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클럽 의혹’ 검찰 수사 급물살 내막

정영학 녹취록 공개 ‘발등에 불’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장동 의혹 핵심 증거로 꼽히는 ‘정영학 녹취록’ 전문이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로 연결되는 지점 외에도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로비 행위까지 드러났다. 50억 클럽 의혹에 대해 소극적 수사로 일관하던 검찰은 대외적 비판을 의식한 분위기다. 급작스레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소환조사에 나선 것이다. 검찰이 박 전 특검을 시작으로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향해서도 칼날을 들이밀지는 아직 미지수다.

‘50억 클럽’은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로비 의혹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까지 50억 클럽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을 제외하면 재판에 넘겨진 인물이 없다.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이는 박영수 전 특검과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곽 전 의원,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이다. 

지지부진
물밑으로

검찰은 소극적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한 이후 이들에 대해 핀셋 수사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수사1부(부장검사 김명석)는 최근 박 전 특검 등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 및 공여 혐의 사건을 배당받아 고발장을 분석하는 등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지난달 17일,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가 박 전 특검과 권 전 대법관 등 ‘50억 클럽’으로 지목됐던 이들을 공수처에 고발한 건이다.

홍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공수처 수사 대상에 속한다.


다만 공수처 안팎에서는 이미 검찰 수사가 진행됐던 점을 고려해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넘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수처는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춰 볼 때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해 초 ‘정영학 녹취록’에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박 전 특검을 불러 조사하고, 그다음 달인 2월 아들 퇴직금 등 명목으로 대장동 민간사업자 쪽에게 50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곽 전 의원을 구속 기소했다. 오랜 시간 동안 관련 사건을 진행해온 검찰에 사건을 넘길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검찰 수사가 대장동 민간사업자들과 당시 성남시청의 의사 결정 과정을 중심으로 한 배임 의혹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면서, 50억 클럽 관련 수사가 사실상 멈춰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수처가 직접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공수처가 사건 이첩을 요청하면 다른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이미 재판에 넘겨진 곽 전 의원 측은 “법원에서도 녹취록의 문제점이 확인됐다. 녹취록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해명되는 중”이라고 밝히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 전 총장과 최 전 수석은 “대장동 사업에 관여한 바가 일체 없다. 따라서 금품을 받거나 약속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녹취록은 그 내용이 사실과 다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사실 확인이나 검증 절차 없이 녹취록 또는 실명을 보도하는 것은 심각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양철한)도 녹취록만으로는 유무죄를 따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녹취록이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피고인 결백이나 공소사실이 입증되기는 어렵다. 객관적 증거가 중요하다”고 했다.

소극적 수사 비판 의식했나…박영수 급소환
홍선근 회장까지 소환…김수남·최재경 검토


다만 50억원 클럽을 수사하는 검찰의 소극적 태도를 두고는 ‘제 식구 봐주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곽 전 의원과 달리 구체적 돈거래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실명이 거론된 검찰 고위직 출신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박 전 특검과 홍 회장은 중앙지검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박 전 특검의 딸 박모씨의 주택법 위반 혐의 사건을 지난해 10월 중순 수원지검으로부터 넘겨받아 배당한 뒤 자료 검토 등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다.

박씨는 지난해 6월 화천대유가 보유하던 성남시 대장동 ‘판교 퍼스트힐 푸르지오(A1·2블록)’ 아파트(84㎡)를 비정상적으로 분양받은 혐의를 받는다. 주택법상 분양 계약이 해지돼 미분양으로 전환된 아파트는 공모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지만, 화천대유는 이런 절차 없이 박씨 등 2명에게 아파트를 분양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특검의 인척으로 알려진 대장동 분양대행사 대표 이모씨는 김씨로부터 109억원을 전달받아 이 중 100억원을 2019년경 토목업자 나모씨에게 전달한 데 대해 검찰은 이 과정에서 돈의 일부가 박 전 특검에게 흘러갔을 가능성도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9월 화천대유 이성문 대표와 박씨, 박씨와 같은 경위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일반인 1명 등 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중앙지검은 수원지검으로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아 지난 10월 중순 대장동 수사를 진행 중인 반부패수사3부에 배당했다.

홍 회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11월 홍 회장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홍 회장은 2019년 10월 김씨로부터 아내와 아들 명의로 총 50억원을 빌렸다가 약 두 달 뒤 이자 없이 원금만 갚은 혐의를 받는다.

소극적 태도
식구 봐주기?

수원지검은 같은 달 29일, 해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했다. 50억 클럽 관련 사건이 대장동을 수사하는 중앙지검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출소 후 대장동 사건에 대한 폭로를 이어갔다. 그는 최근 대장동 공판서 “김만배씨가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의 뇌물 수수 사건을 잘 봐달라고 김수남 전 검찰총장에게 얘기했다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씨가 (내게) 사업에서 빠지라고 할 때 ‘재경이형이나 수남이형도 네가 있으면 문제가 되니까 빠지라고 했다’”고도 했다.

검찰도 최근 남 변호사를 불러 권 전 대법관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다시 물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검찰은 남 변호사에게 “김만배씨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과 성남 제1공단 공원화 무효 소송 등 두 사건을 대법원에서 뒤집었다’고 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대법관에게 부탁해 사건을 해결했다는 취지의 전언 진술이다. 앞서 남 변호사는 2021년 10월 검찰 조사에서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2020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건이다. 2019년 9월 항소심은 이 대표에게 경기도지사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상태였다. 당시 현직이던 권 전 대법관은 이 대표 사건에 대한 유무죄 의견이 대법관 사이에서 팽팽히 엇갈리던 가운데 무죄 취지 의견을 밝히면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2020년 9월 퇴임한 권 전 대법관은 그해 11월부터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했는데, 이 같은 재판거래의 대가로 고문이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남 변호사가 언급한 성남시 제1공단 공원화 무효 소송은 성남시와 민간사업자 사이에 제기된 행정소송이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 대표가 제1공단 개발을 취소하고 공원화에 나서자, 시행사가 성남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었다.

