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고택 ⑤함양 일두고택

정여창 가문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함양 일두고택

경남에는 한옥 마을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 개평한옥마을은 높은 기품을 간직한 동네로 유명하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한옥 60여채가 모여 있고, 마을 중심에 이 지역의 정신적 뿌리 역할을 하는 함양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재)이 자리한다. 건축한 지 수백년이 흘렀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해 영남지역 양반 가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집 안 곳곳에 걸린 편액의 뜻을 하나하나 새기며 둘러보기도 좋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골목을 지나면 일두고택 정문에 닿는다. 15세기에 활약한 일두 정여창의 집이다. 정여창은 영남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의 제자로 들어가 공부했다. 이후 성리학의 대가로 인정받았으며 이황, 조광조, 이언적, 김굉필과 함께 동방오현에 올랐다.

성리학의 대가

그러나 무오사화(1498년)에 연루돼 유배지인 함경도 종성서 생을 마감했고, 죽은 직후에 터진 갑자사화(1504년) 때는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말년과 사후가 순탄치 못했지만, 나중에는 성균관과 향교 문묘에 신주가 보관돼 성리학자로서 가장 큰 영광을 누렸다.

지금의 일두고택은 정여창이 세상을 뜨고 약 1세기가 지나 건축됐다. 이후 여러 차례 고치고 새로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 입구에 당상관(정삼품 이상) 벼슬을 지낸 인물이 사는 집에 둘 수 있다는 솟을대문이 눈에 띈다. 조선시대에는 고위 관료만 초헌(외바퀴가 달린 높은 수레)을 탈 수 있었는데, 솟을대문 높이가 초헌이 통과하기에 적당했다.

집 안팎에 걸린 편액에 일두고택의 자부심이 흐른다. 첫 자랑이 솟을대문 지붕 아래 있는 정려(旌閭)다. 나라서 충신, 효자, 열녀가 나온 집에 내린 정려를 정여창 가문은 5개나 받았다. 하나를 받기도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드문 경우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너른 마당이 나오고,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사랑채가 보인다. 높게 쌓은 기단이며 반듯한 돌계단, 앞으로 튀어나온 누마루와 마당에 조성한 석가산(石假山)까지 웅장한 사대부 고택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사랑채 아랫도리 부분에 걸어둔 문헌세가(文獻世家) 편액이 정여창의 후손이 사는 집이란 사실을 말해준다.

고택서 가장 높은 자리 차지한 사랑채
석가산의 사계절을 즐길 수 있는 곳

문헌은 나라서 내린 시호다. 일두고택에 있는 여러 글씨 중 압권은 사랑채 방문 위에 붙은 충효절의(忠孝節義)다. 커다란 종이에 거침없이 쓴 글자에 기백이 흐르는 듯하다. 넓게 자른 나무판자가 아니라 종이에 써서 색이 바래고 해진 흔적마저 오랜 세월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사랑채 끝으로 연결된 누마루에 서면 석가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조성했다고 하나, 장대하게 자란 소나무와 그 아래 삼봉(三峯)을 상징하며 세운 돌까지 영락없는 자연의 모습이다. 이 집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사계절 무시로 변하는 석가산의 풍경을 즐긴 사랑채 주인의 고상한 풍류가 새삼 부럽다.

누마루 천장 모서리에 걸린 탁청재(濯淸齋) 편액이 주변 경치와 잘 어울린다. ‘탁한 마음을 깨끗이 씻는 집’이란 뜻이다. 누마루에서는 며느리에게 살림을 넘겨준 어머니나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이 머물던 안사랑채 마당까지 훤히 보인다.

연로한 어머니를 살뜰히 보살펴드리고 싶은 집주인의 효심과 자식을 바르게 가르치려는 부정(父情)이 모두 닿을 거리다. 사랑채 옆으로 안주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적당한 높이로 헛담을 쌓고 일각문을 세웠다. 문틀 아랫부분에는 활이 굽은 모양으로 나무를 깎은 월방(月枋)을 설치했다. 여자들이 출입할 때 치맛단이 걸리지 않게 하려는 배려다.

