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국민 변강쇠’ 조지환, 다시 배우를 꿈꾸다

“하룻밤 4번 오르가즘…나는 강하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예능인 조혜련의 동생으로 잘 알려진 배우 조지환과 그의 아내 박혜민이 “잠자리 도중 네 번 느꼈다”고 밝혔을 때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 부부> 고정 패널 홍진경이 입이 딱 벌어졌다. “저 부부 정말 대박이다”고 생각한 건 비단 홍진경만은 아닐 것. 부부만이 아는 속 얘기를 모두 토해낸 두 커플을 향한 관심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단숨에 ‘국민 변강쇠’로 떠오른 배우 조지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금도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그의 인생은, 육체적 대화를 나눌 때처럼 진폭이 컸다. 
 

▲ 배우 조지환 ⓒ고성준 기자

인터뷰를 장소는 서울 상암동 한 커피숍, 오후 2시였다. 사진 촬영을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크업이나 의상을 준비하지 않고 땀에 젖은 채 나타났다. 배우로 알려진 조지환은 배달 대행 이사이기도 하다. 점심 피크가 지나고 잠시 비어있는 시간에 안양서 달려왔던 것이다. 

하루 메시지
500통 셀럽

“기록에 남는 것인데, 이렇게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는 물음에 조지환은 쿨하게 “괜찮다”고 했다. 눈에 띄는 건 오른팔을 휘감은 깁스였다.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이하 <애로부부>) 촬영 전인 5월 말경, 배달 업무를 하다 큰 사고를 겪으며 팔이 부러졌었다. 현재 회복 중이라는 그는 개의치 않은 듯 웃어보였다.

조지환과 그의 아내 박혜민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32시간마다 잠자리를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조지환의 어머니가 있는 상황서도 잠자리를 가질 뿐 아니라, 관계 도중 괴성을 질러 경비실서 호출이 있었던 사연, <소녀경>과 <카마수트라> <킨제이보고서> 등을 독파했다는 조지환의 학구열과 그로 인해 관계 중 네 번의 오르가즘을 느꼈다는 것 등을 털어놓은 두 부부는 국내서 가장 흥미로운 셀럽으로 떠올랐다. 

이른바 ‘멀티 오르가즘’을 느낀다는 박혜민은 대다수 여자의 시기심을 불러일으켰고, 40대임에도 자는 시간 포함 ‘32시간 쿨타임’을 가진 조지환은 남자들의 존경심을 샀다.


“안 그래도 어제 아는 형님이랑 술 한잔했는데, 욕하더라고요. 너가 그래 버리면 나는 뭐가 되냐고요. 하하.”

지난달 31일 방송 후 며칠동안 화제였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서 <애로 부부>와 조지환, 조지환 아내, 박혜민 등이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됐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32시간마다 요구하는 남자’ ‘네 번 느끼게 하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두 부부의 캡처 이미지가 퍼졌다. 

“아직도 부끄러워요. 뭐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게 됐나 싶기도 하고요. 근데 뭐 부부끼리 그러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사이인데. 전 개인적으로 진짜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서로 얘기도 많이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도 털어놓고요.”

시작은 조지환의 엔터 업계에 종사하는 매형으로부터 시작됐다. SBS <기적의 오디션>서 연을 맺은 <애로부부> 김진 PD가 갑자기 조지환이 생각이 났고, 그의 번호를 수소문하던 중 조혜련의 남편과 연락이 닿았다. 대화를 나누던 중 조지환의 아내에게 스트레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2시간마다 잠자리” 아내 인터뷰 화제
소녀경·카마수트라·킨제이보고서 독파

“매형이 PD님께 말을 한 거예요. 지환이 와이프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요. 그래서 직접 혜민이를 설득했어요. 혜민이도 고민하다 용기를 낸 거고요. 혜민이가 ‘ 점점 말라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전 인터뷰 때부터 빵빵 터졌었어요. 근데 방송 때는 사전 인터뷰서 하지 않았던 말도 해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방송 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조지환을 알아보는 사람도 늘어났고, 박혜민은 수술 후에 나오면 카카오톡 메시지가 무려 5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난 가운데, 두 부부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고. 


“제가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방송할 때 와이프가 그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어요. 저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어요. 거실서 자면서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저렇게 괴롭혔지?’라고요. 스스로 ‘너무 짐승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아성찰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어요. 벌써 일주일 넘게 안 했을 거예요.”

부부간의 대화는 더 많아졌고, 서로 신뢰도 높아졌다. 다만 가족들과는 좀 멀어진 느낌이라고 한다. 아무도 이 부분에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가족 단톡방이 있어요. 원래 대화가 많은 가족인데, 아무도 이 방송에 대해 언급을 안 해요. 혜련이 누나하고만 통화했죠. 누나는 제가 창피하대요. 뭐하러 자기 집에서 한 것까지 말하냐고. 하하. 엄마도 그렇고 아무도 말을 안해요.”

