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태원 대참사 ‘열었더라면…’ 해밀톤 지하통로의 비밀

사상자 줄일 대피로 있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일어나지 말아야 할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핼러윈 데이를 즐기기 위해 나온 청년 156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이태원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밤 10시가 지나면서 웃음소리는 비명으로 변했고 상황은 아비규환이 됐다. 대다수의 사망 원인은 압사였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골목길. 근처에 있던 이들이 대피를 도왔다면 사상자가 줄지 않았을까? <일요시사>는 해당 골목길 근처에 대피로로 쓰일 수 있던 해밀톤 호텔의 통로에 대해 알아봤다.

이태원 유명 술집인 ‘프로스트’는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골목길 대각선에 위치한다. 프로스트 맨 오른쪽에는 한 문이 있다. 이 문과 골목길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해당 문은 해밀톤 호텔 1층인 로비와 연결된다. 그러나 이 통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존자들은 이 통로를 알았다면 다치지 않고 살아남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웃음이
비명으로

지난달 29일은 토요일이었다. 핼러윈 데이를 미리 즐기기 위해 나온 인파는 10만명이 넘었다. 사고는 프로스트와 또 다른 술집인 ‘와이키키 비치펍’ 사이 골목길에서 발생했다. 수십명이 원활하게 다니기도 힘든 비좁고 경사진 골목길이었다. 희생자 상당수가 20대였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와 목격자 진술 및 소방당국과 경찰 발표를 종합하면 압사사고는 지난달 29일 오후 10시15분쯤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건물 옆 너비 3.2m, 길이 40m 경사진 골목에서 발생했다. 해밀톤 호텔 뒤편 클럽 골목에서 내려오는 인파와 호텔 앞쪽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쪽 도로변에서 올라오는 인파가 좁은 골목에서 마주치며 물러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진행한 한 생존자는 “100명이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든 좁은 골목이다. 한두 사람씩 넘어지자 위험을 직감한 사람들이 ‘뒤로! 뒤로!’ 소리를 질렀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숨도 쉬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프로스트와 와이키키 외에도 유명 라운지 바와 술집이 모여있어 해당 골목길 위는 이른바 ‘이태원 핫플레이스’라고 불린다. 이곳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골목은 세 군데가 더 있다. 이들 골목은 모두 내리막길이고, 한 골목은 사고가 난 골목만큼 좁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 바로 옆에는 와이키키 비치펍이 있다. 와이키키 비치펍은 1층 (124.36㎡)과 2층(129.94㎡)을 합쳐 총 254.3㎡다. 몇 발자국 옆에는 해밀톤 호텔 별관으로 알려진 이태원 최대 규모 라운지클럽 프로스트와 ‘글램 라운지’가 있다.

별관 1층은 프로스트가 사용하고 2층은 글램 라운지가 사용한다. 둘을 합쳐 825.6㎡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가장 큰 라운지클럽으로 알려져 있다. 사고 골목이 끝나는 정면에는 ‘아틀리에(220.88㎡)’가, 좌측에는 ‘파운틴(257.91㎡)’이 위치한다.

유명 술집이 사실상 한곳에 모여있다고 할 수 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기에 한 곳에만 머물러 술을 마시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부분의 청년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놀기 좋은 곳과 분위기가 괜찮은 술집을 찾는다.

이태원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한 인사는 “핼러윈 데이가 아닌 불금·불토인 날에도 세계음식거리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라운지 바와 클럽 가드들이 줄 서는 사람이 많을 때면 강하게 통제하진 않지만 ‘가드라인’을 칠 정도”라고 말했다.

와이키키·프로스트·파운틴 등 라운지 바 밀집 지역
통행하는 사람에 줄서기 수백명 정체로 급포화상태

그러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라운지 바와 술집은 불금과 불토보다 사람이 많은 핼러윈 데이임에도 불구하고 ‘가드라인’을 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통제를 하지 않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 곳에 몰려있는 술집과 라운지 바에 사람들이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줄이 길어진 것도 문제라고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소방방재학과 A 교수는 “한 곳에 몰려있는 술집과 라운지 바에 대기하는 사람이 수백명이었고 대기 줄이 길어지면서 인구가 이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정체현상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른 교수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동하기도 어려운데 더 많은 사람이 한 곳으로 집중돼서 터진 사건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있던 사람들은 세계음식거리가 사실상 포화상태가 된 것이 밤 9시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9시30분이 넘어가자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거리에서 119에 신고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사상자가 속출한 골목길 외에도 세계음식거리에서부터 숨이 막혀 의식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특정 인물들 5~6명이 “밀어!”라고 언급한 것 외에 또 다른 참사의 원인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 교수는 “여러 사람이 거리에서부터 숨이 막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면 경사진 골목길에 있던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깔리는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며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의식을 잃은 사람 수십명과 제대로 걷지 못하는 부상자들끼리 엉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참사 생존자와 목격자들은 부상자들이 와이키키와 프로스트 등에 들어갈 수 없었고 라운지 바와 술집 직원으로 추정되는 가드들이 오히려 밀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손님을 받았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이들을 외면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사진을 보면 와이키키 내부에는 부상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한 생존자는 “11시쯤이었다. 다들 패닉 상태였고 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와이키키뿐만 아니라 여러 술집과 식당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일부 술집은 가드가 밀쳤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막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구출하려 애쓰는 가드나 직원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밤 9시부터
지옥의 시간

