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⑫수백조원과 80만원 아이러니

요람은 있고 무덤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적게 태어나고 많이 죽는 ‘자연 감소’ 상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정부는 물론 국민의 관심은 오로지 ‘탄생’에 쏠려 있다. 분기별 출산율에 한탄하고 OECD 순위를 걱정한다. 그 사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출산율과 반비례해 사망자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탄생은 국가의 영역으로 들어온 반면, 죽음은 여전히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애초에 죽음에는 차별이 있는 거지. 왜 죽음이 공평하나? 모든 죽음이 형태가 다 다르고 그 모양새가 다른데. 누가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죽으면 평등하다’ 여기서 모티브가 된 것 같은데, 죽으면 숨 떨어져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외에는 동등한 게 하나도 없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어요?” <강신몽 가톨릭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명예교수>

인구 감소
데드크로스

지난 9월16일 경기 일산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만난 백발의 노 법의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의문을 표했다. ‘죽음의 격차’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진심으로 궁금한 모습이었다. 평생 법의학자로 살면서 다양한 사체를 마주해온 강 명예교수에겐 ‘사람의 죽음에는 격차가 있다’는 말이 너무나 당연한 명제인 듯했다. 

지난 8월30일 제주도에서 만난 강현욱 제주의대 교수는 “학생에게 ‘세상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죽음’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죽음의 격차’라고 해서 놀랐다”며 “죽음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해석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 ‘죽음 이후의 장례’ 등에 격차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망원인 통계’는 여러 의미에서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사망자 수가 집계 이후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섰고,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통계 수치로 뚜렷하게 증명된 셈이다. 그러면서 인구의 자연 감소가 시작됐다. 


지난해 사망자 수는 31만7680명으로 1983년 집계 이래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5030명에 이르면서 통계에 영향을 미쳤다. 인구 1000명당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조사망률은 이미 2009년부터 증가세를 보였다. 통계청은 출산율 하락과 맞물리면서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 정책은 출산율에 방점이 찍혀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81명에 머물렀다. 집계 이래 최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1위다. 합계출산율이 0명대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2017년 30만명대로 주저앉은 뒤 3년 만에 20만명대를 기록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쏟아부은 예산을 생각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을 막기 위해 약 380조2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단순 계산으로 1년에 25조원 이상 쓴 셈이다. 문제는 줄어드는 탄생과 반비례해 늘고 있는 죽음에 대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죽음 이후는 오로지 개인 영역
고독사 예방 정책 걸음마 수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정책으로 조절할 수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 국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축소해서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최민성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은 “국가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을 죽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죽음의 원인을 분석해 같은 이유로 사람이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법의관은 2015~2021년 국과수 현장검안 사업에서 ‘가난한 죽음’을 숱하게 목격한 바 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죽음의 순간-죽음 이후 등에서 정부가 그나마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과정과 순간 사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고독사, 이미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노인 극단적 선택률 등에는 걸음마 수준이긴 하지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2018년 1월4일 ‘서울특별시 고독사 예방 및 사회적 고립가구 안전망 확충을 위한 조례’에서 고독사를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극단적 선택, 병사 등의 이유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이라고 정의했다. 일정한 시간은 3일로 정했다. 

지난 3월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진행한 ‘고독사 예방 정책, 충분한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자료집에 따르면 서울시 고독사 사망자는 83명(2018년), 69명(2019년), 51명(2020년), 76명(2021년)으로 나타났다. 50~60대가 59.5%, 남성이 77.8%로 나타났다. 50대 남성은 극단적 선택 통계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고독사 사망자 가운데 21.3%는 ‘사인 불명’으로 드러났다. 2020년 사망원인 통계 R코드(달리 분류되지 않는 증상, 징후) 사망률(10.4%)과 비교해 2배 정도 높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시 전체 사망자의 성별 연령 분포를 비교하면 여성은 사망 연령과 유사한 패턴이지만 남성은 고독사 위험 연령에서 비정상적인 특성을 보인다. 남성에 있어서 이상 죽음”이라고 설명했다. 

돈 없으면
장례 못해

서울시는 2018~2021년 고독사 고위험가구 지원을 위해 특별교부금, 서울형 긴급복지 예산 등을 들여 1만5669가구에 58억7100만원을 지원했다. 1가구 당 37만5000원 정도다. 또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우리동네돌봄단’ 등 민간과 협업해 고독사 위험가구를 발굴하고 관리했다.

