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냐 딸이냐’ 미원상사그룹 계열분리 시나리오

장남 따라잡는 장녀…판 뒤집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미원상사그룹 승계구도에 눈길이 간다. 애초 후계 경쟁력을 선점했던 장남에 비해 장녀의 존재감이 비교적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장남 중심의 수직 계열화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지만, 장녀의 등장으로 계열분리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 미원상사 본사 ⓒ네이버 지도

미원상사그룹은 기초 화학 소재와 첨단정밀 화학 소재를 다루는 중견 화학사다. 지난 1959년 설립돼 업력만 60년이 넘었다. 창업주는 고 김진박 회장. 이북 출신의 자수성가형 오너로 ‘화학 외길’만 걸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미원상사그룹은 오너 2세 김정돈 회장 중심의 경영 체제다.

중견 화학사
60년 업력

미원상사그룹은 지난 2009년 미원상사를 인적 분할해 미원스페셜케미칼을 설립했다. 2017년에는 다시 미원스페셜케미칼을 신생 법인 미원홀딩스와 존속 법인 미원스페셜티케미칼로 인적 분할하면서 지주사 전환의 기틀을 닦았다. 업계 안팎에선 향후 3세 경영을 위한 포석으로 바라봤다.

김정돈 회장의 장남 김태준씨는 미원홀딩스 지분을 대거 확보하기 시작했다. 분할이 이뤄졌던 그해 12월 태준씨는 모두 8차례에 걸쳐 미원홀딩스 주식 24만9960주를 사들였다. 동시에 태준씨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그룹 계열사 미원화학과 미원상사 지분 전량을 처분했다.

태준씨의 미원홀딩스 지분 매입 시기와 맞물리는 만큼, 재원 마련을 위한 매도로 해석됐다. 당시 태준씨가 처분한 주식 단가는 모두 100억원에 육박했다.


태준씨는 이듬해인 2018년에도 미원홀딩스 지분을 추가로 사들였다. 그해에만 모두 9차례에 걸쳐 4만6181주를 매수하면서 34만4000주(14.83%)에 안착했다. 현재 태준씨는 미원홀딩스 최대주주 자리를 유지하면서 공고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원홀딩스는 미원상사그룹의 여러 계열사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만큼 태준씨가 미원홀딩스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점은 향후 승계와 연결 지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원홀딩스는 8개 해외 법인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또 상장 계열사인 미원스페셜티케미칼과 동남합성 지분을 각각 31.89%, 40.26% 소유한 최대주주다. 두 계열사는 미원상사그룹의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법인으로 평가받는다.

미원스페셜티케미칼은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액 377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466억원, 순이익은 395억원을 나타냈다. 올해에도 큰 변수가 없다면 호실적은 계속될 전망이다. 반기 누적 기준 별도 매출액은 직전년도에 비해 4.5% 하락한 1870억원이지만, 영업이익은 동기간 3.7% 상승한 267억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순이익은 2.4% 줄어든 236억원이었다.

3세 경영 쪽으로 급변하는 승계구도
지주사 전환 앞두고 장남 지분 매입

동남합성은 지난해 별도 기준 1260억원 매출액과 98억원 영업이익, 그리고 17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동남합성 성적표는 지난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점쳐진다. 반기 누적 기준 별도 매출액은 직전년도 대비 1.9% 하락한 620억원에 그쳤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43%, 78.1% 증가한 72억원, 63억원을 보였다.


다만 그룹 내에서 태준씨 홀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태준씨는 미원홀딩스의 최대주주지만, 미원홀딩스의 2대 주주인 미원상사와의 지분 차가 0.5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원상사에서는 태준씨와 같은 오너 2세 장녀가 우회적으로 존재감을 기르고 있다. 장녀 김소영씨는 미성종합물산이라는 회사를 통해 미원상사 지분을 보유하면서 간접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미성종합물산의 최초 미원상사 지분 보유 시기는 2002년이다. 당시 미성종합물산은 7700주(0.55%)를 보유하는 데 그쳤다. 2003년에는 이마저도 전량 매도했다. 얼마 동안 지분 변동은 없었지만 2006년부터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미성종합물산은 2006년부터 미원상사 주식 1만1000주(0.52%)를 장내 매수했다. 이때부터 미성종합물산은 매년 추가 매수와 매도, 유상증자 등을 거쳐 2014년에 2만1547주(2.4%)를 확보했다. 이어 2015년과 2016년에도 추가 매입을 통해 모두 4만200주(4.6%)에 이르렀다.
 

