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

장관도 없는데 다시 대유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있다. 도리어 다시 기승을 부리는 모양새다. 2년여 동안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패닉으로 몰아갔던 코로나19가 재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휴가철과 맞물려 확진자가 폭발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경고등이 울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주무부처의 수장이 공석이라는 점이다.

바짝 조였던 방역의 끈이 올해 들어 느슨해졌다.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패스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들이 국민을 꽁꽁 묶었다. 그럼에도 수차례의 대유행을 지나고 나서야 코로나  사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경제가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안정된 줄
알았는데…

방역정책의 직접적 타격을 맞은 자영업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국민이 ‘일상 회복’을 외쳤다. 코로나 종식은 불가능한 수준이니 아예 함께 살아가자는 ‘위드 코로나’ 시대로 상황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기 상조’ ‘확진자가 다시 크게 늘어날 것’ 등 부정적인 예측이 나왔지만 경제 상황, 국민 피로감 등을 고려해 방역정책을 완화했다. 

2020년 1월 코로나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이래 2년여 동안 이어진 문재인정부의 방역정책은 지난 3·9 대선의 최대 화두 중 하나였다. 방역정책의 효용성을 두고 ‘정치 방역’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 대선 기간 동안 오미크론 변이로 확진자 수가 폭증하면서 일종의 변수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이 마무리되고 그 사이 실내 마스크 착용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역정책이 완화되면서 코로나는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국민의 삶은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처음에는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길 꺼리던 사람도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하나둘 맨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흥업소 이용 시간 제한이 풀렸고 지하철 막차 시간도 늦춰졌다. 코로나 백신을 접종했든 하지 않았든 가게 출입도 자유로워졌다. 수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구장은 연일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있고 콘서트와 뮤지컬 등 공연도 재개됐다.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던 말이 무색할 만큼 빠른 변화였다. 

한동안 줄었다 다시 증가세로
전문가 “8월 하루 20만도 가능”

시간마다 경마 경주처럼 보도됐던 확진자 수 추이나 사망자 수 통계는 어느새 언론 지상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확진자 수를 실시간으로 제공했던 ‘코로나 라이브’는 지난 5월16일 서비스 종료를 공지했다. 코로나 라이브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지 21개월 만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한 지 꼭 한 달째였다. 

당시 코로나 라이브 운영자는 “오미크론 대유행 이후(확진자 수가) 꾸준히 감소하며 거리두기와 외부 마스크 해제된 지 각각 한 달, 2주가 됐다”며 “확진자 수의 중요성이 이전에 비해 하락했고 각 지자체에서 매일 제공하는 확진자 자료가 이전보다 줄어들면서 실시간 집계에도 어려움이 생겨(서비스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국민의 경각심이 옅어진 동안에도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국민의 삶을 강하게 할퀴었던 코로나가 다시 이빨을 드러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춤했던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면서 휴가철 대유행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문가 역시 8월 대유행을 경고하는 중이다. 

지난 6일 기준 코로나 확진자 수가 2만여명에 육박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이하 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신규 확진자는 1만9371명으로 1주일 전인 지난달 29일(1만455명) 대비 8916명(84.8%) 증가했다. 1주일 새 확진자 수가 2배로 늘어나는 이른바 ‘더블링’에 근접한 수준이다.

5월25일 2만3945명 이후 6주 만에 가장 많은 수치기도 하다.


주간 단위로 보면 3월 3주(282만2000명) 이후 줄곧 감소하다 15주 만에 다시 증가했다. 감염재생산지수도 1.05로 3월 4주(1.01) 이후 14주 만에 다시 1 이상을 기록했다. 감염재생산지수는 환자 1명이 주변 사람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수치화한 지표로 1 이상이면 유행이 확산된다고 본다. 

정치 방역?
과학 방역?

전문가들은 재유행이 임박했거나 이미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빠르면 8월 중순, 늦으면 9월이나 10월쯤 하루 최대 20만명까지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지난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재유행이 시작됐다고 평가하시는 분이 많다. 하강 국면은 끝났고 계속해서 상승 국면으로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또 “여러 수학적 모델링 예측 자료를 보면 이번에 오르는 건 예전처럼 거리두기가 해제됐거나 새로운 변이가 유입돼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되는 양상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확진자는 매우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향후 확진자 증가 규모에 대해 예측했다. 