당시 2심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2016년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성남시의 승소 판결을 냈다. 검찰은 남 변호사의 전언 진술의 진위와 더불어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 고문직에 오른 경위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간 끌기”
지적 부담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최 전 수석과 김 전 총장에 대해 지난해 7월 50억 클럽 관련 서면조사를 진행했다. 박 전 특검과 홍 회장, 권 전 대법관에 대해 자세한 사건 파악을 진행하고 있어 최 전 수석과 김 전 총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곧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도 50억 클럽에 대한 시간 끌기 비판을 듣고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박 전 특검과 홍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지난해부터 진행됐고 권 전 대법관은 조만간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가 답보 상태였다기보다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다 보니 50억 클럽 수사가 대외적으로 속도감이 없어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재경지검 검사도 “중앙지검 내부에서 50억 클럽에 대해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장동 수사팀도 이 대표 수사를 마무리지으면 순차적으로 현재까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검증하고 문제가 된다면 수사에 나설 것이다. 박 전 특검과 김 전 총장, 최 전 수석 등에 대해 아예 손을 놓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50억 클럽 멤버는 아니지만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역임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도 정영학 녹취록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윤 전 고검장은 2013년 4월까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그해 4월부터 12월까지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를 맡았는데, 김씨가 직전 성남지청장이었던 윤 전 고검장을 통해 어떤 사건을 해결했다는 내용의 대화가 오간다.

2012년 8월18일, 남 변호사는 김씨와의 대화 내용을 정영학 회계사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윤갑근 차장이 검사장인데, 검사장이 직접 계장(성남지청 계장)한테 전화하는 예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차장님도 (계장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얼마나(김만배씨가 윤갑근 전 지청장을) 달달 볶았으면 전화했겠어요. 그래서 그것도 그렇게 정리를 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 마무리해서 무혐의로 종결하겠다고 저한테 대놓고 얘기했으니까, 다시 안 부르겠다고”고 말했다.

즉, 김씨가 윤 전 고검장에게 수사를 무마해달라고 청탁했고, 윤 전 고검장이 압력을 행사해 무혐의 종결로 처분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 변호사는 “보니까 만배형이 고생을 많이 했네”라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이재명 마무리 후 속도 높일 듯
재판부, 누구의 말 더 신뢰할까

‘박근혜 청와대’ 정보를 입수해, 수사 등에 미리 대비했던 흔적도 보인다. 2014년 7월28일, 남 변호사는 김씨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과 만나 대화한 내용이라고 전하며, 청와대가 대장동 사업자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한다.

김씨가 “다 스톱하라”고 했다며, 남 변호사도 “휴대폰을 다 부수고, 아무도 만나지 말자”고 얘기했다. 정 회계사는 “저도 웬만하면 자료를 다 없애야겠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정영학 녹취록에서 언급된 이들은 연관성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씨도 최근 곽 전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회적으로 권력 있는 분들을 팔아서 얘기한 측면이 있어 죄송하다”며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에게 화천대유 직원들 인센티브를 부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허언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허언인지, 실체가 있는 혐의인지는 검찰 수사에 속도감이 붙으면 밝혀질 전망이다. 특히 제한된 기간의, 제한된 대화 내용이 담긴 만큼 녹취록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50억 클럽 멤버들에 대한 청탁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추가로 밝혀져야 한다.

정영학 녹취록 속 대화들이 일부 허언일 가능성 때문인지 검찰은 곽 전 의원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향후 50억 클럽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고 50억원의 성격 및 김씨 진술의 신빙성 등에 대한 법원 판단에 따라 다른 인물에 대한 수월한 수사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당초 지난달 25일 1심 선고기일로 정했다가 오는 8일로 변경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대장동 비리사건에서 중요한 부패의 한 축”이라고 규정하며 곽 전 의원에게 징역 15년형과 벌금 50억여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곽 전 의원은 “왜 재판받고 있는지 납득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곽 전 의원 아들에게 지급된 50억원의 정체를 두고 대장동 일당 등은 엇갈리는 진술을 내놨다. 재판부가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할만하다고 판단하는지가 관건이다.

검찰은 정 회계사의 녹취록을 토대로 곽 전 의원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녹취록에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씨가 정 회계사, 유동규 전 본부장 등과 대화하면서 ‘(곽 전 의원이)아들을 통해 돈 달라고 한다’고 말한 것,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전달할 방법을 논의한 상황 등이 담겼다.

남 변호사도 “곽 전 의원이 컨소시엄 무산을 막아줬다는 이야기를 김씨한테 들었다”며 검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다.

대장동 사건
중요한 한 축

곽 전 의원이 자신의 몫을 요구해 김씨와 다툼이 있었다는 서울 서초동 한 식당에서의 식사 자리도 재판에서 여러 번 다뤄졌다. 검찰은 당시 저녁 식사에서 곽 전 의원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나눠야지”라며 자신의 몫을 요구해 김씨와 다툼이 벌어졌다고 봤다.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도 “당시 둘 사이 언쟁이 있었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검찰은 이를 곽 전 의원과 김씨 사이에 50억원 약정이 사전에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근거로 내세웠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