본격적인 대량 매입이 실시된 시기는 2017년부터다. 그해 미성종합물산은 2만4594주를, 이듬해인 2018년에는 2만527주를 매입했다. 매입 주식 수가 2만주를 넘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2018년까지 8만5321주(11.01%)를 확보한 미성종합물산은 무상증자와 매수 등을 통해 지난해 70만6698주(13.98%)까지 치솟을 수 있었다.

눈길이 가는 건 해당 시기에 미성종합물산 주주가 변경됐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주요 주주는 그룹 계열사 미성통상과 김정돈 회장의 모친 윤봉화씨로 각각 21.3%, 20%를 보유한 상태였다.

우회 지배
장녀 등장

하지만 2017년부터 소영씨와 특수관계인이 98.7%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어 소영씨의 남편인 강신우씨가 지난해 미성종합물산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미성종합물산은 올해에도 미원상사 주식을 계속해서 사들였다. 지난 1월 7차례에 걸쳐 4551주를 취득한 데 이어 2월과 3월, 5월과 6월, 8월과 9월, 그리고 지난달에 모두 4만2710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지난달까지 모두 4만7261주를 매입한 미성종합물산은 최종 75만3959주(15.17%) 보유에 등극하면서 김정돈 회장(18.51%) 다음으로 미원상사의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사실상 미성종합물산 최대주주인 소영씨가 간접적으로 미원상사에 대한 지배력을 기를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소영씨의 지배력이 닿아 있는 미원상사와 미원홀딩스의 최대주주인 태준씨 사이의 미원홀딩스에 대한 지분 차가 0.55%로 좁혀지게 됐다. 다만 미원상사는 미원홀딩스 지분 취득 목적에 대해 ‘경영 참여’가 아닌 ‘투자’라고 공시했다.


태준씨의 미원홀딩스가 미원상사에서 어느 정도 지분을 갖고 있다면 그의 존재감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원홀딩스는 미원상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태준씨 역시 1주의 미원상사 주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앞서 태준씨는 지난 2017년 미원상사 지분 전량을 처분한 바 있다.

소영씨가 미성종합물산을 통해 미원상사에 지배력을 확대하면서 계열분리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성종합물산이 미원상사 최대주주로 자리를 잡는다면 향후 지배 구조가 ‘소영씨→미원종합물산→미원상사→이하 계열사’와 ‘태준씨→미원홀딩스→이하 계열사’로 구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원상사는 지난해 별도 기준 2376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19억원, 325억원으로 직전년도 대비 63.6%, 59% 상승한 수치다.

올해 역시 기대할만하다는 평가다. 미원상사의 반기 누적 기준 별도 매출액은 137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3.6%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역시 동기 대비 각각 45.3%, 46.7% 증가한 217억원, 215억원을 나타냈다.
 

▲ 미성종합물산 ⓒ네이버 지도

소영씨의 존재감이 선명해지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후계 경쟁력을 선점한 인물은 사실 태준씨라는 반대 해석도 있다. 1983년생인 태준씨는 최근 동남합성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현재 태준씨는 동남합성 상근직을 수행하면서 회사 전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외에도 태준씨는 미원에스씨 경영지원팀장을 맡고 있다. 그는 LG화학 고무·특수수지 사업부를 거쳐 미원에스씨 충주공장 생산팀장 등을 거친 바 있다.


존재감
누가 더?

반면 1980년생인 소영씨는 미원상사그룹 내에서 따로 직을 맡고 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영씨의 남편이 지난해 2월 미성종합물산 사내이사로 취임한 것 외에는 그룹 내 업무와 특별한 연결고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두 오너 3세가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회사의 존재감도 차이를 보인다. 미원상사가 투자 외에 경영 참여 목적으로 지분을 취득한 관계사는 동남합성과 태광정밀화학, 아시아첨가제, 계동청운, 비드테크 등이다.

