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국타이어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이어 검찰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계열사의 물품을 비싼 값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부당 지원을 했다는 게 공정위와 검찰의 공통된 판단이다. 사정기관의 칼끝은 어느새 오너 일가를 향하고 있다. 계열사 부당 지원이 오너 일가의 주머니를 넉넉하게 만든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지난달 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이하 한국타이어)와 한국프리시전웍스(옛 MKT)에 총 80억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회사별 과징금은 한국타이어 48억1300만원, 한국프리시전웍스 31억9000만원이다.
사정기관
정조준
한국프리시전웍스는 2011년 한국타이어에 인수된 타이어몰드 제조업체다. 타이어몰드란 타이어의 패턴, 디자인, 로고 등을 구현하기 위한 틀을 말한다. 이 회사는 2019년 기존 MKT에서 현 상호로 변경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한국프리시전웍스를 인수한 직후부터 2013년까지 기존 단가 체계를 유지한 채 거래물량을 늘렸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145억원이었던 한국프리시전웍스 연매출 규모가 2012년부터 2년간 200억원에 근접하게 된 배경이다.
다만 발주 물량을 한국프리시전웍스에 몰아준 한국타이어의 결정은 비계열사의 불만을 야기했다. 이에 한국타이어는 2014년 2월부터 비계열사에 대한 발주 비중을 늘리고, 한국프리시전웍스에 신단가 정책을 적용했다. 한국프리시전웍스로부터 매입하는 몰드에 판관비 10%, 이윤 15%를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한국타이어는 동종업계는 물론 계열회사에도 활용하지 않던 신단가표를 도입하면서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거쳐 목표 매출이익률(40%) 이상이 실현되도록 설계했다. 이를 통해 신단가표 상 제조원가를 실제 제조원가보다 30% 이상 부풀려 반영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단가표 적용으로 가격인상 폭이 큰 유형의 몰드는 주로 한국프리시전웍스에 발주하고, 상대적으로 가격 인상 효과가 작은 몰드는 비계열사에 발주하는 발주정책을 마련했다.
이 같은 지원을 토대로 한국프리시전웍스의 영업이익률은 2010~2013년 평균 13.8%에서 2014~2017년 32.5%로 높아졌다. 2014년 43.1%였던 시장점유율은 2017년 55.8%로 상승했다.
황원철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한국프리시전웍스의 매출이익률은 42.2%에 달했는데, 이는 주요 경쟁사 대비 약 12.2%포인트 높은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방침이 전해지자, 한국타이어 내부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새나오고 있다. 지난달 11일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부는 성명을 발표하고 부당이익 환수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노조는 “2022년 임금 인상 5.6%를 요구하는 임단협에 국한하지 않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투쟁으로 확장해나가겠다”며 “현재 드러난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 법적 검토를 통해 부당이익 환수와 더불어 경영진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키워서
챙겼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한국타이어의 계열회사 부당 지원 행위는 최근 검찰 조사로 확대된 형국이다. 지난 24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이정섭)는 한국타이어, 한국프리시전웍스, 한국앤컴퍼니(지주회사) 등 한국앤컴퍼니그룹 계열회사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 수사는 공정위의 고발에 따른 후속 조치로, 부당 지원이 타이어몰드 시장의 질서를 파괴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사실상 첫 번째 제재라는 점에서 주목도가 남다른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고발한 지 15일 만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올해 말까지라는 점이 검찰의 신속한 사건 개입의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검찰의 칼끝이 한국타이어 오너 일가를 향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압수수색 대상에는 조현범 한국타이어그룹 회장 집무실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프리시전웍스를 통해 오너 일가가 부당한 사적 이익을 취득했는지 여부에 수사 초점을 맞출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심상치 않은 공정위·검찰 칼날
두둑해진 조씨형제 주머니
검찰은 압수물을 분석해 신단가 정책 실행 과정에 조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지시·관여했는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조 회장의 구체적인 가담 정황이 확인될 경우 검찰은 고발요청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다.
검찰이 오너 일가를 정조준한 건 한국프리시전웍스가 오너 일가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든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한국프리시전웍스 최대주주인 한국타이어는 지분 50.1%를 보유 중이다. 나머지 49.9%는 조 회장과 조현식 한국앤컴퍼니그룹 고문이 각각 29.9%, 20.0%를 나눠 갖는 구조다.
한국프리시전웍스는 그룹 차원의 부당 지원에 힘입어 높은 수익성을 기록했고, 벌어들인 이익은 인수 당시 외부에서 끌어온 자금을 상환하는 데 쓰였다. 그 결과 한국프리시전웍스는 2015년 차입금 348억5000만원을 모두 상환하는 데 성공했다.
차입금이 정리되자, 본격적으로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2016년 82억6000만원(배당성향 52%), 2017년 134억원(배당성향 51%) 등 2년간 총 217억원을 배당했고, 조 회장은 65억원, 조 고문은 약 43억원을 배당받았다.
사명을 한국프리시전웍스로 바꾼 이후에도 배당은 계속됐다. 2020~2021년 2년간 한국프리시전웍스는 주주들에게 164억원을 배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분율을 토대로 환산한 배당금 수령액은 ▲한국타이어 82억원 ▲조 회장 44억원 ▲조 고문 32억원 등이다.
한국타이어의 일감몰아주기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 예로 2020년 한국타이어는 공정위로부터 계열사 중 절반에 달하는 13개 계열사가 규제 대상회사로 지정되기도 했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계열사의 평균 지분율은 47.3%로, 당시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가장 높았다. 오너 일가가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도 6곳으로 가장 많았고, 오너 2세의 평균 지분율도 당시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가장 높았다.
한국타이어의 내부거래 비중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오너 일가가 지분 60%를 모유한 한국네트웍스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내부거래율이 71%에 달한다. 내부 일감이 아니면 영업활동에 커다란 제약이 가해지는 구조인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나마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채무보증 문제는 지금껏 크게 부각되지 않은 상태다. 계열사 대부분이 총수 일가의 개인회사로, 무려 23개에 달하지만 복잡하게 얽혀있지 않고 단순한 구조인 덕분이다.
재계에서는 향후 한국타이어에 대한 사정기관의 규제 압박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부터 대기업집단에 편입된 만큼,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주목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