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집 극장가 ‘웃픈’ 딜레마

갑자기 돌아온 봄날에 ‘흠칫’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유난히 길었던 영화관의 겨울. 무려 2년여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찾아왔다. 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흥행 기대작 연속 개봉에 힘입어 실적 반등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때가 아니다. 확 불어난 인파로 직원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구인난 속 인력 대거 확충’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은 탓이다.

지난 2년간 이어졌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영화업계의 불황으로 직결됐다. 시행 당시 업계는 시시각각 변하는 방역지침에 대응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웠었다. 정부 지침을 준수하면서도 살 길을 골몰해봤지만,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을지언정 막을 수는 없었다.

겨울 지나고
봄이 왔건만…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널을 뛰는 방역지침 때문에 업계와 관객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당시 방역 당국은 그 전달부터 시행됐던 ‘위드 코로나’ 여파로 강해진 확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역 패스’ 도입을 선언했다.

위드 코로나 시행에 발맞춰 여러 빗장을 풀었던 업계로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지난해 11월)에는 백신 접종자들을 대상으로 취식과 좌석 붙여앉기가 가능한 ‘백신 패스관’도 운영하고, 미접종자들도 별다른 제한 없이 입장할 수 있어 이전보다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면서도 “하지만 방역 패스 도입 이후에는 백신 패스관도 없애고, 입장 요건도 까다로워지다 보니 회복세가 한풀 꺾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업시간이 제한될 때마다 타격이 너무 크다”며 “특히 오후 9시나 10시 제한 때는 저녁 황금 시간대 영화 상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 관객층인 학생·직장인을 모두 놓치게 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CGV, 롯데시네마 등 주요 영화관들은 당시 관객 755만명을 동원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개봉에도 불구하고 실적 개선에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구책으로 마련한 인원 감축·가격 인상 계획 등에 쏟아지는 비난도 감내해야 했다.

2년간의 부침은 지난달이 돼서야 끝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역 조치를 종료했다.

거리두기 해제 소식이 알려진 직후, 영화관은 야구장·식당 등과 함께 대표적인 수혜자로 꼽혔다. 그동안 금지됐던 실내 취식이 가능해지면서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극장을 찾는 발길도 늘어났을뿐더러, 관객당 기대수익도 상당히 늘었다.

잔칫집 극장가 ‘웃픈’ 딜레마 
갑자기 돌아온 봄날에 ‘흠칫’

이번 달부터 성수기인 여름까지 흥행 기대작이 계속 늘어서 있다는 점 역시 호재다. 코로나 유행 이전에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인기작들의 속편이 개봉날짜를 속속 확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일 개봉한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는 일주일 만에 약 400만명을 동원하면서 코로나 유행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이어 오는 18일에는 <범죄도시2>가 개봉한다. 전작인 <범죄도시>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687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범죄도시2>는 이보다 한 등급 낮은 15세 관람가로 더 큰 흥행을 노리고 나섰다.

다음 달에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마녀 Part2> <탑건: 매버릭>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오는 7월에는 <토르: 러브 앤 썬더> <한산: 용의 출현> 등이 개봉 날짜를 조율하는 중이다. 

특시 <한산>은 2014년 개봉한 <명량>의 후속작이다. <명량>은 관객 1761만명을 동원하면서 개봉 8년 뒤인 지금까지도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업계에서 <한산>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팝콘 푸느라
수명 갉았다”

CGV 관계자는 “우선 <닥터 스트레인지>가 첫 단추를 잘 꿰준 것으로 보고 있다. 덕분에 코로나 유행 때 영화관을 찾지 못했던 관객들이 다시 돌아오는 계기가 잘 마련된 것 같다”며 “다른 인기 후속작들과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줄 서 있는 만큼, 지금부터 여름시장까지 더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가 시장에 좋은 신호를 준 것으로 본다”며 “그동안 너무 어려웠던 만큼, 좋은 상황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달을 기점으로 실적 ‘턴어라운드(흑자 전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큰 업체들은 이번 달을 기점으로 살아날 것으로 본다”며 “대표적으로 업계 1위인 CGV는 지난 27개월 동안 계속 적자에 허덕여왔는데, 이번 달에는 반등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환욱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지난 3월 말 작성한 투자 보고서에서 CGV가 올해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코로나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콘텐츠가 연달아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티켓 가격 인상으로 큰 폭의 실적 개선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또 마진율이 높은 매점 매출 회복 및 비용 절감 정책으로 소폭의 흑자 전환도 가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반등 조짐
흥행 기대작 줄줄이…장밋빛 전망

하지만 급격한 회복세에 따른 반작용도 상당하다. 최근 영화관 현장 근무자들은 갑자기 불어난 업무량 때문에 여러 고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 유행 당시 불황으로 한껏 감축했던 인원이 다시 충원되기도 전에, 관객이 몰려든 여파다.

앞서 이번 달 초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과도한 업무로 너무 힘들다”며 토로하는 영화관 현장 직원들의 글이 수차례 올라왔다. CGV 직원으로 추정되는 A씨는 ‘지금 시키는 그 팝콘, 직원들 수명 갉아 내드린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려운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그는 “코로나 (유행)이전엔 영화관당 직원이 6~7명 있었고 아르바이트생도 20~50명씩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직원 3명이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면서 “휴무를 보장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화재·안전문제 등 그 어떤 사건사고가 터져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난달 25일부터 영화관 취식이 가능해졌고, 모두가 잘될 거라고 예상했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는데 본사는 옥수수, 기름, 팝콘 컵, 콜라 컵 등 기본 물품들을 보충하지 않는다”며 “발주를 안 한 게 아니라 3주 전부터 본사가 물량을 통제하고 지정된 수량만 넣어줬다”고 비판했다.

