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골육상쟁 서막 막전막후

누나의 선공…형까지 가세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최근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 전운이 드리운 형국이다. 조영래 회장의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성년후견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앞서 조 회장이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넘긴 지분 전량에 대해 자발적 결정이었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취지다. 경영권 다툼이 선명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의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 조 이사장은 최근 조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성년후견이란 고령이나 장애, 질병 등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성인에게 후견인을 선임해 돕는 제도다. 조 이사장이 이를 제기한 배경은 ‘지분 양도’였다.

3남매 연합
분쟁 불붙나

조 회장은 지난해 경영 일선서 물러난 바 있다. 이후 장남 조현식 부회장과 차남 조현범 사장이 각각 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이끌면서 형제 경영을 이어왔다.

2세 경영은 궤도에 올랐지만 누가 조 회장의 뒤를 잇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룹 내에서 이들의 역할이 일정하게 주어졌고, 지주사 지분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구조는 조 회장 23.59%, 조 부회장 19.32%, 조 사장 19.31% 순이었다.


하지만 조 회장이 차남 조 사장에게 지분을 전량 넘겨주면서 곧 지분구조에 변동이 발생했다. 지난 6월26일 조 회장은 보유 주식 전량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조 사장에게 전량 매각했다. 장남이 아닌 차남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조 회장 지분을 모두 넘겨받은 조 사장은 단번에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최대주주가 됐다. 조 사장 지분은 42.9%로 껑충 뛰면서 형인 조 부회장(19.32%)을 훌쩍 앞섰다. 조 사장은 보유 주식을 담보로 2200억원을 대출 받아 매입 자금을 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에도 경영권 분쟁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갑작스럽게 지분 구도가 변화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 6월30일 “대주주 간 주식거래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형제경영 체제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또 조 부회장과 조 사장 지위에 당장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일축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장녀 조 이사장이 돌연 전면으로 나서며 반전이 시작됐다. 조 이사장은 조 사장의 지분 양도가 자발적인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취지로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장녀 조희경, 조양래 회장 성년후견 신청
형제간 경영다툼 가능성↑ 장남에 달렸다

조 이사장 측은 지난달 30일 서울가정법원에 조 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성년후견은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나뉜다. 이 중 법정후견은 다시 정신적 제약 정도와 후견 범위에 따라 성년후견·한정후견·특정후견으로 재분류된다.


조 이사장 측은 “(조 회장이)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생각과 너무 다른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이 놀라고 당혹스러워했다”며 “이런 결정들이 건강한 정신 상태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것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됐다”고 주장했다.

또 “조 회장이 지난 6월 급작스럽게 조 사장에게 지주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식 전부를 2400억원에 매각했는데, 그 직전까지 그런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며 “조 회장은 평소 주식을 공익재단 등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으며, 사후에도 지속 가능한 재단 운영 방안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조 이사장 측의 설명대로라면, 조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은 조 사장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형국이다. 동시에 승계 자체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 ▲▲ (사진 왼쪽부터)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 조현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장 ⓒ한국테크놀로지

조 이사장 측은 이어 “대기업 승계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회사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이뤄져야 할 것이며 기업 총수의 노령과 판단능력 부족을 이용해 밀실서 몰래 이뤄지는 관행이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룹 측은 조 회장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이사장의 청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지정된 후견인은 조 회장과 조 사장의 블록딜을 무효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후견인 지정이 곧바로 기존 거래를 무효화하지는 않지만 가족 간 소송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 회장의 건강 상태 등은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된다. 성년후견심판 청구가 접수되면 법원은 의사 감정을 통해 당사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이후 진술을 받는 절차 등을 거쳐 후견인 지정 여부를 가리게 된다.

법원이 조 회장의 사무처리 능력이 결여됐다고 판단할 경우 한정후견인이 선임된다. 다만 조 회장 본인이나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등이 항고 또는 재항고를 할 수 있다. 해당 절차가 진행된다면 후견인 업무는 정지된다.

법원에 의해 선임된 후견인은 재산과 신상 등을 보호하는 대리인 역할을 한다. 앞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넷째 여동생 신정숙씨는 성년후견 개시를 청구, 신 총괄회장에 대한 한정후견인으로 지정된 바 있다.

자발적 결정
아닐 수도

이른바 장녀의 반격으로 눈길은 남매들에게 향한다. 장남 조 부회장은 조 이사장의 성년후견신청에 대해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조 부회장 측이 공식 의사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성년후견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차녀 조희원씨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조씨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10.82%를 보유 중이다. 다만 조씨는 앞서 제기된 경영권 다툼 가능성에 대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장녀의 후견인 신청으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4남매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지난 7월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전날보다 3400원(29.96%) 상승한 1만4750원에 장을 마감했다.

입장이 난처해진 쪽은 조 사장이다. 조 사장은 부친으로부터 지분을 물려받고, 사실상 후계 경쟁력을 선점했지만 신경 쓸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장녀 조 이사장의 반격으로 조 사장의 리스크가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당장 해결해야하는 사안은 법적 문제다.
 

