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천 드러나는 당정 일체의 한계

대통령 지키다 민심 다 잃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 지도부의 컨벤션 효과가 시작과 동시에 끝났다. 지도부의 존재감도 크지 않다. 끓여보겠다는 연포탕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친윤 일색’이다. 지지율에 민심이 반영되자, 곧바로 하락하는 추세다. 김기현 대표 등 지도부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심인 모양새지만 이마저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당과 정부가 하나가 되려는 자세만 보인 탓이다. 

대통령실에서 밀어준 덕분에 김기현 당 대표는 과반을 넘겨 승리를 가져갔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에도 당정일체가 필요하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본격적으로 당정 일체가 시작되자, 지도부는 한 달에 두 번 만남을 가지며 운명공동체격으로 당과 정부가 하나가 될 모습이다. 과거 김영삼정부 이후 20년 만의 부활이다. 사실상 윤석열정부의 정책에 힘을 싣겠다는 의도다. 

벌써 끝난
컨벤션 효과

첫 만남에서는 윤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3대 개혁에도 발을 맞춘다. 이 중 특히 노동개혁에 가장 힘을 쏟고 있다. 김 대표는 민·당·정 협의회서 “3대 구조개혁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국가적 과제”라고까지 강조했다. 

단순 ‘아이디어 차원’이라는 정책들도 윤정부와 궤를 함께해 여론의 반응을 살폈다. 문제는 여론이 너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노동정책의 문제와 함께 검토한 출산 대책도 여론의 공분을 샀다. 아이 3명을 낳으면 군 면제를 하겠다는 정책이었다.

쉽게 말해 20대 남성에게 아이 3명이 있으면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는 대학 졸업 후 4년 안에 아이를 셋 낳아야 가능한 만큼 현실성이 결여돼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렇듯 대통령실이 여러 실책을 저질러도 당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당정일체는 표면상으로는 당과 정부가 시너지효과를 내겠다는 게 목표였다. 

해당 정책의 기저에는 윤정부가 설정한 방향을 수정하거나, 우려를 표할 수 없다는 게 깔려 있다. 사실상 대통령의 그늘에 당이 가려지는 셈이다. 당만의 목소리는 실종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당대회에서는 당정일체론이 통할 수밖에 없었다. 지지율 한 자릿수에 그쳤던 인물이 윤 대통령의 영향력으로 당선됐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조직적인 면에서는 친윤으로 완벽함을 이뤘다.

친윤(친 윤석열) 핵심 세력으로 불리는 이철규 의원이 사무총장에, 이 의원을 보좌하는 전략 부총장, 조직 부총장에는 각각 친윤으로 분류된 박성민, 배현진 의원이 임명됐다. 대변인단도 유상범·강민국 의원 등 친윤 색채가 짙은 인물 위주로 구성됐다는 평가다.

정책위의장 역시 박대출 의원이, 여의도 연구원장에는 박수영 의원을 배치했다.

이 같은 인사는 조직 결속 부분에서는 상당한 이점을 가져갈 수 있어 보인다. 다만 전당대회 기간에도 주인공이 당 대표가 아닌, 윤 대통령이 됐다는 부분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 같은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고 당 대표의 존재감은 한 달도 안 돼 사라져버렸다.

지지율도 더불어민주당에 역전을 허용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청년층의 지지세가 심각하게 낮다는 점이다. 과거 새누리당 시절만큼의 지지율이 나올 정도다. 


빠른 속도로 함께 추락하는 중
청년 지지율 순식간에 빠져나가

새누리당 시절에도 보수당은 청년 일자리, 모바일 정당 등의 2030 대책을 내놨으나 실제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예 다시 과거 행보를 반복하는 수준이라는 불만도 있다. 청년 세대는 캐스팅 보트로 불린다. 중도층이 많은 청년 특성상 이들의 마음을 살 수 있어야 차기 총선서 유리해진다. 실제로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당수’였던 이준석 전 대표 체제하에서는 청년의 니즈를 잘 파악해왔다.

