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민주당 조기 대선 시나리오

탄핵이 먼저냐 판결이 먼저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원하던 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이제 윤 대통령이 임기 레이스를 완주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다. 현실이 된 조기 대선에 더불어민주당의 시곗바늘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을 이틀 앞둔 지난 12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굳은 얼굴로 기자회견 단상에 올랐다. 한 대표는 “대통령은 군 통수권을 비롯한 국정운영서 즉각 배제돼야 한다. 윤 대통령이 임기 등의 문제를 당에 일임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어겼다”며 “탄핵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배신한
대통령

한 대표는 “대통령이 조기 퇴진 의사가 없음이 확인된 이상 즉각적인 직무 정지가 이뤄져야 한다. 더 이상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며 “이제 그 유효한 방식은 단 하나뿐이다. 다음 (탄핵소추안)표결 때 우리 당 의원이 본회의장에 출석해서 소신과 양심에 따라 표결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담화서 “당에 모든 걸 위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의힘이 제시한 두 가지 퇴진 로드맵을 사실상 거부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한 대표의 감정이 실렸는지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해결책이 없다는 판단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문제는 곧바로 이어진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였다. 이제까지 국민의힘은 내분을 겪으면서도 고개를 숙이며 성난 민심을 달래려 애썼지만 윤 대통령의 선전포고가 탄핵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며 퇴진 뜻이 없음을 거듭 밝혔다. 이어 “지금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서 국헌 문란을 벌이는 세력이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탄핵 남발이 국정을 마비시켰다고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급기야는 범죄자가 스스로 자기에게 면죄부를 주는 ‘셀프 방탄 입법’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며 “원전 생태계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체코 원전 수출 지원 예산은 90%를 깎았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나라를 망치려는 반국가 세력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엉터리”라는 점을 내세웠다.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는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나 강제수사가 불가능하므로 국방부 장관을 통해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들(야당)은 이제 곧 사법부에도 탄핵의 칼을 들이댈 것이 분명했다”며 “비상계엄령 발동을 생각하게 됐다. 국민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광란의 칼춤’에 맞서 국민을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국민을 대상으로 선전포고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담화 직후 입장문을 내고 “윤석열의 정신적 실체가 재확인됐다”며 “헌정수호를 위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실패할 계엄을 기획했다는 발언은 극단적 망상의 표출이고 불법 계엄 발동의 자백”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이미 탄핵을 염두에 두고 헌재 변론 요지를 미리 낭독해 극우의 소요를 선동한 것”이라며 “나아가 관련자들의 증거인멸을 공개 지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제 발로 걷어찬 2년 반
벚꽃 대선? 장미 대선? 곳곳 변수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중진 의원 역시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모든 내란 혐의를 반박하며 보수 세력도 아닌 일부 극우 세력 결집을 통해 방어막을 짜는 것 같다.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집과 아집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국민을 이기겠다는 군사 독재의 모습이 보인다. 전두환 때랑 어쩜 이렇게 흡사한지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다”고 한탄했다.

국민 10명 중 7명꼴로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절반이 넘는 민심이 돌아섰으니 기댈 곳은 의회뿐이었다. 남은 건 탄핵 저지선을 겨우 지켜낸 여당의 단일대오였지만 표결을 앞두고 하나둘 이탈표가 나오자 당의 분열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결국 지난 14일 국민의힘서 약 스무명 가량의 이탈표가 나오면서 탄핵 저지선이 완전히 붕괴됐다.

국민의힘은 2월 퇴진 후 4월 대선, 3월 퇴진 후 5월 대선 등 두 가지 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앞서 정치권 고위 관계자들은 언론을 통해 “윤 대통령이 하야가 아닌 탄핵이 낫다고 이야기했다”는 말을 전했다. 비록 직무가 정지된 상태지만 헌법재판소서 법적 대응을 하는 방안이 낫다고 판단한 셈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 본인이 법조인 출신인 만큼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과 절차상 적법성을 직접 설명할 것이란 관측에도 무게가 쏠렸다.

국회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 직무와 권한 행사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서 탄핵 심판 절차가 이뤄진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는 ‘헌재는 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보면 탄핵 의결부터 선고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6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91일이 걸리는 등 심리 기간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만일 윤 대통령이 하야를 택하면 대통령직은 궐위 상태로 직무는 정지되고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현재 윤 대통령은 내란죄 피의자인 만큼 수사 중 긴급체포 및 구속 가능성도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 이처럼 정국이 하루가 다르게 흘러가면서 좀처럼 조기 대선 날짜를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째깍째깍
법원 시계

