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중대재해처벌법 1년의 기록

걸리고 걸려도…효과는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지난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주년을 맞았다. 현장은 악평 일색이다. 기업이건 노동자건 모두 법의 실효성을 지적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속에는 여야 기싸움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린 흔적이 가득하다. 선명성을 잃은 법은 누구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 정부는 대대적인 법안 개편을 천명했다.

지난 14일, 경기 화성시의 한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에서 철근 구조물이 무너져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다. 조립한 틀비계(이동형 발판·계단)를 이동식 크레인으로 옮기다 틀비계와 철근 더미가 부딪히면서 사고가 났다. 신호 업무를 보던 박모씨가 길이 40m의 철근 더미에 깔려 숨졌다.

낙제점
성적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도 어느덧 1년째지만, 산업 현장 속 사고는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종종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대상으로 지목된 기업의 또 다른 현장에서 비슷한 사고가 재현되는 사례도 발견된다. 지난 14일 사고가 발생한 장소는 요진건설산업이 시공을 맡은 공사장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요진건설산업은 지난해 2월8일 경기 성남의 한 건설공사 현장에서 노동자 2명의 추락사고를 방지하지 못했던 전력이 있다. 당시 사건 역시 공사금액이 50억원 이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당시 요진건설산업은 ‘제1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건설사’라는 오명을 썼다. 이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때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4일 사고 직후부터 진상조사를 진행 중이다.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위반 여부 역시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가 두 차례나 발생한 만큼, 강도 높은 조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요진건설산업은 업력이 47년에 달하는 중견건설업체다. 시공 능력 역시 70위권에 위치해 있다. 이로 미뤄봤을 때 사고 원인을 시공사의 영세함, 기술 부족 등으로 일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더구나 5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은 내년부터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일각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현장 사고 발생 억제 효과가 전무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건설현장 등 중대재해 주요 발생 산업재해 관련 지표는 법안 시행 전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483건이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의 492건 대비 1.83% 감소하는 데 그친 수치다. 사망자는 510명으로 전년 502명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늘어나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사건의 처벌이 늦어지는 점 역시 문제다. 시행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처벌 수위가 확정된 관련 사건이 없다. 

시행 1년째인데…산업재해사고는 ‘그대로’ 
부실 입법 탓에 모호한 조항…실효성 논란


이달 중순을 기준으로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로 판단한 사고는 200건이 넘는다. 이 중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33건이며, 검찰은 11건에 연관된 22명을 기소한 상황이다. 법원은 아직 선고를 내리지 않았다. 

중대재해 발생 1호 사건으로 알려진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고나 최초 기소 사건인 두성산업 집단 독성 감염사건 등은 지난해 초 발생했음에도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삼표산업 사건은 수사대상이 기업 오너까지 확대되면서 아직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두성산업 사건 재판은 위헌법률심판을 진행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이전부터 법 자체가 너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구체적인 법 적용 실태를 파악하려면 시행 초반 처벌 사례를 이정표 삼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반면 처벌 수위는 과잉처벌 논란이 일 정도로 높은 편이다.

현행법상 중대 재해에 책임이 있는 사업주는 징역 1~10년, 벌금 10억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상당한 처벌 수위를 가진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야 할 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노동계와 기업들은 삼표산업·두성산업 사건 처벌 결과가 가늠자가 돼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답보 상태가 지속되면서 현장은 점차 혼란에 빠지는 모양새다. 기업들과 노동계는 각기 반대쪽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한계를 비판하고 있음에도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입을 모은다.

기업들은 “불명확한 법이 불필요한 규제만 늘린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처벌수위 강화가 핵심인데 사건 처리(조사·수사·재판) 과정이 지나치게 길어 법 시행이 유명무실하다”는 주장이다. 

조악한
완성도

현장의 볼멘소리가 거세지는 가운데 가늠자의 등장 시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성 때문이다. 현재 두성산업 사건에서 진행 중인 위헌법률심판 결과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을 전제로 한 모든 재판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법원이 두성산업 측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관련 재판은 모두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중단된다.