이 전 대표의 여의도 문법 탈피, 새로운 시도 등이 잘 먹혀들어가면서 2030세대들이 앞다퉈 국민의힘에 입당하기도 했다. 청년들이 단순히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호감 때문에 국민의힘을 지지한 게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 지도부는 이준석계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김 대표는 “천하람 위원장은 말할 것도 없이 당협위원장”이라며 “당연히 함께 가야 한다”고 손을 내밀었다. 

이는 전대 직후 이별을 암시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전대가 끝난 직후에는 일부 최고위원들이 함께 가기 어렵다는 발언과는 상반돼서다. 하지만, 이준석계는 쉽게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의 청년층 지지세는 다른 연령대보다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선 기간에는 청년층이 국민의힘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30대층이 국민의힘으로 옮겨갔으나, 최근 잇따른 실책에 빠르게 이탈 중이다. 

69시간근무제 논란, 일본과의 관계 등이 이유다. 급해진 당 지도부는 MZ 노조와의 치맥 회동, 1000원 학식 확대 등으로 뿔난 청년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정책에 빠른 속도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당에서 요청하자마자, 대통령실에서도 바로 예산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비판이 나온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대학들과는 달리 지방대학들은 재정 확보가 어려운 상태라는 점 때문이다.

시작부터
엇박자

정치권에서는 추후 국민의힘을 향한 청년층 지지가 더욱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그러자, 청년 표심이 간절한 국민의힘은 청년을 전진 배치시키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책위원회에 청년부의장 자리를 새로 만들어 정책위 내 각 상임위 현안을 조정하는 정책조정위원회별로 청년 부위원장을 배치하겠다는 구상이다.

청년층과 함께 당 정책을 개발하고, 표심을 끌어오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하지만, 정작 청년층에선 시큰둥한 반응이다. 오히려 장외에 있는 이 전 대표에게 시선이 쏠린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장외 정치를 다시 시작하는 모양새다.

지도부를 향한 공격도 더욱 거세졌다. 이 전 대표는 “김 대표가 정상적으로 집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치 지형상 본인이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등에 올라탄 뒤, 대통령이 밀어 당 대표가 돼 애매한 이야기를 한다”고 작심 비판했다. 

이 전 대표는 순천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할 예정이다. 비단, 청년층뿐 아니라 민심 자체를 노리는 것이다. 이미 전대서부터 민심을 차곡차곡 다져왔고, 반 민주당 세력을 따로 꾸리고 있다. 노선도 당내 공격보다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는 쪽으로 바꿨다. 지도부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리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당정 일체만 챙기다가 민주당 견제에 느슨함을 보이기도 한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이슈들로 정부여당과 윤정부를 공격한다. 양곡관리법과 관련해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공식적으로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으며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즉각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오히려 농민들의 의견을 듣겠다며 판단을 잠시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런 지점을 계속 노리고 있다.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을 방어하는 태도를 취할수록 상황이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사실상 국민의힘과 윤정부의 공동노선이 민주당에게 큰 이득인 셈이다. 애써 여러 번 공격할 필요 없이 한 번만 공격해도 동시에 둘을 타격하고, 국민의힘에게 끊임없이 부담을 실어주려는 행보다. 

같이 죽자고?
손 잡고 하락

이처럼 정부여당과 윤정부의 엇박자가 자꾸 나오는 가운데,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이관섭 국정기획 수석이 혼선을 방지하고자 꺼내든 것이 바로 핫라인 카드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그립을 강하게 쥐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당정의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겠다는 취지인데, 오히려 수직적으로 비칠까 우려스럽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겠다며 청와대를 박차고 나간 뒤, 용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최근 당정일체론을 두고 부정적인 평가가 쏟아진다. 당선 다음 날에는 “대통령은 당의 사무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당정의 분리 기조가 뚜렷했다. 

