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이태원 참사 ‘유족 미동의’ 희생자 명단 공개 파장

국민의힘 “2차 가해…법적 대응 필요” 야권서도 비판 목소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시민 언론 <민들레>가 지난 14일, 이태원 유가족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파장이 일고 있다.

이날 <민들레>는 155명의 희생자 명단을 포스터 형식으로 공개했다. 오후에는 10여명의 공개를 원치 않는 유가족들 요청으로 비공개 처리해 143명의 명단이 공개돼있다(15일 오전 8시 기준).

이들은 “지금까지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부 당국과 언론은 사망자들의 기본적 신상이 담긴 명단을 국민에게 공개해왔다”면서도 “그러나, 이태원에서 단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를 걷다가 느닷없이 참혹한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명단 공개 배경에 대해 “희생자의 실존을 느낄 수 있게 최소한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가족 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며 “공개를 원치 않는 유족은 이메일로 연락주시면 반영토록 하겠다”고도 했다.

이번 명단 공개 논란의 핵심은 과연 해당 매체가 유족들의 동의를 받았는지의 여부다. 전체 유족들의 공개 여부에 대한 개개인의 의사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한꺼번에 희생자 전원 명단이 공개됐다. 


하지만 해당 매체서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밝힌 만큼 동의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기자협회(회장 김동훈)서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에 따르면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는 만큼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해당 매체 이명재 발행인은 “몇 개의 숫자로 쉽게 이야기될 수 있는 그런 죽음들이 아니다. 최소한, 도대체 우리가 누구를 추모해야 되는지, 그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출발”이라고 말했다.

희생자 명단이 공개되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대응 TF’는 성명을 통해 “유가족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으로서 희생자 유가족의 진정한 동의 없이 명단을 공개하거나 공개하려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희생자 명단이 유족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날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유족 동의 없는 일방적 명단 공개에 분노한다”며 “유족의 아픔에 또다시 상처를 내는 것으로 반드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이재명 방탄’을 위해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이용하는 무도한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어떻게든 유가족들을 모아서 뭔가 정치적 도모를 하려는 그런 사람들이 저런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유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는 분명한 2차 가해”라고 못 박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유족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무단 공개는 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권은 물론 야권 일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SNS를 통해 “명단 공개는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다. 참담하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 대표는 “희생자 명단 공개는 정치권이나 언론이 먼저 나설 것이 아니라,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라고 몇 차례 말씀드린 바 있다”며 “과연 공공을 위한 저널리즘 본연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명단 공개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리고 유가족의 상처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많은 언론과 국민들께서 함께 도와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도 “죽음의 정치를 그만하라”고 비난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더불어민주당은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며 민들레의 명단 공개가 적절치 못했다는 입장을 냈다.

이날 안호영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취재진과 만나 “희생자 명단 공개와 제대로 된 추모 절차가 필요하다”면서도 “유가족 동의가 선행돼야 하며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안 대변인은 “명단이 공개되고 사진도 공개되면서 제대로 된 추모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갖고 계신 유가족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명단 공개에 힘을 실었던 바 있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으로 몇 명의 유가족이 명단 공개를 원하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지난 9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이름도, 영정(사진)도 없는 곳에 국화꽃 분향만 이뤄지고 있다”며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하고 애도하느냐”고 명단 공개를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당연히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된다”는 조건을 달면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촛불을 들고 다시 해야겠느냐”고도 말했다.

앞서 지난 8일,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6명 희생자, 유족 동의를 받아 (명단을)공개해야 한다”며 ‘명단 공개론’을 제기했던 바 있다.

