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특별 인터뷰' 먼저 치고 나간 야권 잠룡 원희룡 제주도지사

"윤 검증대 오르면 당 후보들 반등한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내년 지방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며 대권 도전장을 냈다. 검사 출신의 원 지사는 3선 국회의원, 제주도지사 재선 등을 거치면서 입법, 사법, 행정 실무를 두루 거쳤다. <일요시사>는 창간특집으로 원 지사의 대권 행보를 인터뷰했다.

정치 이력만 21년.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대권 도전은 벌써 두 번째다. 그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당시 그의 나이 40대. 원 지사는 일찌감치 원조 소장파 ‘남원정’의 멤버로 이름을 날리며, 합리적 개혁 보수의 자리를 꿰찼다. 

다만 그는 7년간 제주도정을 이끌며 대권주자로서는 미비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내년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10개월. 대선을 향한 그의 ‘스퍼트’가 시작될 전망이다. 원조 소장파, 원희룡이 곧 중앙 무대로 돌아온다. 다음은 원 지사와의 일문일답.

-대선 출마 이유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문재인정부의 불공정과 ‘내로남불’에 대한 분노 표출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공정’이라는 가치를 훼손한 적대적 진영 정치를 끝내고 미래로 가야 한다. 대한민국을 통합하며 미래로 전진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스스로를 던지기로 했다.

-도지사 사임 및 대권 도전 선언 시기는 언제쯤인가.


▲구체적인 출마 선언 시기는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여러 상황을 잘 고려해서 결정하겠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이라 지사직의 책임감이 가볍지 않다. 사실 도정 레임덕을 피하려면, 전략적으로 내년 지방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끝까지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 진로와 관련된 문제를 투명하고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유력 대권 후보로서 꼭 하고자 하는 공약이 있나.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일과 집, 교육이다. 노동의 경우 일자리 안정망 구축과 기업의 투자가 필요하다. 결국은 규제개혁과 노동개혁 문제로 가야 한다. 노동시장 내부의 기득권을 해결하지 못하면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열어주는 게 불가능하다.

또 집 문제는 주택 공급 확대, 1가구 1주택 및 실수요자 지원, 투기 차단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교육 부문은 사교육 시장의 기득권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인공지능(AI) 관련 교육을 집중 지원해 전 국민 ‘1인 1 AI 튜터’ 같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도지사직을 맡으면서 중앙정치와는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앙정치에서 멀어진 동안 인지도는 낮아졌지만 행정경험을 더했다. 제주도정을 맡은 동안 중앙정치에서 주목을 받고 못 받고는 2차적인 문제다. 제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을 이끌기 위해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입법, 사법, 행정을 아우르는 폭넓은 경험이 필수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7년은 제게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폭넓게 준비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풍부한 경험이 쌓인 만큼, 더 묵직한 존재감으로 값어치를 증명하겠다. 이제 중앙 무대에서 주목받고 평가받기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할 예정이다.


“중도·젊은층 잡고 전국 정당으로 도약”
입법·사법·행정 아우르는 폭넓은 경험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여권의 대권후보로 꼽힌다. 같은 도지사로서, 이 지사의 행정력에 대해 어떻게 보나.

▲여러 모로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국가경영에 대한 책임감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편가르기 포퓰리즘 정치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차별적인 기본소득을 주장하면서 그 재원은 어디서 거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이 매번 바뀐다.

특히 이 지사는 권력을 가졌을 때 그 칼을 지나치게 휘둘러온 측면이 있었다. 지금은 진영논리가 극단화된 위기의 세상이다. 국민들께서 그걸 부추기는 대통령을 또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지지율이 미미한 상태다. 이를 끌어올린 방안은 무엇인가.

▲현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가려 국민의힘 후보들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검증문제로 흔들리면 국민의힘 후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것이다. 양 진영으로부터 비토가 덜하고 포용력까지 갖춘 제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 과정을 다시 보여줄 것이다. 진정성과 전면적 헌신 부분이 국민들에게 전달되면 점차 정치적 존재감도 커질 것이라 본다.

-윤 전 검찰총장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검찰총장으로서는 역대급 총장이다. 그 정도 강단과 돌파력을 보여준 사람은 많지 않다. 국민들은 윤 전 총장이 검찰 권력을 내 편, 네 편 가르지 않고 쓴 것에 대해 통쾌해했다. 불공정과 위선에 진저리가 났는데 법적으로 이걸 청산하니깐 지지율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야권에도 많은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그렇다면 ‘정치인 윤석열’은 어떤가.

▲무엇보다 대통령 업무는 민생·미래(비전)·통합까지 챙기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을 판단할 영역이 최소 3개는 더 있다는 얘기다. 국민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검증을 받아야 하고, 치열한 경쟁도 거쳐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윤 전 총장은 앞으로 열 달 내내 정치력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윤 전 총장이 당에 들어올 것으로 보나. 윤 전 총장 영입을 위한 당의 전략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우리 당에 들어올지 여부와 관계없이 윤 전 총장이 문재인정부의 연장을 반대하는 것에 확실히 힘을 모아줄 것으로 기대한다. 대통령이란 개인이 영웅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일방적인 지시를 통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정치는 민주주의적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명확한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집단적 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정권교체라는 큰 흐름속에서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원조 소장파 “중진부터 정신 차려야”
“통합과 미래로…대전환의 시기에 섰다”