당정 일체론을 본격적으로 띄운 인물은 윤핵관의 핵심 중 한 명인 장제원 의원이다. 장 의원은 “당정이 충돌했을 때 부담이 됐다”며 “우리 역사가 증명한다”고 필요성을 언급했다. 친윤(친윤석열)계도 함께 뜻을 모았다. 비윤(비 윤석열)계는 당정일체론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당이 폭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벌써부터 당정 일체의 부작용이 심각한 편이다. 윤정부의 헛발질이 계속될수록 국민의힘도 위기가 지속된다. 

일심동체로 적극 방어에 나서고는 있지만 힘겨울 정도다. 대통령실의 책임 회피는 지금껏 자주 있던 일이다. 앞선 노동시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의 책임도 노동부에 떠넘겼다. 앞선 경우처럼 대통령실은 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별개의 의견들이 나온다. 이런 식의 해결은 국민의힘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당정 일체론은 과거 정부서도 자주 꺼낸 카드다. 김대중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이 집권여당 총재를 겸했다. 당 인사와 재정 심지어 공천권까지 쥐고 흔들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의 당정 일체론은 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되는 등 여러 폐단을 낳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정 분리를 실시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정치권의 심한 견제를 받았던 데다 정부 여당이 분열의 길까지 들어섰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 쉽지 않다는 예상 파다
승리 없이 자기 사람만 심기 목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런 모습을 지켜봤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결국 당정 일체론을 줄곧 내세웠다.

이 전 대통령은 표면상으로는 당 대표를 맡지는 않았지만 공천, 인사 등으로 당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특히 이명박정부 당시에는 친이(친 이명박)계의 득세 속에 친박(친 박근혜)계를 공천서 완전 배제하면서 공천 학살 논란이 일었다. 

내년 22대 총선은 윤정부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한 만큼 당정 일체론은 1년 뒤, 총선 승리 여부와도 직결된다.

현재까지의 상황대로라면,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차기 총선서 큰 희망을 걸기 어렵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당심이 곧 민심이라는 기조를 세웠기 때문이라는 것. 

현재의 민심으로는 윤 대통령 얼굴로 선거를 치른다고 해도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정가에선 총선서 대통령을 앞세우려면 50%가 넘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윤 대통령 지지율은 30%대까지 떨어져 있다. 김 대표가 자신했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 60%에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대신 부정 평가는 60% 가깝게 나온다. 

일각에선 아예 국민의힘이 총선 승리에 욕심이 없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할 바에 윤 대통령의 측근만 심으려는 계획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와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친윤 그룹이 당내 주류임은 확실하지만, 윤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몇 없다. 현재 윤 대통령은 서울서 지지율이 10%p 정도가 빠졌다. 

오히려
부작용

민심을 통틀어 지지세가 굳건한 지역은 TK(대구·경북) 뿐이다. PK(부산·울산·경남) 지역도 부정 평가가 과반을 넘는다. 지지율 상승을 이뤄내지 못하면, 윤 대통령의 측근 심기는 보수세가 강한 지역에만 한정될 수 있다. 당선 지역이 강남, 영남권에 한정된다는 소리다. 

한 정가 관계자는 “당정 일체가 잘 이뤄지면 신속하게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대통령실의 입장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당 지도부는 ‘아니다’라는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외연 확장과 지지율을 끌어올릴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당정일체? 막가는 김재원

김재원 수석 최고위원이 또 실책을 저질렀다. 앞서 김 위원은 전광훈 목사를 찬양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전 목사가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했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발언은 즉시 여론에 뭇매를 맞았는데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징계 목소리까지 나온다.

김기현 대표가 경고하긴 했지만 당 지도부는 김 위원을 징계하지 않을 예정이다. 본인이 사과했다는 게 이유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같은 친윤이기 때문에 징계 등이 내려지지 않는다는 비판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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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