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마을’ 단독보도 그 이후…

끝나지 않은 소년의 싸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껑충하게 키가 큰 아이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지난 1월 취재진 사이에서 어렵게 입을 뗐던 아이는 10개월 만에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자신이 평생 살아온 ‘집’을 상대로 한 아이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16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은평구청 앞에서 시민단체 고아권익연대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고아권익연대는 보육시설인 꿈나무마을과 당시 운영 주체였던 마리아수녀회에 대한 은평구청의 철저한 감사를 요구했다. 꿈나무마을 법인 취소, 시설 폐쇄를 요청하는 의견서도 전달했다. 

고아권익연대 
“전수조사해야”

지난해 8월 박지훈(가명)군은 2007년 3월부터 2019년 3월까지 꿈나무마을에서 거주했다. 당시 꿈나무마을(옛 소년의집)에 근무했던 보육교사 3명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지훈군은 성○○ 교사, 장○○ 교사, 정○○ 교사에게 시설에 거주하는 동안 상습적인 폭행 등 오랜 시간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10월 1344호 ‘<단독> 매질에 정신병원까지…천주교 산하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고발’ 기사(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31702)를 통해 지훈군의 사연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고소장에는 지훈군이 꿈나무마을에 거주하던 12년 동안의 생활이 빼곡하게 담겨있었다. 그는 3명의 교사에게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를 당한 것은 물론 정신병원에도 강제로 입원당했다고 주장했다. 

지훈군의 변호를 맡은 한강법률사무소 유정화 변호사는 당시 고소장에 “피고소인의 범행 당시 고소인이 처한 미성년자 고아라는 열악한 처지와 고소인을 양육‧보호해야 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피고소인의 지위, 고소인이 입게 된 상해와 심적 충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고소인이 저지른 범죄 행위는 문명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이고 야만적인 범죄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소인의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는 ‘소년의집’으로 설립돼 서울시립 양육시설로 취약 아동 보호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왔으나 존폐 위기에 직면한 꿈나무마을의 존립 이유를 근본적으로 의심케 한다는 점에서 비난성이 극히 높으며 특별히 엄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8월 고소 이후 1년3개월
‘아니라더니…’ 전원 검찰 송치

<일요시사> 보도 이후 꿈나무마을과 부산 소년의집 등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 출신의 아동학대 피해 제보가 잇따랐다. 특히 가출을 반복한 서준(가명)군이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 위치한 마리아수녀회 삼가면 수녀원으로 보내져 농장일을 했다는 주장(1352호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의혹 ‘삼가면 힐링농장’의 비밀’, 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33059)이 나오면서 같은 일을 겪었다는 제보자가 여러 명 나타났다.

여기에 몇몇 제보자를 중심으로 수녀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일었다. 과거 수녀가 아동의 보육을 담당했던 시절 아동학대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 해당 내용은 1352호 ‘꿈나무마을 보도 이후…“수녀님도 때렸다” 증언 나왔다’(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32474) 기사를 통해 보도됐다. 

마리아수녀회는 <일요시사> 보도 이후 두 번의 입장문을 내놨다.

첫 번째 입장문에서 “마리아수녀회는 거짓되고 의도적인,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일방적이며 왜곡된, 진실을 외면한 자극적인 이슈로 몰아간 기사 내용에 대해 매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거짓 제보로 인한 어떠한 오해나 편견, 상처들이 증폭되는 행위를 자제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요시사>의 추가 보도, MBC <PD수첩>의 보도 등이 이어지면서 지난 1월30일 아동학대 의혹에 대해 사과하고 아동보육 사업에서 철수하겠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당시 입장문에서 마리아수녀회는 “아동학대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만으로도 참담함과 당혹감을 느낀다”고 했다.

보도 이후
사과문 내

이어 “긴 시간 동안 혼자 아픔을 삭이며 감내해왔을 피해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수녀로서, 또 엄마로서 아이에게 아픈 시간을 오래 보내게 해서 정말 미안하고, 잘못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며 “알로이시오 신부로부터 시작된 가장 가난한 아동을 돌보는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덧붙였다.

잠잠해지나 했던 마리아수녀회 아동학대 의혹은 최근 지훈군이 고소한 사건의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서 다시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서울경찰청 아동학대수사2팀은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혐의로 세 보육교사를 전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해 8월 지훈군의 고소 이후 1년3개월 만에 이들이 검찰에 넘겨진 것이다. 

경찰 수사 결과 통지서에 따르면 성모씨는 2011~2016년 지훈군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동급생 앞에서 그를 ‘지능이 낮은 아이’ ‘저능아’ 등으로 부르며 정서적으로 학대했다. 또 ‘투명인간’ 제도를 만들어 지훈군에게 말을 시키지 않고 아는 척 하지 못하도록 해 따돌림을 시키는 등 상습적인 정서적 학대 행위를 한 혐의를 인정했다. 

