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수의 피해자가 목숨을 잃는 방화 사건이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방화의 동기가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노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정작 방화 살인범은 방화를 한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았다.
이사 간 이후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던 아파트로 찾아가 방화를 저질렀던 것이다.
예전부터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가르쳤던 것을 보면 분노에서 촉발된 사회 문제는 현 시대에 국한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의 분노가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노는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심리학에서는 분노가 사람의 정신적 상태를 변화시키고, 정상적인 환경서 하지 않을 행동으로 이끌게 된다는 점에서 마치 술과 같은 것으로 설명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분노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렇다고 분노한 모든 사람이 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더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며, 이 같은 성향의 사람은 일반적으로 좌절에 대한 인내가 낮다. 자신이 좌절, 불편함, 난처함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분노는 단순히 강력한 불쾌감, 불만, 당혹감, 적대감, 적의 등으로 규정되는 감정이다. 분노는 이차적 감정으로 간주되는데, 먼저 방아쇠가 당겨진 다른 감정에 대한 반응, 대응이기 때문이다.
먼저 방아쇠가 당겨진 감정에 대해서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반응, 대응체계(Fight or Flight Response System)’에서 싸우는 데 필요한 감정이기에 그렇다.
분노와 투쟁하는 모든 사람이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다 성미가 급하거나 욱하는 것도 아니다.
일부는 ‘수동적-공격성향(Passive-Aggressive)’일 수 있으며, 일부는 분노를 자신 속에 가두는 것처럼 밀봉했다가 결국 가시적으로 폭발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일부는 자신의 분노를 안으로 전환해 위축되거나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어디서 생길까?
일부에서는 인성 기질이 범죄 행위의 방아쇠가 된다고 설명한다. 지능, 충동성, 의심, 오만함, 자발성, 자기-통제 요인의 점수가 높고 감정적, 정서적으로 안정성 점수가 낮은 사람이 정상인에 비해 분노로 인한 범행의 개연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분노가 물리적 학대나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신의 성질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스스로 가족과 친지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고, 화를 내는 일부 사람은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고, 자신이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방법으로 자신의 분노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번 방화 살인 사건도 어찌 보면 보복 범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분노가 이런 보복이나 복수를 초래하는가? 보복이나 복수의 동기는 처음에는 분노에 힘입을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예견되는 만족감이나 즐거움·쾌감에 의해서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보복과 복수에 대한 강력한 원동력은 이에 대한 욕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자신을 더 좋게, 더 낫게 느끼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감정적 해방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같은 사람이라도 분노했을 때 발차기가 그렇지 않은 정상 상태서의 발차기보다 무려 20% 더 강했다고 한다. 분노와 공격성, 범죄 행위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