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은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악습을 청산한다는 의미로 주로 사회적 적폐에 사용돼왔다. 그러나 현재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사회적 적폐 청산 구호는 들리지 않고 정치적 적폐 청산 구호만 들리고 있다.
이는 그동안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사회적 적폐 청산은 잘했지만 정치적 적폐 청산은 못했거나, 아니면 정치적 적폐 청산도 잘했으나 정치권이 정권교체에 필요한 구호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 정치사에서 적폐 청산은 정권교체를 이룬 정부가 한 정당이 연속으로 정권을 잡은 전 정부와 전전 정부의 부정부패를 청산하면서 등장했다. 김영삼정부가 전두환·노태우 10년 정권의 부정부패를, 이명박정부가 김대중·노무현 10년 정권의 부정부패를, 문재인정부가 이명박·박근혜 9년 정권의 부정부패를 청산했던 게 적폐 청산의 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처럼 전 정부가 연속으로 정권을 잡은 정당의 정부가 아니거나, 박근혜정부처럼 전 정부가 같은 정당의 정부인 경우 적폐 청산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김대중정부와 박근혜정부도 적폐 청산 카드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실제는 5년짜리 전 정권의 부정부패를 청산했다. 근폐 청산을 했던 것이다.
현 윤석열정부도 김대중정부처럼 문재인정부가 연속으로 정권을 잡은 정당의 정부가 아니기에 적폐 청산이라는 카드를 사용하지 않지만 공정과 정의라는 카드로 집권 2년 차인 최근까지 문재인정부의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있다. 윤석열정부 역시 근폐 청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적폐 청산 카드를 사용했지만, 윤석열정부는 근폐 청산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적폐 청산과 근폐 청산은 엄연히 다르다. 특히 방법과 속도가 달라야 한다. 적폐는 오랜 기간 쌓인 부정부패라 천천히 청산해야 가능하지만, 근폐는 짧은 기간 쌓인 부정부패라 빨리 청산해야 유리하다. 적폐 청산은 유산소운동처럼, 근폐 청산은 무산소운동처럼 해야 한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그런데 여대야소의 문재인정부는 적폐 청산을 무산소운동처럼 빨리하려다 실패했고, 여소야대의 윤석열정부는 근폐 청산을 해야 하는 데도 유산소운동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적폐 청산을 해야 했던 문재인정부는 여소야대고, 근폐 청산을 해야 하는 윤석열정부는 여대야소여야 했는데’라는 생각도 든다.
유산소운동은 숨이 차지 않고 가볍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몸 안에 최대한 많은 양의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심장과 폐 기능을 향상시키고 혈관조직을 강하게 해주는 운동이다.
따라서 장기간에 걸쳐 규칙적으로 유산소운동을 하면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질환, 당뇨병 등의 성인병 치료와 비만 해소에 도움이 된다. 조깅, 수영, 자전거타기, 에어로빅댄스, 크로스컨트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무산소운동은 호흡을 멈추고 짧은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이용하는 운동이다. 주로 근육을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한다. 무산소운동은 역도, 단거리 달리기 등과 같이 짧은 시간에 큰 힘을 낼 수 있어 근육의 크기와 힘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무산소운동은 뼈와 혈관도 튼튼하게 하고 몸의 에너지 순환을 촉진시키지만, 과도한 욕심을 부리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다칠 위험이 높다.
그래서 성인병이나 비만병을 치료하려면 오랜 기간 몸의 적폐로 해당 질병이 생긴 만큼, 지속적으로 천천히 하는 유산소운동을 해야 하고, 약한 체력을 보강하려면 짧은 기간 몸의 근폐로 생긴 만큼 빠르고 강한 무산소운동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부정부패의 경우, 성인병이나 비만병에 걸린 환우가 수술로 치료할 수 없어 유산소운동을 해야 하듯 시스템을 없애거나 사람을 바꾸기보다 유산소운동 같은 장기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부정부패의 경우, 허약한 체질의 사람이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짧은 시간에 근육을 키워야 하듯이 시스템이나 사람을 과감히 바꾸는 방법을 써야 한다.
또 성인병이나 비만병에 걸린 환우가 무산소운동을 하면 더 위험에 처할 수 있듯이, 정부도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적폐를 빠르고 강도 높게 청산하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고, 반대로 허약한 체질의 사람이 유산소운동을 하면 약한 체력을 회복할 수 없듯이, 정부도 짧은 기간에 누적된 근폐를 천천히 청산하면 아예 영원히 청산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윤석열정부가 여소야대의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차피 근폐 청산을 해야 했다면 시간을 오래 끌지 않았어야 했다.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 국민은 윤석열정부가 말하는 부정부패를 더 이상 부정부패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근폐 청산은 집권 1년 차에 끝냈어야 했다. 적폐 청산의 첨병이라 불리는 감사원이나 검찰의 속도가 최근 둔해지고 있다는 점을 정부가 되새겨봐야 한다.
이제 윤석열정부가 정치적 근폐 청산 대신 사회적 적폐 청산과 근폐 청산에 눈을 돌려야 한다. 우리 국민이 집권 2년 차를 막 시작하는 윤석열정부에 바라는 방향성이다.
사실 적폐 청산의 대상은 정권을 잡은 정부가 아니라, 정권을 만들고 도와준다는 구실로 수십년 동안 온갖 정치적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아닐까? 언론과 종교단체 등 그밖에도 적폐 청산의 대상이 많은 한국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