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1500호 특집기획> 한눈에 보는 김건희 8가지 의혹 총정리 ⑧사진 속 수상한 행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0.07 13:28:06
  • 호수 1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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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과 통치자 ‘헷갈리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야권이 ‘탄핵 빌드업’을 본격화하면서 김건희 여사를 정조준했다. 그간 김 여사의 정치 행보가 지난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국정개입 의혹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품가방 수수 등 숱한 논란 속에서 ‘백의종군’을 자처한 걸까? 카메라에 잡힌 김 여사의 모습은 낯 뜨겁기까지 하다. 

야당 단독으로 통과한 ‘김건희 특검법’을 놓고 여당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여당 지지율 동반 하락의 핵심 요인으로 김 여사 관련 논란이 지목되면서다. 22대 들어선 여당 내부도 싸늘하다는 후문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부적절한 처신이었고 국민에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같은 당 이상민 전 의원도 “여러 대외적 행보를 자중할 필요가 있다”며 거들었다. 

가만 있으면 
반이라도···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를 조성한 김 여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포대교에 올랐다. 그는 지난달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특수구조단 뚝섬수난구조대, 한강경찰대 망원치안센터, 용강지구대를 각각 방문해 현장 근무자를 격려하고 갔다.

당시 김 여사는 근무자들과 만난 자리서 “여기 계신 분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앞으로도 문제를 가장 잘 아는 현장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또 지난 2020년 2월 한강에 투신한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고 유재국 경위를 언급하면서 “유 경위를 통해 많은 국민께서 여러분의 노고와 살신성인의 모습을 알게 되셨다”며 “여러분이 존재해 주시는 것만으로 국가의 기본이 튼튼해진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남을 구한다는 생각에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수가 있는데 본인의 정신건강 관리도 잘 신경 쓰셔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여사는 올해 6월 ‘회복과 위로를 위한 대화’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관련 문제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고 설명했다.

누굴 위한 회복과 위로를 운운했을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소외계층이나 힘든 일을 하는 공무원들을 찾아 격려하는 일은 역대 모든 영부인이 해왔던 바 있다. 문제는 김 여사의 언행과 대통령실서 배포한 사진 등만 봐도 통치자를 방불케 했다는 점이다.

CCTV 관제실을 찾은 김 여사는 “관제센터가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라며 “항상 주의를 기울여 선제적으로 대응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 순찰 인력과 함께 마포대교를 가보고는 “자살 예방을 위해 난간을 높이는 등 ‘조치’를 했지만, 현장에 와보니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며 “한강대교의 사례처럼 구조물 설치 등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상 월권행위에 가까운 모습이다.

적절치 못한 타이밍
참을 수 없는 화려함

말투가 아닌 행동서도 드러났다. 사진 속 대원들 앞에서 손짓으로 뭔가를 설명하고 지시하는 듯한 모습은 서툴지만,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당시 명품백 수수 논란과 관련 국민권익위, 검찰, 수사심의위의 ‘무혐의’ 판정을 받자, 보란 듯 족쇄를 벗고 정치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이 연루된 명품백 수수 사건의 종결 처리에 괴로워하던 권익위 국장의 죽음을 국민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특검 받을 자신이나 반박할 입장이 없다면 최소한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

지난 3월부터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를 맡은 A씨는 지난 8월8일 세종시의 한 아파트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신고 사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의 헬기 전원 신고 사건,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 신고 사건 등 민감한 정치적 사안의 실무 조사 총책임자로 일했다.

이 과정서 고인은 부패방지업무를 소신대로 처리할 수 없는 환경서의 괴로움을 주위에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신고 사건을 ‘종결’ 처리한 다음에도 주위에 “괴롭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떠난 지 한 달여 만에 김 여사가 마포대교서 ‘자살 예방’ 전도사가 되고 싶다는 뉴스를 접한 유가족의 마음은 어땠을까? 단언컨대 김 여사의 행동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과시하기 위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행동이다. 민주당 대변인은 “‘자살 예방’ 전도사가 되고 싶다는 김건희 여사님, 권익위 국장의 억울한 죽음부터 해결하시라”고 질타했다. 

민망함은 
국민의 몫

예나 지금이나 김 여사의 ‘눈치’ 없는 행보는 일관된 모습이다. 전시 기획 업체 ‘코바나컨텐츠’의 대표이기도 한 그의 정치 행보는 모범적 이미지보단 화려한 가십거리로 기억됐다. 타이밍은 늘 적절치 못하고 자유롭다. ‘일그러진 진주’라는 포르투갈 원어 ‘바로코(Barroco)’서 유래한 ‘바로크하다’는 표현을 연상케 한다.

이는 조화와 논리보단 우연과 자유분방함, 기괴한 양상 등이 강조된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양식을 뜻한다. 대한민국 역사에 전무후무한 영부인의 문화 혁신시대라 포장할 수도 있겠다. 

지난 8월9일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통해 김 여사 비공개 출장 검찰조사 특혜 논란에 대해 부인하고 나섰던 날도 정치적 행보는 이어졌다. 당시 김 여사는 쪽방촌 봉사를 조직한 ‘행복나눔봉사회’ 블로그에 올라간 쪽방촌 봉사 사진 속에 포착됐다.

