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⑫수백조원과 80만원 아이러니

요람은 있고 무덤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적게 태어나고 많이 죽는 ‘자연 감소’ 상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정부는 물론 국민의 관심은 오로지 ‘탄생’에 쏠려 있다. 분기별 출산율에 한탄하고 OECD 순위를 걱정한다. 그 사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출산율과 반비례해 사망자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탄생은 국가의 영역으로 들어온 반면, 죽음은 여전히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애초에 죽음에는 차별이 있는 거지. 왜 죽음이 공평하나? 모든 죽음이 형태가 다 다르고 그 모양새가 다른데. 누가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죽으면 평등하다’ 여기서 모티브가 된 것 같은데, 죽으면 숨 떨어져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외에는 동등한 게 하나도 없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어요?” <강신몽 가톨릭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명예교수>

인구 감소
데드크로스

지난 9월16일 경기 일산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만난 백발의 노 법의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의문을 표했다. ‘죽음의 격차’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진심으로 궁금한 모습이었다. 평생 법의학자로 살면서 다양한 사체를 마주해온 강 명예교수에겐 ‘사람의 죽음에는 격차가 있다’는 말이 너무나 당연한 명제인 듯했다. 

지난 8월30일 제주도에서 만난 강현욱 제주의대 교수는 “학생에게 ‘세상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죽음’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죽음의 격차’라고 해서 놀랐다”며 “죽음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해석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 ‘죽음 이후의 장례’ 등에 격차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망원인 통계’는 여러 의미에서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사망자 수가 집계 이후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섰고,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통계 수치로 뚜렷하게 증명된 셈이다. 그러면서 인구의 자연 감소가 시작됐다. 


지난해 사망자 수는 31만7680명으로 1983년 집계 이래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5030명에 이르면서 통계에 영향을 미쳤다. 인구 1000명당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조사망률은 이미 2009년부터 증가세를 보였다. 통계청은 출산율 하락과 맞물리면서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 정책은 출산율에 방점이 찍혀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81명에 머물렀다. 집계 이래 최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1위다. 합계출산율이 0명대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2017년 30만명대로 주저앉은 뒤 3년 만에 20만명대를 기록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쏟아부은 예산을 생각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을 막기 위해 약 380조2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단순 계산으로 1년에 25조원 이상 쓴 셈이다. 문제는 줄어드는 탄생과 반비례해 늘고 있는 죽음에 대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죽음 이후는 오로지 개인 영역
고독사 예방 정책 걸음마 수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정책으로 조절할 수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 국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축소해서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최민성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은 “국가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을 죽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죽음의 원인을 분석해 같은 이유로 사람이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법의관은 2015~2021년 국과수 현장검안 사업에서 ‘가난한 죽음’을 숱하게 목격한 바 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죽음의 순간-죽음 이후 등에서 정부가 그나마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과정과 순간 사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고독사, 이미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노인 극단적 선택률 등에는 걸음마 수준이긴 하지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2018년 1월4일 ‘서울특별시 고독사 예방 및 사회적 고립가구 안전망 확충을 위한 조례’에서 고독사를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극단적 선택, 병사 등의 이유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이라고 정의했다. 일정한 시간은 3일로 정했다. 

지난 3월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진행한 ‘고독사 예방 정책, 충분한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자료집에 따르면 서울시 고독사 사망자는 83명(2018년), 69명(2019년), 51명(2020년), 76명(2021년)으로 나타났다. 50~60대가 59.5%, 남성이 77.8%로 나타났다. 50대 남성은 극단적 선택 통계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고독사 사망자 가운데 21.3%는 ‘사인 불명’으로 드러났다. 2020년 사망원인 통계 R코드(달리 분류되지 않는 증상, 징후) 사망률(10.4%)과 비교해 2배 정도 높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시 전체 사망자의 성별 연령 분포를 비교하면 여성은 사망 연령과 유사한 패턴이지만 남성은 고독사 위험 연령에서 비정상적인 특성을 보인다. 남성에 있어서 이상 죽음”이라고 설명했다. 

돈 없으면
장례 못해

서울시는 2018~2021년 고독사 고위험가구 지원을 위해 특별교부금, 서울형 긴급복지 예산 등을 들여 1만5669가구에 58억7100만원을 지원했다. 1가구 당 37만5000원 정도다. 또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우리동네돌봄단’ 등 민간과 협업해 고독사 위험가구를 발굴하고 관리했다.

