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1500호 특집기획> 한눈에 보는 김건희 8가지 의혹 총정리 ⑥구명 로비 ‘VIP’ 비밀

임성근 구하기 동참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내가 ‘VIP’에 말해주겠다.” 임성근 구명로비 의혹의 핵심이 되는 말이다. 해당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발표되면서 채 상병 사망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사건 관련자들은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고 아직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말한 ‘VIP’는 누구며 로비는 실제 이뤄졌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7월19일 채수근 해병대 상병이 경북 예천의 수해 현장서 실종됐다. 실종자 수색을 하던 채 상병은 급류에 휘말려 실종된 지 14시간 만에 내성천 인근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이 발생하고 1년여가 지나자 채 상병 사건 그 자체보다 수사외압, 구명 로비 등이 태풍의 눈이 된 상황이다.

격노설
의문 핵심

채 상병이 사망한 이후 박정훈 전 대령이 수사단장이었던 해병대 수사단서 수사를 진행했다. 박 대령은 지난해 7월30일 채 상병이 소속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관계자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수사 결과에 대한 결재를 마쳤지만, 돌연 사건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박 전 대령은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서 윤 대통령이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격노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 나왔다. 


격노설 이후 국방부 검찰단은 사건을 경북경찰청서 회수했고 혐의자를 해병대 대대장 2명으로 줄여 해당 사건을 경찰에 재이첩했다. 이것이 수사외압 사건의 골자다.

수사외압 의혹은 일파만파로 퍼져 정쟁의 도구로 사용됐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사건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면서 ‘채 상병 특검법’으로, 대통령실과 여권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다만 여기에는 ‘VIP는 왜 격노했는지’ ‘혐의자를 줄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등 의문점이 남았다.

이후 경북경찰청의 수사 결과가 나오자 임 전 사단장에 대한 구명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이 의문점을 풀 열쇠로 제기됐다.

2024년 7월10일 JTBC, MBC, <한겨레> <경향신문> 등은 이종호 전 블랙퍽인베스트 대표가 VIP에게 임 전 사단장 구명활동을 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 내용을 보도했다. 녹취록은 지난해 8월9일 공익 제보자 김규현 변호사와 이 전 대표의 통화 내용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려다 경선서 탈락한 인물이다. 5월부터는 박정훈 대령 변호를 맡고 있다. 녹취록은 공수처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 상병 사건 ‘폭풍의 눈’
도이치 공범 통화 중 언급

녹취록에 따르면 김 변호사가 “해병대 사단장 난리가 났다”고 운을 떼자 이 전 대표는 “임성근이? 그러니까 말이야. 임 사단장이 사표를 낸다고 B가 전화가 왔다. 그래서 내가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얘기하겠다. 아마 내년쯤 발표할 건데 (임성근을)해병대 별 4개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녹취록에는 김 변호사가 “지금 떠오르는 게 위에서 그럼 (임 전 사단장을)지켜주려고 했다는 건가”라고 묻자 이 전 대표가 “그렇지”라고 호응하는 내용도 담겼다.

해당 녹취록에 나오는 VIP는 김건희 여사를 지칭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 재표는 김 여사와 같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김 여사와 이 전 대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서 이른바 ‘BP 패밀리’로 권오수 전 회장과 이 전 대표, 김 여사, 이모씨 등이 핵심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임 전 사단장은 녹취록이 보도되자 인터넷 카페를 통해 “청와대 경호처 출신 B씨나 이 전 대표 등 임성근을 위해 누군가를 상대로 로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구명 로비 의혹은 시기상 불가능했다”고 주장하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사의 표명 전후로 어떤 민간인에게도 그 사실을 말한 바 없다”며 “B씨가 사직 의사를 알았다면 아마도 언론을 통해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와는 한 번도 통화하거나 만난 사실이 없다. 의혹을 보도하기 전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객관적 사실관계의 확인과 검증, 비판적 검토를 거쳐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은 지난해 7월28일 오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는데 이 전 대표나 B씨는 이 전 장관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에 대한 결제를 번복한 7월31일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구명 로비를 할 수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전 대표 역시 임 전 사단장을 위해 구명 로비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대표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나는 임성근을 모르고 후배들이 하는 얘기를 인용한 것”이라며 “녹취를 제보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야지 부분만 잘라서 하는 건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 여사 지칭
의견 지배적

녹취록이 편집됐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VIP는 김 여사가 아니라 김계환 사령관”이라는 엉뚱한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이 전 장관도 구명 로비는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장관을 보좌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장관은 사건 이첩 보류 지시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대통령실을 포함한 그 누구로부터 해병대 1사단장을 구명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없고 그렇게 지시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 VIP로 김건희 여사가 거론되자 대통령실도 “대통령실은 물론 대통령 부부도 전혀 관련이 없다”며 “근거 없는 주장과 무분별한 의혹 보도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한다.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선 강력이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하며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모두 부인하자 김 변호사는 JTBC 방송에 나와 “‘그 사람이 지금 입을 열면 영부인까지 다칠 수 있다는 거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용산서 굉장히 지금 신경을 써주고 있다’ 이런 취지로 제가 듣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라든가 이런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대통령하고 김건희 여사를 결혼시켜줬다. 중매를 시켜줬다.’ 이런 말씀을 하시고 김 여사의 어떤 활동 상황이라든가 수행하는 사람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얘기를 했다. 그건 1년 전에 한 얘기는 술 먹다 한 얘기라 실명을 누군지 기억을 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구명 로비 자체가 자신의 과장이었다. 허세였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허세였다고 한다면 그걸로 그냥 끝나거나 했을 수 있다. 그런데 당시 통화나 이런 상황으로 봤을 때 내용이라든가, 태도라든가, 표현이라든가 하는 게 상당히 구체적으로 신빙성 있게 저에게는 다가왔다”고 말했다.