▲ 한국테크놀로지 본사 ⓒ한국테크놀로지

조 사장은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바 있다. 조 사장은 협력업체에 납품 대가로 매달 수백만 원씩 6억여원을 챙긴 혐의와 계열사 자금 2억여원을 정기적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조 사장은 지난 4월 배임수재 및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배임수재 및 횡령금액 전부를 반환해 피해자들이 선처를 구하고 있다”며 “더는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벌금형을 넘는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조 부사장은 지난 6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직서 물러났다. 사측은 일신상의 이유라고 전했지만, 재판 결과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현재 조 사장과 검찰은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8일, 조 사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서 징역 4년의 실형과 함께 추징금 6억1500만원을 명령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흔들리는
조 사장?

검찰은 “조 사장은 대기업 사주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 직원들로부터 자금을 마련해 빼돌리고 차명계좌를 이용해 수익을 숨기는 등 장기간에 걸쳐 범행을 저질렀다”며 “원심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는 등 형이 너무 가벼워 항소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어 “1억원 이상 배임수재 혐의에 가벌성이 있는 경우, 형량이 징역 3년서 5년 사이”라며 “조 사장에 대해 충분한 가벌성이 있는데, 원심은 조 사장이 자백했다는 이유로 배임수재 양형 기준 최하한인 징역 3년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 적절한 사안인지 심리해달라”고 밝혔다.

반면 조 사장 측은 형이 무겁다고 주장했다. 조 사장 측은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다시는 이 같은 잘못 저지르지 않도록 뉘우치고 있다”며 “이 사건으로 발생한 피해를 모두 갚아 피해자들이 조 사장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한국타이어에 실질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다소 무겁다”고 반박했다.

조 사장 역시 최후진술서 “어리석은 욕심과 안일한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며 “분별없는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봤는지 뼈저리게 느껴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마음가짐을 바로 해 경영인으로서 주변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선고 공판은 오는 내달 9일에 열린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조 부회장의 입지는 좌우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것이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조 사장이 넘어야 할 산은 하나 더 있다. 지난해 3월 교체한 사명과 관련해서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기존 한국타이어서 사명을 변경했다.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은 조 사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은 타이어 산업에만 머물지 않는 혁신 기술기업을 표방하며 사명을 변경한 바 있다. 당시 사측은 “이번 사명 변경은 미래 산업 생태계의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개별 계열사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를 넘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 개척에 도전하는 파괴적 혁신을 지속하게 해줄 초석을 다지기 위해 추진된다”며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자동차 전장 사업체 ‘한국테크놀로지’가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것이다.

한국테크놀로지는 가처분신청을 통해 “상호 사용으로 영업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가처분신청을 결정했다”며 “특히 조 사장의 배임·횡령 사건이 발생한 이후 피해가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한국테크놀로지 측의 손을 들어줬다.

“동생에 지분 넘긴 부친 결정
자발적 결정인지 판단 필요”

당시 재판부는 “‘한국테크놀로지 주식회사’ 또는 ‘HANKOOK TECHNOLOGY GROUP CO. LTD.’를 상호로 사용해서 안 된다“며 “자동차 부품류 제조·판매업이나 자동차 부품류 제조·판매업을 영위하는 회사를 소유·지배하는 지주사의 영업 표지로 사용하거나 영업과 관련된 간판, 거래서류, 선전광고물, 사업계획서, 명함, 책자, 인터넷 홈페이지 및 게시물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구체적인 사용금지 조치도 담았다.

재판부는 “채권자 코스닥 상장사 한국테크놀로지가 이미 8년 전부터 이 상호로 영업을 하고 있고, 특히 자동차 전장사업 부문에 진출해 해당 분야서 상호를 사용한 것도 2년 5개월 이상 광범위하게 사용된 만큼 주지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 ⓒ한국타이어

이어 “상호가 상당히 유사해 오인, 혼동 가능성이 있고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소정의 부정경쟁행위 요건으로서의 혼동 가능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당시 판결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상호사용금지 소송서 승소한 첫 사례였다. 최악의 경우,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간판을 다시 바꿔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또 사명 변경 사업을 조 부사장이 이끌었던 만큼 리스크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영권 분쟁이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여러 시나리오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무게가 실리는 가능성은 남매 간 연합전이다.

조 이사장과 조 부회장, 그리고 조씨 등 3남매의 한국테크놀리지그룹 지분 합은 모두 30.97%다. 다만 조 사장 지분 42.9%와 큰 차이가 있다. 일각에선 6.24%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조 사장과의 지분 격차는 상당하다.

1972년생인 조 사장은 1998년 한국타이어에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광고홍보팀장을 거치면서 4년 만에 임원으로 올랐다.

조 부사장은 마케팅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부사장, 경영기획본부장, 경영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COO(최고운영책임자)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에 등극했다. 조 사장은 2001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씨와 결혼해 이른바 ‘MB 사위’로 불린다.

그룹은 지주회사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정점으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한국아트라스비엑스, 한국네트웍스, 한국카앤라이프 등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당겨진 방아쇠
진흙탕 싸움?

주력 계열사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다. 올해 성적표는 낙관하기 어렵다. 지난 1분기 매출액은 12.5% 감소한 1조4357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24.6% 감소한 1060억원을 나타냈다. 순이익 역시 20.7% 하락한 976억원에 그쳤다. 2분기 실적은 장담하기 어렵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가 업계 전반에 드러나는 시기가 2분기로 점쳐지면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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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