2012년 지훈군이 초등학교 6학년인 시절에는 뺨을 10대가량 때리고 휴대폰으로 머리를 5회가량 내리 찍어 피가 나게 했다. 지훈군에 따르면 당시 성씨에게 맞아 생긴 흉터가 여전히 머리에 남아 있다. 휴대폰을 이용한 폭행은 2013년에도 계속됐다. 지훈군을 몰아붙이며 뺨을 때리고 휴대폰으로 온몸을 수십회 내리 찍어 피가 나게 한 것이다. 

경찰은 성씨의 ▲나무 몽둥이로 지훈군의 엉덩이를 때려 피부가 찢어지고 곪아 터지는 등의 신체적 학대 행위 ▲지훈군의 얼굴을 때려 귀 왼쪽 연골이 영구 손상되는 등의 신체적 학대 행위 ▲‘앉았다 일어났다’ 등의 단체 체벌로 인한 정서적 학대 행위 ▲다른 아이들로 하여금 지훈군을 때리게 하는 등의 정서적 학대 행위 ▲지훈군을 수시로 방에 불러 마사지를 시키는 등의 정서적 학대 행위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일부 무혐의
증거 불충분

장모씨는 2016년 친구와 다툰 지훈군에게 ‘오토바이 자세’를 취하는 벌을 주다가 그가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걸레봉으로 엉덩이를 10~30회 때렸다. 또 이를 피해 도망치는 지훈군을 쫓아가 플라스틱 재질의 빗자루로 얼굴과 머리, 손 등을 수십회 때린 사실이 인정됐다.

지훈군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 1회가량 기마 자세, 엎드려뻗쳐 등의 벌을 시키는 등 상습적인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했다는 부분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다. 

정모씨는 2011년 초등학교 5학년인 지훈군이 간식을 몰래 먹었다는 이유로 두산동아 전과를 두 손으로 들게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1만회가량 시키는 등 정서적 학대 행위를 했다. 또 서열 정리를 위해 동급생이 보는 앞에서 지훈군에게 다른 동급생과 싸우도록 지시하는 등 정서적 학대 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됐다. 

2011~2013년 지훈군의 발바닥을 10~100회 때리거나 나무 몽둥이로 엉덩이나 발바닥, 팔꿈치, 머리 등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신체적 학대 행위, 주 1~2회 12명가량의 아이를 좁은 화장실에서 어깨동무를 하도록 시키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도록 한 정서적 학대 행위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없음’으로 판단했다.

신체·정서적 학대 일부 인정
변호사 “불기소 부분 아쉽다”

유정화 변호사는 “이번 경찰의 송치 결정은 응당 받아야 할 죗값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 불기소된 부분의 경우 증거불충분으로 처리된 점이 상당히 안타깝고 아쉽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세 사람 모두 ‘상습적으로’ 학대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습의 요건을 수사기관이 충분히 밝혀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제2, 제3의 학대 피해자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향후 검찰은 이들의 상습적인 학대를 충분히 검토하고 인정해서 반드시 가중처벌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재판 단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이 사건은 인권 사각지대에서 학대받고 있을 보이지 않는 고아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도록 옳은 결론이 내려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사회의 어른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훈군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마리아수녀회가 여전히 꿈나무마을에 간섭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울에서 철수했으면 한다”며 “마리아수녀회가 소유하고 있는 주변 땅도 팔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훈군의 피해 사실을 알고 법적 지원을 해온 고아권익연대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온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지자체의 조속한 대처를 촉구했다. 고아권익연대는 “몸과 마음이 바르게 성장해야 할 시기에 지속적으로 가해진 다양한 방식의 학대 행위로 인해 지훈군은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혼자 방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육교사 3인과 당시 시설운영 법인이었던 마리아수녀회의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을 요구한다”며 “시설에 대한 감사와 관리 책임이 있는 서울시와 은평구가 꿈나무마을 시설 폐쇄에 나서야 한다. 나아가 마리아수녀회의 법인 허가도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3년 전 10여건의 학대 사건이 일어나 시설 폐쇄와 법인허가 취소가 이뤄진 충북희망원의 선례를 언급했다.

“상습적”
검찰은?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의혹 보도 이후 고아권익연대로 많은 제보가 들어왔다. 지훈군의 피해 사례 외에도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의 일을 당한 아이가 많았다. 이번 경찰 송치는 마리아수녀회와 꿈나무마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경찰이 송치한 사례는 지훈군이 당한 일 중에서 그나마 ‘신사적’인 것만 고른 것”이라며 “민관 합동으로 팀을 구성해 지훈군 일뿐만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일까지 전수조사해 피해 아동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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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