VIP 구명 로비 이야기를 처음부터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사실 이종호 전 대표하고 그 선배들하고는 굉장히 친분이 있는 관계였다. 동시에 박정훈 대령이나 채 해병 사건의 진실 사이서 솔직히 저도 1년간 굉장히 많은 갈등을 했다”고 고백했다.

구명 로비 의혹이 주목을 받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김 여사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7월12일 오전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모든 의혹과 문제의 근원은 결국 윤 대통령 부부”라며 “특히 여러 정황을 볼 때 해병대원 사건 은폐 시도에 깊숙이 개입했을 것으로 보이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제보 공작
조사 요구


그는 “보도에 따르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종호 녹취록에는 이씨가 국방부 장관 인사에도 개입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임성근 구명 로비뿐 아니라 장관 인선이라는 핵심 국정도 비선의 검은 손길이 좌지우지했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적 보도다. 사실이라면 일개 주가 조작범에게 대한민국이 휘둘렸다는 소리”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VIP가 해병대 사령관을 지칭한 것이라고 했지만 평소에 대통령과 김건희를 VIP1, 2라고 불렀다는 진술도 공개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공익신고가 아니라 기획된 사전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지난 7월17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가 이뤄졌다는 ‘해병대 골프 모임 단체 대화방(단톡방)’ 의혹에 대해 ‘야당발 사기 탄핵 게이트’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단톡방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 이 전 대표와 박정훈 해병대 대령의 변호인이자 민주당 총선 경선 참여자인 김 변호사, 대통령 경호처 출신 B씨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팬클럽 ‘그래도 이재명’ 발기인이었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문제의 단톡방에 정작 임 전 사단장은 없었다. 그 대신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경호 책임자와 민주당 국회의원 선거 경선 참여자가 있었다”며 “제보 공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전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이들과 얼마나 교감을 하고 있었는지 밝혀내야 한다”며 “만일 제보 공작에 민주당이 직접 교감하고 개입했다면 이것은 단순한 제보 공작이 아닌 사기 탄핵 게이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공방은 지난 7월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서도 계속됐다. 민주당은 해당 의혹을 둘러싼 VIP(대통령) 격노설,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 등을 규명하는 과정서 외압의 실체가 드러나면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고 봤다.

특검부터 청문회까지 정쟁 핵심
과태료 불과한 법적 처벌 가능성

특히 민주당은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의 해병대 1사단 방문 사진을 공개하며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추궁했다.

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이 전 대표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청와대 경호처 출신 B씨가 함께 해병대 1사단을 방문했을 때 사진을 입수했다면서 공개했다. 

장 의원은 임 전 사단장에게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에 방문했는데 두 사람을 모르냐, 이씨가 ‘김계환 사령관에게 별 4개 달아주고, 임성근 사단장에게 별 3개 달아주고’ 이런 말을 한 것 아니냐. 그 이후에 골프 모임 단톡방이 생긴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임 전 사단장은 “이 전 대표를 모른다. 언론에 나온 뒤에야 알게 됐다”면서 “자신은 훈련 내내 배 안에 탑승해 있었고, B씨는 한두 달 뒤 자신이 왔다 갔다고 얘기해 줘 방문 사실을 알았다”고 답했다.

해병대 골프 모임 단체 대화방 관계자들도 민주당의 공작이라고 해명했다. 이들은 지난 11일 열린 국민의힘 사기탄핵테스크포스(TF) 간담회서 단체대화방 참여자인 김규현 변호사와 민주당이 해당 의혹의 진실을 알고도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대화방 멤버이자 청문회 당시 민주당 장경태 의원 측에 사진을 제보한 이모씨는 임 전 사단장과 B씨, B씨와 이 전 대표가 각각 찍은 사진 두 장을 제공했다면서 “다른 날짜, 다른 장소서 찍힌 사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 의원이)그 사진을 보여주면서 (임 전 사단장과 이 전 대표가)같이 회식한 것처럼 했다. 왜곡이고 공작”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장 의원 측에 우리가 제공한 정보가 잘못됐을 수도 있으니까 다른 가능성까지도 살펴보라고 했다”며 “7월17일 장 의원실을 찾아가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있는 30분가량의 녹취 파일을 들려줬는데 (보좌관이)5분 정도 듣더니 ‘이거 들을 필요 있나요? 저희는 답은 정해져 있는데’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임성근 구명 로비의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구명 로비의 발단이 된 녹취록을 확보하고 이 전 대표, B씨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지만 아직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실체가 드러나더라도 법적인 처벌은 가벼울 가능성이 높다.

법적인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이 전 대표가 임 전 사단장 등으로부터 직접적인 구명 로비를 부탁받았거나 금전을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또 이 전 대표가 자발적으로 나서 공직자 등에 로비를 했을 경우에는 청탁금지법(부정청탁금지) 위반 소지가 있지만 조치는 과태료 부과에 그치게 된다.

일제히
부인 중

하지만 이 전 대표의 구명 로비가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까지 연결돼 실제 행사됐다면, 공직자 등에게 직권남용죄를 물을 수도 있게 된다. 이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김 여사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 공수처 관계자는 “채 상병 수사외압 사건과 더불어 구명 로비 의혹까지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며 “다만 검사 임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아 연임이 확정되지 않으면 수사는 더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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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