변수는 7~8월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방역정책으로 2년 동안 발이 묶였던 만큼 이번 휴가철에 역대급 인파가 몰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만큼 코로나 재감염, 확산 가능성도 높아지는 셈이다. 20~30대 자녀 세대의 확진이 50~60대 부모 세대로 이어지는 가족 간 감염이 폭증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실제 최근 8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일평균 발생률이 증가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대에서 가장 높은 발생률(일평균 28.6명)이 나왔고, 전체 발생 중 연령대별 비중도 20대가 22.2%로 가장 많았다. 60세 이상 확진자 규모 역시 지난 6월 4주 7657명에서 5주 8206명으로 늘었다. 

이 교수도 “본격적으로 재감염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오미크론 시기에 우리나라 국민 절반 정도가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절반은 아직 감염도 안 되신 분들”이라며 “이번 유행이 커지면 그분들이 감염 표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감염이 됐던 분들 중에서도 면역이 빨리 떨어지는 분들, 고령층이나 면역 저하자, 만성질환자분들은 재감염 확률이 꽤 높다. 이 두 그룹이 합쳐지면 꽤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3대 악재
첫 시험대

코로나 재유행이 현실화되면서 윤석열정부의 방역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문재인정부의 방역정책을 ‘정치 방역’이라 비판하고 ‘과학 방역’을 강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대한의사협회를 찾은 자리에서 “(문재인)정부가 위드 코로나를 너무 성급하게 시행했다”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방역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이 윤정부 방역정책의 첫 시험대가 되는 셈이다.


윤정부는 ▲여름철 활동량 증가 ▲면역 회피 가능성이 높은 BA.5 변이 검출량 증가 ▲면역력 감소 등의 악재를 뛰어 넘어야 한다. BA.5 변이는 기존 우세종보다 전파력이 세고 감염이나 백신으로 생긴 면역을 회피하는 성질을 가졌다. 3차 백신과 확진으로 높아졌던 면역력이 이달 이후 본격적으로 낮아지는 점도 변수다. 

윤정부는 일단 재유행에 대비해 특수·응급 병상 확보, 방역 점검 강화 등을 통해 의료와 방역 대응 체계가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중대본 제2차장을 겸하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특수 환자는 입원이 가능한 병원으로 바로 이송할 수 있도록 지침을 명확히 하고, 응급 시에는 자체 입원도 가능하게 하는 등 이송과 입원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4차 접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60세 이상에 한정돼있던 4차 접종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문제는 백신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 백신의 효용성이다. 지난 7일 기준 4차 접종률은 전 국민 기준 8.7%, 60세 이상 기준으로 31%에 불과하다.

백신 패스 제도도 없기 때문에 접종을 강제할 명분도 없다. 또 3차 접종자 가운데 돌파감염된 사례도 26.8%나 된다. 국민 3명 중 1명이 3차 접종 이후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뜻이다. 

정치자금법 위반·아빠 찬스 논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무덤 되나


더 큰 문제는 방역정책을 만들고 실행해야 할 보건복지부가 두 달째 장관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방역정책은 경제 피해와 맞물리기 때문에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다. 유행 규모와 기간에 따른 선제적인 판단도 중요하다. 질병관리청 등 정부 부처와의 협조도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의 리더십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보건복지부 장관에 지명됐던 후보자가 2번 연속 낙마했다. 윤정부 장관 낙마자 3명 가운데 2명이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나온 것이다. 한 정부부처에서 장관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한 사례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4일 김승희 후보자가 자진사퇴했다. 지명 40일 만으로 ‘아빠 찬스’ 논란으로 자진 사퇴한 정호영 전 후보자에 이어 두 번째 낙마다. 김 후보자는 정치자금법 위반 논란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김 후보자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된 부분은 김 후보자가 의원 시절에 사용하던 업무용 렌터카를 정치자금으로 매입해 개인용으로 돌린 것이다. 

김 후보자는 사퇴 입장문에서 “(정치자금을)사적인 용도로 유용한 바가 전혀 없으며, 회계 처리 과정에서 실무적인 착오로 인한 문제”라며 “최종적으로 관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의 사퇴가 국민을 위한 국회의 정치가 복원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며 “국민 행복과 윤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의 역할을 수행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다음 후보
현역 의원?

보건복지부가 장관 후보자의 무덤이 되고 있는 만큼 세 번째로 지명되는 후보자는 부담이 클 전망이다. 하지만 장관 공백이 길어지면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마냥 후보자 지명을 늦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인사청문회 통과가 한결 수월한 현직 의원들이 거론된다. 세 번째 낙마까지 이어지지 않게 안전한 후보자를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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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