중문을 지나면 비로소 안채가 나온다. 안주인이 편하게 움직이며 살림을 챙길 수 있도록 건물 앞뒤로 곳간(庫間)과 장독대를 두고, 공간은 개방적으로 구성했다. 안채 뒤에 있는 곡간(穀間)은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기초공사 단계부터 주변 배수로를 깊이 파고, 바닥에 자갈과 숯을 여러 겹 깔았다.


안채 마당에 물건을 모아두는 곳간과 다른 창고다. 곡간 옆은 정여창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곡간보다 높게 짓고 지붕 단청을 화려하게 칠해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임을 강조했다.

일두고택서 가까운 거리에 함양 남계서원(사적)이 있다. 정여창이 세상을 떠나고 약 50년이 지난 1552년, 지역 선비들이 모여 일두를 기리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건립했다. 1556년 명종이 사액해 남계서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함양청계서원

문루 형태로 지은 풍영루를 지나면 강의하던 명성당이 정면에 나타난다. 양쪽으로 유생이 머물던 양정재와 보인재, 애련헌, 영매헌 등을 배치했다. 명성당 뒤로 가면 사당에 오르는 길이 있다. 사당 문 앞에서 명성당과 풍영루 지붕 너머로 함양군의 들판이 보인다.

남계서원 바로 옆에 서원이 한 곳 더 있다. 문민공 김일손을 추모하며 세운 함양 청계서원(경남문화재자료)이다. 김일손도 김종직에게 학문을 배우고 무오사화 때 희생된 인물이다. 청계서원에는 수업하던 강당, 유생의 숙소 구경재와 역가재 등이 남아 있다. 함양박물관도 지나치기 아쉽다. 함양의 역사를 한 눈에 살피고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둘러보기 좋다. 상설전시실에는 함양군의 선비 문화와 서원, 산성 등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함양 일두고택→청계서원→남계서원→벽송사→서암정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개평한옥마을(함양개평리하동정씨고가-함양 일두고택)→청계서원→남계서원
-둘째 날 거연정→군자정→동호정→농월정→함양 허삼둘 고택

관련 웹 사이트 주소
-함양 일두고택 www.ildugotaek.kr
-함양군 문화관광 www.hygn.go.kr/tour.web
-함양박물관 www.hygn.go.kr/museum.web

문의 전화
-일두홍보관 055)964-5800
-함양군청 055)960-5114
-남계서원관광안내소 055)962-9785
-함양박물관 055)960-5546

대중교통
버스 서울-함양, 동서울종합터미널서 하루 12회(07:00~ 23:59) 운행, 3시간~3시간20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서 하루 5회(07:30~23:00) 운행, 약 4시간 소요. 함양시외버스터미널서 함양지리산고속 정류장까지 도보 약 490m, 함양지리산고속-안의 농어촌버스 이용, 지곡 정류장 하차, 일두고택까지 도보 약 680m.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함양시외버스터미널 1688-7494

자가운전
통영대전고속도로 지곡 IC→안의·지곡 방면 우측 고속도로, 662m 이동→지곡톨게이트서 통영대전고속도로 직진, 163m 이동→지곡 IC 앞에서 함양로 지곡·함양 방면 우회전, 3.5㎞ 이동→병곡·백전 방면 우회전, 126m 이동→병곡지곡로 우회전, 469m 이동→함양 일두고택


숙박 정보
-우명리정씨고가(효리댁): 수동면 효리길, 010-5356-4116, https: //umyeongri.modoo.at
-지리산태고재: 지곡면 개평길, 055)964-8949
-남계한옥스테이: 수동면 남계서원길, 010-5259-1943, www.hyhanokstay.com

식당 정보
-장수할매국수(주전자국수·물총칼국수): 함양읍 고운로, 055)962-0081
-지현이네함양맛집(손메밀묵사발·손메밀전병): 함양읍 함양로, 055)962-2338
-20년손맛장터순대국밥(순대국밥·머릿고기국밥): 함양읍 용평3길, 055)963-3079

주변 볼거리
안의향교, 함양 안의 광풍루, 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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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