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수리남’ 실제 주인공 조봉행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19 13:18:52
  • 호수 1393호
  • 댓글 0개

세계적 악명 떨친 한국 마약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히로뽕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탄의 가래 같은 거고, 코카인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주님의 은총이야.”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주인공 전요환의 말이다. <수리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로, 전요환은 실제 인물인 1952년생 한국 마약왕 ‘조봉행’을 재창조해 구현했다. 드라마와 실제 조봉행은 얼마나 다를까.

지난 14일 기준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태프롤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수리남>이 14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며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해 바하마, 방글라데시, 홍콩, 자메이카, 케냐, 말레이시아, 모로코, 파키스탄, 싱가포르, 대만, 태국, 트리니다드토바고, 베트남 등에서 정상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5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일 흥행
대박 조짐

<수리남>은 지난 9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공개됐다. 공개 사흘째인 지난 12일 글로벌 8위에 오르며 이미 톱 10에 진입했다. 이튿날 6위로 오른 후 14일에는 3위까지 올랐다.

<수리남>은 배우 하정우·황정민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다. 한국 마약상이었다가 남미의 작은 국가 수리남으로 도피해 해외 마약상이 된 인물과 그를 잡는 국정원 요원의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사업가의 이야기를 그렸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김희준 대표변호사(법무법인 LKB)는 지난 13일 <조선닷컴>에 “사건 자체가 워낙 극적이라서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 제목인 수리남은 남아메리카 북부에 있는 국가로, 가이아나, 브라질, 프랑스령 기아나와 접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약 16만3821㎢, 2020년 기준 인구는 58만6348명이다. 남미에서 국토 면적이 가장 작은 국가로 남한의 약 1.6배 정도다.

산림이 국토의 94.6%를 차지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토 대부분이 거대한 열대우림이다. 이 같은 이유로 무거주지 비율이 98%고,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은 2%에 불과하다. 중앙 수리남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바로 이곳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배경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인공 전요환이 마약밀매 조직을 운영한 장소다. 실제 사건에서도 그랬다. 

전요환의 실제 모델인 1952년생 조봉행은 수리남에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규모 마약밀매 조직을 운영했다. 국정원과 미국 마약단속국, 브라질 경찰과의 공조 작전으로 2009년에 체포됐다. 2011년에 징역 10년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조씨는 출소 후 수리남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고 있다.

드라마에서 전요환은 한국에서 마약을 유통하다 수리남으로 향했다. 하지만 실제 조씨는 한국에서 마약상을 하지 않았다. 1994년 빌라 건축을 빌미로 10억원을 사기 친 후 수사망이 좁혀오자 수리남으로 도주했다. 이미 1980년대에 8년간 수리남에서 선박 냉동 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던 조씨에게 수리남행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또 수리남은 한국 경찰이 수사하기 어려운 곳이다.

10억원 빌라 건축 사기로 수리남행 선택
남미 마약조직 ‘칼리 카르텔’과 손잡아

이후 1995년쯤 한국 여권 재발급을 시도했지만 지명수배 등 이유로 어렵게 되자 조씨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수리남 국적을 취득했다. 조씨는 한국인 최초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후 국제 마약 밀매조직을 구축한 사람이다.

19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하고 생선 가공공장을 차렸다. 하지만 이것도 단순한 공장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생선 가공공장이었지만, 실상은 어업회사에서 세금 없이 제공되는 면세유를 돈을 받고 밀매하는 것이 주 수입원이었다.

조씨는 중국인 등을 공장에 취업시켜 미국, 유럽으로 밀입국시키는 사업도 했다. 하지만 유가 상승과 단속 강화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었다. 이때 조씨는 마약을 선택했다. 즉시 다른 수입원을 모색해서 마약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손을 잡은 건 남미 최대 마약 카르텔 조직인 ‘칼리 카르텔(Cali Cartel)’이다. 칼리 카르텔은 콜롬비아의 범죄 조직이다. 

콜롬비아의 도시 산티아고 드 칼리에서 활동한 형제 힐베르토와 미겔 로드리게스가 중심인물로 마약밀매를 했다. 한때는 콜롬비아의 마약 패권을 손에 쥐었으나 계속된 미국과 콜롬비아의 정부 수사로 두목과 형제들이 연달아 체포돼 힘을 잃고 붕괴됐다.

