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51)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10.10 09:17:48
  • 호수 14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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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그자들의 인간성을 조금이나마 회복시켜 주는 취지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업이 필요해. 매일 한명씩 악인을 골라 살해한다면 백일쯤 후엔 어떤 효과가 나타나려나? 

한 달 정도로는 별무효과일 거야. 남한이든 북한이든 가장 완고하고 낙후된 분야가 정치계와 군부인데, 그곳에 뿌리박은 자들은 겁먹기보다 아마 계엄령을 선포해 탱크와 총칼을 동원해서라도 잡아내 박살낸다며 난리 지랄을 칠걸. 

대박과 쪽박

음, 그건 그렇고… 만일 라스콜리니코프가 여기 이 시대에 산다면, 아마 창녀보다 북한에서 고생하다 탈출한 탈북녀를 사랑하지 않을까 몰라. 하나의 상징적인 아이콘이니까….

아, 벌써 하숙집 앞에 닿았군. 이제 공상은 그만둬야지….’


나는 현실로 돌아와 머리를 흔들며 쓴웃음을 지었다. 불을 환하게 밝힌 하숙 건물은 보통 사람들의 희비애락을 품으며 우뚝 선 일종의 성 같았다.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식당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누군가 불러 돌아보니 모창가수가 손을 흔들었다. 구석진 자리에 웬일로 꼽추 하씨도 함께 앉아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서 빈자리에 앉았다. 탁자 위엔 소주병과 두어 가지 안주가 놓인 상태였다.

“오, 작가님… 부탁이 하나 있어요.” 

볼이 발그레해진 모창가수가 말했다. 

“뭔데요?”

“가사 하나만 좀 써주세요.”

“네? 모창하시는데 뭔 가사 말이죠? 설마 가사를 바꿔 부르시려는 건 아닐 테고요.” 


“그런 게 아니에요! 저도 이제 모창 따윈 그만두고 창작곡을 부르기로 했다구요!”

그는 흥분해서 손바닥으로 탁자를 세게 두드리며 소리쳤다. 잔 속의 소주가 찰랑거렸다.

“갑자기 왜? 모창으로 한우물 파신다더니….” 

“한평생 모창만 하고 살 순 없죠. 지금 한가락 한다는 인기 모창가수들도 아마 진심으로 좋아서 그러진 않을 거예요. 처음엔 열정을 쏟았더래두 이젠 처자식 때문에 마지못해 관성적으로 해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많아요. 난 자유로운 독신인 만큼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가 있죠. 마침 거부하기 어려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대체 뭔데요?” 

가수는 우선 소주잔을 들어 한 모금에 쭉 들이켰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통일대박론을 노래로 한번 불러 보고 싶어요.” 

그는 갑자기 좀 수줍어했다. 

“쉽지 않은 문제인데요.” 

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왜요?” 

허황된 구호 통일…현실의 벽 더 높아져
“분열된 국론 통합이 먼저? 진정성 없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죠. 아무튼 먼저 가수님의 의견을 한번 말씀해 보세요.” 

“음… 대중가요니까 대중적인 컨셉으로 가야겠죠. 통일을 바라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과연 어떤 컨셉을 잡아야 성공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려운 문제네요. 그런데 가사만 가지고 일이 되진 않잖아요.”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아는 작곡가 분이 계셔요. 가사만 잘 빠져나오면 제가 들고 가서 무릎을 꿇고 빌어서라도 기필코 곡을 받아낼 테니까요. 이후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가사만 멋들어지게 써주세요.” 

“고민되네요. 대중가요 가사를 한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뭔 걱정이세요. 소설 쓰시는 작가님이신데요. 꼭 좀 부탁드려요.”


그는 술잔을 들어 들이켜곤 내게 건네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구요. 가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고 싶으세요?” 

“저는 당연히 통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이 아저씬 반대하신다네요.” 

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하씨를 바라보았다.

“반대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 통일을 하더라도 허황스런 구호만 외치기보다 현실적으로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야 가능하다는 뜻이지. 우리 대한민국도 아직 국론 통일이 안 되고 분열된 마당에 구체적인 방법도 없이 주관적인 목소리로 떠들기만 해서는 오히려 역효과라는 얘기지. 아니할 말로 지금 북한이 저런 판국인데 우리 입맛대로만 통일하자고 쪼우면 쟤네들 화만 돋굴 뿐이란 말야.” 

꼽추 하씨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지 마세요. 그래도 노래가 히트하면 북한 사람들도 몰래 듣고 감동을 받아서 바뀌지 않겠어요. 대중가요는 시기를 잘 타야 대박이 날 수 있으니까 지금이 최적기라는 거죠.” 

모창가수는 여전히 들뜬 상태였다. 내가 대꾸했다.

“사실 지금 통일 찬성 노래를 열심히 불러봤자 공허한 메아리밖에 돌아오지 않을 성싶어요. 그렇다고 반대한다는 메시지로 열창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생각엔 차라리 통일을 하자니 말자니 주창하기보다 현재의 상황을 진실하게 드러내 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군요.” 

찬성 노래

“스스로 들으며 판단하게끔?” 

“그렇죠.”

“그것도 좋겠군요. 그런데 유행가엔 사랑이 들어가야 맛이 나잖아요. 남북한의 청춘 남녀가 어떤 사연으로 만났다가 헤어져 애달피 그리워하건만 철조망이 가로막아 피울음이 맺힌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깔면 어떨까요?” 

모창 가수는 벌써 노래를 부르고 싶은 듯한 눈빛이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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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