라운지 바와 술집 직원 및 가드들이 부상자와 사람들에게 포화상태 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피로를 안내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에게 대피로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프로스트 맨 오른쪽 끝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해밀톤 호텔 1층 로비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그러나 이 통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취재 결과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한 밤 10시부터 11시30분까지 해당 문 안에는 사람이 많았으나 해밀톤 호텔 로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프로스트 직원들이 해당 통로로 대피하라는 안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해밀톤 호텔 관계자도 “언제나 열려있는 문이고 핼러윈 데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사람만 다니는 통로다. 참사 당시에 그 통로로 대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B씨도 “직원들이 경찰이나 소방당국 관계자들에게 길만 비켜줬지, 어디로 가면 더 빨리 나갈 수 있다고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프로스트 직원들과 가드들이 경찰과 소방당국 관계자들을 도우면서 심폐소생술(CPR)에 나섰다는 주장도 많았으나 이들은 대형참사를 피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큰 음악 소리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몰랐거나 비명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패닉 상태였다고 가정하면 상황 판단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렇다 해도 이들이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해당 통로를 통해 대피시킨 이후 부상자들을 적극적으로 안으로 들였다면 많은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해밀톤 호텔 관계자들도 해당 통로를 사람들에게 안내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을 안내해야 하는 법과 규정은 없다. 하지만 경찰과 소방당국의 조치 이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해밀톤 호텔 관계자는 “현재 경찰 수사에 협조하는 단계는 아니다. 자체 조사가 진행 중이고 조사가 끝나면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며 “지금은 공식적으로 어떤 걸 언급하거나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참사와의
인과관계

‘늑장 대응’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경찰은 사고의 법적 책임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사상자가 속출한 골목길 위에 있던 일부 시민이나 와이키키 일부 직원이 참사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형사처벌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수사본부는 사고 당시 일부 시민이 앞 사람을 고의로 밀었다는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SNS에서는 사고가 난 골목길에서 오르막 쪽에 있던 일부 시민이 ‘밀어 밀어’라고 외치며 앞 사람을 고의로 밀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경찰은 현재까지 감식한 것과 인근 CCTV, 사고 기록 영상 등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이다.

앞 사람을 밀어 대열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뒤엉키는 연쇄작용이 일어났다면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사람들이 뒤엉켜 인명피해까지 나는 상황을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사고가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람을 미는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 폭행으로 볼 수 있기에 폭행치사상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민 사람과 ‘밀어’라고 외친 사람을 특정하기 어렵고 참사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피 안내를 하지 않거나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막은 술집 직원과 가드들, 이른바 ‘방관자’에 대한 처벌도 어려울 전망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남을 구조하지 않았을 때 처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은 국회에서 몇 차례 도입이 논의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하나는 ‘응급상황에서 사람을 구조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응급처치를 했는데 처치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프랑스나 폴란드 독일 스위스 등에서는 이 법을 시행 중이다.

호텔 술집, 안내 안 하고 방관했나
손님 받기에 몰두? 부상자 안 들여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가드들이 잘못했다고 볼 수 있지만 법적으로 잘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들어오는 사람들이 영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막았다면 처벌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부작위에 의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보증인 지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호텔과 술집 직원들이 압사사고 발생을 예견하고 대피시켜야 할만한 보증인 지위에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현직 판사도 “과실치사·폭행치사상 등의 혐의를 적용한다 해도 참사와 피의자 행위의 인과관계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명확한지가 중요하다”며 “수사기관이 수집한 증거와 법리적 검토를 종합한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지만 이번 사건 같은 경우 무혐의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편 참사 당시 용산소방서 구조대는 오후 10시17분에 출발했으나 수만명의 인파를 뚫고 들어가기 버거워 현장에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어렵게 접근한 이후 구조대와 시민들이 깔린 사람들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수십명이 엉켜있어 구조가 어려웠다.

한 생존자는 “사람들이 넘어지고 층을 이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상황이 12시(자정) 전까지 지속됐다. 10시 반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사고 현장에서 곧바로 사망 판정을 받은 이들만 45명이었다.

이번 참사를 두고 기본적 안전 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던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당국은 안전 인력 증원 등 추가 조처를 하지 않았다. 특히 경찰은 마약사건·성범죄 대비 명목으로 137명을 배치했고, 용산구청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거나 도로 통제 등을 요청하지 않았다.

안전담당 인력 배치와 교통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기도 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 투입된 구급 차량은 143대다. 서울에서 지원된 54대를 제외하고도 경기남부 24대, 경기북부 25대, 인천 10대, 강원 10대, 충북 10대, 충남 10대가 지원됐다.

소방당국은 최초 신고를 받은 후 3분 만에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교통통제 등을 위한 대규모 인력 투입을 서두르지 않았다. 구급차들이 1시간가량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자 소방당국은 경찰청에 교통통제를 참사 당일 밤 11시에 요청했다. 관할서인 용산경찰서가 아닌 서울청 차원의 기동대 일부가 투입돼 현장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자정이 가까워서다.

방관자 처벌
사실상 불가

경찰이 상황을 안일하게 봤다는 정황은 이날 공개된 112 신고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사고 당일 오후 6시30분께부터 119에 사고 발생 신고가 접수되기 직전인 10시11분까지 경찰은 “압사할 것 같아 통제가 필요하다”는 신고를 11차례 받고도 4차례만 현장 출동했다. 특히 사고 한 시간 전인 9시부터 접수된 신고에는 대응조차 하지 않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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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