해당 블로그는 사진과 함께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한낮의 서울역 쪽방촌서 4시간가량 봉사했는데, 김 여사는 땀이 이마를 적시는 와중에도 표정은 밝았다”며 “서툴지만 성실히 벽지를 붙이는 김 여사 모습에 주민들이 흐뭇해했고, 의미 있는 울림을 줬다”는 내용을 적었다.

일부 매체 기자들이 기사화하자 대통령실은 뒤늦게 “김 여사가 1365 자원봉사포털을 통해 일반 국민과 똑같은 절차를 거쳐 성사된 개인적 봉사로, 최소한의 수행원만 동행했다”고 밝히면서 타 매체의 추가 후속 보도로 이어졌다.

일부 매체에선 “쪽방촌 방문을 ‘빈곤 포르노’라며 손가락질한 경우도 있었지만, 봉사 내용 자체보다 김 여사의 ‘민생 행보’를 노출한 시기와 방법이 이런 부정적 여론에 더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목적이 다분한 보여주기식 행보가 국민적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뜻이다.

또, 이날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서 제2부속실 설치와 관련해 “마땅한 장소가 없다. 청와대만 해도 배우자 쓰는 공간이 널찍한데 용산은 그런 공간이 없다”고 변명해 지지자들마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이 와중에 김 여사의 쪽방촌 봉사 사진이 튀어나왔으니 “언론플레이로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는 것이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지친 국힘
침묵 상책?

김 여사는 불리한 여론을 종식시키기 위한 공식 입장 표명 대신 ‘우연히 어딘가서 찍힌 사진’ 같은 언론 노출을 반복했다. ‘시청역 참사’ 추모 공간에 쪼그려 앉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은 이른바 ‘목격담 정치’로 해석됐다.

지난 7월3일 밤 커뮤니티에는 김 여사가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현장 주변 국화꽃이 쌓인 추모 공간을 찾아 헌화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하얀 꽃을 직접 손에 들고 와 바닥에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 시민들이 써놓은 글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모습이다.

검은 옷을 입은 김 여사 주변에는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담겼다. 김 여사의 해당 일정은 대통령실서 사전에 공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대통령실 내부서도 대부분 김 여사의 해당 일정을 알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방문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전형적인 여의도식 ‘목격담 정치’로 봤다.

지난해 12월 명품백 수수 논란이 불거진 이후 반년 가까이 잠행을 이어오던 김 여사는 총선 직후인 지난 5월16일 한-캄보디아 정상회담 만찬을 시작으로 공개 행보를 재개했다. 이후 같은 달에만 부처님 사리 반환 기념행사, 우크라이나 그림전 관람,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국빈 방문 등 3건의 외부 행보에 나섰다.


이어 중앙아시아 3개국 및 미국 순방 동행 등 방한 외교 일정을 대부분 소화하고 있다. 지난 6월26일 정신질환 당사자 및 자살 유가족 간담회엔 단독으로 참석했다. 이후 약 일주일 만에 시청역 추모 현장을 홀로 찾은 것이다.

하지만 김 여사의 행보를 두고 야권은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명품가방 수수 의혹이 종결되지 않았다는 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아직 사법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김 여사의 행보가 적절했느냐는 것이다.

족쇄 풀고···대놓고 ‘목격담 정치’
‘떴다 그녀’ 해외 순방마다 뒷말

실제 김 여사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하다. 지난달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건희 특검법은 최근 언론 보도로 촉발된 ‘공천 개입 의혹’까지 김 여사를 향해 제기된 관련 의혹이 전부 담겨있다. 법안의 수사 대상에 ‘김 여사가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개입한 의혹 사건’이 명시됐다.

선거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가 6개월이기 때문에 지난 4월 총선을 기준으로 하면 공소시효 만료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어서 민주당도 이 점을 의식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번 주중 재의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앞서 김건희 특검법은 21대 국회서도 통과됐지만, 최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재표결 끝에 부결된 바 있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서 명품백 수수·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공천 개입 의혹까지 포함한 특검법을 재발의했다.

여당은 유의미한 이탈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며 집안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김 여사 관련 의혹이 여당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 꼽히면서 방어에 대한 부담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는 김 여사 행보의 우선순위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적인 봉사활동 등은 몰라도 마포 현장과 같이 일반 공무원에게 지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권위적일뿐더러 오히려 야당의 공세 포인트만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판 여론이 거센 가운데, 김 여사는 지난달 13일 윤 대통령과 추석 인사 동영상에 등장했다. 지난 설 명품가방 수수 의혹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김 여사가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남다른 관심을 받기도 한다. 김 여사의 가방과 옷차림 등은 카메라에 담겼고, 한국판 ‘그레이스 켈리’로 수식됐다. 해외 순방길에 들고 간 에코백도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 여사는 지난 6월 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을 위해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출국했다. 순방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서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오른 김 여사는 밝은 베이지색 치마 정장 차림에 ‘바이바이 플라스틱 백(Bye Bye Plastic Bags)’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흰색 에코백을 들었다. 

알 수 없는
진짜 속마음

‘바이바이 플라스틱’은 지난해 6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된 환경부 캠페인서 사용된 용어다. 이 에코백은 김 여사가 과거에도 들어 주목받았던 가방이다. 지난해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서울 성북구 고려대 SK미래관서 열린 캠페인 출범식 때 처음 공개됐다. 해당 행사에는 김 여사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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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