미원상사는 동남합성 지분 9.33%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태준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미원홀딩스에서는 40.26%의 지분을 쥐고 있다. 미원상사가 아시아첨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35%이지만 최대주주에 미치지 못한다.

태광정밀화학과 비드테크에서는 20% 정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계동청운에서만 100% 지분이 있다.

반면 미원홀딩스는 8개 해외법인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미원스페셜티케미칼과 동남합성에서도 최대주주 지위를 쥐고 있는 상태다.

미원상사그룹에 계열 분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이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 그룹을 주무르고 있는 김정돈 회장은 동생 김정만 대표와 형제 경영 중인 듯하지만 사실상 계열분리와 다름없는 절차를 밟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룹 모태인 미원상사는 지난 2011년 분사를 통해 미원화학을 설립한 바 있다. 당시 미원화학 최대주주는 지분율 18.7%를 차지한 김정돈 회장이었다. 김정만 대표는 0.16%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정돈 회장은 우회적으로 미원화학 최대주주에 이르게 된다.

김정돈 회장은 지난 2011년 주식 매도와 액면 분할을 통해 최초 39만2000주를 보유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매도와 증여를 번갈아 단행하면서 그해에만 19만주를 처분, 20만주로 내려왔다.

김정돈 회장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 차례 증여와 두 차례 매도를 통해 오늘날 10만2200주를 보유하게 됐다. 당초 18.7%의 지분은 4.65%로 줄어들었다.

김정만 대표는 초기 750주로 시작했지만 2011년 액면분할을 통해 3750주로 올라섰다. 다만 2014년 보유 주식을 전량 증여하면서 소유하고 있는 주식 수는 0이 됐다. 하지만 김정만 대표는 법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지배력을 확보했다.

장녀 법인, 새로운 축 형성 가능성
계열분리 발생해도 그룹 이탈 없다?

김정만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미성통상은 최초 미원화학 지분 1만6578주(3.62%)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최대주주였던 김정돈 회장(18.17%)에 비해 초라한 수치였지만 김정돈 회장이 주식 정리에 나설 때 반대로 지분 확보에 돌입했다.

미성통상은 2011년 주식분할을 통해 8만2890주를 확보하면서 본격적으로 장내 매수에 들어갔다. 미성통상이 보유한 미원화학 주식 수는 2012년 9만8550주(4.25%), 2013년 18만360주(7.73%)로 크게 늘었다.

미성통상은 2014년 미원화학 주식을 54만2939주(23.13%)로 크게 늘렸는데, 해당 시기는 미성통상이 김정돈 회장을 제치고 최대주주로 자리를 잡았을 때다. 미성통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지분 매입에 나섰다.
 

2015년부터 매년 61만5255주(26.26%), 63만404주(28.42%) 등으로 늘어났고, 64만2079주(29.32%)까지 지분을 확보했다.

미원화학은 미원상사그룹 내에서 미원상사, 미원홀딩스, 미원스페셜티케미칼, 동남합성과 같은 상장 계열사다.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액은 1547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직전년도에 비해 79.1%, 83.2% 증가한 154억원과 135억원으로 나타났다.

호실적은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반기 누적 기준 별도 매출액은 직전년도 동기 대비 8.2% 상승한 806억원이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같은 기간에 비해 35.8%, 39.6% 상승한 98억원과 86억원이었다.

종합해보면 지배 구조가 ‘김정돈 회장→미원화학’에서 ‘김정만 대표→미성통상→미원화학’으로 변동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만 대표의 미성통상과 미원화학이 미원상사그룹에서 완전히 이탈한 것은 아니다.

미원화학은 최근까지도 공시를 통해 ‘최대주주가 김정돈 회장에서 미성통상으로 변경됐지만 김정돈 회장의 미원화학에 대한 영향력에는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김정돈 회장은 현재까지 미원화학에서 4.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리돼도
여전히 한몸

겉보기에는 사실상 계열분리로 해석되지만 각자 지분을 유지하면서 그룹의 전체적인 틀은 유지되는 셈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때 태준씨의 미원홀딩스와 소영씨가 미성종합물산을 통해 지배력을 우회 확보하고 있는 미원상사를 중심으로 계열 분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룹 이탈과 같은 큰 변동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