현재 칼리 카르텔 간부는 미국 교도소에 수감돼있고, 지난 6월1일 미국에 수감 중이었던 두목이 사망했다.

마약 사업을 하기로 선택한 조씨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수리남의 권력자 인맥을 만드는 것이다. 조씨는 수리남 정치인, 관료, 군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무려 육군 장교 출신 독재자인 수리남 대통령 데시 바우테르서와도 오랜 친분을 쌓았다.

이런 인맥으로 수리남에 입국하는 아시아인 승객 명단을 미리 압수해 따로 만나서 그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활용했다. 먼저 포섭한 것은 수리남에 온 한국 교포다.

조씨는 한국 교포에게 “1인당 소지량이 제한된 보석 원석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운반해주면 400만~5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해 100여명을 모았다. 자신을 광물 보석상이라고 지칭했고 마약을 보석으로 속였다. 이들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주부나 대학생으로, 어려운 사정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 

코카인 유통
왕국 건설

이런 수법으로 조씨의 사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일본에서는 마약 거래를 하고 있었고, 한국에서의 마약 공급도 계획하고 있었다.  

조씨의 마약밀매 행각은 2002년 10월 프랑스령 가이아나에서 파리 오를리공항으로 코카인 37㎏을 갖고 들어오던 주부 장모씨 등 2명이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면서 꼬리가 잡혔다. 이어 2005년 3월엔 페루 리마 공항에서 네덜란드로 코카인 11.5㎏을 운반하려던 40대 후반의 이모씨가 당국에 체포됐다.

조씨가 인터폴 수배명단에 오른 것은 2005년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조씨가 마약을 국내에 공급하기 위해 판로를 모색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2007년 10월 조씨를 체포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수리남과 대한민국은 수교 관계였지만 대사관이 없었다. 관련 업무는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었다. 또 이미 조씨가 수리남 경찰과 군조직을 매수했기 때문에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해 11월 돌파구가 마련됐다. 수리남에서 사업을 하다 조씨 때문에 낭패를 본 김모씨가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 내용은 즉시 국정원에 전달됐고, 국정원 측은 김씨에게 조씨 검거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김씨는 고민 끝에 수락했다. 김씨는 국정원과 마약 수사기관이 꾸며낸 가상의 재미교포 마약상과 조씨 사이의 마약 거래를 중개하는 척 연극을 하기로 했다.

김씨는 조씨와 그의 부하 몇몇과 한 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비밀 유지를 위해 특정 시간에만 국정원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잠을 잘 때는 베개 밑에 권총을 넣어뒀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가 국정원과 연락한다는 사실을 조씨의 한국인 부하 A씨에게 들켰다. 김씨는 A씨를 붙잡고 “너도 한국에 가족이 있는데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냐. 나하고 손잡고 좋은 일 하자”며 설득했다. A씨를 국정원과 통화하도록 연결해줬다. A씨는 눈물을 흘리며 “새사람이 되겠다”고 협조를 약속했다.

물론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3일 뒤 김씨의 집 거실에 A씨가 흑인 4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배신이었다. 이때 김씨는 조씨가 집 밖에 와 있을 거라고 판단해 “미스터 조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예상대로 조씨는 집 밖에 있었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김씨를 바라봤다.

목사 행세
무소불위 권력

김씨는 “나를 못 믿겠거든 마음대로 해라. 당신 부하가 하도 말이 많아서 그러지 못하게 내가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날 이렇게 대하냐”고 항의했다.

조씨는 흔들렸다. “진짜 장난이었냐”고 묻고 부하를 나가게 했다. 거꾸로 A씨가 조씨의 미움을 사서 조직에서 밀려났다.

2008년 9월의 어느 날, 김씨와 조씨 일행은 수리남 수도인 파라마리보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김씨가 “거래할 마약을 직접 봐야겠다”고 요구했다. 마약 조직원들은 김씨를 차에 태우고 눈을 가렸다. 그리고 총을 옆구리에 겨누며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고 명령했다.

행선지가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셔터가 올라가고 차가 출발했다.