최 전 의원은 “찝찝하다. 애도하라는데 이태원 참사에서 156명이 희생됐다는 것 외에 아는 게 없다”며 “슬픔에 장막을 쳐놓고 애도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희생자 이름이나 나이를 알고 영정 앞에서 진짜 조문, 애도하고 싶다. 유가족께 기성세대의 한 명으로 사과하고 위로 드리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par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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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잘못된 판단이 불러온 후폭풍은 엄청났다. 생전 걸음할 일 없다고 생각했던 경찰서를 드나들었고 송사를 치르느라 법정을 오갔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법원에서 날아온 문서 한 장에서 시작됐다. 어떤 실수는 손쓸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시에는 실수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갔다가 뒤늦게 알아채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든 상황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수습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계약이 이뤄진 상태라면 더더욱 원상복구가 쉽지 않다. 김모씨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놀라서 해줬다가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7월 김씨는 경기도 광주의 한 빌라에 거주할 목적으로 전세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2017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2년, 보증금은 2억200만원으로 했다. 해당 빌라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김씨가 전세 계약을 맺은 후 임대인이 바뀌었다. 문제는 새로운 임대인이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씨는 전세 계약 기간 만료 후인 2019년 9월 해당 빌라에 임차권등기를 마쳤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임차주택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면서 이사할 수 있는 제도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차주택에 거주할 때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로도 대항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 퇴거하게 되면 이사하는 곳으로 주소를 옮겨야 하니 임차권등기명령을 통해 대항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차권등기명령은 등기부등본에 기재되는 만큼, 강한 대항력을 가진다”고 부연했다. 다시 말해 등기부등본에 임차권등기명령이 기재돼있다는 것은 세입자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지만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김씨가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서 운영하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에 가입해 뒀다는 사실이다.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은 전세 계약이 종료됐을 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전세보증금을 HUG가 대신 돌려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HUG가 임차인에게 먼저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청구하는 방식이다. 김씨는 2019년 10월 HUG로부터 전세보증금 전액인 2억200만원을 받았다. 전세 살다 보증금 못 받아 전세보증금 보험으로 구제 이후 김씨는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했고 해당 빌라와 관련한 일은 새카맣게 잊고 지냈다. 그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HUG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았으니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2019년 이후 5년여 동안 해당 빌라와 관련해 김씨에게까지 영향이 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사이 해당 빌라의 주인이 바뀌는 등 소유권 변동이 일어났지만 김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 그러다 지난해 11월 김씨에게 임차권등기명령 취소 신청서가 날아들었다. 김씨는 “법원에서 문서가 송달돼 크게 당황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려고 문서에 기재된 번호로 연락했더니 7년 전 전세로 살았던 빌라의 집주인이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집주인이 임차권등기를 말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갑자기 법원에서 종이가 날아오고 소송을 제기한다는 말에 덜컥 겁을 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임차권등기 말소를 위한 서류를 직접 떼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사 사무실에 가져다줬다고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20일 김씨가 해당 빌라에 걸어놨던 임차권등기가 말소됐다. 해당 빌라에 김씨가 행사할 수 있던 권한이 소멸한 것이다. 동시에 집주인으로서는 등기부등본이 깨끗해지는 효과를 얻게 됐다. 이렇게 되면 세입자를 구하는 일도 수월해진다. 줄줄이 꼬였다 이때 김씨가 간과한 사실은 HUG의 존재였다. 김씨가 해당 빌라의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임차권등기를 말소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세입자가 돈을 받은 뒤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주는 게 실제 일반적인 절차다. 이 과정에서도 공인중개사 등 부동산 전문가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전까지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김씨는 전세보증금을 HUG에서 받았다. HUG 입장에서는 해당 빌라의 집주인에게 2억200만원 즉, 돌려받아야 할 돈이 있는 상황에서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으로 말소해버린 것이다. 동시에 김씨가 배당 순위에서 밀리게 되면서 HUG는 대위변제한 보증금을 회수할 방법이 요원해졌다. 여기에 은행, 지자체 등 후순위 채권자들도 있는 상황이다. 김씨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HUG 경기관리센터(이하 HUG 경기센터)는 “모든 임차인은 HUG에 대위변제를 받으면서 대위변제증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가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을 당시 작성한 대위변제증서에는 ‘본인(김씨)은 HUG가 대위변제금 및 제반 비용을 회수할 때까지 HUG의 동의 없이 주택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겠으며 본인의 주택임차권등기 말소로 인해 HUG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할 것을 확약한다’는 문구가 기재돼있다. HUG 경기센터는 “HUG는 대위변제 물건을 경매에 넘겨서 배당을 회수하는데 임차권등기명령을 무단 말소하면 경매에서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HUG에 연락했으면 대신 응소해 임차권등기를 지켰을 텐데 당시 김씨가 연로해 이런 생각을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낙장불입 그러나… 김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집주인이) 내가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았기 때문에 임차권등기를 말소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본인(집주인)이 손해를 보고 있다. 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나를 속였다”며 “내 입장에서는 전세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주인 말에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김씨가 집주인과 해당 빌라의 채권자들에게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피고(집주인)가 원고(김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의적인 기망행위를 했다거나 그로 인해 김씨가 신청 취하 행위 자체에 착오에 빠져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김씨의 “속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현재 김씨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HUG 경기센터는 대위변제한 보증금 회수를 위해 일단 김씨의 부동산 등에 가압류를 걸어둔 상태다. 그러면서도 김씨의 상황을 참작하고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임차권등기 무단 말소 무효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HUG 측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한번도 진행한 적 없는 소송이라고 한다. “억울하다” 법원 인정 안 해 HUG, 구제 위해 소송 제기 HUG 경기센터는 “그동안 임차권등기가 말소되면 복구할 가능성이 없는 것(낙장불입)으로 보고 임차인 손해배상 청구로 업무를 진행해 왔는데, ‘임차권등기 말소 무효 소송을 통해 원상복구 가능성이 있다’는 법률 자문이 있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송이 HUG의 승소로 종결돼 임차권등기가 부활하면 김씨에 대한 구제가 가능하다. 이때 김씨는 소송 실비만 부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HUG 경기센터가 제기한 소송은 김씨에게 해당 빌라에 걸려 있던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HUG가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만큼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도 HUG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김씨의 임차권등기 말소 행위는 무효라는 게 골자다. HUG 경기센터는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 말소하면서 채권 선순위로 올라온 은행, 세무서, 지자체 등이 김씨의 억울함을 헤아려 대승적인 차원에서 응소하지 않길 기대하고 있지만, 이들은 김씨가 별도로 제기했던 소송에 모두 대응한 전력이 있어 HUG가 제기한 소송에도 응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HUG가 김씨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대신 구제를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이들 후순위 채권자들도 집주인의 허위 소송에 안타깝게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한 김씨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하기를 바라는 입장”이라고 전해왔다. 실제 김씨가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은행 한 곳은 대응하지 않았다. 순간 실수 인정될까? 김씨는 집주인과 채권자들을 상대로 한 소송의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HUG와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법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일이 벌어지고 HUG로부터 연락을 받고 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며 “재산은 (가압류로) 묶였고 소송비용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