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단상> 극중 세력이 나오지 않기를

세계 각 나라의 정당사를 보면,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이 지역을 기반으로 양분된 양당제하에서는 순수한 중도파 정당인 제3세력이 나오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 제3세력은 거대 양당에서 소외된 세력이 힘을 합쳐 중도세력을 만들기 마련이다.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중도개혁의 가치를 내세우며 2016년 2월 출범한 옛 국민의당도 순수한 중도파 정당이기 보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서 창당한 제3세력이다. 또 중도실용주의를 주장하며 2018년 2월 출범한 바른미래당도 새누리당 의원들이 탈당해 만든 바른정당과 옛 국민의당이 통합해서 만든 제3세력이다.

그러나 중도파 정당인 옛 국민의당은 2017 대선에서 패하면서부터 퇴색하기 시작하다 바른정당과 통합하면서 2년 만에 해산됐고, 바른미래당도 2020 총선도 치르기 전에 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국내 좌파 정당은 전라도를 기반으로, 우파 정당은 경상도를 기반으로 정당의 맥을 이어 오면서 우리나라 정당의 양대 산맥을 형성해왔다. 그렇다면 경기도나 충청도나 강원도가 기반이 된 중도파 정당도 생길만한데, 왜 중도파 정당은 제3세력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전정신이 강한 인물이 없어서는 아닌 것 같고, 혹시 평상시에는 국민으로부터 욕을 먹거나 정당에 방해가 되는 듯 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세를 규합하는 구심력을 발휘해 선거를 승리로 견인하는 극좌나 극우 같은 세력, 즉 극중이 중도파에는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2017년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당 전당대회에 나설 때,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당에 대항해 가치 중심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하면서, 바로 “그 가치가 극중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극중주의는 좌파나 우파의 이념에 경도(기울어 넘어짐)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에 치열하게 매진하는 것, 즉 중도에 대한 극도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 후보가 외쳤던 극중은 고사하고 그 이후 지지부진했던 중도도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좌파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을, 우파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정당을 뜻한다. 좌파(좌익)와 우파(우익)라는 말이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혁명 때부터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볼 때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자코뱅당이 왼쪽에 앉고,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지롱드당이 오른쪽에 앉은 것이 그 기원이다. 그 후 영국에서도 자유당이 왼쪽에 앉고, 보수당이 오른쪽에 앉음으로 ‘진보=왼쪽’, ‘보수=오른쪽’이라는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리고 자코뱅당은 “혁명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뜻에서 반란을 상징하는 붉은기를 사용하고, 지롱드당은 이와 반대로 청색기를 사용하면서 붉은색은 좌파를, 파란색은 우파를 상징하는 색이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좌파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파란색을, 우파 정당인 국민의힘은 붉은 색을 시용하고 있어, 외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보수 우파로, 국민의힘을 진보 좌파로 이해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정당을 좌파와 우파, 그리고 중도파 정도로 구분하고 있는데, 좌파 정당 내의 극좌(極左, far-left)와 우파 정당 내의 극우(極右, far-right)가 존재하면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선거 때마다 세를 규합해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극좌와 극우는 좌파나 우파에 비해 상대 진영을 무조건 비판하는 경향이 있고, 사상도 지나치게 편향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극좌와 극우는 사상의 극단성이 심하며, 폭력적 행동이 동반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극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같은 혁명가가 있으며, 극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돌프 히틀러’가 있다. 극좌든 극우든 ‘극(極)’이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폭력과 전체주의라는 공통분모를 갖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 정가에 극좌나 극우가 아닌 극중(極中)을 내세우며 중도우파나 중도좌파를 만들려는 세력이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이 다시 등장하려는 중도파 정당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원래 극중은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가든스가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극중주의(極中主義) 시대가 도래했다고 1994년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극중주의는 좌파와 우파를 뛰어넘어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합리적인 정치이념을 표방하는 대화정치와 생활정치가 그 핵심이다.

앤서니 가든스는 좌파와 우파를 뛰어 넘는 가치를 중도라 하지 않고 극중으로 표현한 점은 아마도 극좌나 극우를 무시하고 중도를 최고의 가치로 올려놓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앤서니 가든스의 영향을 받아 1997년 영국 총선거에서 승리한 블레어 전 총리와, 사회당 출신이지만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프랑스의 마크롱 현 대통령이 극중주의를 추구하는 대표적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정가에서 비밀리에 회자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 일부와 민주당 의원 일부가 통합해 만들 것으로 예상되는 중도파 정당의 극중(極中)은 28년 전 앤서니 가든스가 언급한 합리적인 극중이나 5년 전 안 의원이 언급한 극도의 신념이 깃든 극중과는 다른 것 같아 걱정이다.

바로 최근 비밀리에 회자되고 있는 극중은 좌파나 우파의 중간 영역인 중도를 지키고 중도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극좌나 극우처럼 강력한 사상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힘(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수준)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론, 우리나라 최근 정치 환경이 대선과 지선에서 패한 좌파 정당(민주당)이 무너지고 우파 정당(국민의힘) 세력이 강해지면서 민주당은 정치 동력을 잃고, 국민의힘은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기에, 양당에서 소외당한 세력들을 규합해 극중을 내세우며 중도파 정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좌파-중도파-우파’나 ‘극좌-극중-극우’의 도식관계를 보더라도, 중도파는 분명 존재감이 있지만, 극중은 우리 사회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될 나쁜 중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우리 정치가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접두사 극(極)이 '정도가 심한'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명사 극(極) 역시 ‘어떤 정도가 더할 수 없을 만큼 막다른 지경’의 뜻을 가지고 있어, 양극과 음극, 남극과 북극이라는 말은 있어도 중극(中極)이라는 말은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극중(極中)은 존재할 수 없는 정치 용어고, 말도 안 되는 정치 용어가 확실하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극좌(極左)나 극우(極右)처럼 선거에는 정당에 도움이 되지만, 평상시에는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극중(極中) 세력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 이 기고는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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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