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꽃 여행 ②강릉 선교장과 경포가시연습지

이 여름, 꽃놀이에 진심입니다~

‘하늘이 우릴 향해 열려 있는’ 여름이다. 쪽빛 하늘을 이고 강릉으로 달려간다. 다음 순서로 ‘바다에 풍덩’을 상상했다면 죄송하다. 올여름은 ‘꽃밭에 퐁당’하려 한다. 선교장에 피어오른 탐스러운 연꽃과 능소화, 경포가시연습지에 수줍게 고개 내민 가시연이 강릉의 여름을 활짝 꽃 피우고 있다.

강릉 선교장(국가민속문화재 5호)은 조선 시대 사대부 살림집이다. 오래전 경포호는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커서 선교장 인근까지 이르렀다. 배를 타고 건너다닌다 해 이 동네를 배다리마을(船橋里)이라 불렀고, 선교장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집주인은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다. ‘조선 시대 한양 밖의 가장 큰 한옥’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처음부터 이런 규모는 아니었다. 1700년대 이내번이 지은 안채로 시작해서 대를 이어 점차 증축했다.

국가민속문화재

선교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연지와 짝을 이룬 활래정을 만난다. 1816년 건립한 활래정은 온돌방과 누마루로 구성된다. 반은 땅 위에, 반은 연못 위에 있는 ‘ㄱ 자형’ 구조다. 전면 돌출된 누마루를 연못에 설치한 돌기둥이 받치는 형태다. 연못과 정자의 합은 언제나 고혹적이지만, 연꽃이 만발하는 여름날이 절정이다. 못 가득 피어오른 연꽃과 연잎이 돌기둥을 가려, 활래정이 연지에 떠 있는 듯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활래정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안에서 내다보는 정취 또한 훌륭하다. 벽이 없이 사방을 창호로 두른 덕에 문만 열면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현재 관람객은 내부 출입이 불가하나, 창호를 열어둬 밖에서나마 그 운치를 엿볼 수 있다. 네모난 문 사이로 한국화 한 폭이 살아 숨 쉰다.

활래정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편액과 주련이다. 이는 손님을 환대하고 교류하던 선교장의 가풍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당대 관동팔경과 금강산 유람을 나선 소인묵객은 종종 선교장에서 묵어갔다. 활래정 옆 월하문이 이를 증명한다. 월하문 기둥에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鳥宿池邊樹 僧鼓月下門)’이라고 적혔는데,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는 늦은 밤이어도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리라는 뜻이다. 선교장에 묵은 손님들이 보답으로 남긴 시와 서화를 활래정뿐 아니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사 김정희가 남긴 현판 ‘홍엽산거(紅葉山居)’는 현재 선교장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선교장의 사랑채 열화당에도 손님들의 특별한 선물이 남아 있다. 1815년 건립한 열화당은 선교장 바깥주인의 거처이자 손님맞이 중심 공간으로, ‘이곳에 모여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을 담았다. 열화당에는 전통 한옥과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차양이 눈에 띈다. 선교장에 머무른 러시아 공사가 환대에 대한 답례로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문화해설사가 열화당 앞마당 꽃나무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 양반 집 마당에나 심을 수 있었다는 능소화다. 선교장에 머무른 충청도 선비가 다시 강릉에 오면 능소화를 가져오겠다고 했고, 실제 이 나무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 정성에 감복한 선교장 주인이 앞마당에 심어 잘 가꿨단다. 한여름 화려하게 꽃 피운 능소화가 열화당 풍경을 더욱 고귀하게 만든다. 선교장 입장료는 어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이고,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연중무휴)다.

선교장에 피어오른 탐스러운 연꽃
경포가시연습지에 수줍게 가시연

선교장 인근 경포가시연습지도 여름 꽃놀이 명소다. 경포호 주변 습지를 복원한 뒤, 가시연(멸종 위기 야생 생물 2급)이 다시 꽃 피우고 있다. 가시연은 풀 전체에 가시가 있고, 꽃은 일반 연꽃보다 짙은 자줏빛을 띤다. 흔히 볼 수 없어 더 특별한 꽃구경이다.

경포대와 인접한 경포가시연습지 방문자센터에서 탐방을 시작하자. 경포호와 경포습지 사이 산책로를 따라 가시연발원지에 이른다. 나룻배체험장, 연꽃정원으로 산책을 이어가며 꽃놀이를 즐긴다. 연꽃정원은 드넓은 연밭 사이로 덱 산책로를 조성했다. 꽃길을 걸으며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경포가시연습지 연꽃정원에서 산책로를 따라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까지 갈 수 있다. 조선 중기 대표 여성 시인 허난설헌과 그의 동생이자 〈홍길동전〉을 쓴 허균을 기리는 공원이다.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으로 전하는 강릉 초당동 고택(강원도 문화재자료 59호)과 허균·허난설헌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허균·허난설헌기념관 등이 자리한다. 야외에는 허난설헌 동상과 허씨5문장 비석이 있고, 주변에 솔숲이 우거져 산책하기 좋다.