김씨는 수리남 현지에서 2년여 동안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 방향을 바꾸거나 카지노, 클럽 등의 불빛이 눈가리개 너머로 어른거리는 걸로 이동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는 20여분 뒤 한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들어서자 검은 포장의 커다란 코카인 더미 4개가 있었다. 한 더미는 300㎏으로 모두 1.2t이었다. 거래가만 1조원이 넘는 규모였다. 조씨는 “한국에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량”이라고 말했다.

2008년 초 김씨와 국정원은 미국 마약 수사기관과 조씨의 현지 검거를 위한 공동작전에 착수하고 있었다. 미국 마약 수사기관은 미 해군과 특공대의 지원까지 약속했다. 김씨가 “창고를 확인했다”고 연락하자 국정원은 미국 측에 창고 급습과 조씨 검거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마약 수사기관은 대규모 총격전과 인명피해를 우려해 작전을 차일피일 미뤘다. 수리남 마약 관련자들은 차 트렁크에 소련제 AK소총을 늘 넣어 가지고 다녔다. 결국 현지 체포는 실패했다.

현지 검거 작전이 실패하면서 김씨의 신변이 위험해졌다. 김씨는 2008년 10월에 귀국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조씨에게는 “마약 거래상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귀국 후 국정원과 김씨, 미국 마약 수사기관이 새로운 작전을 짰다.

7년간 끈질긴 추적 
브라질 공항서 검거

조씨를 수리남 밖으로 유인해 체포하는 계획이었다. 첫 번째 대상지는 미국령 괌이었다. 서울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김씨는 국제통화로 조씨와 마약 거래를 이어갔다. 김씨는 “미국 마약상이 코카인 1.2t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액수와 송금 방법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조씨에게는 좋은 거래다.

김씨와 국정원은 심리전도 폈다. 김씨는 조씨의 전화를 며칠씩 일부러 받지 않았다. 계약 성사를 믿고 수리남 현지에서 수출용 목재 속에 코카인을 숨겨 넣는 작업까지 시작한 조씨는 마음이 다급했다. 조씨는 “구매자와 함께 빨리 수리남으로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김씨는 “구매자가 수리남은 치안이 워낙 불안해서 안 들어간다고 한다. 당신이 괌으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조씨가 미국령으로 나올 가능성은 작았다. 계획을 바꿨다. 조씨를 브라질로 유인하기로 계획했다. 브라질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있고 현자 사법당국의 협조도 가능했다.

김씨는 “안 나올 거면 거래는 없던 것으로 하자”고 조씨를 압박했다. 마침내 2009년 7월 수리남에서 가까운 브라질 도시인 벨렘에서 접선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브라질 측에서 난색을 표했다. 수리남 마약밀매조직의 영향력이 벨렘에까지 미치고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장소를 상파울루로 바꿨다. 조씨는 거부했다. 다시 통화로 설득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2009년 7월23일 상파울로 구아룰류스 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현장에는 완전 무장한 브라질 현지 경찰이 입국장 주변에 잠복하고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과 김씨도 현장에 합류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인 오후 5시에 조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예정된 탑승자 명단에도 조씨의 이름은 없었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조씨와 연락하는 척했고 브라질 현지 경찰의 철수를 늦췄다. 2시간 뒤에 조씨의 모습이 나타났다.

브라질에 입국하는 조씨에게 브라질 경찰은 환영 선물로 수갑을 채웠다. 이렇게 수리남의 한국 마약왕은 브라질에서 허무하게 체포됐다.

서울중앙지법형사29부(배준현 부장판사)는 2011년 9월30일 조씨에 대해 징역 10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7년간 추적을 놓지 않은 결과다.

재판부는 “조씨가 마약 운반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함께 범행을 꾸민 공범과 이익 배분에 관해 사전에 논의한 사실이 있고 공범의 범행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범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마약왕의 검거 작전의 일등 공신은 김씨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도 있었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조씨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씨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에 협조를 약속하고 수리남에 있을 때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참 많이 났다. 혹시 내가 잘못되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 때면 ‘괜한 일에 뛰어들었나’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수교 관계

이어 “상파울루 공항에서 조씨 일행이 약속 시각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말을 믿고 한국에서 날아온 국정원 요원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래서 더 기다려보고 정말 안 온다면 내가 수리남으로 다시 들어가서라도 일을 성사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씨 부하가 배신했을 때도 잊을 수 없다”고 소회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