평소 잠자리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그는 아내와의 잠자리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고민한다. 서로 잘 느끼기 위해 타협을 보기도 하고, 도구를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것이 삶의 질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부부간에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더욱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다. 또 본인보다 아내가 느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는 조지환 ⓒ고성준 기자

“친구 중에도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대요. 남편과의 관계가 악수하는 기분이래요. 괜히 제가 슬프더라고요. 그게 뭐예요. 사실 아내도 관계를 좋아해요.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시작하면 서로 즐겨요. 시작하는 게 두려워서 그렇지. 저도 저만 하고 끝내는 타입은 아니어서 최선을 다해요. 근데 아내도 오르가즘에 도달하려면 집중을 해야 하잖아요. 그것도 컨디션이 좋아야 해요. 피곤해 죽겠으면 그렇게 네 번씩 못 느껴요. 이게 <소녀경>에 나오는 이야긴데, 결국 혈액에 관한 내용이에요. 남자도 피가 몰리면 커지듯이,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클리토리스 쪽으로 혈액이 많이 모이면, 나중에는 건드리기만 해도 오르가즘이 와요.”

괴성 질러 
경비실 호출

가히 ‘국민 변강쇠’다웠다. 엄청난 학식이 짧은 발언으로부터 고스란히 전달됐다. 자신의 발언에 확신이 있었다. 쉽게 넘볼 수 없는 권위자의 풍모가 느껴졌다. 그가 이 영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중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위로 누나만 일곱 명, 막내 아들로 태어난 그다.

귀한 아들인 그는 어머니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공부를 곧잘 하던 중학교 당시, 어머니 일을 돕다 우연히 어머니의 속사정을 듣게 된다. “나 한 번도 느낀적이 없다”는 발언이었다. 이제 겨우 10대 중반의 어린 아들에게 50대의 어머니가 전하기엔 너무 강한 내용이었다.

“엄마도 사실 본인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던 거죠. 선을 세게 넘은 거죠. 하하. 당시에는 그 얘기가 사실 저한테 큰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인가 <소녀경>이랑 <카마수트라> <킨제이보고서>를 독파해요. 여자친구도 없었고, 섹스할 수 없고 그래서 <카마수트라>는 일찍 집어던지고, <킨제이보고서>랑 <소녀경>을 많이 읽었어요.”

국어와 영어, 수학 대신 어른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먼저 접한 데에는 아버지와의 불화가 작용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는 일이 있었고, 그 이후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27세까지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어린 조지환에게 아버지는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았다. 대인기피증도 있었고, 우울증 증세도 있었다. 

“그전에는 안 그랬는데, 아버지와 불화 이후로 내성적이고 대인기피증도 생겼고, 공부도 포기해요. 그리고 그런 책들만 읽은 거예요. 그때 혜련이 누나가 완전히 스타가 돼요. 심리적으로 안 좋았는데 연극영화과를 가겠다고 해요. 혜련이 누나를 업고 방송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동아방송대학을 갔어요. 근데 적응을 못 했어요. 사람들이랑 어울리지도 못했고요. 바로 입대했다가, 제대하고 복학해서 영화 <실미도>를 찍게 돼요.”

강우석 감독의 유일한 천만 영화인 <실미도>는 한국 영화의 바람을 일으킨 작품이다. 배우 설경구와 안성기, 정재영 등이 출연했으며, 여전히 회자되는 명작이다. 


“하루는 제 타이트 컷을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임원희 배우가 묶여있고, 한 대씩 맞는 장면이었어요. 맞고 참아야 하는데,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데굴데굴 굴러요. 촬영장 분위기가 싸해지는 거예요. 강우석 감독님이 ‘임마, 684 부대원이 이거 맞고 구르면 되겠냐’고 했고, 전 많이 혼났죠. 다행히 다시 찍었어요. 10개월을 촬영했는데 7초 나오더라고요. 엄마는 콜라 마시다가 제가 나오는 장면을 못 봤대요.”

이후 조지환은 깊은 상심에 빠졌다.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한 것. 그리고 극단을 선택한다. 배우 오달수가 소속했던 극단으로도 잘 알려진 ‘신기루 만화경’이다. 하지만 그곳서도 조지환의 우울증이 발목을 잡는다. 

어른들의 
은밀한 이야기

“삐에로 알바를 하고, 집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극단 생활을 해요. 사실 조혜련이 동생이다 보니 사람들이 저에 대해 그려놓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재밌고, 활기찬 그런 느낌이요. 저도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심리적인 문제가 극복되지 않아서, 진짜 즐거운 모습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2년 동안 음향‧조명 스태프만 해요. 누구나 하는 시간이기도 한데, 저는 작은 역할도 못 받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연극 <달토끼가 말했어>서 큰 역할을 맡아요. 실직자였는데,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이야기였고, 그 작품은 꽤 잘했어요. 열정적으로 했어요. 그 작품은 문제가 없었는데, 그래도 두려움은 계속 있었어요. 연기에 대한 깊이도 없는 것 같았고, 재미도 없고, 노는 방법도 몰랐죠.”