경포가시연습지에서 멀지 않은 순포습지도 복원했다. 순포는 강릉 대표 석호 중 하나였으나, 농경지 개간과 대형 산불에 따른 토사 유출 등으로 상당 부분이 육상생태계로 전이돼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에 2010년대 들어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습지와 함께 이곳의 깃대종인 순채 서식지도 복원했다. 순채는 멸종 위기 야생 생물 2급으로, 순포라는 지명 유래와 관계가 깊다. 순채가 많이 자라는 지역이라 하여 이 일대를 순포라고 불렀다.


습지를 따라 탐방로를 조성했다. 경포가시연습지에 비해 사람이 적어 한적하게 자연을 감상하기 좋다. 해당화, 애기부들, 어리연 등 계절별로 다양한 꽃과 식물이 함께한다. 습지에 찾아오는 새를 살펴볼 수 있도록 조류관찰대도 마련했다.

순포습지

강문해변은 바다가 배경이 되고, 반지와 이젤, 액자 등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포토존이 있어 매력적이다. 경포해변보다 한산한 편이었는데, 포토존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사람이 늘었다. 해변을 따라 전망 좋은 카페와 음식점도 많다. 강문해변과 경포해변을 잇는 아치형 인도교 강문솟대다리가 명물이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이 다리를 빛낸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강릉 선교장→경포가시연습지→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강문해변→순포습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강릉 선교장→경포가시연습지→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강문해변→순포습지 
둘째 날: 영진해변→주문진수산시장→아들바위공원→BTS버스정류장(방탄소년단 앨범 재킷 사진 촬영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강릉 선교장 knsgj.net
- 강릉생태관광 www.gnecotour.com
- 강릉 관광 www.gn.go.kr/tour/index.do

문의 전화
- 강릉 선교장 033)648-5303
- 경포가시연습지 방문자센터 033)640-4450
- 경포관광안내센터 033)640-4531 

대중교통
[버스] 서울-강릉,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30~32회(06:32~22:20) 운행, 약 2시간20분~2시간50분 소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2회(06:00~23:0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강릉시외·고속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202번 일반버스 이용, 선교장 정류장 하차, 선교장까지 도보 1분. 강릉시외·고속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202번 일반버스 이용, 경포대·참소리박물관 정류장 하차, 경포가시연습지까지 도보 6분.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txbus.t-money.co.kr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강릉시외버스터미널 033)643-6092 강릉고속버스터미널 033)641-3184 강릉시버스정보시스템 bis.gn.go.kr
[기차] 청량리역-강릉역, KTX 하루 14~21회(05:32~22:32) 운행, 약 1시간30분 소요. 강릉역 건너편 정류장에서 202번 일반버스 이용, 선교장 정류장 하차, 선교장까지 도보 1분. 강릉역 건너편 정류장에서 202번 일반버스 이용, 경포대·참소리박물관 정류장 하차, 경포가시연습지까지 도보 6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강릉시버스정보시스템 bis.gn.go.kr

자가운전
강릉 선교장: 서울양양고속도로→양양 JC에서 속초·강릉 방면 오른쪽→동해고속도로→북강릉 IC→강릉·사천 방면 오른쪽→동해대로→죽헌교차로에서 왼쪽→율곡로→운정길 방면 좌회전→선교장 
경포가시연습지: 서울양양고속도로→양양 JC에서 속초·강릉 방면 오른쪽→동해고속도로→북강릉 IC→강릉·사천 방면 오른쪽→동해대로→죽헌교차로에서 왼쪽→율곡로→경포교차로에서 경포 방면 왼쪽→경포가시연습지

숙박 정보
- 강릉오죽한옥마을(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강릉시 죽헌길, 033) 655-1117 
- Y&G비즈니스호텔&펜션(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강릉시 경포로475번길, 033)644-3344 
- 수호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강릉시 창해로, 033)644-1239

식당 정보
- 오월에초당9(쇠고기멸치국수): 강릉시 난설헌로, 033)651-0187
- 밥은먹고다니냐(꼬막밥): 강릉시 난설헌로, 033)651-5767
- 카페 폴앤메리(수제 버거): 강릉시 창해로350번길, 033)653-2354 

주변 볼거리
강릉 오죽헌, 경포해변, 경포대,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경포아쿠아리움, 강릉솔향수목원, 안목해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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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