설령 법원이 이를 기각한다고 해도,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은 헌법재판소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두성산업이 기각 시 헌법재판소에 직접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낮은 실효성과 모호한 규정을 담아 시행된 것은 입법 과정에서의 정치권 갈등 탓이다. 찬반 공방이 이어지면서 자행된 ‘누더기 입법’이 법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트렸다.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논의가 본격화된 시기는 2020년 말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은 법안 심의 자체를 거부했다. 과반 의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은 법안을 단독 통과시킬 수 있었음에도 소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 산재 사망사고 유족들의 분노를 샀다. 

입법 논의는 수차례 공전을 거치다 해를 넘겨서야 진전을 보였다. 하지만 겨우 통과된 법안은 이미 원안에서 크게 후퇴·수정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법안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3년의 유예기간을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5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 제외’ 등의 여야 합의 내용도 그대로 들어갔다.

아울러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 부과’ 조항은 징역 하한선이 당초 정부안보다도 낮아졌다. 벌금 하한선은 아예 사라졌다. 노동계가 “처벌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다”고 반발한 배경이다.

개편 시사
노조 폭발?

또 정치권은 정작 심도 있는 논의가 요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이를 테면 법 제4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는 사업주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조항으로 꼽히는데도 그 모호성을 해결하지 못한 채 통과되면서 여론의 공분을 샀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사업주들은 각 호에 명시된 조치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추상적인 내용만 가득한 해당 조항에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세울 수 없었다. 이에 이들은 법 준수보다도 형사처벌을 최대한 면하는 것을 목적으로 관련 예산을 편성·집행하기 시작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지속되면서 출범 이전부터 관련 제도 개선을 시사했던 정부의 움직임에 점차 탄력이 붙는 형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이던 지난해 4월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며 “(하위 대통령령을) 촘촘하게 합리적으로 설계해 기업 경영에 큰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출범 직후에는 구체적인 개정 로드맵도 밝혔다. 우선 정부 시행령부터 손본 뒤, 2024년 총선을 기점으로 법률안 개정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시행령 개정으로 급한 불을 끈 뒤, 정부 입장을 반영한 법률 개정안을 추후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시행령 개정 논의는 올해 상반기 안에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발족했다. 이들은 오는 6월까지 중대재해처벌법 개편방안을 논의한다.

노사, 정반대 해결책 제시…정부는 기업 편? 
총력 투쟁 결의한 노동계, 폭발 뇌관 될 수도

노동계와 기업이 법안의 개선 방향을 서로 정반대로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기업 요구에 맞춘 법 개정을 시사하고 있다. 김남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정책과 사무관은 지난 18일 열린 관련 포럼에 참여해 정부가 구상한 법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김 사무관에 따르면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위를 낮추는 대신 기업의 자율예방 체계 형성을 지원할 계획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2026년까지 ‘자기규율’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안전수칙을 ‘지켜야 해서’ 준수하는 것이 아닌, ‘지키고 싶기 때문에’ 준수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노동계의 반발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한 목소리로 반대해왔다. 민주노총에 비해 온건하고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국노총조차도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손질’ 예고에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더군다나 현재 한국노총 지도부는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을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한국노총은 지난 대선 당시 김동명 위원장 체제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당시 후보)와 정책 협약을 맺고 이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연임에 성공했다. 김 위원장의 임기가 3년 더 늘어나면서 정부가 계획한 중대재해처벌법 개편 시기가 모두 김 위원장 임기 안에 들어오게 됐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서 한국노총을 ‘상시적 투쟁기구’로 즉각 개편하겠다”는 핵심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양측의 갈등 봉합이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예견되는 가운데, 정부의 본격적인 중대재해처벌법 개편 시도가 시작되면 갈등이 더욱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선거 유세 중 “윤석열정권의 노동탄압, 노동 말살 폭주가 거세지고 있다. 탄압에는 강한 투쟁으로, 억압에는 더 큰 저항으로 투쟁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해결은
언제쯤…

한국노총은 일단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정부의 독단이 지나칠 경우 참여를 철회하겠다는 전제를 깔아둔 상태다. 이대로라면 양측이 법률 개정안 위에서 진퇴를 거듭할 공산이 크다. 이때 ‘누더기 입법’이 재현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순탄치 않은 길 위에서 첫돌을 맞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앞날이 더욱 비관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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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