-야권 유력 대권후보들과 비교했을 때 원 지사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수평적 소통과 개혁성, 약점이 적고 방어력이 뛰어나다는 점, 통합정치의 최적임자라는 장점이 있다. 보수의 신뢰와 젊은 세대와의 소통, 이념적 확장이 가능한 후보라고 자신한다. 겉모습만 화려한 개혁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담고 있는 현실적인 개혁성을 20년 넘게 다져왔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동시에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점, 지역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 진정한 통합정치를 할 수 있다는 점, 세대 통합의 적임자라는 점 등이 저의 최고 강점이다.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했다.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재인정부의 무능과 ‘내로남불’에 대한 민심의 분노 폭발 아니겠나. 최악의 고용 쇼크와 미친 집값, 그리고 전세대란이 발생했다. LH 직원들과 정권 핵심 멤버들의 부동산 투기, 자녀들의 부정입학 등이 터졌음에도 민주당은 180석을 믿고 오만하게 독주했다.

우리 당은 강경 지지층의 비합리적인 모습과 단절했고, 합리적 노선을 가진 후보를 내세웠다. 진영정치에서 탈피해 상식과 합리로 가라는 국민요구를 받아들였다.

-특히 2030 남성들이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줬다. 이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 이유는.

▲정부가 말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 모두 쇼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2030세대는 내 집 마련과 일자리 부분에 있어 절망적인 상황이다. LH 사태, 정권 핵심 멤버들의 부동산 투기, 자녀들의 부정입학이 이어지며 환멸을 느낀 것 같다.

지난 4년간 내로남불, 위선만을 보여 왔기에 이번 보궐선거에서 보수 정당을 지지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연설 어떻게 보셨나. 문재인정부에 대한 평가도 함께 부탁드린다.

▲‘정신승리’ ‘자화자찬’ 일색의 연설이었다. 백신후진국이란 현실은 외면하고 아직도 방역모범국가 타령만 했다. 인사검증 실패에 대해서는 청문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는 등 내로남불이 여전했다. 북한의 심기를 살피느라 대북전단을 처벌하겠다는 다짐 문구까지 넣었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달나라에 보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아니라,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나라’가 되었다. 아직도 1년이 남았나 하는 국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뚜렷한 방향 제시와 실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당이 이번 재보궐선거 승리에 벌써 취해 옛날 모습으로 간다면 속된 말로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지금 국민의힘은 안철수와의 합당, 홍준표의 복당, 윤석열의 입당 등 풀어낼 과제가 산적해 있다.

승리에 취해 탄핵을 인정하지 않는 걸로 보여지는 발언 등으로 과거 회귀 조짐을 보여선 안 된다. 자체 정화기능이 작동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길 수 있는 대통령?
전진하는 대통령으로!

-대선 승리를 위해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당의 혁신 방향은 분명하다. ‘중·중·중’으로 돌리는 것이다. 중도, 젊은층, 전국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아는 리더십 있는 인물이 나와야 한다. 특정 개인 인물로 부족하면 과거 한나라당 소장파처럼 그룹이 나서 목소리를 내며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스펙보다 혁신적인 마인드, 민심을 읽고 제대로 담으려는 진정한 정치인으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지도부나 중진들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개혁적 목소리를 내야 하는 초선들도 더 분발해야 한다.

-최근 당내 홍준표 의원의 복당 문제가 시끄럽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모든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준표 의원의 복당, 윤 전 총장의 입당, 안철수 대표의 합당을 모두 지지한다. 복당 이후 영향에 대해 쉽게 예상하긴 어렵다. 초선 의원들의 우려를 비롯한 홍 의원의 복당을 반대하는 분들의 이유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홍 의원이 돌아와 흔들릴 정도의 당이라면 집권을 포기해야 한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본다. 지금은 문재인정권을 끝내기 위해 모두가 손을 잡을 때다. 더 큰 국민의힘을 위해 중도확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 당내 초선 의원들이 약진이 두드러진다.

▲초선 의원들은 아직 크게 얽매인 게 없지 않나. 커가는 과정에서 국민의 마음과 함께하고 민심을 당내로 끌어들이면서 국민적 인지도와 지지도가 생겨야 한다. 그런 의원이 많아야만 당이 강하고 건강해질 수 있다.

당 정치나 당 주류만을 쳐다보는 정치만 한다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혁은 주류만의 정치로 묶이지 않고, 늘 국민들과 중도층을 향해 열려있을 때 가능하다.

-원조 소장파 그룹 ‘남원정’의 멤버로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초선 의원들은 반성과 미래를 위한 개혁 과제를 제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초선 의원들이 2030 젊은 세대와 코드를 맞춰주시기 바란다. 2030 MZ세대가 문재인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건 우리로서 절대적 기회다.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된다. ‘꼰대 정당’을 탈피해서 2030 젊은 세대들이 참여하는 정당이 되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음 대통령은 단순히 ‘이길 수 있는 대통령’을 넘어 ‘통합하여 미래로 전진할 수 있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한풀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보수진영에서는 지난 보수정권을 정리한 그 칼날로 진보진영을 정리해달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이 기준으로 대통령을 선택해선 안 된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눠져 다시 싸우는 과거로 후퇴해서는 곤란하다. 대한민국 전진을 위한 대전환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일요시사>가 창간 25주년을 맞이했다. 한마디 부탁드린다.

▲1996년 이후로 사반세기에 이르렀다. 격동했던 시간을 기록하고 국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동행했던 시간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제 25세의 청년의 필봉으로 우리의 미래를 힘차게 열어가는 언론사가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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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