해 이를 이관하고, 경찰에 수사 개시·종결권을 주고 주요 국가 범죄의 수사는 중앙수사청을 설치해 맡기자는 안으로 해석된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헌법 개정이 전제가 돼야 한다거나, 혹은 할 필요가 없다거나,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폐지해도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하는 보완 수사권은 남겨둬야 한다는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수사권 조정 논의에서 빠져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빠지고 잊혀진 부분이 있어서 수사권 조정 논의의 본질을 흐리고, 본래 논의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바로 피해자 이야기다.
범죄 피해자는 대부분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체와 재산과 심리적 손상과 피해를 입은 완전히 무고한 피해자들임에도 사법 절차와 과정에서 아무런 참여도, 역할도, 심지어는 권리도 지원과 보호도 없는 완전히 ‘잊힌 존재(Forgotten being)’가 된다.
당연히 피해자가 사법 절차와 과정, 그리고 제도의 중심에 있어야 함에도 존재조차 없다면, 어떻게 사법 정의를 논하고, 정의의 실현을 논할 수 있을까?
이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피의자에 대한 죄에 상응한 처벌로서 사법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피해자의 피해가 피해 이전으로 원상 회복돼야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란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 힘을 얻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범죄자 사법, 형사 사법(Criminal Justice)이 아니라 피해자 사법(Victim Justice)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작금의 수사권 조정 논의도 피해자를 중심으로, 피해자를 지향하는 방향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수사권 조정의 핵심 쟁점은 검찰의 보완 수사권인데, 아마도 억울한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 무고한 오판도 없어야 한다는 취지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경찰의 수사가 완벽에 가깝고, 그래서 놓치는 억울한 피해자가 없다면 보완 수사권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에 하나라도 억울한 피해자가 있다면, 아니면 피해자임에도 기소도 되지 않아서 재판조차도 받을 수 없다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제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기소 독점주의가 강한 나라일수록 이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가장 극단적인 대안으로 피해자의 의견에 무관하게 사건을 진행하는 소위 강제 기소 정책(Mandatory Prosecution Policy), 피해자 없는 기소(Victimless Prosecution), 또는 증거에 기반한 기소(Evidence-based Prosecution) 등을 도입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다른 일각에서는 강제 기소 등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와 자원의 낭비 등을 이유로 이보다는 피해자 중심 기소(Victim-centered Prosecution)를 제안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바탕으로 피해자에게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제안도 나온다. 물론 여기에 더해 경찰 수사 단계에서도 피해자가 수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이를 위해 경찰 단계에서는 수사심의위원회를 두어 이의신청을 심사하게 하고, 검찰에는 기소심의위원회를 두어 기소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을 심의 의결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대항하는 검사의 모든 권리,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사적 기소(Private Prosecution)’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제안도 나온다. 물론 이런 파격에 대해 학계와 실무에서 논란이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도 한다.
바로 민사사건이 그것이다. 민사 사건의 피해자는 스스로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소송의 남발과 그로 인한 자원의 낭비를 지적하지만, 소를 제기한 당사자가 재판의 결과에도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보면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