민주당은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당장 조기 대선을 준비하기보다 헌법재판소 심판 준비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집권플랜본부 기획상황본부장을 맡은 김영호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헌법재판관은 보수·중도·진보로 구분됐는데 결국 법리를 따져 국민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에는 국민 여론에 당이 더욱 귀를 기울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거대 야당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국정을 안정시키는 것을 중점으로 하되 대통령의 공백을 채워가면서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목소리를 잘 반영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민주당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조기 대선 시나리오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이른바 ‘6·3·3원칙’이다. 현재 이 대표가 받는 재판들 가운데 가장 먼저 판결이 나오는 건 지난달 15일 1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선거법 위반의 경우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을 확정받으면 피선거권이 박탈돼 향후 5년간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지난달 21일 이 대표는 해당 사건의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했다. 위증교사 사건에 대해서는 1심서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2심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어 무엇 하나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6·3·3원칙이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전심 후 3개월 이내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적용할 경우, 이 대표는 내년 5~6월쯤 확정 판결을 받게 된다. 국민의힘서 6월 대선을 고집한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야당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6·3·3원칙이 반드시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일 2심이 진행되는 과정서 추가 신문 등이 이뤄지거나 탄핵안이나 특검법 표결을 위해 이 대표가 국회 본회의에 참석할 경우 재판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2심서 별도로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고 소송기록 접수통지도 받지 않은 점 등을 꼬집으며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법률자문위원장은 “형사소송법상 이 대표 또는 변호인이 소송기록 접수통지를 수령해야 사건이 개시된다”며 “그런데 이 대표는 지난 9일 발송된 소송기록 접수통지를 아직 수령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1심을 선고한 지 한참 돼가는데 아직도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는 건 소송기록 접수통지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설명이다.

잠룡들
대기 중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비상계엄으로 인한 직권남용죄는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내란죄 프레임은 탄핵을 성사시켜 사법 리스크로 시간이 없는 이 대표가 조기 대선을 추진하기 위한 음모적인 책략”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을 압박하는 동시에 외신과 접촉을 늘리고 민생·경쟁·안보 정상화를 내세우며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성난 여론을 의식한 법원이 속도를 조절하고, 조기 대선 일정이 판결보다 빠르게 잡힐 경우 민주당은 이 대표를 선두로 대권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이 대표의 판결이 먼저 나오는 경우다. 이 대표라는 구심점이 사라지면 민주당 전체가 혼란에 빠질 우려도 제기된다.

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므로 민주당이 이 대표에게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빠르게 플랜 B를 세우고 다음 인재를 물색해야 한다.

차기 대권주자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한동훈-조국 순으로 지지율이 높았다. 이 대표와 한 대표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졌지만 진보진영 차기 대권주자 1·2위 모두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표의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경우 지난 12일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대법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그동안 불구속 상태서 재판을 받았던 조 전 대표는 실형이 확정됐기 때문에 수형 생활을 해야 한다. 의원직 박탈은 물론 차기 대선 출마도 불가능해졌다.

한 혁신당 관계자는 “조 전 대표는 처음부터 2026년 치러질 21대 대선을 바라보지 않았다”며 “지지자는 그의 사법 리스크를 알면서도 대표로 뽑아줬다. 2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22대 대선의 판도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가 2년을 채울지, 중간에 사면·복권될지는 알 수 없다. 형을 마친 뒤 혁신당에 복귀할지, 민주당에 흡수될지도 미지수다.

판결 기다리는 이, 배지 잃은 조
“시간은 우리 편” 마음 졸이는 여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은 이 대표 한 사람만 보이지만 민주당은 어떻게 해서든 대권주자를 만들어낸다. 주로 외부서 사람을 영입하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은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원석을 찾아 가공한 뒤 서사를 붙여 주인공으로 만든다”며 “진보진영은 보수보다 차기 대권주자를 찾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원외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우선 친문(친 문재인) 적자로도 불리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지난 6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급거 귀국했다. 비상계엄이 선포 및 해지된 지 3일 만으로 당초 예정보다 귀국 날짜를 앞당긴 것이다.

이날 김 전 지사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국민과 함께하겠다”며 조기 귀국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계엄 사태로 대한민국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며 “이 위기를 초래한 무모한 권력에 대한 탄핵은 거스를 수 없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국회를 찾아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 대표와 면담을 했다. 지난 12일에는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김 전 지사는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위기를 빨리 해소하는 데 함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구체적으로 뭘 할지는 그 속에서 찾겠다”고 말을 아꼈다.

대권 잠룡인 김부겸 전 총리도 지난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여당의 불참으로 무산되자 “결국 집권여당은 국민을 배신했다. 차가운 광장서 국민은 ‘윤석열 퇴진’을 외치고 있다”며 “참혹했던 비상계엄의 밤 윤 대통령은 이미 자격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민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비상계엄 사태에 관여된 국무위원을 ‘무더기 탄핵’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줄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김 전 총리는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민주당으로 넘어올 여지를 봉쇄해버리는 하책”이라며 “국가 운영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훨씬 훌륭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숨겨둔
묘수라도?

대선 시점을 미루려는 자와 당기려는 자의 치열한 수 싸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질서 있는 조기 퇴진’ 대신 ‘빠른 퇴진’을 택한 친한(친 한동훈)계는 “범죄 혐의를 받는 이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떠안았다. 민주당은 “하루라도 빨리 내란 수괴 윤 대통령을 물리치고 정권을 안정화하겠다”고 맞섰다.

조기 대선 주도권을 누가 먼저 쥐느냐가 관건이다. 국민의힘은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바닥난 인내심에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을 과연 어떻게 설득할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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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