33세까지 6년 넘게 극단 생활을 한 그는 발전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한계를 느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SBS <기적의 오디션> 포스터를 발견한다. 힘겹게 간 오디션장, 이미 부서져 버린 멘탈을 부여잡으면서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지원자가 왔는지, 3시간이 지나도 줄이 안 줄더라고요. 몇 번을 집에 가려다 포기하고 했어요. 그렇게 기다리다 오디션을 봤는데, 발연기를 했죠. 조혜련도 팔면서, 붙어보겠다고. 절박했지만, 실력은 전혀 없었어요. 다행히도 곽경택 감독님이 선택해 주셔서 최종 30명까지는 갔어요. 그리고 영화 <미운 오리 새끼> 주조연도 맡았고, 영화 <친구2>도 했죠. 그러니까 드라마도 들어오더라고요.”
 

▲ ▲배우 조지환 ⓒ고성준 기자

연기만 할 때면 언제나 두려움이 찾아왔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생긴 상처가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배우의 기회를 얻었는데, 현장서 그는 늘 위축돼있었다. 

“스태프들이 쫙 있는데, 누군가 날 싫어하는 느낌이 있으면, 연기가 안 됐어요. 혼자 신경쓰이는 거예요. 그 사람이 저를 안 싫어했는지도 몰라요. 혼자 자격지심이 있었고, 불안장애도 있었어요. 즐겁지 않게 연기를 하니까 티가 났겠죠. 드라마도 결국 깡패만 하게 됐고, 결국 0으로 수렴하더라고요. 소속사서도 정리를 당했어요. 소속사도 할 만큼 했는데, 제가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었겠죠.”

아버지와 불화, 평생 두려움에 떨다
죽음 앞서 얻은 깨달음, 다시 배우로

배우로서 선택받지 못할 때 현재의 아내 박혜민과 결혼을 한 상태였다. 뭐라도 먹고 살아야했기에 지인과 떡볶이 집도 차렸다. 그것마저 실패했다. 조지환의 불안함은 날로 커졌고, 우울증도 심하게 찾아왔다. 감당을 못할 정도였다는 게 그의 말이다. 불안함이 극도로 커지자, 조혜련은 조지환에게 ‘예수 전도단’을 추천한다. 약 8개월가량 하와이 등 외국에서 선교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다. 기독교 신자인 아내와 딸도 동행했다. 

“가긴 갔는데 가서 엄청나게 싸웠어요. 전 준비가 안 됐었거든요. 술 담배를 하지 말래요. 전 아직 각오가 안 됐는데. 몰래 17세 애를 꾀어서 담배 피우고 왔다가 걸리기도 하고 그랬죠. 하하. 그렇게 아내와 싸우다가, 담배를 들고 산에 올라가요. ‘내가 한국서 인생은 실패했지만 저 산은 올라간다’면서요. 7시간을 가도 정상이 안 보이는 거예요. 거기서 우연히 교회 같은 집을 발견하고 물을 한 잔 얻어먹어요. 그때 깨달음을 느껴요. 결국 신앙이라는 게 이렇게 남을 도와주면서 사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려와서 화해했어요. 이후에도 많이 싸우고 했지만. 거기서 사람들 다 함께 자는 곳인데, 몰래 입 막고 하기도 했어요. 하하.”

그의 남다른 정욕은 신도 억제하지는 못한 듯했다. 하지만 약 8개월의 선교 여행 이후로 조지환은 두려움을 떨쳐낸다. 그리고 배달 대행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사로 승진한다. 영업을 시작하고 능력을 꽤 입증한 덕분이다. 성격도 밝아지고, 안정감을 찾는다. 
“혜민이도 걱정했대요. 제가 주눅 들어 할까 봐. 근데 제가 두려움도 없고 얘기를 잘하니까, 본인이 완전히 기분이 좋아진 거예요. 그러니까 안 해도 될 이야기까지 한 거죠.”

정신이 건강해지는 사이 육체가 고통을 받는다. 그 사이에 무려 네 번의 교통사고를 당한 것. 그가 보여준 사고 당시 엑스레이 사진은 끔찍했다. 뼈가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다시 배우로
 돌아갈 것”

“제가 네 번 죽을 뻔했는데, 이번 사고가 제일 컸어요. 팔이 부러졌어요. 병원서 부러진 걸 맞춰야 한다고, 뼈가 으스러진 걸 힘으로 맞추더라고요. 그렇게 아프다 보니까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결국, 죽음이라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인데, 연기할 때 나는 왜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 했을까라는 질문이 들더라고요.” 다시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다시 기회를 잡는다면 혼신의 힘을 다해 인물에 빠져보겠다는 열의가 생겼다고. 

“매형 회사에 들어가기로 했고, 배우의 꿈도 꾸기 시작했어요. 다시 배우가 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장서 즐기고 놀면서요. 다음에는 연기자 조지환으로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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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