A씨는 “매점엔 대기 고객만 300명을 넘어가고 아르바이트생 2명이서 모든 주문을 다 해결하고 있다. 각종 대기줄을 쳐내느라 정직원도 12시간씩 밥은커녕 물도(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내가 간 지점은 팝콘이 잘 나와서 저희가 배부른 푸념하는 것 같나. 그거 팝콘 아니다”라며 “뒤에서 어떻게든 재고 요리조리 옮겨서 고생하는 영업팀 사람들과 12시간씩 배고픔 참고 클레임(항의) 참고, 참으며 일하는 현장 직원들·아르바이트생·미화 직원들 수명 갉아서 드린 것”이라고 호소했다.

알바 다 
뺐는데…

A씨 주장에 공감하는 롯데시네마·메가박스 직원들의 증언이 계속 이어지면서, 해당 게시판은 업계 성토의 장이 됐다.


회사 측은 “이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다”며 사과하고 빠른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영화 예매율 추이를 보면서 지난달 중순부터 일찌감치 인력 확충에 나선 바 있다”면서도 “주요 채용 대상이 대학생들인데, 중간고사 기간이 겹치면서 필요한 만큼 채용이 되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말 등 관객이 많을 때는 본사에서도 현장 지원을 나가는 등 인원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CGV 관계자는 “<닥터 스트레인지> 개봉일이 4일이었고, 다음날 어린이날이 겹치면서 하루 관객 수가 총 130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현장 직원들의 고충도 그만큼 컸던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코로나 유행 여파로 인원을 줄인 것은 맞지만 거리두기 해제 이후 인력 충원이 이루어졌다”면서 “예상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방문하면서 일시적인 혼란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18일 <범죄도시2>가 개봉하면 지난 5일만큼은 아니겠지만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대한 빨리 추가 채용을 실시해 운영상 어려움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여름 성수기 전까지 차질 없는 운영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확 불어난 인파에 반쪽 인력 곡소리
인력 충원 시급한데…구인난 어쩌나 

하지만 이들이 필요한 만큼의 인력을 즉각 충원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대다수의 서비스업 업종이 구인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서비스업으로 꼽히는 외식업계는 아르바이트 구인난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구인이 한꺼번에 몰린데다 청년들의 시선이 고정적인 근무 방식에서 유동적이면서 단기적인 고수익 업종으로 쏠리고 있는 탓이다.

이로 인해 식당에서는 최저임금보다 20~30% 높게 책정한 시급을 내걸어도 마땅한 지원자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영화관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 역시 자영업자들과 인력 확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인력 보충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코로나 유행으로 노동 시장이 재편되면서 당분간 이 같은 구인난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주당 17시간 미만의 초단기 일자리 취업자 수는 231만9000명이다.

코로나 유행 이전인 2년 전에 비해 45%가량 급증한 수치다. 앞서 “당장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던 영화관 관계자들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구인난이라고는 하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이번 달 초가 지난달 말보다 지원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추가 채용 외에도 숙련도에 따른 보직 배치와 지속적인 교육 등으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방안을 적극 강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뽑아도
너무 늦었다

인원 공백이 지속되면 고객 불만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간만에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을 붙잡지 못한다면, 이들의 ‘봄날’은 말 그대로 ‘일장춘몽’에 그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업계에서는 해결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긴 터널을 지나온 영화업계가 마지막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지, 그 행보에 눈길이 모이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블록버스터 맞설 국내 기대작 라인업

올해 흥행 기대작 중에는 ‘할리우드표’ 블록버스터가 다수 포진돼있다. 하지만 이에 충분히 대적할 만큼, 국내 영화 라인업도 쟁쟁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우선 <브로커>가 다음 달 8일 개봉을 확정지었다. 일본의 명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배우 송강호·강동원·배두나 등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만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렸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했다. 

뒤이어 <마녀 Part2. The Other One>이 다음 달 15일 개봉 예정이다. 전편의 독특한 설정과 배경을 기반으로 더욱 확장된 세계관과 강렬한 액션을 선보인다. 1408대1의 경쟁률을 뚫은 주연 배우 신시아를 비롯해 박은빈·서은수·진구·성유빈·조민수·이종석 등이 출연한다. 전편 주인공이었던 김다미도 특별 출연할 예정이다.

<외계+인>은 오는 7월 개봉한다. <전우치> <도둑들> <암살> 등을 잇달아 흥행시킨 최동훈 감독의 신작이다.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2022년 인간의 몸 안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류준열·김태리·소지섭·염정아·조우진 등이 출연한다. 

<한산>은 7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편 <명량>보다 5년 앞인 1592년 7월의 한산해전을 그린다. <명량>에서 배우 최민식이 맡았던 이순신 장군 역할은 배우 박해일이 맡았다. 이외에도 안성기·변요한·손현주·김성규·김성균 등이 출연해 몰입감을 더한다.

<비상선언>도 올해 여름 안에 개봉할 예정이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에 직면해 ‘무조건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리얼리티 항공 재난 영화로, 이미 지난해 칸 월드프리미어에 초청받은 바 있다. 이병헌·송강호·전도연·김남길·임시완 등 국내 정상급 배우가 대거 출연해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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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