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된장
내 고향 노원에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있다.
수락산(水落山)의 수(水)는 수석(水石)의 준말이다.
즉 아름다운 물과 돌로 이뤄진(落) 산이라 해서 수락산이라 이름 지어졌다.
불암산(佛巖山)의 불암은 ‘부처 바위’라는 의미로, 바로 불암산에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사찰 불암사(佛巖寺)에 의해 붙은 이름이다.
불암산의 원래 이름은 천보산(天寶山)이었는데 사찰 불암사가 유명한 관계로 산 이름 전에 ‘불암사’를 되뇌다 결국 불암이 산 이름이 된 것이다.
이런 경우는 자주 발견하는데, 은행나무로 유명한 경기도 용문산 역시 그렇다.
용문산의 이름은 원래 미지산(彌智山)이었다.
그런데 그곳의 사찰인 용문사의 위세로 산 이름이 자연스럽게 용문산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느닷없이 왜 서두를 이렇게 잡았을까.
바로 된장의 주재료인 메주콩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서다.
메주를 만드는 노란 콩의 이름은 그냥 두(豆) 혹은 큰 콩(大豆)으로 불렸는데 그 콩으로 메주를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름이 메주콩으로 정해졌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함이다.
이 대목에서 또 다른 의문이 발생한다.
검은콩으로는 왜 메주를 만들지 않았느냐다.
이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필자의 추측으로는 백의민족을 표방하는 우리 민족의 저변에 깔려 있는, 흰색을 좋아하는 이유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실 검은콩의 경우 생산량도 메주콩에 비해 저조했지만 그리 애용되지 않았었다.
그저 메주콩의 보완재로만 여겨지다 현대 들어 그 효능이 밝혀지면서 각광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런 해석이 능히 가능하다.
이제 메주콩을 재료로 만든 된장에 대해 언급하자.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살피면 ‘된장은 메주에 소금물을 알맞게 부어 익혀서 장물을 떠내지 않고 그냥 만들기도 한다. 된장은 간장과 함께 예로부터 전해진 우리나라의 조미식품(調味食品)으로 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데 기본이 되는 식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된장을 만드는 과정과 조미식품이란 해석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된장이 단순히 조미식품에 불과하느냐의 문제다.
과거 문헌들을 살피면 된장이 밥반찬으로 이용됐다거나 또 힘든 시기에는 ‘된장을 풀어 죽을 쒀서 먹었다’는 기록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밝히고 넘어가자.
김영삼 전 대통령과 관련된 된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 전 대통령이 우리 헌정 사상 최연소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과 대통령의 직위에까지 오른 그 근저에 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김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던 1954년 무렵 그의 지역구인 거제에는 실향민들을 포함해 가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 현상을 살핀 김 전 대통령이 멸치를 팔아 된장을 구입하여 수시로 그들에게 제공했고, 27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당시 거제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된장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그러나 먹을 음식이 변변치 않은 마당에 된장이 조미 역할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해 볼 수 있다.
이제 된장의 효능에 대해 살펴보자.
<중앙일보> 기사로 대체한다.
된장의 건강상 효능은 암 예방, 항산화, 비만 억제, 염증 치료, 혈압 강하,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 등이다.
동물실험에선 된장을 먹은 쥐의 체중 감량 효과가 고추장을 먹은 쥐보다 컸다.
된장에 풍부한 아이소플라본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심혈관 질환 위험을 낮춰준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된장과의 인연
조선시대엔 콩나물로 김치 담갔다?
콩나물
콩나물은 대두(大豆)를 발아시켜 싹을 틔운 나물이다.
먼저 대두에 대한 작품을 감상해보자.
성현의 작품 ‘대두’(大豆)이다.
奇種從誰得(기종종수득)
뛰어난 품종 누구에게 얻었는가
曾從上國來(증종상국래)
일찍이 중국에서 전래되었네
托根隨地出(탁근수지출)
어느 땅에나 뿌리 내려 싹 틔우고
引蔓向空回(인만향공회)
공중 향해 돌아 넝쿨 뻗네
紫萼凌霄短(자악능소단)
자색 꽃은 능소화보다 작고
靑稭豆莢堆(청개두협퇴)
푸른 줄기에 꼬투리 주렁주렁
殷勤爲收子(은근위수자)
정성스럽게 씨앗 거둬
却欲遍園栽(각욕편원재)
두루두루 밭에 심어보려네
다음은 이응희의 작품이다.
大豆(대두)
대두
大豆田間種(대두전간종)
밭 사이에 콩 심으니
離披萬葉敷(이피만엽부)
많은 잎이 가득 펼쳐졌네
露花明紫玉(로화명자옥)
이슬 맞은 꽃 붉은 옥처럼 밝고
霜莢抱黃珠(상협포황주)
서리 맞은 콩깍지 누런 구슬 머금었네
子美豐盤膳(자미풍반선)
두보의 밥상 풍성하게 했고
哀公助鼎需(애공조정수)
애공은 제수 도왔네
穀中多有力(곡중다유력)
곡물 중에 많고 힘 있어
能養濯龍駒(능양탁룡구)
탁룡의 말 기를 수 있었네
* 자미는 두보를, 애공은 중국 노(魯)나라 임금을 지칭하고 탁룡은 고대 마굿간 이름이다.
상기의 두 작품을 살피면 공통된 장면이 등장한다.
콩꽃에 대해서다.
성현에 따르면 콩꽃은 능소화와 비슷한 자색이지만 크기는 작다했고 이응희는 이슬 맞은 꽃이 붉은 옥처럼 밝다고 했다.
콩꽃.
필자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콩 농사를 지어봤지만 콩꽃을 상세하게 살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를 계기로 콩꽃을 찾아 자세하게 관찰하고는 선조들의 관찰력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콩나물에 접근해보자.
콩나물은 앞서 밝힌 대로 콩을 발아시켜 싹을 틔운 나물로 국을 끓이거나 무침으로 먹고는 한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는 무침이나 국으로 식용한 대목보다 김치로 담가 먹은 기록들이 자주 눈에 띈다.
실례로 이익의 <성호전집>에 淹爲黃卷菹一盤(엄위황권저일반)이란 글귀가 실려 있다.
황권은 大豆黃卷(대두황권)의 줄인 말로 콩나물을 의미하는데 이를 번역하면 ‘콩나물로 담근 김치 한 접시를 마련하다‘라는 의미다.
즉 조선 시대에는 콩나물로 김치를 담가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