지하방·옥탑방·쪽방·고시원·숙박업소(장기 거주자) 등 주거취약지역에 사는 중장년 이상 1인 가구에 대한 실태조사도 진행했다. 그 결과 조사 완료자 6만677명 가운데 59.8%(3만6265명)가 고독사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에 돌입했다. 고독사 위험자를 조기 발견하고 치료와 서비스 연계를 통해 고독사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시범사업 지역은 서울·부산·대구 등 9개 시도와 39개 시군구다. 해당 지역은 ▲안부확인 중심형 ▲심리·정신지원 중심형 ▲사전·사후관리 중심형 중 하나 이상의 사업모형을 선택해 사업을 추진한다. 

문제는 죽음 이후다. 박진옥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출산이나 보육, 치매 등에는 국가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사망하면 그 사체는 물건, 즉 상속재산이 된다. 그래서 장례를 치를 돈이 없으면 사체를 포기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할 부분으로 바뀌어 버린다. 죽음, 특히 장례 영역은 공공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 인식도 마찬가지다. 한국 국민 10명 중 7명은 장례를 ‘개인의 영역’이라고 답했다.

<일요시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본인의 장례는 본인이나 가정에서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응답이 71%(스스로 20.9%+자녀 30.5%+배우자 19.6%)로 나타났다. 국가(10.3%)나 지방자치단체(6.0%)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16.3%에 그쳤다.

최소 160만원
평균 1380만원


이 과정에서 무연고 사망자 문제가 대두된다. 지난해 9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행한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 문제점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2016년 1820명, 2017년 2008명, 2018년 2447명, 2019년 2656명, 2020년 2947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나왔다.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 어르신복지과에 따르면 9월까지 서울시에서만 796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나눔과나눔은 올해 말까지 1100명(서울시)가량의 무연고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무연고 사망자의 연고자 여부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사체 인수를 거부할 경우에 발생한다. 2019년 2656명의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는 806명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850명은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경우다. 전체 무연고 사망자의 70%에 달한다. 2020년(2947명)은 이 비율이 71%(2091명)로 늘어난다.

사단법인 장례지도사협회에 따르면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은 160만원가량이다. 장례지도사협회 관계자는 “지자체가 의뢰해 장례대행업체가 재능기부 형태로 장례를 치를 경우 지자체에서 장례대행업체에 돈을 지급하는데 그 액수가 160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160만원의 비용이 없어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고 ‘직장’ 형태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되는 장제급여는 80만원뿐이다. 장제급여는 생계급여, 주거급여와 의료급여 중 하나 이상의 급여를 받는 수급자가 사망해 사체의 검안‧운반‧화장 또는 매장 등 그 밖의 장제조치가 필요한 경우에 지급되는 급여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평균 장례비용은 1380만원에 이른다. 현재 지급되는 장제급여는 평균은 물론 최소 장례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연고 사망자의 연고자가 소식을 듣고 비용을 떠올렸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을 만한 금액이라는 의미다.

무연고 사망자 매년 늘어나는데…
그나마 서울시는 공영장례 시행

그러면서도 장제급여를 올려봤자 현재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은 “장제급여를 지금의 2배로 올린다고 해서 ‘장례의 질이 올라가거나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면서 “주거급여를 올린다고 주거환경이 좋아지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월세를 올려 받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결국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상황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천하는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죽음까지도 사회보장의 테두리 안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진옥 상임이사는 “장례업계는 이미 포화상태다. 국가는 새로운 형태의 뭘 만드는 것보다 시장에 있는 자원을 어떻게 공공성이 담보되도록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4.4%(국가 54.8%+지자체 29.6%)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사회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60세 이상을 제외하고 과반이 국가를 책임주체로 꼽았다. 특히 30~40대에서는 그 수치가 60%를 넘었다. 

2019년부터 서울시와 나눔과나눔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연고자가 있는 저소득 시민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금액을 조정하고 그만큼의 서비스를 현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세부적으로 ▲장례식장 시설 사용료와 고인용품(수의, 관 등 염습‧입관용품 일체) ▲공영장례식 ▲장례지도사와 자원봉사자 등이다.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업무안내’에 따르면 올해 서울시가 편성한 공영장례 관련 예산은 6억9815만원이다. 서울시립승화원에는 공영장례 전용 빈소인 ‘그리다’가 설치돼있다. 무연고 사망자는 3시간, 사망자의 연고자가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경우는 3시간 또는 24시간을 선택해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이나 그리다 빈소를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간극 존재

김민석 팀장은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데 이렇게 격차, 간극이 존재한다는 건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서울시는 공영장례 시행으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일정 부분이나마 하고 있지만, 공영장례 조례가 없거나 시행하고 있지 않은 지자체는 그 안전망조차 부재한 상태”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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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