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서울여자대학교 캠퍼스 곳곳이 붉은색 래커로 뒤덮였다. 최근 불거진 동덕여대·성신여대 등 ‘남녀공학 전환’ 논란과는 거리가 먼 사안이다.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여대 교수에 대한 학교 측의 미온적인 조치에 분노한 재학생들이 강력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나선 것이다.
18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는 학교 50주년 기념관 등 주요 건물에 곳곳에 ‘성범죄자 교수 OUT’ ‘서울여대는 룸살롱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을 보호하라’ 등의 문구가 붉은색 래커로 칠해져 있는 모습이 공유됐다.
재학생들은 대학 곳곳에 포스트잇과 플래카드도 부착해 학교 측의 미흡한 대처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번 시위의 발단은 지난해 7월 독어독문과 A 교수에 대한 성희롱·성추행 신고가 접수되면서부터다. 학교 측은 자체 조사를 진행한 후 같은 해 9월 그에게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지만, 학생들은 징계가 너무 가볍다며 추가 조치를 요구해 왔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피해자 보호 강화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대자보를 붙이는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이 대자보는 인문대학 소속 학생들이 가해자인 A 교수와 같은 과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 피해 학생을 위해 연대의 뜻을 모은 결과였다.
피해 학생은 지난 9월 서울여대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무소의 뿔’에 전달한 입장문에서 “A 교수님을 마주치지는 않을지, 제가 신고한 것을 아시게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혹여나 (A 교수를)마주칠까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항상 계단으로 다녔다”고 호소했다.
피해 학생의 어려움을 알게 된 서울여대 독어독문학과 학생들은 용기 내서 대자보를 붙였다. 특히, 같은 과에 속해 있던 학생 B씨는 피해 학생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직접 대자보를 게시했다.
그러나 B씨는 지난달 22일 경찰로부터 A 교수가 자신을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니 조사에 응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게 됐다.
A 교수가 B씨를 명예훼손이라며 경찰에 고소한 사실이 밝혀지자 학생들의 시위는 더욱 격해졌다. 학생들이 학교 측의 안일한 대응과 A 교수의 고소에 항의하며 본격적인 시위에 나서게 된 것.
학교 측은 학생들의 시위가 확산되자 경고문을 게시하고 시설물 훼손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강조했다.
학교 측은 경고문을 통해 “본교 건물 등 전체 시설물을 포함한 본교 재산을 훼손해 그에 따른 비용이 발생할 경우 관련 법령 및 본교 제 규정에 따라 이에 상응한 인적·물적 등 책임을 묻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6일에는 2025학년도 논술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에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캠퍼스로 맞이하지 못하게 돼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총장 명의의 안내문을 고사장 입구에 부착해 양해를 구했다.
학교 측은 안내문을 통해 “현재 성추행 관련 징계를 받은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추가 징계와 해임 요구 건과 관련해 학교는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 중”이라며 “학생들 의사에 따라 부착물 등에 대한 미화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 측의 대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시위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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