지하방·옥탑방·쪽방·고시원·숙박업소(장기 거주자) 등 주거취약지역에 사는 중장년 이상 1인 가구에 대한 실태조사도 진행했다. 그 결과 조사 완료자 6만677명 가운데 59.8%(3만6265명)가 고독사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에 돌입했다. 고독사 위험자를 조기 발견하고 치료와 서비스 연계를 통해 고독사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시범사업 지역은 서울·부산·대구 등 9개 시도와 39개 시군구다. 해당 지역은 ▲안부확인 중심형 ▲심리·정신지원 중심형 ▲사전·사후관리 중심형 중 하나 이상의 사업모형을 선택해 사업을 추진한다. 

문제는 죽음 이후다. 박진옥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출산이나 보육, 치매 등에는 국가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사망하면 그 사체는 물건, 즉 상속재산이 된다. 그래서 장례를 치를 돈이 없으면 사체를 포기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할 부분으로 바뀌어 버린다. 죽음, 특히 장례 영역은 공공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 인식도 마찬가지다. 한국 국민 10명 중 7명은 장례를 ‘개인의 영역’이라고 답했다.

<일요시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본인의 장례는 본인이나 가정에서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응답이 71%(스스로 20.9%+자녀 30.5%+배우자 19.6%)로 나타났다. 국가(10.3%)나 지방자치단체(6.0%)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16.3%에 그쳤다.

최소 160만원
평균 1380만원


이 과정에서 무연고 사망자 문제가 대두된다. 지난해 9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행한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 문제점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2016년 1820명, 2017년 2008명, 2018년 2447명, 2019년 2656명, 2020년 2947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나왔다.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 어르신복지과에 따르면 9월까지 서울시에서만 796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나눔과나눔은 올해 말까지 1100명(서울시)가량의 무연고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무연고 사망자의 연고자 여부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사체 인수를 거부할 경우에 발생한다. 2019년 2656명의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는 806명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850명은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경우다. 전체 무연고 사망자의 70%에 달한다. 2020년(2947명)은 이 비율이 71%(2091명)로 늘어난다.

사단법인 장례지도사협회에 따르면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은 160만원가량이다. 장례지도사협회 관계자는 “지자체가 의뢰해 장례대행업체가 재능기부 형태로 장례를 치를 경우 지자체에서 장례대행업체에 돈을 지급하는데 그 액수가 160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160만원의 비용이 없어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고 ‘직장’ 형태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되는 장제급여는 80만원뿐이다. 장제급여는 생계급여, 주거급여와 의료급여 중 하나 이상의 급여를 받는 수급자가 사망해 사체의 검안‧운반‧화장 또는 매장 등 그 밖의 장제조치가 필요한 경우에 지급되는 급여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평균 장례비용은 1380만원에 이른다. 현재 지급되는 장제급여는 평균은 물론 최소 장례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연고 사망자의 연고자가 소식을 듣고 비용을 떠올렸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을 만한 금액이라는 의미다.

무연고 사망자 매년 늘어나는데…
그나마 서울시는 공영장례 시행

그러면서도 장제급여를 올려봤자 현재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은 “장제급여를 지금의 2배로 올린다고 해서 ‘장례의 질이 올라가거나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면서 “주거급여를 올린다고 주거환경이 좋아지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월세를 올려 받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결국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상황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천하는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죽음까지도 사회보장의 테두리 안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진옥 상임이사는 “장례업계는 이미 포화상태다. 국가는 새로운 형태의 뭘 만드는 것보다 시장에 있는 자원을 어떻게 공공성이 담보되도록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4.4%(국가 54.8%+지자체 29.6%)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사회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60세 이상을 제외하고 과반이 국가를 책임주체로 꼽았다. 특히 30~40대에서는 그 수치가 60%를 넘었다. 

2019년부터 서울시와 나눔과나눔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연고자가 있는 저소득 시민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금액을 조정하고 그만큼의 서비스를 현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세부적으로 ▲장례식장 시설 사용료와 고인용품(수의, 관 등 염습‧입관용품 일체) ▲공영장례식 ▲장례지도사와 자원봉사자 등이다.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업무안내’에 따르면 올해 서울시가 편성한 공영장례 관련 예산은 6억9815만원이다. 서울시립승화원에는 공영장례 전용 빈소인 ‘그리다’가 설치돼있다. 무연고 사망자는 3시간, 사망자의 연고자가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경우는 3시간 또는 24시간을 선택해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이나 그리다 빈소를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간극 존재

김민석 팀장은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데 이렇게 격차, 간극이 존재한다는 건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서울시는 공영장례 시행으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일정 부분이나마 하고 있지만, 공영장례 조례가 없거나 시행하고 있지 않은 지자체는 그 안전망조차 부재한 상태”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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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